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I Sep 13.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54

@ Phong Nha, Vietnam

Phong Nha, Phong Nha!



누가 어깨를 살짝 치며 귀에 Phong Nha라고 속삭여서 잠에서 깬다. 비몽사몽으로 일어나니 아늑한 침대가 아닌 덜컹거리는 버스 안의 좁은 침대다. 방금 잠에서 깬 어리둥절한 상태에서도 플래시 라이트를 꺼내 어두운 실내에 빛을 보태며 서둘러 짐을 싸 본다. 그런데 지금 몇 시지?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이다.

조금 지나니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커진다. 이곳에서 내리는 사람이 많은가보다. 문득 이 버스는 최종적으로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해진다. 설마 호찌민시까지 가는 건 아니겠지. 그냥 내리지 말고 따라가 볼까. 물론 생각만이다. 이곳에서 안 내릴 이유는 없다. 모험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다.

짐을 다 챙기고 언제든지 뛰쳐나갈 준비를 모두 마친 후에도 버스는 5 분여를 더 간다. 어느 작은 골목으로 접어드는걸 봐서 이제 슬슬 마을에 들어온 거 같다. 그러더니 한 큰 거리 한복판에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버스가 멈춘다.

가방을 짊어지고 복도에서 자는 사람들을 피해가며 손에 슬리퍼를 쥔 채 버스에서 내린다. 어제 저녁 7시쯤 탔으니 10시간 정도를 탄 셈인데 나름 잠을 잘 자서 그런지 그리 오래 온 느낌은 아니다. 단지 잠이 덜 깨서 제 정신이 아닐 뿐이다. 이 시간에 호텔 잡는 거는 문제가 없을까. 그것보다 체크인 시간이 걸린다. 짐을 맡기고 어디 선책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려나 걱정된다.

호텔 걱정은 기우였다. 트렁크에서 메인 배낭을 찾아 꺼내는데 주변 호텔에서 나온 듯한 현지인 몇 명이 보인다. 내리는 여행자들에게 여기저기 전단지와 명함을 열심히 나눠주고 있다. 근데 저 인간 왜 나한테만 안주냐. 이곳에서 내린 여행자가 꽤 되는데 동양인은 또 나 혼자다. 지금은 누구와 대화할 정신도 없고 빨리 들어가서 잠을 자고 싶다.

직접 가서 물어본다. 역시 호텔에서 나왔고, 에어컨룸이 10달러란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거는 지금 이 시간부터 내일까지, 즉 1.5일에도 같은 가격이라는 거다. 나쁘지 않다. 첫 제안이 이런 거 보니 둘러보면 더 좋은 곳도 나오지 싶지만 새벽 4시에 어두컴컴한 동네를 돌아다니며 방을 찾느니 첫날밤은 여기서 숙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다. 다른 여행자들이 고민하고 서 있을 때 나는 그냥 방을 하나 달라고 한다.

안쪽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잠시 앉아있는데, 펑냐의 첫인상은, 어두움 밤이다. 새벽 4시에 당연히 한밤중인 이 곳에서 보이는 건 흐릿한 건물 몇 개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물들이 꽤나 현대적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마을은 아니지 싶다. 벽에 걸려있는 안내 그림들을 보니 동굴도 한두 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 동굴 중 하나에서는 로프를 타고 가다 강으로 뛰어내리는 액티비티도 있나보다. 여기서도 투어를 몇 개 해봐야 하려나.

조금 앉아 있으니 다른 여행자들을 스태프가 몇 명 더 꼬시고 와서 같이 바로 옆의 호스텔로 들어간다. 근데 슬쩍 엿들어보니 2명도 나와 같은 10달러다. 나는 한 명이다. 네고를 좀 해봐야겠다.

방을 보여주는데 뭐 나쁘지 않다. 깨끗하고, 에어컨 있고 화장실 깔끔하면 사실 나는 그냥 그게 그거다. 로비로 내려와서 흥정을 시작해본다. 2인에 10달러인데 혼자 쓰면서 같은 가격을 내기에는 억울하다.

16만 동을 목표로 두고 얘기하지만 수비를 잘하는 매니저 덕분에 18만 동에 최종 합의한다. 9달러가 조금 안 되는 가격이니 협상에 실패한 셈이지만 첫날은 이 이상 협상이 쉽지 않다. 혹시 이곳에 더 머물게 되면 이 협상을 더 이어가야겠다.

짐을 들고 숙소로 들어와서 간단히 샤워부터 한다. 이제 5시다. 보통때는 일어날 시간이지만 에어컨과 침대의 유혹이 강렬하다. 몇 시간이라도 더 자고 하루를 시작해봐야겠다.





9시가 지나서 평소보다 좀 늦게 하루를 시작한다. 여기 방은 창문이 벽을 향해 있어서 낮과 밤의 구분이 안된다. 잠자기에는 좋지만 뷰는 없다.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고 돈 계산을 먼저 해본다. 이제는 여행 막판이라 추가 돈을 공수 받기 힘드니 이렇게 매일 계산하면서 계획적으로 지출을 해야 한다.

현재 있는 돈이 4,700,000동과 10달러다. 10달러는 어제 그 한국 여성분에게 환전을 해주면서 생겼다. 공항버스를 검색해보니 15,000원이다. 뭐 이리 비싸냐. 10달라로 해결이 안된다. 5달러를 추가로 빼야 하니 베트남 돈으로 100,000 동을 빼둔다. 그렇다면 남은 돈은 4,600,000동, 이 돈을 오늘부터 떠나는 날까지 모두 포함한 6일로 나누면 하루에 하루에 76만 동, 한국돈으로 3.8만 원 정도다. 생각보다 빠듯하지 않다. 적당히 감안하면서 지내면 문제는 없어 보인다.

짐을 챙겨가지고 나오니 9시 반이다. 그런데 오늘 뭐할까? 이 동네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 로비로 오니 오토바이를 하루에 10만 동에 빌리라고 권한다. 이곳에는 유명한 동굴이 다량 있어서 보통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동굴 탐방하는 게 주 관광루트인가 보다. 투어가 아닌 혼자 다닌다는 거는 마음에 든다. 일단 늦은 아침을 먹고 생각 좀 해봐야겠다.

거리로 나오니 더위가 느껴진다. 오늘부터 일주일간은 더위가 가장 큰 변수일 수도 있겠다. 에어컨이 없으면 생활하기 힘들 정도다. 거리를 좀 거닐다 깔끔해 보이는 카페가 보이기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다.


빵과 오믈렛, 그리고 연유가 들어간 아이스커피, '카페 스이다'를 주문하고 키보드를 핀다. 뭔가 기운이 없다. 여행 다니면서 처음으로 입속에 뭔가가 났다. 피곤해서일까, 긴장이 풀려서일까. 총 두 달의 여행에서 남은 날이 이제 6일이 채 안된다. 새로운 여행지에 왔으면 신나야 하는데 사실 그냥 무기력하고 귀찮다.

노여사는 다소 진지하게 여기서 인도로 한 달 정도 여행을 더 연장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어제 얘기하더라. 살짝 유혹이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런 생각 때문에 마음이 정해졌다. 이제는 돌아갈 때이다. 여기서 더한 여행은 내 자신을 위한 여행이 아닌 그저 여행을 위한 여행이다. 이제는 현실로 돌아가서, 가슴이 아닌 머리로 생각할 때이다. 가슴은 충분히 뜨겁게 댑혀놓았다. 이제는 차가운 머리가 나설 시점이다. 돌아가자, 가혹한 현실로.

여기 카페의 스태프가 매우 친절하다. 게다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어서인지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인다. 한국어 교재를 나에게 자랑스레 보여주더니 옆에 와서 한국어로 이런저런 말을 연습한다. 베트남인들의 이 적극적인 학습열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발전 가능성이 굉장히 큰 나라이다. 교육과 학습은 모든 것의 근간이다. 여행 중에 처음으로 내 이름인 '경훈'을 제대로, 그것도 한 번에 발음하는 사람을 만난다. 역시 한국어를 공부해서 다르다. 

나보고 한국인 같이 안 생겼다고 한다. 아 또 꺼내야 하나. 운전면허증 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스태프가 사진을 보더니 이 잘 생긴 사람이 어찌 이리 됐냐며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안 안타까운데 사람들이 참 안타까워한다. 특히 우리 노여사께서. 뭐 이제 다시 그때의 나로 돌아갈 날도 얼마 안 남았다.

밥을 다 먹고 앉아있으니 이 여성분이 아예 펜과 종이를 가지고 와서 앞에 앉는다. 'Are you done?'이 한국어로 뭔지 물어본다. '다 드셨어요?'이지만 한국 문화에서는 그릇을 다 치워버리면 나가라는 얘기로 오해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근데 '드셨어요' 설명이 쉽지 않다. '먹다'의 존칭인 '들다'에 '~다'의 존칭인 '~시다'까지 이중 존칭이다. '들+시+다'가 드시다가 된다. 뭔 존칭이 이리 겹겹이 쌓여있다냐. 이러니 한국에서는 데이브 같은 연배 차이가 나는 친구를 절대 못 만드는 거다. 

예전에 한국에서 하는 영어캠프에 스태프로 참여한 적이 있다. 제주도 가서 애들하고 놀아주면서 돈을 받고 한 달을 지냈으니 정말 꿈같은 아르바이트였다. 당시 스태프들끼리는 영어를 써서 어린 스태프들과도 다 친하게 친구로 지냈었지만 서울로 돌아오면서 한국어로 바꾸는 순간 친구가 아닌 형, 동생이 되어버렸다. 언어가 문화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꼭 뭐가 더 낫다는 건 없는 것 같다. 모든 장점과 단점은 연결되어 있다. 나쁜 점 하나를 없애면 좋은 점도 같이 없어지는 법이다. 

베트남에 오기 전에 이곳 사람들이 불친절하고 안 좋다는 얘기를 여행자들에게 많이 들었지만 막상 와서 내가 겪은 이들은 다르다. 물론 미얀마 사람들처럼 순수함이 넘쳐흐르는 자들은 아니다. 하지만 무지에 의한 순수가 아닌 호기심과 탐구열로 자신을 계발하면서 순수함과 친절함을 유지하고 있다.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진다.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무척 마음에 든다.

이 여성 스태프 '하'한테 베트남어에 대해서도 배운다. '비아호이'라고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은 게 6성 때문이다. 이 성조를 이용해서 '비아호이'가 아닌, '비아흐이'를 연습한다. '하'와 함께 이 마을에서의 일정도 같이 고민하면서 짠다. 어쩌다 보니 이 카페에 있는 현지인들이 모두 참여해서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일정을 계획한다. 오늘은 일단 걸어서 가까운 동굴 두개를 보고, 내일은 오토바이를 빌리고 좀 멀리 있는 동굴들을 봐야겠다. 3일째는 한번 더 보던가, 쉬던가, 아니면 떠나야겠다.

갑자기 궁금해서 베트남에서 제일 유명한 대학교가 뭐냐고 물어보니 서로 물어보면서 '뭐지?'하는 표정으로 토의를 한다. 제 1의 대학교를 모른단 말인가. 아예 학교 이름들도 잘 모르는 거 같다. 신선하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넘어야 하는 벽이 역설적으로 '명문대 출신의 벽'이라 생각한다. 재수없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벽이 가장 깨기 힘들다. 자부심이 허영심, 자만으로 이어지고 선택의 폭을 제한시킨다. 이건 사실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벽이다. 출신 학교 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어버리는 이 문화, 미국에서 영향을 받아 더 확실하게 발전시켜버린 이 문화를 깨야 진정 행복을 추구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 개인도 이걸 극복 못하는데 우리나라가 그러길 바라는 건 무리겠지.

어제 헤어진 런던으로 가신 분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라며 '파우스트'에 나오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리'라고 나에게 얘기를 해줬었다. 이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모든 노력하는 자는 방황한다. 방황하지 않는 자는 노력하지 않는다. 생즉고, 우리는 과연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걸까.

11시가 넘어서야 식당을 나와 탐험을 시작한다. 이 더위는 오늘따라 더 견디기 힘들다. 아까 '하'가 가라고 한쪽으로 무작정 걸어본다. 가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안 나오면 말고.

걷다 보니 왠 관광버스들이 잔뜩 보인다. 뭐하는 차들일까. 버스들을 지나쳐서 걸어간다. 좀 더 가니 강이 나타난다. 강 뒤에 산들이 보이는 게 라오스의 마을들이 떠오른다. 그래도 바람이 조금씩 불어줘서 한 번씩 땀을 식혀준다. 하지만 역시 10분도 안되어서 땀 범벅이 되어 버린다.

한참을 그냥 걷는다. 여행 막판이 되면서 이렇게 그냥 거닐 때면 자꾸 한국 생각이 난다.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왜 난 벌써 한국에 돌아간 걸까. 남들은 총 일정을 6일로 오기도 하는데 그 시간이 남아있으면서도 벌써 이곳을 떠나 있으면 어쩌냐. 다시 이곳에 존재해보자.

길 한 편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에 슬쩍 보니 남자 둘이 말싸움을 심하게 하더니 기필코 한 명이 얼굴에 주먹질을 한다. 펀치가 좀 약했는지 맞은 남자는 꿈쩍도 안 하고 오히려 더 쳐보라며 달려든다. 주변에서 말리기 시작하고 소리가 커진다. 싸움구경이 재미있다지만 이런 타지에서는 위험의 잠재력이 있는 곳은 일단 피해야 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하고도 눈을 안 마주치려 하며 그 자리를 피한다.

태어나서 친형 말고 주먹 다툼을 한적이 한 번도 없다. 대신 어릴 때는 친형과 참 많이도 다퉜다.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게 폭력으로 자기의 뜻을 알리는 거라 믿으면서 형 하고는 왜 그리 싸웠을까. 폭력이 일어날 일이 생기면 그냥 져주면 된다. 자존심 상하거나 비굴한 게 아니다. 그냥 현명한 거다. 사람은 대화라는 좋은 무기가 있다.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다시 얘기해서 내 의사를 전달하면 되는 거다. 물론 우리나라를 벗어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대화로 해결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여자친구랑 있을 때는 최대한 잠재적인 위험이 있는 곳은 안 가려고 노력한다.

한참 가는데 이 길이 아닌 거 같다. 같은 길이 이어질 뿐, 동굴 그림자도 안 보인다. 호텔에서 받은 지도를 꺼내서 찬찬히 보니 이곳이 아니다. 한 시간 정도를 온 거 같지만 괜찮다. 꼭 동굴을 목적으로 했다기 보다는 그냥 좀 걷고 싶었다.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까 그 싸움은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처음에 주먹을 날린 그 청년이 지금은 칼을 들고 서 있다. 사람들을 불러들였는지 남자 네다섯 명이 그 친구를 말리고 한 명이 그사이에 칼을 빼았는다. 도대체 집에 저런 정글도가 왜 있는 걸까. 칼이라니, 남자의 폭력성은 제어가 안되면 정말 무섭다.

노여사한테 예전에 '남자는 근본적으로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고, 여자는 정신병을 내재하고 있다.'라고 얘기하고는 했다. 정신병이라니 너무 극단적인 단어이지만 적당한 단어를 모르겠다. 3년 전쯤인가, 갈비를 먹고 싶다는 노여사 때문에 홍대에서 갈비집을 찾아 헤맨적이 있다. 이상하게 항상 찾으면 안 나온다. 결국 갈빗집을 못 찾아서 홍대에서 이대역까지 걸어왔는데 이때 노여사의 짜증이 폭발하였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라. 갈빗집이 없는 건 내 잘못이 정말 아니지 않느냐. 내가 갈빗집을 하는 건 아니잖아. 왜 나한테 짜증이야.

나중에 들어보니 데이트한다고 예쁘게 꾸미고 힐도 신고 나왔는데 계속 걸어서 짜증이 났단다. 짜증이 났지만 표현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나한테 짜증이 분출된 거다. 근데 잘못도 없는 나한테 왜 그 짜증이 쏟아질까. 남자 입장에서는 이런게 이해 안되지만 여자는 그렇다. 이런 걸 '정신병'이라고 표현하는 건 좀 아니지 싶고, 여하튼 이러한 걸 뜻하는 거다.

반대로 연애 초기에는 심하게 다툴때면 노여사가 입을 닫아버리는 상황이 많았다. 침묵이다. 답답함의 극치였다. 이때 나도 나한테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당연히 폭력을 휘두르는 미친 짓은 안 했지만 화가 극에 달하면 남자는 본능에 무너질 수 있겠다 싶었다. 남자와 여자, 둘 다 완전하지 못하다.

칼이라니. 역시 눈을 깔고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지나간다. 다행히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다. 하긴 내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다.

지나쳐서 왔던 길을 다시 쭈욱 되돌아오며 사람들한테 길을 물어보니, 처음에 지나쳤던 그 관광버스가 많던 곳이 동굴로 가는 길이었다. 거기서 배를 타고 가야 한단다. 다시 그쪽으로 돌아온다.

시간이 1시가 넘었다. 일단 점심을 먹고 들어가야겠다. 동굴로 가는 선착장인 이곳에서 먹으면 비쌀 듯 하지만 또 어디로 이동하기 애매해서 적당한 곳에 자리 잡는다. 메뉴를 보니 역시나 비싼 메뉴들이 즐비하다. 그냥 껌가, 닭과 밥을 달라고 한다. 밥을 좀 먹을 필요가 있다. 차가운 녹차인 '차다'를 달라고 하니 못 알아듣는다. 메뉴에도 없다. 도시가 바뀌니 메뉴도 바뀐다. 그냥 얼음, '다'와 콜라를 달라고 한다. 물이 테이블에 배치되어 있길래 얼음에 따라서 시원하게 마셔준다. 수분 섭취가 필요했다.

닭볶음밥인 줄 알았더니 닭고기덮밥이라고 표현해야 맞겠다. 5만 동이면 그래도 이런 관광지에에서 나쁘지 않다.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는 또 전화로 싸움이 났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다 다혈질인가. 뭔 싸움이 이리도 많이 일어난다냐. 난 마지막으로 싸운 게 언제더라. 기억도 안 난다.

밥을 다 먹었으니 이제 동굴로 가봐야겠다. 6.5만 동을 계산하고 나온다. 나오는 뒤편으로 싸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아까는 전화로 싸우더니 이제는 앞에 앉아 있는 남편한테 분풀이를 하고 있다. 그래, 만만한게 남자지.

티켓 판매소로 가본다. 뭐라 뭐라 쓰여있는데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일단 숫자 단위가 생각보다 너무 크다. 아무리 지켜봐도 모르겠기에 그냥 판매소의 사람에게 물어본다.

입장료가 15만 동이다. 7달러 정도, 비싸긴 하지만 낼 수는 있겠다. 헌데 보트값이 32만 동이란다. 16달러다. 이건 너무 비싸다. 이럴 수가 있나? 자세히 들어보니 그게 14명분이란다. 혼자 가나 14명이서 가나 전체 가격이 같다. 14명이 가면 각자 1.5달러 정도니 큰 부담 없는 돈이지만 혼자서 가면 포기해야 할 가격이다.

일단 앞에 앉아서 사람들을 한번 기다려본다. 하지만 여기서 14명을 모으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단체로 오는 사람들은 모두 투어를 껴서 오는 사람들이고 홀로 오는 여행자들은 거의 안 보인다. 게다가 그냥 기다리기에는 이곳이 너무 덥다. 베트남의 더위는 정말 독을 품고 있다.

좀 기다리다 포기하고 일어난다. 멀리 있는 동굴은 오토바이를 빌려야 해서 내일 가기로 했으니 근처 공원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이나 가봐야겠다 싶다. 그쪽 길로 걸어가 본다.

15분 걸어가고 큰 깨달음을 얻는다. 베트남 남부에서 오후 한두 시에 뙤약볕을 걷는 행위는 자살행위다. 이건 진짜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땀에 익숙해진 나지만 이건 그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황급히 발길을 돌린다.

일단 호텔로 돌아온다. 지도를 펴고 펑냐동굴의 14명 보트에 대해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좀 미리 얘기해주지. 이 동네 이름이 펑냐이니 펑냐 동굴에 가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거기는 인연이 아닐 거 같다. 대신 Dark Cave라는 곳은 32만 바트로 비싸긴 하지만 혼자 갈 수 있고 짚라인과 수영장 등이 모두 포함된 가격이라고 한다. 여기나 가볼까.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 오토바이 빌리는 게 10만 동이니 지금, 오후 2시부터 빌리는 건 얼마냐고 한번 물어보니 같은 10만 동이다. 이게 왜 같아. 하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요지불통이다. 에이 그냥 안가. 오전부터 땀을 너무 흘려서 좀 쉬고 싶기도 하다. 오늘은 방에서 좀 쉬다 저녁에 나와서 마을이나 좀 보고, 동굴을 제대로 보는 건 내일로 미뤄야겠다.

사이공 맥주를 팔기에 1.2만 동을 주고 하나 사온다. 더위를 식혀야 한다. '다', 얼음을 달라고 울부짖는다. 스태프가 웃으며 컵에 얼음을 서너 개 담아준다. 얼음은 어디서든 공짜다. 방으로 오자마자 에어컨을 키고 옷을 벗어재낀 후 찬물로 샤워부터 한다. 땀을 씻어낸 후에 얼음컵에 물을 가득 담아서 일단 한잔 쭉 들이킨다. 그 다음 맥주를 담아서 천천히 음미하며 마신다. 아 이제 좀 살 거 같다.

에어컨 바람을 시원하게 쐬면서 책을 본다. 원래 여행지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죄책감을 느끼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너무 덥기도 하고 그냥 뭔가를 억지로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오후 7시까지 방에서 왕좌의 게임을 본다. 1편을 다 봤다. 이거 진짜 명작이다. 예전에 글을 안 쓸 때는 몰랐던 것들이,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여행기를 쓰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상황에 대한 묘사와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게 영어든 한글이든 대단하게 느껴진다. 진짜 앞으로 글을 나의 '예술'로 할까 싶다.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지. 나오니 해가 진 이 시간에도 열기가 느껴진다. 저녁은 어디서 먹을까. 외롭다 보니 밥이라도 맛있는 걸 먹고 싶다.

거리를 걸어가 보니 두 장소가 눈에 띈다. 바로 앞 게스트하우스에는 서양인들이 클럽 분위기를 내며 시끄럽게 놀고 있다. 스윽 보니 수영장도 있다. 이 더위에 수영장은 탐나지만 저런 시끄러운 곳은 절대 가고 싶지 않다. 다른 곳은 아침을 먹었던 그 식당이다. 거기 유명한 곳이었나 보다. 서양인들로 만석이다. 역시 싫다. 관광객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길을 한번 쭉 갔다가 돌아온다. 여기도 비수기의 영향인지 그 두 곳 말고는 모두 한가하다. 역시 부익부 빈익빈이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Han Quoc', 즉 한국이라 쓰여있는 곳이 보인다. 한국음식을 이런 곳에서도 파나? 호기심에 한번 들어가본다.

판매하는 한국음식은 설명을 보아하니 빈대떡이다. 물론 여기서 7만 동의 빈대떡을 먹을 생각은 없다. 대신 메뉴에 돼지 다리로 만든 쌀국수가 눈에 띈다. 족발인가? 처음 보는 거는 먹어봐야 한다. 넴을 물어보니 3천 동이란다. 설마.... 설마 3만 동을 잘못 얘기하는 건가 싶었는데 써주는걸 보니 진짜 3천동이 맞다. 이거 뭐 이리 싸. 3만 동짜리 국수와 넴 3개, 그리고 1.5만 동짜리 가장 싼 지역맥주 사이공 비어를 하나 주문한다.

바깥에 현지 남자들이 상체를 벗고 술을 마시고 있다. 안에서 먹기는 너무 덥다. 바깥에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하니 그 옆에 자리를 펴준다. 얼음, '다'를 꼭 달라고 강조해서 얘기한다. 정말 별거 아니지만 베트남어로 단어 한두개를 얘기하면 사람들이 눈에 띄게 호의적으로 변한다. 이거의 핵심은 성조다. 초반에 나도 모르게 영어식으로 얘기할 때와 지금 두 세 단어라도 제대로 발음할 때 나를 대한 이들의 눈빛이 눈에 띄게 다르다. 자기 나라를 이해하려는 사람을 등외시 하는 곳은 없다.

앉아서 조금 있으니 맥주와 음식을 가져다준다. 혼자 마시고 있으니 옆에 테이블의 아저씨들이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갖는다. 테이블이 별도긴 하지만 옆에 딱 붙어있어서 자연스럽게 같이 건배를 하며 마신다. 건배가 '조'였던가. 근데 못 알아듣는다. 그게 아닌가.

국수가 나온다. 이 국수 마음에 든다. 돼지 냄새를 제대로 못 없앴지만 오히려 그런 강한 맛이 술과 맞아 떨어져서 좋다. 난 성격은 안 그런데 미각은 강렬한 수컷인가 보다.

옆에 남자분들은 영어를 정말 한마디도 못한다. 이분들은 맥주를 곽으로 옆에 쌓아놓고 한병씩 꺼내 드신다. 나는 베트남어를 못하고 이분들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지만 신기하게도 의사소통이 되며 단어 몇개를 더 배운다.

첫 번째 단어는, '탐'. 탐을 외치고는 원샷을 한다. 뭐 이건 쉽다. 원샷을 뜻하는거겠지. 같이 원샷을 계속 한다. 이분들은 마실때 무조건 건배를 하고 다 같이 함께 마신다. 물론 매번 원샷을 하는 건 아니고 '탐'을 외칠 때만 한다. 근데 내 바로 옆에 분이 술을 잘 드시는지 나를 보고 계속 탐을 외친다. 마시지 뭐. 까짓 거.

그러다 '뷔 뷔베'라고 얘기를 하며 탐을 안 하고 건배만한다. 이건 무슨 말일까. 아직 모르겠다. 맥주가 다 떨어져서 더 시킬까 하는데 자기들 술을 따라주며 '뷔 뷔베'라고 또 얘기한다. 아, 이거 왠지 '부담 갖지 말아라' 이 얘기 같다. 물론 진실은 저 너머에. 하지만 지금 순간은 이렇게 이해한다.

이분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하나 익힌다. 이분들은 맥주병을 맥주병으로 딴다. 라이터나 숟가락으로는 나도 잘 따지만 이런 기술은 처음이다. 병 하나를 뒤집에서 다른 병 뚜껑에 붙이고 지렛대의 원리로 딴다. '뻥'소리가 나는 게 아주 시원하다. 호기심이 돋아서 나도 한번 시도해보지만 실패하고 옆에 분이 대신 따준다. 두 번째 시도 때는 6명의 현지인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드디어 성공한다. 포인트를 캐치했다. 이 기술은 사실 좀 위험하긴 한데 한국 가서도 쓸 수는 있을거 같다.

내 술을 다 먹었는데 옆에서 자꾸 자기들 술을 건내준다. 어쩌다 보니 많이 얻어 마셨다. 계속 얻어먹는 게 미안해서 나도 한병 더 시켜서 이분들께 따라드린다. 근데 그냥 나 먹으라며 한사코 거절하신다. 나도 '뷔 뷔베'라며 부담 갖지 말라고 얘기하니 깔깔거리며 좋아들 하지만 그래도 받지는 않는다. 결국 이 술도 내가 마신다.

나랑 제일 잘 맞춰주던 분이 자는 시늉을 하며 '슬퀴에'라고 한다. 이제 자러 간다는 거겠지? 언어는 원래 이렇게 배우는 게 재미있고 좋다. 근데 가시기 전에 따로 안주까지 챙겨주신다. 이거 부담스러운데. 내가 부담스러워하니 자꾸 '뷔 뷔베'라고 한다. 저건 부담 갖지 말라는 단어가 확실하다.

나도 탐을 몇 번 외친다. 얼음이 부족하면 '다'라고 얘기한다. 여기도 캄보디아처럼 얼음을 손으로 집어서 컵에 담는다. 익숙하고 좋다. 화장실을 가니 구멍 하나가 뚫려있다. 이것도 좋다.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이다. 아낀다는 마음, 아껴준다는 마음.

데이브 일행과 헤어지고 그 구멍이 생각보다 컸나 보다. 오늘 하루 이 때문에 힘들어하다,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이들로 인하여 구멍이 채워진다. 여행 다니면서 항상 느끼지만 사람의 마음을 여는 건 복잡한 말이 아니라 가벼운 미소 하나다. 나는 정말로 독립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내 옆에 분은 자러 간다더니 계속 마시고 있다. 뭐 다 그런 거지. 그렇다면 나도 좀 달려볼까. 나도 그들에게 '탐'을 몇 번 외친다. 지나가던 아저씨들이 술마시는 우리를 보더니 몇 명 더 합류한다. 여기서는 그냥 지나가다 보이면 합류해서 같이 마신다. 부인들은 그런 남자들의 옆에서 따로 놀고 있다. 이거 뭔가 부럽다. 한국에서는 술 한번 마시려면 재수씨들한테 허락받아야 하고 난리도 아니다. 그런 우리 옆에서 애들도 놀고 있고, 아예 목욕까지 시킨다.

노여사와 카톡으로 얘기를 하면서 이제 귀국할 거라고 한다. 여행 다니면서 내가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생각보다 너무 변했다. 왠지 이보다 더 변하면 문제가 될 거 같다. 저번에 제주도를 갔다 온 이후 나 혼자만 시계가 느리게 가는 바람에 서로 맞추기가 쉽지 않았었다. 이번에는 그때보다도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변했다. 변화가 좋긴 하지만 혼자만의 변화는 싫다. 돌아가서 싱크를 한번 맞춰야 할 때다.

헐. 한 곽을 다 마셨기에 이제 파하는 건가 싶었는데 두 번째 곽을 들고 온다. 이곳 사람들도 정말 술을 엄청 마신다. 물론 이분들한테는 나한테 파는 것 보다 싸게 받겠지? 나한테 한 병이 1.5만 동인 것도 700원 정도니 엄청 저렴한 거지만 왠지 더 쌀듯하다. 사파에서 가장 저렴한 비아호이를 1.5만 동에 팔기에 싸다고 생각했던 게 생각난다. 미쳤던게지.

술을 마시면서 화장실 갈 때 짐도 다 자리에 놔두고 간다. 난 나름 현실적인 사람이다. 마냥 믿는다기 보다는 괜찮을거 같다는 생각이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쁜 사람일 수는 없다. 훔쳐간다면 이 중 한 명은 분명 뭐라고 할 거며, 짐을 다 챙겨 들고 화장실 가는 모습이 오히려 안 좋게 보이는 게 더 크다.

같이 술을 마시지만 합석한 것은 아니고 옆 테이블에 여전히 난 혼자 앉아 있다. 이 상황이 묘하게 밸런스가 맞는 것이 만약 내가 할 일 없이 앉아있으면 말이 안 통해서 서로 어색할 수도 있지만 나는 글을 쓰고 이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한 번씩 나와 건배를 하니 서로에게 적절하다. 나는 외롭지 않고 이들도 새로운 얼굴로 인하여 즐겁다. 이상적이다. 단 하나 문제라면 글 쓰는 걸 멈출 수 없다는 거다. 이걸 멈추는 순간 할일이 없어진 나는 어색해진다.

비아호이가 문화를 만든 게 아니라 문화가 비아호이를 만들었나 보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다 계속 합류한다. 스쿠터가 지나가면 소리 질러 불러서 합석시킨다. 그러면 또 한잔 마시고 가던 길을 간다. 이거 나중에 계산은 도대체 어찌하는 걸까. 젊은 아이들도 몇 명 왔다 가지만 영어를 하는 이는 여전히 아무도 없다. 뭐 그게 낫다. 여기서 미국식 영어를 솰라솰라 하고 싶지 않다. 아 진짜 영어의 필요함은 충분히 느끼지만 미국식 영어는 없애고 싶다.

내가 주문한 맥주병만 어느새 4병이다. 얻어먹은 거까지 치면 더 많을 거다. 취했지만 왠지 일어나기 싫다. 정말 사람이 그리웠나 보다. 홀로 있는 숙소의 그 조용한 방으로 가고 싶지 않다. 이런 고민하는 와중에 이들이 떠나려고 하는 듯 하다. 한번 중간정산을 하고 계산을 한다. 보아하니 서로 덜 내려는 게 아니라 더 내려고 난리다. 나는 덩달아 다섯 병 째를 마신다.

새로 조인한 젊은 사람들 중 한명이 조금씩, 진짜 조금씩 영어가 통한다. 짧은 단어로 얘기를 듣고 보니 여기 있는 모두가 한 가족이었다. 이 식당의 주인 부부를 축으로 매제, 동생, 등 이리저리 얽혀있는 모두 한 핏줄이다. 옆에서 보이던 귀여운 아가는 심지어 늦둥이였다. 언니는 18살인데 아가는 2살이니 16살 차이의 자매다. 내가 아빠를 향해 엄지를 척 드니 아빠, 엄마가 엄청 부끄러워한다. 뭘 부끄러워하셔, 금슬이 좋은 거지. 뭔가 흐뭇해진다.

사람들이 계산을 하고 떠나고 내 옆에서 나를 챙겨주던 그 분과 가족만 남는다. 이제는 자리를 합친다. 더 이상 글을 쓰면서 다르게 앉아있을 수 없다.  그분 딸도 귀엽다. 그냥 딸이 귀여운 건가. 혹시라도 자식을 낳게 되면 난 아들 정말 싫다. 무조건 딸이 진리다!

말은 안통하지만 즐겁게 웃으며 마시고 있는데 술 취한 서양인들이 지나간다. 그 중 한놈이 취해서 갑자기 비틀 비틀 우리쪽으로 걸어오더니 털썩 주저앉는다. 이 친구들도 같이 좀 마실까 싶었는데 이놈은 완전히 맛탱이 갔다. 동료들이 데려가고 싶어 해서 떠나보낸다.

캄보디아에서도 느꼈지만 술 마실 때 꼭 말이 통할 필요는 없다. 말이 안 통하지만 몇몇 아는 단어로 생각보다 많은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술 잘 드시던 분의 아들과 그 친구와도 대화를 한다. 이 친구한테 들으니 '뷔베'가 'Happy'란다. 그럼 그리 술을 따라주고 안주를 주면서 행복하냐고 물었던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쓰면 뭔가 어색하다. 하지만 여행 다니면서 가장 많이 쓰고 듣는 말이 '행복'이라는 단어다. 심지어 캄보디아의 그 사기 치던 총각도 계속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었었다.

젊은 베트남 총각들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엄청난 관심을 갖는다. 의사소통이 쉽지 않으니 구글 통역기까지 꺼낸다. 번역기로 돌리니 생각보다 성능이 좋아서 의사소통이 조금씩 원활해진다.

한국에서 일 년에 내가 얼마 버는지를 물어본다. 뭐지? 덤터기 씌우려고 하나? 하지만 그걸 떠나서 난 현재 한푼도 벌지를 않기 때문에 이런 질문은 당황스럽다. 왜 알고 싶으냐고 물어보니 뭐라 하는데 알아듣기 쉽지 않다. 하지만 눈치껏 잘 살펴보니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거 같다. 이런, 추천하고 싶지 않은데...

네가 한국에서 일하면 연봉 2000만 원 정도 받을 거라고 얘기해준다. 근데 영어도 못하는 베트남 노동자가 그 정도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엄청 많이 받는다고 매우 좋아한다. 이 사람아, 벌이만 생각하면 어떻게 하니, 물가를 알아야지. 물가를 얘기해주고, 또 한국에서 받게 될 차별을 알려준다. 오지 마, 오지 마.

내 오지 말라는 의사는 전달이 되었지만, 이 친구 생각이 잘 안 바뀐다. 현재 베트남의 실업률이 큰 문제라고 한다. 베트남은 경제성장률이 꽤 높지 않나? 실업률이 아니라 원하는 일자리가 없는 거겠지. 옆에 아버지는 아들이 허영심이 들어갔다고 느끼는지 좀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고 있다.

사실, 아메리칸 드림이나, 코리안 드림이나 다를 건 없을 거다. 난 둘 다 반대다. 일단은 굳이 그쪽을 가서 행복을 추구할 필요가 있냐 싶고, 현실적으로 언어의 장벽은 고급 인력마저 하찮은 인력으로 바꿔버린다. 언어가 문제없다면 인종 차별의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사실 어디서나 일하는 건 다 비슷하다.

12시가 되어가니 여기 식당은 문을 닫고, 사장님 내외도 합류해서 앉는다. 하지만 이제는 가야 할 때다. 너무  늦기도했지만 어쩌다 보니 맥주를 너무 마셨다. 하지만 희한하게 마신거에 비해 취하지를 않는다. 기분이 좋아서일까?

일어나서 계산을 하는데 12만 동이란다. 에? 어떻게 그거 밖에 안 나왔지? 식사만 해도 4만 동은 되고 맥주를 8명은 넘게 먹은 거 같다. 내가 잘못 계산한 거 아니냐고 하니 맥주를 1.5만 동이 아닌 자기들 가격인 1만 동으로 계산했단다. 현지 가격인가 보다. 결국 병맥주 한 병이 500원이다. 가성비로만 따지면 비아호이보다도 좋아 보인다. 가격을 떠나서 나에게 알아서 할인해주는 이런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인연이 닿으면 내일 저녁에 또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오토바이로 태워준다고 아저씨가 나서지만 어차피 걸어서 5분 거리다. 그리고 취한 아저씨 오토바이 안 탑니다. 인사를 하고 시끄러운 술자리 소리를 뒤로 한채 혼자 어두워진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간다.

숙소 앞에 그 수영장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이 시간까지도 자기들끼리 파티 중이다. 뭔가 그들만의 리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오늘 내 파티가 더 즐거웠다. 아저씨들 덕분에 허했던 마음이, 뚫려있던 빈자리가 조금은 채워진 느낌이다.

근데 숙소를 못 찾겠다. 그 정도로 취하지 않았는데. 왔다 갔다 하며 보니 셔터를 내려서 못 찾는 거였다. 이런, 어떻게 들어가지. 노숙하기 싫은데. 셔터를 쾅쾅 두드리니 다행히 안에서 누가 나와서 열어준다. 아무리 그래도 셔터를 내리면 어떻게 하니. 12시밖에 안됐는데. 내일은 좀 일찍 돌아와야겠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했지만 또 많은 것을 한 날이다. 관광 자체는 아무것도 안 했지만 떠나 있던 마음을 다시 잡아왔다. 이제 남은 여행은 5일이다. 다시 여행자로 돌아와서 마지막 5일을 제대로 보내보자. 경훈아, 여행은 아직 안 끝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5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