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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Sep 19.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55

@ Phong Nha, Vietnam (Cave Tour)

확실히 과음한 다음날은 일찍 일어나기 쉽지 않다. 게다가 햇볕이 안 들어오는 이 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약간의 숙취를 느끼며 최대한 잠을 자다 9시가 되어서야 방에서 기어 나온다.

숙취로 몸은 좀 피곤하지만 마음은 치유가 되었다. 어제는 만사가 하기 귀찮았는데 오늘은 동굴을 탐험할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들뜬다. 동굴 한 곳에서는 짚라인도 타고, 수영도 하고, 진흙에도 빠진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아예 수영복을 챙겨 입고 나온다. 어찌 보면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활동적인 액티비티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오토바이를 빌려야 해서 하루 더 숙박과 오토바이 대여비를 통으로 하여 네고를 좀 해보지만 주인 아주머니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건 아닌가 보다. 그냥 원래대로 내기로 한다.

옆에 있던 서양 여행자 하나가 내 카메라에 관심을 갖는다. 드디어, 내 비싼 명기 Ricoh GR을 알아주는 이가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열성적으로 이 카메라의 센서 크기와 색감에 대해 얘기한다. 이동성을 위해 줌 기능 같은 건 다 빠졌지만 여행 다닐 때는 최고라고 덧붙인다. 카메라를 집어 몇 장 찍어보더니 매우 감탄한다. 이놈이 포커싱과 어두운 곳에서의 사진이 아쉽긴 하지만 정말 괜찮은 놈이다. 게다가 이번 여행에서 너무 정들어서 절대 팔지 않을 거다.

아침 먹으러 가기 전에 혹시나 해서 내일 아침 호이안 가는 버스를 문의하니 20만 동이고 새벽 5시에 출발한단다. 그 새벽 시간 밖에 없단다. 이거 아무래도 내가 타고 온 그 버스인 거 같다. 여기서 나를 내려주고 호이안으로 갔나보다. 5시에 일어나기 싫은데. 다른 시간은 없냐니 Hue 가는 버스는 시간이 많단다. 그냥 후에로 가버릴까? 이유는 단지 아침잠을 좀 더 자고 싶어서...? 시간이 좀 있으니 생각 좀 해봐야겠다.

아침은 어제 먹었던 Bamboo Cafe로 가기로 한다. 헌데 못 찾겠다. 이 길이 긴 것도 아니고 그냥 5분 거리인데 이게 무슨 일이지. 결국 끝까지 쭉 갔다 다시 돌아와서야 찾는다. 바로 옆에 있는 것도 못 찾고 해메다니, 이런 망신이 있나.

오늘은 빵과 계란 프라이, 그리고 에그커피라는 걸 시킨다. 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넣은 거란다. 쌍화차의 베트남 버전이다.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어제 글을 마저 쓰고 업로드한다.

가지고 다니는 키보드가 조금씩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ㅅ'과 'Shift' 키 두개가 문제다. 쉬프트 키 양쪽이 똑같이 말썽인 거 보면 물리적인 오류는 아닌 거 같고, 키보드의 센서나 핸드폰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몇 번 두드리면 말을 듣더니 급기야 어제 저녁에는 갑자기 아무리 해도 안돼서 당황했었다.

개인의 일기로 시작한 여행기지만, 지금 나에게 이 여행기는 그 이상이다. 좀 과하게 얘기하면 일종의 '자서전'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거 같다. 나 자신을 정말 솔직하게 이곳에 담으려 노력했다. 잘난 부분, 못난 부분, 나의 고민들과 열정, 부끄러운 과거와 자랑까지,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 항상 속으로만 생각하고 드러내기 부끄러워했던 모든 가치관들도 당당하게 얘기했다. 내가 외로울 때, 기쁠 때, 눈물을 흘릴 때, 환호할 때 항상 옆에 있어주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남은 여행기를 제대로 끝내고 싶다. 이 여행기는 지난 10년간의 나와 이별을 고하고 앞으로의 나를 맞이하는 하나의 의식이다.

아침을 먹으니 날이 슬슬 더워진다. 너무 더워지기 전에 동굴로 피신해야겠다. 바로 떠나려고 수영복까지 챙겨 입었는데 막상 카메라 수중팩을 안 가져왔다. 하, 역시 나는 허술하다. 돌아가서 챙겨가지고 다시 나와야겠다. 오늘은 오전에 파라다이스 동굴, 점심 먹은 후 오후에는 다크케이브 이 두개만 갈 생각이다. 동굴들의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이 두개만 가도 부담이 좀 된다. 근데 이 두개는 가도 예산이 되는 걸까.

일단 숙소로 와서 계산을 잠시 해본다. 오늘 두개 동굴을 위해 60만 동을 빼놓고, 오늘 밤까지 이틀치 숙소와 오토바이 대여비로 50만 동을 추가로 뺀다. 그러고 남은 돈을 보니 330만 동이다. 그렇다면 4일 남았으니 하루에 80만 동, 40달러가 된다. 어라? 왜 계속 써도 하루 40달러지? 뭐 괜찮네. 두 동굴 다 가야겠다. 돈이 써도 줄지를 않는다니 신기하군. 아마 평소에 일일 예산인 30달러를 다 안 써서 그런 거 같다.

구글 지도로 위치를 좀 보다 다음 행선지를 호이안이 아닌 후에로 잡을까 싶다. 이유는 거리가 가까워서 버스표가 싸고 버스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딱 그 이유뿐이다. 하지만 역시 마음을 딱 못 정한다. 갔다 와서 생각해봐야겠다.

11시쯤 나온다. 이제 펑냐의 동굴을 한번 찾아가봐야겠다. 내려오니 오토바이를 준비해놨다. 오토매틱이다. 수동이 있냐고 물어보니 수동은 17만 동을 달란다. 하지만 얘는 기름이 가득 차 있다. 오토매틱에 비해 조금 비싸긴 하지만 어차피 기름을 넣으면 그게 그거인지라 수동을 선택한다. 확실히 운전하는 맛은 수동이 좋다.

이 오토바이는 여사장님 개인거인가보다. 뭔가 불안하신지 계속 기어 바꾸는 방법과 브레이크 밟는 방법을 반복해서 가르쳐주신다. 다 아는 건데... 불안해 마시라고 일러 드린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에서 열심히 타다 왔습니다. 그래도 안전운전해야지.

스쿠터에 올라타고 길을 나선다. 베트남길은 잘 닦여있어서 운전할 맛이 난다. 특히 라오스와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길에 차도 그다지 없어서 신나게 쓰로틀을 당긴다.

하지만 좋은 풍경에는 이제 면역이 생겼나 보다. 이곳의 산과 강도 라오스에 못지 않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렇지만 역시 이런 풍경을 옆에 두고 달린다는 것은 쉽게 누릴 수 없는 호사다. 어제는 그리 덥더니 오늘은 산 근처에서 오토바이를 달리고 있어서 그런지 덥지도 않고 의외로 시원한 것이 라이딩하기에 딱이다.

한참을 달리니 갈림길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꺽는건가? 베트남에서는 정말 영어 표지판을 찾기가 힘들다. 지도를 보면 대략 이런 도로로 빠지는듯 한데 확실치가 않다.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하나도 안 보인다. 뭐 그냥 일단 들어가보자. 아니면 돌아나오면 된다.

들어가서 한참을 달리니 사람들이 좀 보이기 시작한다. 길을 물어보니 왼쪽으로 틀란다. 엥? 지도와 다른데. 일단 사람들 말을 믿고 틀어서 가다 보니 다시 원래의 그 큰 길이 나온다. 요즘 왜 이리 길을 자주 잃는 걸까. 다시 큰 길을 달려본다.

아까 그 갈림길을 이번에는 그냥 지나쳐서 조금 더 가니 또 다른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번 갈림길에서 길을 꺽는 것이 맞는듯해 보인다. 역시 표지판을 보고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고속도로 이름이 지도에 나와있다. 이번에는 꽤나 확신을 가지고 좌회전을 한다.

길 방향이 산 쪽으로 이어지는 것이 맞는 길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무리 풍경에 무감각해졌다지만 이런 자연에 둘러쌓인 길이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다. 마음이 신나서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속도를 내본다. 고개를 숙여서 공기저항을 줄이고 쓰로틀을 힘차게 당긴다. 내 최고속도 80km/h를 달성한다. 여기 길이 워낙 좋아서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차 안에서 느끼는 시속 80km와 오토바이에서 느껴지는 체감속도는 정말 다르다. 고작 시속 80인데 레이싱을 한 느낌이다. 스릴이 양념으로 첨가되는 것도 있을 거다.

생각보다 멀다. 거의 한 시간을 온 거 같은데 아직 아무것도 안 나타난다. 혹시나 싶어서 멈춰서 행인에게 물어보니 역시 이 방향은 확실히 맞다. 조금 늦게 나온 게 아닌가 걱정된다. 베트남의 특성상 왠지 4시 반이면 동굴이고 뭐고 다 문을 닫지 싶고 그 시간 안에 두 군데 동굴을 다 가기에는 좀 촉박해 보인다. 뭐 정 안되면 하나는 포기하자.

가다 보니 드디어 Dark Cave가 나타난다. 하지만 이 동굴은 물 속에도 들어가고 하는 놈인지라 다른 동굴을 먼저 갔다가 이곳을 돌아오기로 하고 그냥 지나친다. 그리고 또 30분 여를 더 가서 드디어 Paradise Cave에 도착한다.

동굴 입구부터 라오스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라오스의 동굴들이 버림받았다면 베트남의 동굴들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있다. 확실히 베트남에서는 자신들의 관광 자원의 가치를 알고 있는 느낌이다. 들어가는 길도 잘 꾸며져 있고, 표지판도 이곳에서는 영어로 잘 표시되어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주차장이 나오고 보통 관광지 앞에 있는 기념품 가게들도 잔뜩 있는 그 공터가 나타난다. 오토바이를 주차하니 직원이 하나 오더니 주차비를 내야 한단다. 5000동이다. 큰 돈은 아니기에 부담 없이 지출한다.

입장료 내는 곳이 흡사 에버랜드에 온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15만 동이면 나름 비싼 돈이지만 여기에 와보니 그만한 가치는 있어 보인다. 돈을 내니 교통카드처럼 생긴 표를 하나 준다. 그걸 가지고 입구로 가니 개찰구가 있고 표를 넣게 되어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깔끔하게 잘 되어 있는 것이 다른 동남아나라들과 다르다.

들어가는 옵션에 안에까지 걸어가는 게 있고 버기카를 타고 가는 게 있다. 버기카는 진짜 에버랜드에 있을법한 이동차이다. 물론 무료는 아니기에 당연히 나는 걸어가는 것을 선택한다. 뭐 걸어봤자 얼마나 걷겠나.

'얼마나' 걷는구나. 한참을 들어간다. 차를 타고 가는 옵션이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길은 잘 꾸며져 있어서 덥거나 그러지는 않다. 원래대로라면 편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며 느긋하게 갈 텐데, 두 군데 동굴을 갈 생각하니 발걸음이 빨라진다. 빠른 발걸음과 함께하는 여행 치고 제대로 된 게 없었다는 걸 알지만 마음이 그리 되어 어쩔 수 없다.

입구에서 동굴 입구까지만 20분은 넘게 걸어간다. 그래도 시간을 체크해보니 이제 겨우 12시다. 아직 시간이 있어 보인다. 너무 서두르지 말자. 진짜 정 안되면 하나 스킵해버리면 되는 건데, 오늘따라 왜 이리 마음이 급할까.

사람들이 모여있고 직원들이 보이기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여기서 또 500미터를 올라가야 한다고 쓰여 있다. 그리 긴 거리는 아니니 힘을 내서 다시 오르기 시작해본다. 문제는 이 500미터가 평지가 아닌 등산길이라는 거다. 촉박한 마음이 전해져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번에 오른다. 흡사 사파에서 트레킹하고 돌아올 때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때는 마음이 편안했다면 이번에는 마음이 급하다.

드디어 정상에 오른다. 여기는 진짜 동굴 입구가 맞다. 이 동굴은 오르기 정말 힘들었다. 몸은 땀 범벅이다. 어제 과음 때문인지 몸 상태도 그리 훌륭하지는 않다. 어서 시원한 동굴 내부로 들어가야겠다.

동굴 입구는 생각보다 매우 조그마하다. 여기 엄청 크다고 했는데 맞는 거겠지? 또 계단을 올라 동굴 내부로 들어가본다.

들어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와, 크다."라고 탄성을 짓는다. 얼핏 보이는 부분만 해도 엄청난 크기다. 지하도시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듯 한 크기다. 내가 들은 게 맞다면 이 크기로 1킬로미터 이어진다고 한다. 나는 지금 그 앞 부분만 살짝 봤을 뿐이다.

내려가서 잘 닦여진 길을 걸어가 본다. 동굴 위로 나무로 길을 튼튼하게 지어놓고 사방에 조명을 비춰서 감상이 용이하게 해놓았다. 15만 동이 전혀 아깝지 않다. 베트남이 이런 선진국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종유석이 다른 동굴과 차원이 다르다. 크기도 크기지만 다양한 모양을 한채 가지각색으로 자기들을 뽐내고 있다. 여기는 아기자기함과 규모 두개가 모두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규모로 모든 것을 압도해버린다. 이 정도의 느낌을 받은 건 어릴 때 피라미드를 본 이후 처음인 거 같다.

규모를 보자마자 다음 동굴을 포기하더라도 좀 여유 있게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좀 걷다 보니 그 계획은 와르르 무너진다. 더운데 있다가 차가운 바람을 쐬서 그런지 아니면 어제 맥주를 그리 쳐마셔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신호가 다급하게 오기 시작한다. 이놈들아, 아침에 이미  처리해줬잖아. 눈치 없이 시도 때도 없는 것들.

아직 끝까지 가지도 않았는데 이리 난리면 어쩌라는 거냐. 그래도 이 동굴은 기어코 끝까지 갔다와야 한다. 뒤집어진 속을 달래며 안으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천천히 여유 있게 보고 싶었는데 상황이 웃프다. 게다가 이 시원한 곳을 나가야 한다니, 안타까울 나름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신없이 보는데도 이곳은 사방이 장관이다.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돈과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충분히 있고도 넘친다. 관광객들도 외국인보다 현지인들이 많이 보이는 게 현지 사람들한테도 유명한 곳인가 보다.

홀로 조용히 걷고 있는데, 오늘 네 번째로 현지인이 나한테 베트남어로 말을 건다. 이제 이런 상황이 정말 익숙해졌다. 베트남 와서 현지말로 말을 거는 빈도가 훨씬 늘어난 게 동남아인 중에서도 현재의 내가 베트남인처럼 보이나 보다. 내가 거의 반사적으로 "한쿼어"라고 얘기하며 한국인임을 알리고 살짝 웃으면 모두 당황한다. 그러고도 안 믿기는지 다시 또 베트남어로 뭐라고 물어본다. 영어로 대답을 하고 나서야 자기와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끝내 인정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한 후 뒤로 빠진다.

걷다 보니 어느새 끝까지 왔다.  중간중간에 쉬는 자리도 잘 만들어놓은 것이 꽤나 보였지만 앉을 수가 없었다. 이미 신호가 무르익었다. 더 자극할 필요는 없다.


끝까지 간 후 다시 돌아온다.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은 보는 관점이 달라져서 같은 길임에도 마치 다른 곳을 오는 느낌이다. 최대한 천천히 오려 하지만  몸속에서 울리는 타이머를 무시할 수는 없다.

돌아와서 계단을 올라 동굴을 벗어난다. 이 넓은 동굴을 거의 한 시간도 안 걸려서 주파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쉽지만 생리적인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 나오자마자 급하게 화장실부터 찾는다. 다행이 나가는 통로 쪽에 화장실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금방 발견한다.

후질근한 화장실을 기대했지만 꽤나 현대적인 화장실이다. 사실 뭐 이러나 저러나 따질 때가 아니다. 어제 열심히 놀았던 대가를 혹독히 치르며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온다. 이제 좀 여유가 생겼다.

내려오는 길은 올 때와 다르게 한껏 여유를 부려본다. 그런 내 마음을 알듯이 클래식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어디서 나는지 궁금해서 소스를 살짝 찾아보니 구석에 돌멩이로 정체를 가장한 스피커가 보인다. 이런 세심한거 까지 신경 쓰는것이 입장료가 진짜 비쌀 만하다. 베트남은 이런 게 좋다. 사람들은 순수함을 아직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발달은 꽤 되어서 다른 동남아시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태국도 어찌 보면 비슷할 수 있지만 그쪽은 완전히 서구화된 반면 여기는 여기만의 문화와 감성이 있다.

이리 된 거 어서 다음 동굴로 가야겠다. 시간이 꽤나 단축되었다. 아직 2시가 채 안되었다. 밥을 여기서 먹고 갈까 살펴보는데 적당히 먹을 곳이 없다. 그냥 다음 동굴로 가서 먹든지 해야겠다.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바로 출발한다.

가는 길에 식당이 있나 찾아보지만 마땅한 곳이 안 보인다. 결국 다음 목적지인 Dark Cave까지 도착해서 거기 부속 식당을 들어간다. 이런 곳에서 아까운 한끼를 해결하고 싶지 않지만 딱히 방법은 없고, 배는 너무 고프다. 아침을 든든히 먹지 않았고 오후 2시까지 밥을 못 먹고 있다.

식당을 들어가서 그냥 하나 밖에 없는 메뉴를 물과 함께 주문한다. 관광지에 딸린 식당인데 의외로 손님이 많다. 하긴 동굴 탐험 중간에 밥을 먹으려면 방법이 없을 거다.

한참을 기다린다. 배도 고프고 시간도 촉박한데 이 인간들 밥 진짜 안 준다. 보아하니 주문한 순서와 상관없이 그냥 자기들이 만들기 편한 데로 몰아서 음식을 만든다. 나보다 한참 늦게 온 사람이 운이 좋아서 훨씬 더 빨리 받는다. 시간에 몰리니 나도 모르게 살짝 짜증이 난다.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 났겠지만 좀 더 기다려본다. 언젠가 주긴 주겠지.

주방장이 한 명이다. 결국 내 메뉴는 마지막에 준비한다. 베트남에 오면 이런 이상한 곳에서 공산주의를 느끼곤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시설을 가면 눈에 띄게 불친절이 보인다. 사실 불친절이라기보다는 고객 입장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하지만 이런 대우가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다소 당황스럽고 가끔은 불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의외로 밥은 또 맛있다. 맛있으니 이해해주기로 한다. 돼지 갈비와 밥, 그리고 계란말이 두개까지 포함되어 있다. 좀 천천히 먹고 싶지만 벌써 3시다. 만약 여기도 4시 반에 영업을 종료한다면 서둘러 가야 1시간 반이라도 동굴을 즐길 수가 있다. 한국 남자들이야 밥 빨리 먹는 건 군대 덕분에 아주 익숙하다. 후다닥 해치우고 일어난다.

계산을 하는데 가만히 보니 물값이 빠져있다. 얄밉지만 챙길 건 챙겨줘야 한다. 물이 빠졌다고 하고 1만 동을 추가로 준다. 내가 아까 좀 급하게 서두른 게 티가 났는지 이들도 미안해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사실 이들의 문화일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한 것도 있다. 항상 그러듯이 활짝 미소를 지어주며 넘어간다.

티켓 판매하는 곳을 물어보니 왼쪽으로 가란다. 3시가 넘었기에 서둘러 가본다. 헌데 티켓 판매소에서 표를 사려고 하니 기다려야 한단다. 얼마나? 4시까지 기다리란다. 이분도 공무원인가 보다. 웃음기 하나 없이 그냥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Wait"라고 얘기한다. 여행 중 만났던 여행자들이 왜 베트남 사람들 보고 불친절하다고 했는지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사실 기다리는 거야 여행에서 언제나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니는 거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는 동안 글을 쓰면 되기에 막상 싫을 것도 없다. 헌데 문 닫는 시간을 물어보니 4시 반이라면서 4시에 들어가면 어쩌자는 거지. 물어보니 4시에 입장하면 2시간 정도 투어식으로 간단다. 문 닫는 시간과 무관하게 한번 시작한 투어는 끝까지 하는 거란다. 뭐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

그 옆 한 구석에 앉아서 기다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식사도 천천히 하고 그쪽에서 쉬다 오는 건데 아쉽다. 뭐 언제나 내가 원하는 데로 할 수가 있나. 앉을 자리가 하나 있기에 거기 앉아서 자연스레 키보드를 핀다.

날이 덥고, 속도 그냥 그렇다 보니 글을 쓰는 것이 영 즐겁지 않다. 즐겁지 않을 때는 접고 나중에 써야 한다. 무리해서 쓰면 한번 쓰는 글인데 마음에 안든다. 때마침 신호가 온다. 오늘 신호 몇 번 오려고 이런 걸까. 이번 동굴은 들어가면 물 속에도 들어가고 액티브해질테니 신호는 즉각 즉각 해결해야 한다.

아까 패러다이스 케이브가 에버랜드 같았다면 여기 다크케이브는 캐리비언베이 같은 느낌이다. 샤워실이 별도로 있어서 남녀 별도로 샤워도 할 수 있고 라카도 구비되어 있다. 화장실은 물 때문에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어차피 수영복을 입고 있고, 또 어차피 물에 들어가야 하니 그건 큰 문제가 아니다. 그저 신체의 안정을 통한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좀 더 앉아있으니 주변에 서양인들이 몰려든다. 이들도 다 4시까지 기다리고 있나 보다. 서로 친해져 있기에 얘기를 나눌까 하다 그냥 조용히 내 볼일을 본다. 이렇게 서양인들이 우글우글하는 곳에서 혼자 구석에서 조용히 있을 때면 뭔가 상대적인 소외감을 느끼고는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사실 그리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어차피 들어가게 되면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게 될 거다.

4시 정각이 되니 표를 팔기 시작한다. 칼 같다. 이건 무슨 여권번호까지 써서 제출해야 한다. 여권번호가 뭐였더라. 꺼내서 찾기 귀찮아서 그냥 대충 아무 숫자를 써서 낸다. 필요하지도 않을 거 같은데 뭘 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사고 날걸 대비해서겠지?

표를 사고 났는데 뭘 하라는 얘기가 없다. 혼자 온듯한 벨기에 애와 둘이서 대화를 나누며 멀뚱멀뚱 보고 있다가 문득 다른 사람들을 보니 장비를 차고 있기에 그쪽으로 가본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 알아서 눈치껏 파악해야 한다. 일단 락카가 눈에 보여서 가방을 넣고, 상의 탈의 후 옷도 집어넣는다. 카메라는 어쩔까 하다가 방수팩에 넣어서 준비를 한다. 그리고 장비 착용하는 쪽으로 가니 짚라인용으로 추정되는 복잡해 보이는 안전장비를 하체에 입혀준다. 그 이후 구명조끼를 입고, 라이트가 붙어있는 안전모까지 착용하면 끝이다.

카메라를 어쩔까. 괜히 짐이 될까 싶어서 다시 락카에 넣었다가 다시 마음이 바뀌어서 빼온다. 우유부단함의 극치다. 바닷가에서도 이 방수팩으로 잘 버텼으니 이곳에서도 잘 견디겠지. 가져가 보자.

4시 반이 되니 모든 인원들의 준비가 끝난다. 여기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알아서 둘러보는 동굴이 아니라 투어식으로 다 같이 들어가서 가이드를 따라가는 건가보다. 그렇다면 동남아에서 이 보기 힘든 비싼 가격도 이해가 된다.

영어를 잘하는 가이드가 이제 우리를 끌고 간다. 떠나기 전 한두 명을 보더니 한 여인 앞에서 나쁜 소식이 있다며 난감한 표정으로 얘기를 한다. 목에 고정시키는 거 없이 좌우로만 고정이 되는 비키니를 입고 있던 분인데, 안에 머드 동굴 들어가면 옷이 벗겨질 가능성이 크단다. 이 여자분 미국분인데 쿨하다. 괜찮다며, "그냥 지금  벗어버릴까요?"라고 묻는다. 아 이 문화충격, 꽤나 개방적이라 여기는 나에게도 당황스럽다. 다행히(?) 벗지는 않는다.

이제 모두 같이 한쪽으로 이동한다. 아까 밥 먹을 때 보니 여기서 짚라인으로 이동하는 거 같다. 처음에 서로 뻘쭘하게 얘기를 나누던 그 벨기에 총각과 어쩌다 보니 서로 같이 다니게 된다. 이 친구는 혼자서 8개월째 여행 중이다. 혼자 다니는 사람들하고는 친해지기가 쉽다. 다들 조금씩 외로움이 있으니 마음이 열려있다.

계단을 통해 한 타워를 오르더니 예상했던 데로 짚라인이 눈앞에 나타난다. 우리 앞에 현지인으로 보이는 처자 두 명이 먼저 괴성을 지르며 짚라인을 타고 내려간다. 다음은 바로 내 차례다. 어쩌다 보니 짚라인은 한 번도 안 타 봤다.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그 높이에 서 있으니 뭔가 살짝 무섭다. 벨기에 총각이 카메라를 자기한테 주면 자기가 찍어주겠다고 하는데 그냥 괜찮다고 한다. 내 사진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다. 오징어 따위...

저 밑으로 쭉 뻗어있는 두개의 쇠줄에 고리를 하나씩 건다. 그리고 그 고리에 의지하여 앉으며, 가이드가 뒤에서 밀어준다. 출발!

처음에 살짝 무섭긴 했지만 이건 뭐 사실 딱히 엄청 신나거나 무섭거나 스릴이 넘치는 액티비티는 아니다. 어찌 보면 좀 시시할 수도 있을 정도다. 그냥 적당히 경치를 즐기면서 내려온다. 끝까지 오니 멈추는 곳이 안전하게 마련되어있다.

고리를 풀고 내리니 짚라인 장비는 바로 벗기면서 강물로 들어가서 수영을 하란다. 일단 기다려서 내 다음에 오는 벨기에 총각 사진을 하나 찍어준다. 이 친구도 혼자 다녀서 사진이 그다지 없을 테니 봐서 이따 보내줘야겠다.

여기 물이 꽤나 깨끗하다. 블루라군을 연상시키는 색깔이다. 베트남과 라오스는 국경이 붙어 있어서 그런지 자연이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라오스는 안전에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반면, 베트남은 매우 철저하다. 구명조끼 없이 물 속에는 절대 못 들어가게 한다. 이런 부분은 우리나라를 연상시킨다.

물속에 있으니 위에서 짚라인을 타고 하나 둘 내려온다. 모두 물 속에서 모인다. 이곳이 만남의 장소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게 된다. 라오스를 아직 안 간 애들이 있어서 물 속에서 내가 아는 라오스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오늘 그룹에는 여자들이 많다. 이스라엘 애들과 남미 애들이 대부분이다. 모델의 몸매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지만 이런 분들 비키니도 하도 봤더니 역시 아무런 감흥이 없다.

마지막으로 가이드까지 내려온다. 가이드가 합류 후 안쪽으로 보이는 동굴로 수영해서 가라고 지시를 한다. 무슨 수영을 구명조끼  입고한다냐. 이거 은근히 힘들다. 몸이 구명조끼에 방해를 받으니, 앞으로도, 뒤로도 자맥질을 하기가 영 불편하다. 그래도 안전수칙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

동굴 입구가 꽤나 크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어둠이 시작되고 모두 안전모에 붙은 조명을 킨다. 아직은 햇볕의 영향권 안에 있지만 조금 더 들어가니 조명 없이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괜히 이름이 Dark Cave가 아니다. 하지만 명명센스는 좀 아쉽다. 어두운 동굴이 뭐냐.

한 곳에서 멈추더니 구명조끼를 다 벗으라고 한다. 이러면 몸매가 다 드러날 텐데. 우리나라 같으면 싫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곳에서는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벗어서 한 곳에 잘 쌓아놓고 물속 길로 더 들어간다.

이제는 한치 앞도 안보여서 가이드를 따라 일렬로 앞에 사람만 보면서 간다. 조금 들어가니 바닥이 질퍽질퍽해진다. 진흙을 해치며 걷는 느낌이 생소하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진흙이지만 막상 초콜릿과 완전히 느낌이 동일하다. 이거 이름을 '초콜릿 동굴'이라고 지었으면 이쯤에서 감탄 한번 했겠다.

통로가 좁아지고 진흙은 더 깊어진다. 이런 곳을 어떻게 찾았을까? 안에 어떤 시설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무릎 깊이까지 진흙이 올라오고 한발 한 발은 갈수록 더 버거워진다.

이때 앞에서 애들이 뭐라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앞의 일행을 놓쳤는데 갈림길이 나왔단다. 약간 당황한 듯하다. 오른쪽일까 왼쪽일까. 내가 봐도 길의 넓이가 같아서 모르겠다. 오른쪽으로 가자는 애들이 있지만 한 여인이 자기 직관을 믿으라면서 왼쪽으로 간다. 어찌 보면 좀 위험한 순간인데 사람들이 같이 있고, 들어온지 얼마 안되서인지 그다지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멀리서 가이드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까 그 여자분의 직관이 엄청나다. 그 여자분도 신나서 자기가 맞다고 하지 않았냐며 의기양양이다. 그런데 여기 생각보다 사람들을 잘 안 챙긴다. 사람 수 카운트도 안 하는 거 같다. 이거 사고 안 나나. 일행을 놓치고 불이 꺼지면 바로 미아가 될거다.

깊어지던 진흙은 30분 정도 더 가니 아예 허리까지 잠기기 시작한다. 카메라가 방수팩에 잇지만 뭔가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괜찮겠지. 그러다 한 곳에 자그맣게 있는 공간으로 모두 진입한다.

약간 넓은 공간이 펼쳐져있고, 진흙이 흥건하게 고여있다. 자연이 진흙으로 만든 수영장이다. 앞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진흙에 누워있고 엎드려 있고 신났다. 벨기에 총각이 보이길래 옆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가니 나보고 그냥 드러누워보란다. 조심스레 누워보니 안 가라앉는단다. 한번 발을 들고 스윽 누워본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기분 좋다. 진짜 안 가라앉는다. 아마 진흙의 밀도가 물보다 훨씬 크니 익숙하지 않은 부유력을 느끼게 되는 거 같다. 나름 신기하고 즐겁다.

헌데, 가이드가 안 보인다. 아마 이곳에 우리를 버리고 나중에 챙기러 오나보다. 딱히 할게 있지는 않지만 그냥 누워있으니 몸이 편안하다. 재미도 있다. 보령 머드 축제 가면 이런 느낌 일려나. 하지만 여기는 진짜 동굴 안이라 안전모에 붙은 조명이 나가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나름 으시시하면서도 즐겁다. 이건 또 새로운 경험이다. 한국에만 있었으면 이런 경험은 못 했겠지.

사진을 좀 찍어보려 하지만 진흙이 잔뜩 묻어 찍을 수가 없다. 손가락으로 벗겨내 보지만 손에도 진흙투성이라 무의미하다. 뭐 안 찍고 말지. 헌데 방수팩 안에 물기가 좀 보인다. 물이 침투한 거는 아닌 거 같고 온도차 때문에 습기가 생긴 걸까. 좀 걱정되어야 정상이지만 지금만큼은 온전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다. 걱정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사람들하고 진흙투성이가 되어서 깔깔거리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 뒤편에서 갑자기 가이드가 나타난다. 손전등을 비추더니 이제 나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벌써 갈 시간인가? 다들 움직이기 싫어서 몸을 잘 안 일으킨다. 나도 꾸물꾸물되며 최대한 시간을 지체하다 반 이상이 나가고 나서야 일어난다.

온몸에, 그리고 수영복에 진흙이 잔뜩 묻어서 몸이 무겁다. 몸의 진흙은 털어내면 그만이지만 수영복은 다르다. 이거 무거워서 잘못하면 벗겨지겠다. 여자분들 비키니는 약간 위험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벗겨저도 그다지 야하다는 생각은 안 들 거 같다. 그냥 어차피 다 몸뚱이다.

돌아나오는 길은 더 힘들다. 하지만 나름 즐겁다. 다들 몸에 붙은 흙을 털어내며 힘겹지만 이 탐험을 웃으면서 즐긴다. 그렇게 또 다시 30분 여를 간다.

드디어 물이 나온다. 계단을 타고 내려와도 되지만 바닥을 미끄럼 삼아서 내려와도 된단다. 안 위험할까? 찰과상은 좀 있을지도 모른다고 슬쩍 일러준다. 조금 다치는게 무서워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스릴을 패스할 수는 없지. 다른 이들이 계단으로 힘겹게 내려갈 때 몸을 자연 미끄럼틀에 맡겨본다.

"으아아악"

생각보다 강렬하다. 마지막에 한번 팍 튀면서 물에 빠진다. 아직 반 진흙인 물이라 바지면서 얼굴에 진흙이 다 묻는다. 여기 지나오면서 얼굴에만은 안 묻히려고 노력했는데 다 부질없었다. 등이 아려오는 게 상처가 좀 생긴 거 같다. 아까 표 살 때 나오는 사람들 보니 몇 명이 등에 상처가 있길래 뭔가 했더니 이거였었나보다. 내가 하는걸 보더니 몇 명이 용기를 내며 따라 한다. 모두 다 즐거움을 대가로 영광의 상처를 몸에 새긴다.

가이드의 지시를 따라 몸에 묻은 흙을 씻어낸다. 조금 가니 아까 구명조끼를 벗어난 곳에 도착한다. 구명조끼를 다시 걸치고 물이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한곳에 가니 가이드가 한쪽 방면으로 모두 수영을 해서 가라고 지시한다. 어두운 동굴에서 머리에서 나오는 희미한 조명 하나에 시야를 의지한 채 가리킨 그 한쪽으로 모두 수영을 해서 모인다.

가이드는 반대편에 있다. 모두 모이니 갑자기 다 불을 끄라고 한다. 다들 웅성웅성하지만 하나 둘 불을 끄기 시작한다. 모두 끄니 보이는 거라고는 햇빛이 조금 비치는 반대편의 동굴 입구뿐이다. 그 살짝 보이는 입구를 향해 이 어두운 동굴을 이제는 헤엄쳐서 돌아오라고 한다. 한치 앞도 안보이기에 수영하다 옆의 여자의 몸도 만지고, 어떤 자에게 만져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들 그냥 깔깔거리고 웃는다. 이거 생각보다 꽤나 즐겁다.

동굴 입구를 나간다. 이제 끝난 건가? 아니다. 아까 짚라인 타고 수영해서 온 거리를 이제는 카약을 저어서 간다. 난 벨기에 총각과 짝이 되어서 노를 젓는다. 막간을 이용하여 한국에서 벨기에 와플이 2만 원, 3만 원에 팔린다고 하니 당장 때려 치고 한국 와서 장사나 해야겠다고 한다. 이미 레드오션입니다, 아저씨.

돌아오니 이번에는 방비엥에서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혼자 즐겼던 그 '두손 뻗어 손잡이 잡고 로프를 타고 내려가다 물 속에 다이빙'하는 기구가 준비되어 있다. 이거는 가이드와 상관없이 혼자 하는 건가보다.

이게 마지막 코스인듯 해서 다이빙하기 전에 일단 뭍으로 올라와 카메라를 확인해본다. 아까 카메라가 켜진채 꺼지지가 않아서 좀 불안했다. 방수팩 뚜껑을 열고 카메라를 꺼내니 물이 주루룩 떨어진다. 이번 탐험은 얘한테 무리였나 보다. 당황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전자제품은 물이 들어갔을 때 확인해본다고 키면 절대 안된다. 일단 배터리를 분리하고 한편에 놓아둔다. 비싼 카메라라 주변 사람들이 안타나까워하지만 일단 지금 잠시 잊기로 한다. 지금 중요한건 저 점프이다.

두개가 쌍이라 벨기에 총각과 둘이 점프대에 선다. 이 친구는 이 로프 다이빙이 처음이란다. 둘이 손잡이를 잡으니 사람들이 구호를 '하나, 둘, 셋' 외쳐줘서 그에 맞춰서 같이 출발한다. 벨기에 이놈은 처음이라더니 출발할 때 푸시를 줘서 나보다 빠르다. 나도 경험자인데 질 수 없지.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속도를 붙인다.

줄의 끝이 가기 전에 줄을 놨어야 했다. 끝에 가니 뭔가에 턱 걸리면서 둘 다 그 반동으로 뒤로 한바퀴 크게 돌면서 강으로 떨어진다. '첨벙' 소리와 함께 입을 통하여 물을 다량 몸속으로 허용한다. 준비가 되고 호흡을 멈추고 입수 했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다.

수영해서 뭍으로 나온다. 이 투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즐겁다. 심적인 여유가 있으면 이 점프 두어 번 더 하고 싶은데 막상 지금은 카메라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게다가 시간도 6시다. 해가 진 이후에 오토바이 운전은 하고 싶지 않다. 일단 락카가 있는 곳으로 올라온다.

샤워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그냥 바로 티셔츠를 입고 가야겠다. 샤워는 어차피 숙소 가서 하면 된다. 벨기에 총각은 목욕을 한다기에 내 페이스북 주소를 주고 사진을 원하면 친구 등록하고 말 걸라고 얘기를 하고 이별한다.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바로 출발한다. 사실 빨리 간다고 카메라에 대한 대비책이 생기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냥 마음이 조급해졌다. 역시 여행은 어쩔 수 없이 사고가 항상 따라다니나 보다. 카메라가 고장났으면 어쩌지? 뭐 7만 원짜리 핸드폰에도 카메라는 있으니까.

돌아오는 길은  드라이빙이라기보다는 이동이다. 숙소로 돌아오기 위한 운전이지 그 자체를 즐기는 드라이빙은 아니었다. 단 한번 멈추지 않고 최대한 속도를 내서 돌아오니 7시다.

숙소로 돌아와서 씻으러 가기 전에 Hoi An으로 가는 새벽 5시 표를 예약하달라고 한다. 벨기에 총각과 아까 잠시 얘기를 나누며 들어보니 Hue에서 왔는데 별로였다는 말에 그냥 고민 없이 또 결정해버렸다. 사실 어디든 뭔 상관이 있으랴 싶기도 하다.

방으로 올라와서 일단 카메라부터 확인해본다. 그새 말라있지만 내부까지 마르지는 않았을 거 같다. 일단 목욕부터 한다. 몸에 묻은 진흙은 금방 제거되는데 수영복은 회생불능이다. 그냥 색이 갈색으로 물든거 같다.  빨아도 빨아도 갈색물이 나온다. 일단 지금은 대충 말리고 호이안에 가서 다른 옷들과 함께 세탁을 맡겨야겠다. 아니면 거기도 바닷가가 있으니 수영하면서 자연스럽게 빠는 것도 괜찮겠다.

카메라가 꽤 말라보인다. 켜볼까? 이거 하루 정도는 두는 게 정석인건 알지만 조급한 마음에 다른 배터리를 넣고 켜본다. 켜진다. 찍힌다. Eyefi 전송도 된다. 다행이다. 좀 찝찝하지만 일단 이번 여행 끝날 때까지만 버텨다오. 한국 가면 한번 점검을 맡겨야겠다. 이놈은 이제 그냥 일반적인 카메라가 아니다. 나와 이번 여행에서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곳을 담은 여행의 동지다.

어제저녁에 맥주로 잔뜩 달린 그 베트남 사람들과 오늘 저녁에 또 보자고 공허한 약속을 했지만 내일 새벽 5시에 출발하니 가면 안될 듯 싶다. 멀기도 하거니와 맥주를 어제처럼 먹는다면 아침에 나갈 때 차질이 생길 거다. 예전에 숙취 상태로 이동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냥 바로 옆에 식당으로 간다. 여기도 꽤나 괜찮다. 껌가, 볶음밥과 닭고기, 그리고 비아사이공을 주문한다. 이제 비아사이공을 얼음에 넣어서 마시지 않으면 뭔가 어색하다. 한국 가면 얼음에 타 먹는 이런 맥주도 그리울 거다.

혼자 하는 식사가 늘 그렇듯이 혼자 시작하지만 곧 다른 누군가와 식사를 공유하게 된다. 내 앞에 우연히 앉은 수염이 가득한 홀랜드 남자는 딱 보기에 여행을 오래 해 보이더니 1년을 했단다. 나와 같이 베트남을 마지막으로 6월에 일상으로 돌아간단다. 혼자 여행하는 것도 비슷하고 이곳이 마지막이라는 것도 비슷해서 몇 잔 같이 마신다. 하지만 너무 많이 마실수는 없기에 2병 마시고 이별을 고한다. 'Have a safe trip.'

숙소로 돌아와서 누우니 9시다. 오늘 밀린 글을 좀 쓸려고 키보드를 펴보지만 잠이 쏟아진다. 오늘 좀 피곤한 하루긴 했다. 글은 쓰고 싶을 때 써야 한다. 어차피 내일 버스 타고 장시간 이동해야 하니 그때 쓰면 된다. 키보드를 덮고 잠을 청해 본다.

사람들이 왜 펑냐를 기억에 남는 곳으로 얘기했는지 알겠다. 모든 사람들이 사파, 그리고 펑냐를 기억에 남는 곳이라 할 때 나도 모르게 내 기준으로 생각을 하는 오류를 범하긴 했다. 나는 조용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색할 수 있는 그런 곳을 생각했지만 둘 다 역동적이고 액티비티가 확실한 그런 동네다. 그런 면에서 둘 다 나쁘지는 않았다. 펑냐에서 오늘 한 동굴 탐험은 쉽게 잊지 못할 거다. 하지만, 잔잔한 영화는 노여사와 서로 따로 혼자 보지만 액션 영화는 같이 보듯이, 이런 화려한 액티비티는 혼자보다는 일행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진짜 여행이 딱 3박 4일 남았다. 두 달이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다. 호이안, 그리고 마지막 다낭에서는 뭔가를 한다기보다는 차분히 내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다.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니, 마지막으로 한번 스스로를 찬찬히 들여다 보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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