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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Sep 21.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56

From Phang Nha to Hoi An, Vietnam

"삐, 삐, 삐."


작은 알람 소리에 깨서 비몽사몽으로 손목시계를 본다. 4시라고 손목시계가 알려주고 있다. 일어나야 한다.

...

"띠리리리!!"


화들짝 놀래서 깬다. 혹시 몰라서 핸드폰 알람가지 맞춰놓기 잘했다. 이번 알람에는 잠이 확 깨버렸다. 물론 아직 몽롱하지만 이제는 일어나서 짐을 싼다. 그냥 잡동사니들을 가방에 던져 넣는 것을 짐을 싼다고 불러야 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10분 안에 짐을 싸고 간단히 세수를 한다. 혹시 몰라 방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본다. 오케이, 놔두고 가는 건 없는 거 같다. 마지막으로 옷을 챙겨 입고 가방을 든다. 또 다시 이동이다.

내려오니 여사장님은 벌써 깨어있다. 손님이 올지 몰라서 일어나 계신 건가? 매일 같이 이 시간에 일어난다면 그것도 고역이겠다 싶다. 미모가 출중한 젊은 여직원도 같이 일어나 있다. 싱글이었으면 관심을 가질법한 내 스타일이지만 어차피 한국에 더 예쁘고 더 배려 깊고 더 지혜로운 여친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앉아서 멍하니 기다린다. 버스가 5시에 온다고 했던가.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중간에 내가 하노이에서 타고 온듯한 버스가 한두 대 지나간다. 내 버스냐고 여사장님을 쳐다보니 내가 탄 버스가 오면 나를 데리러 안에까지 들어올 거라며 기다려보라고 하신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5시가 지나도 안 온다. 생각해보니 이 버스가 이곳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하노이에서 출발하여 오다 이곳에 잠시 정차하는 거니 도착 시간이 확실하지 않겠다 싶다. 여사장님을 보니 나보다 더 불안하신지 아예 바깥에 앉아계신다. 뭐 언젠가는 오겠지. 오늘은 뭔가 마음이 편하다. 잠이 부족해서 좀 피곤하긴 하지만 버스가 7시간이 걸린다니 버스에서 잠잘 시간은 충분할 거다.

나도 길거리로 나와서 여사장님 옆 바닥에 그냥 앉는다. 앉으니 바로 앞의 'Tiger Hostel'이 보인다. 모든 여행지에는 서양인들이 우루루 모여서 시끄럽게 떠드는 단 하나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바간에서는 'Ostellobello'가 그러하였고 이곳에서는 저 호스텔이 그러하다. 처음에는 저런 분위기에 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끄럽게 떠들고, 여행 온 게 아닌 유럽에 온듯한 느낌을 주는 저런 곳을 오히려 피하게 되었다.

6시가 되어서야 버스가 온다. 끝까지 잘 챙겨주신 여사장님께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내가 타고 왔던 그 고급스러운 슬리핑 버스다. 저번에 보니 이런 버스는 지정석이 없다. 그냥 아무 빈 자리에 가서 누우면 된다. 적당한 곳을 찾아 눕는다. 역시 이 버스는 침대가 편하다.

헌데 뒤에 보니 화장실이 안 보인다. 뒤에 사람한테 물어보니 다들 나처럼 화장실이 있는 줄 알고 왔지만 타보니 없었단다. 뭐 그런 거지. 그런데 그렇다면 중간에 여러 번 서는 걸까? 장시간 버스 이동에서는 화장실이 항상 가장 신경 쓰인다.

앞에 서양인 여행자 하나가 요리조리 누워보더니 나보고 이거 다리 필 수 있냐고 묻는다. 그래, 다리 짧아서 미안하다. 피다 못해 남아서 아주 편안하다. 키가 작은 것도 장점이 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을 사랑하자. 나는 오징어지만 잘생긴 오징어다.

버스가 출발하고, 키보드를 펴서 글을 좀 쓴다. 하지만 급 졸리다. 이거 버스 엄청 갈 테니 일단 한숨 자야겠다 싶다. 키보드를 덮고 눈을 감는다.

6시에 잠들어서 10시에 일어난다. 4시간 동안 숙면을 취했다. 베트남의 버스는 정말 편하다. 화장실 문제만 아니면 이틀도 탈 수 있겠다 싶다. 어찌 보면 숙소보다도 잠이 더 잘 오기도 한다.

이제 일어나서 글을 좀 써볼까. 어제 Dark Cave 이후부터 글이 밀려있다. 막판이라 글도 좀 버거워진다는 느낌이다. 원래 막판이 가장 힘들고 정신이 헤이해질 때다. 하지만 무엇이든 마무리가 중요하다. 시작이 반이라고들 하지만 시작만큼 힘든 게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마무리를 해야 그 일이 끝나는 거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글을 쓸려고 키보드를 피자마자 갑자기 스태프가 모두 내릴 준비를 하라고 한다. 시간상 이제 Hue 정도에 온 듯하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는 건가? 그러고 보니 4시간 동안 한 번도 정차를 안 했다. 운이 좋아서, 아니 잠자느라 화장실을 안 가도 됐지만 이중 누군가는 분명 지금 매우 괴로워하고 있을게 확실하다. 이래서 장시간 이동하는 슬리핑 버스에는 화장실이 꼭 있어야 한다.

차가 정차하고 모두 내리란다. 근데 들어보니 Hoi An으로 가는 사람들도 모두 여기서 내려서 차를 갈아탄단다. 뭔가 귀찮게 됐다. 뭐 그래도 한번 재정비하고 다시 버스를 타는 것도 괜찮겠다. 짐을 챙기고 일어난다.

버스에서 내리니 오토바이 기사들이 갑자기 우루루 몰려들어 나보고 Hoi An으로 가냐고 묻는다. 맞다고 하니 어딘가로 날 데려가서는 당장 오토바이를 타라고 한다. 뭐지? 오토바이를 타고 호이안을 가는 건 아닐 거고, 어디로 이동하는 건가? 근데 얘네가 이걸 공짜로 해줄 리가 없잖아. 자꾸 막무가내로 타라고, 내 짐까지 들어주고 아주 적극적으로 얘기를 하니 수상하다. 이거 돈 내는 거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보니 얼버무린다. "돈 내는 거냐고요!" 강하게 얘기하니 그냥 내가 주고 싶은 만큼 주면 된단다. 이게 말이야 소야. 결국 돈을 내야 한다는 건데 수상하다. 난 이미 돈 다 냈다.

가방을 달라고 하고 다시 아까 그곳으로 돌아온다. 오토바이 기사는 계속 귀찮게 따라온다. 혹시 몰라서 오게 놔둔다. 아까 내린 곳에 보니 다른 직원이 보인다. 가까이 가니 표를 검사하고 여기서 호이안으로 가는 표로 바꿔준다. 아까 오토바이 타고 갔으면 큰일 날뻔했다. 이 사람들 진짜 뭐야.

헌데 표를 보니 1시 출발이라고 적혀있다. 지금이 10시인데 한시라니, 원래는 최종 목적지인 호이안에 1시 도착인 걸로 알고 있었다. 물어보니 여기서 기다리는건 아니고 시내에 있는 자기들 사무소에서 가방을 맡기고 1시까지 오면 된단다. 거기까지는 어떻게 가냐고 하니 택시가 온단다. 무료냐고 물으니 무료란다. 아까 오토바이는 돈 달라고 했다고 얘기하니 그거 타면 돈을 내야겠지,라며 웃는다. 이거 또 몇 명의 호구들은 잡혀서 돈 내고 고생했겠구나. 돈도 문제지만 아까 그냥 타고 갔으면 생뚱맞게 어떤 사무실에 내려서 뭐가 뭔지 고생했겠다 싶다.

택시가 오고 하나 둘 올라 탄다. 스웨덴 일행들이 있어서 잠시 친숙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런 곳에 던져져 있으면 동병상련의 감정을 공유하기에 별거 아닌 거에도 금방 친해진다. 화장실이 있다던 버스는 화장실이 없고, 호이안에 간다던 버스는 후에에 내려주며, 1시에 도착한다던 버스는 1시에 출발한다고 하니 어찌 동지의식을 느끼지 않을까. 하지만 여행하면서 이런 상황 한두 번인가. 그냥 서로 씨익 웃으며 넘긴다. 가끔 이런거에 까칠하게 구는 여행자를 만나면 그게 더 피곤하다. 여행은 여유다.

택시를 타고 내려준 곳은 어떤 게스트하우스이다. 사무실을 겸하는 게스트하우스인 듯 싶다. 이거 딱 보니 모든 동네에 있는 서양인들의 집합처인 그곳 같다. 동양인 하나 없이 서양인들로 우글우글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곳이라고 동양인을 배척하는 건 아니다. 막상 얘기하면 편하게 대해주는데 그냥 우리가 이런데가 불편할 뿐이다.

여기 짐을 내려놓으니 1시까지 오라고 한다. 지금이 11시니 2시간이 남는다. 생각해보니 이거 은근 나쁘지 않다. 정말 찔끔 만큼이지만 Hue의 맛을 느낄 수 있겠다. 일종의 스탑오버다. 밥 먹고 커피나 한잔 마시고 와야겠다.


아까 그 게스트하우스가 이곳에 있는 것을 보면 눈치챘어야 하듯이 여기는 Hue의 가장 번화한 여행자 거리로 추정된다. 모든 간판이 영어로 되어 있고 식당들이 비싸다. 한 곳에서는 퍼보를 무려 6만 동에 팔고 있다. 아무리 급해도 6만 동짜리 퍼보는 먹을 수 없다. 금으로 만들었나. 길거리 식당을 찾아 좀 나서 본다. 식사는 대충 길거리에서 먹고 커피나 에어컨 나오는 카페에서 사먹어야겠다.

없다. 저쪽 골목까지 가도 그 흔한 반미를 파는 곳마저 안 보인다. 더 멀리 가자니 이곳의 지리가 익숙하지 않아서 돌아올 때가 걱정된다. 어쩔 수 없이 아까 있던 그 비싼 레스토랑으로 들어온다. 어차피 비쌀 거면 에어컨이 있는 곳이 좋다.

메뉴를 다시 한번 찬찬히 본다. 아무리 그래도 6만 동 퍼보는 절대 못 먹겠다. 전체적으로 비싸지만 자세히 보니 반미는 3만 동이라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한 끼 때우기에는 괜찮아 보인다. 반미와 연유를 넣은 커피인 카페스이다를 주문한다. 여기서도 베트남어로 요리를 얘기하니 직원들이 매우 좋아한다. 진짜 단어 한두 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한다.

반미 퀄리티가 상당하다. 이게 이러면 뭔가 퍼보도 6만 동의 값어치가 있을 듯 싶기도 하다. 확실히 베트남에서는 비싸면 비싼 대가를 보이는 것 같다. 근데 이거 들고 먹을 수 있는 건가? 크라제버거 같은 느낌으로 썰어먹어야 하는 걸까. 좀 썰어보지만 그게 더 힘들다. 그냥 질질 흘려가며 손에 들고 먹는다. 원래 이렇게 더럽게 먹어야 더 맛있는 법이다.

밥을 먹은 후에도 시간이 많다. 드디어, 방해 없이 밀린 글을 쓸 수 있겠다. 앉아서 40분 정도 글을 쓴다. 어제는 생각보다 스펙터클한 하루였어서 글이 길어진다. 다 쓰고 사진을 첨부하니 사진이 70장이다. 허, 이거 올라갈까? 나름 비싼 카페라 와이파이 속도에 기대를 하며 업로드를 해보지만 단 한 장도 안 올라간다. 저장해둔다. 나중에 호이안 가서 올려야겠다.

이곳에 있을 때 모든 걸 처리해야 한다. 오전부터 미뤄뒀던 근심도 해결한다. 동남아에서 가장 그리울 것 중 하나가 화장실의 수동비데다. 이게 익숙해지니 없는 곳을 가면 영 찝찝하다. 이건 나름 선진문화다. 우리나라도 도입했으면 좋겠다. 최첨단 기술로 만들었을 한국의 비데는  쓸데없이 모터를 달고 전기를 사용하여 고장이 잘 나는 것도 문제지만, 일단 충분히 시원하지가 않다. 동남아 비데는 사용하는데 기술이 좀 필요하긴 하지만 익숙해지면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나중에 혹시 집을 만들게 된다면 내 집에는 반드시 이걸 설치할 거다.

여기 스태프도 제2외국어로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단다.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아 보인다. 그리고 학생들이 일단 언어에 대한 학구열이 굉장히 높다. 교육은 미래의 발전을 뜻한다. 한국 가면 베트남 펀드에 투자나 해볼까. 그 몇 푼 안남은 돈을 또 투자하시겠다고? 아서자.

시간이 돼서 계산을 하고 아까 그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다. 배도 채웠고, 속도 비웠으니 아주 깔끔하다. 돌아오니 아까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 모여있다. 다 같이 앉아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려본다.

요즘은 라포 형성을 위해 새로운 여행자를 만나면 국적과 여행기간을 재미로 한번 맞추고는 한다. 이거 의외로 사람들이 재미있어한다. 영어 억양으로 나라를 맞추고, 가방과 더러움의 정도(?)로 기간을 맞춘다. 한 팀은 가방을 보고 한 달 미만을 예상한다. 3주라니 얼추 맞혔다. 독일 억양이 있지만 완벽한 그쪽은 아니기에 덴마크나 벨기에라고 대충 던져보지만 틀린다. 독일억양은 좀 어렵다. 스위스란다. 아, 맞출 수 있었는데 아쉽다.

다른 분은 딱 봐도 영국이다. 너무 쉽다. 기간은... 대충 3개월을 예상해보는데 정확하다. 아 나 돗자리 깔아야겠다. 가방을 보니 오래 여행한 듯 하지만 3개월 이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깨끗하다. 다른 한 팀도 뻔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특유의 억양이 있어서 들으면 바로 안다. 진짜 한 달 더 다니면 모든 사람을 맞출 자신이 있다.

오래 여행하는 서양 여자 여행자들을 보면 정말 자기보다 큰 가방을 앞뒤로 메고 다닌다. 정말 뭐가 저리 많은지 궁금하다. 다들 내 가방을 보고 놀란다. 2달 여행했다고 하니  더욱더 놀랜다. 하지만 가방이 작은만큼 몸이 더러워졌지. 나도 안다.

또 택시를 타고 어디로 이동한다. 이렇게 정신없이 갈 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표만 뺏길 수도 있고, 어쩌다 보면 내가 산 자리보다 안 좋은 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여기도 한국 버스 천지다. 그 한국 버스들 중에서도 우리 동네 근처인 '천호버스'를 발견한다. 넌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니. 이곳에서 보는 '천호'라는 단어가 매우 반갑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게 내 고향 마을에서 온 버스라고 얘기해준다.

이 버스는 현지의 슬리핑 버스다. 또 다리 제대로 못 피겠다. 축복받은 숏다리인 나도 다리를 풀로 못 피는데 서양인들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힘들 거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이 층에 자리 잡는다. 뭐 이 층도 나쁘지 않다.

아까 그 3개월 여행한 영국 여인은 원래 표가 없다고 바닥에 앉아야 한다더니 한 현지 아주머니가 자리 양보를 해줘서 내 옆의 이 층으로 온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키보드를 핀다. 글은 이동할때 쓰는 게 가장 좋다. 자리도 편하고 에어컨 덕분에 시원하고 시간도 때울 수 있다.

잠도 자고 글도 쓰고 책도 본다. 버스가 생각보다 오래 간다. 아까 누군가 5시간 걸린다고 한 거 같은데 정말일까? 아까 스웨덴 총각이 160킬로미터 밖에 안된다고 해서 두세 시간이면 갈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던 걸까.

중간에 화장실을 가라고 잠시 멈춘다. 벌써 4시다. 이미 3시간이 지났다. 구글 지도를 펴고 위치를 보니 후에와 호이안의 딱 중간이다. 정말 오후 6시나 되어야 도착할 기세다. 나야 그나마 펑냐에서 탔으니 그렇지, 하노이에서 오는 사람들은 중간에 멈춘 거까지 포함하면 거의 24시간 이동이겠다.

옆에 영국 여자분과 잠시 얘기를 나눈다. 인도 여행하고 왔단다. 인도하면 반사적으로 갠지스강 헤엄쳐 건너갔다 온 자랑이 나온다. 아쉽게도 바라나시를 안 갔단다. 아쉽군. 대신 자이살메르를 가셨다기에 그곳에서 6년 전에 노여사도 만나고, 지금까지 신고 다니는 쪼리도 그곳에서 샀다고 자랑한다. 자랑쟁이다.

사실 내 가장 큰 자랑은 중학교 때 귀국했을 때이다. 어릴 때 아버지 직업상 아프리카에서 3년, 그리스에서 3년을 살았다. 그리고 귀국했을 때가 중학교 3학년 2학기다. 우리나라는 특례입학 제도가 있어서 고등학교 때 귀국하면 대입전형에서 혜택이 주어진다. 6개월 때문에 그 혜택을 못 받게 되어서 정말 앞이 깜깜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오자마자 연합고사를 봤는데 뭐가 뭔지 몰라서 시험에서 아예 떨어져버렸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특례입학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갔으니 고등학교 가서 반 배치 고사를 봤는데 당연히 정말 꼴등을 했다. 나름 외국에서도 공부는 전교 5등 안에 들었었지만 국어, 역사, 지리 등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를 과목들이 즐비한 상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가장 자신 있던 수학도 가르치는 체제가 너무 달라 적응이 힘들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강신청을 하며 다니며 자율성을 강조하던 학교 시스템에서 원리 따위는 무시해버리고 무조건 공식을 외우게 하는 50명이 가득 차 있는 교실은 너무 버거웠다.

그래도 선천적으로 긍정적인가 보다. 사실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내가 진짜 똑똑한지 아닌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난 스스로가 엄청 똑똑하다고 믿고 산다. 그리고 내 자신을 사랑한다. 물론 이게 가끔 과해서 자만으로 넘어갈 때가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자만이 엄청난 독이라는 걸 깨닫고 지금은 그 부분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방황하던 시절, 고등학교 2학년 때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 정착할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이 지금까지도 매달 한 번씩은 만나는, 나에게는 유일한 어릴 적 친구들이다. 그 이후 성적도 오르고, 최악의 난이도로 불리는 죽음의 97년도 수능시험이 나에게는 오히려 적성에 맞아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나 자신이 이뤄낸 것 중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지만 혼자 이뤄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건 순수한 내 자랑 맞다. 이 여행기에서 내 아픔과 부끄러움에 솔직했듯이 자랑에도 솔직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나라는 겸손이 너무 과하다.

버스가 조금 더 가니 바닷가에 예쁜 도시가 보인다. 위치적으로 봤을 때 저기가 다낭이겠지? 조금 있으니 그 도시에 진입한다. 다낭은 내가 생각했던 일반적인 휴양지라기보다는 부산을 보는 느낌이다. 번화한 가게들이 즐비하고 해변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여기는 좀 기다려줘야겠다. 내일 모레 이곳으로 돌아오마. 근데 과연 돌아올까? 귀국 비행기가 늦게 뜨니 호이안에서 마지막 날까지 있다가 당일에 바로 공항으로 가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Tuesday with Morrie'를 오랜만에 편다. 좁은 이 층 버스의 침대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두 챕터를 읽는다.

'문화와 관습은 사람들의 행복을 방해하곤 한다. 그걸 거부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인생은 항상 줄다리기다. 나한테 기대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의 힘 싸움이다. 그리고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

곱씹을 얘기들이다. 나는 그냥 나로서 존재해야 행복할 텐데 주변의 환경들이 자꾸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든다. 내가 나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지난 6년간 행복했던 건 결과적으로 실패하긴 했지만 내 나름의 기업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 존재가 의미가 있었고 내 삶이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영향을 줬었다.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또 사업을 해야 할까. 쥐뿔도 없는데.

무엇을 하든 현실에 지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여행 이후 처음으로 생각하는 다짐이다. 무엇을 하든, 내 자신을 잃지 말자. 이번 여행을 통해 소중하게 다시 깨달은 내 스스로의 목소리를 따라가자. 돈을 위해 살지 말고, 행복을 위해 살자. 가능하겠지?

문득 데이브가 나한테는 모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현재의 행복 말고는 그 무엇에도 적나라하게 관심이 없던 데이브와 모리는 너무 닮아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말을 귀기울일줄 알았고, 그 나이에도 자기 작품을 자랑할 때는 소년처럼 수줍어했다. 좀 더 같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새삼스레 아쉬워진다.

데이브와 라셸이 마지막 날 추천해줬던 책들은 한국 가서도 봐야겠다. 이분들이 추천해준 거면, 그리고 나한테 추천해준 거면 의미가 있으리라.

The unlikely pilgrimage of Harold fry
The Kite runner
And the mountains echoed
The long walk to freedom
Cry thy beloved country


그나저나 이제 배고프다. 철학도 배가 불러야 하는 거다. 오늘 하루 종일 반미 하나 먹었다. 원래대로라면 1시에 도착해서 여유 있게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망했다. 아침을 먹고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긴 하지.

6시가 되니 작은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혹시나 싶어 지도를 펼쳐보니 호이안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났으니 장장 14시간 만에 호이안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게 그리도 먼 여정이 될지 정말 몰랐다.

버스가 터미널에 멈추고 가방을 가지고 내린다. 아까까지 같이 대화를 하던 영국 여성은 어느 호스텔을 예약했단다. 살짝 따라갈까 생각하다 홀로 길을 나서기로 한다.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이유로 도미토리도 안 가고 개인 숙소로 가려고 마음 먹는다.

내리자마자 오토바이가 달라붙는다. 4만 동을 주면 여기저기 게스트 하우스를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살짝 고민해보다 그냥 걷기로 한다. 마을이 많이 커 보이지도 않는데 굳이 오토바이에 의존해서 다닐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가방을 짊어지고 걷는다. 가방이 가벼워야 확실히 좋은 것이 서양애들은 이렇게 가방을 메고 멀리 걸어갈 엄두를 잘 못 낸다. 나야 이 정도면 서너 시간도 마음 먹으면 걸을 수 있다. 일단 구글 지도를 보고 어제 봐 뒀던 게스트하우스 근처를 목표로 걸어가 본다. 물론 거기는 도미토리 중심이기에 거기서 잘 생각은 없다.

가는 길에 투어리스트 안내소가 보여서 들어간다. 이런 안내소에서 보통 무료 지도도 받을 수 있고 길 안내도 받을 수 있다. 들어가보니 역시나 무료 지도는 배치되어 있어서 하나받아온다. 허나 지도가 그냥 동네 지도이지 무슨 갈만한 곳을 표시한 건 아니라서 별 도움은 안되지 싶다. 어쩔 수 없이 거기 직원에게 길을 물어본다. 이곳에서 게스트하우스들이 몰려있는 거리는 어디인가요? 이 정도 유명한 동네면 여행자 거리가 어딘가에 형성이 되어 있기 마련이다.

역시나 바로 알려준다. 두 번째 신호등에서 우회전하란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나오려고 하는데 다낭공항까지 픽업차에 대한 간판이 보인다. 11만 동에 공항까지 가고 매시간마다 있다. 이거 공항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니 1시간이면 간단다. 허, 이러면 굳이 다낭을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서 일러준 데로 두 번째 신호등에서 우회전을 한다. 근처를 가니 확실히 여행객들이 눈에 띄고 게스트하우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가니 안쪽으로 약간 둥글게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왠지 땡겨서 그쪽으로 들어가보니 게스트하우스와 식당들 천지다. 찾았다, 이 동네의 여행자 거리.

시세를 알기 위해 몇 군데 물어본다. 아무래도 더운 나라다 보니 일단 에어컨은 다 구비되어 있고 모두 10달러를 부른다. 그 밑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수영장이 갖춰진 호텔은 30달러를 부르지만 그런 곳은 표정 관리하며 쿨하게 돌아나올 뿐이다.

다 비슷비슷해 보여서 그냥 아무 곳이나 하나 골라잡고 정착하려는데 문득 좀 깔끔한 현대식 호텔이 보인다. 여기 비쌀듯하다. 혹시 몰라 다시 표정관리 연습을 하며 들어가서 물어본다. 12달러란다. 생각보다 괜찮다. 여기 묵을까? 동으로 물어보니 21.8로 계산해서 26만 동이란다. 비싸긴 하다. 일단 좀 더 돌아다녀보자.

역시 한번 마음속에 들어온 것은 떨쳐내기가 힘들다. 결국 돌아 돌아 이곳으로 돌아온다. 대신 이틀을 약속하고 25만 동으로 합의한다. 아주머니가 너무 강경하셔서 이게 최선이었다.

방을 들어가보니 확실히 마음에 든다. 욕실에는 샤워장이 별도 설치까지 되어 있다. 이 정도면 마지막 밤들을 편안하게 사람들의 방해 없이 홀로 지낼만하다. 남은 날들은 아무도 안 만나고 그냥 조용히, 평온하게 있고 싶다.

일단 밥을 먹으러 가야겠다. 오늘 결국 반미 하나만 먹고 돌아다녔다. 머리가 좀 띵한 게 영양이 부족한 게 몸에서 느껴진다. 저녁은 뭘 먹어야 할까?

아까 숙소를 알아보러 다니면서 로컬 생맥주가 3,000동이라고 쓰여있던 것을 보았다. 비아흐이가 5,000동이니 더 저렴한 셈이다. 한잔에 150원이다. 거기 식당을 한번 다시 찾아가본다. 숙소 바로 옆이다.

메뉴를 보는데 전체적으로 다 비싸다. 퍼보, 분보가 그나마 3만 동이라 먹을만한데 이걸 먹으면 양이 부족할 거 같다. 넴을 물어보니 4만 동이란다. 하노이에서는 한 개에 3 천동이었던걸 생각하니 못 시키겠다. 게다가 지금 예산이 불안하다. 숙소를 생각보다 비싼 곳으로 해서 여기서 며칠 보내는데 문제가 없는지 모르겠다.

퍼보말고 이곳의 전통음식인듯한 Lau Cao를 주문한다. 3 천동짜리 맥주도 당연히 주문한다. 근데 이걸로 양이 될까. 좀 불안해서 그냥 8만 동짜리 다른 음식으로 바꾸려고 하니 이미 주문이 들어갔단다. 어쩔 수 없다.

조금 기다리니 Lau Cao가 나온다. 흠, 이것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메뉴이다. 미얀마였나? 라오스였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난 음식에 과자를 넣는 몰상식함을 이해할 수 없다. 과자가 들어간 음식은 뭔가 저렴하게 느껴진다. 면도 좀 불어 터진 느낌이다. 저번에 이거 먹었을 때도 똑같은 생각을 한 거 같다. 근데 어디였었지.

맥주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새삼스레 비아흐이를 맛으로 먹은 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냥 별 느낌이 없다. 차라리 얼음을 잔에 넣고 먹었던 펑냐의 비아사이공이 살짝 그리워진다. 물론 그럼에도 두 잔은 마신다.

배가 덜 찼다. 그렇다고 여기서 뭘 먹기에는 돈이 걱정이다. 이거 상거지가 따로 없다. 이리 처량할 수가 있나. 먹고 싶은걸 못 먹을 때가 가장 서글픈 법이다. 그렇다고 며칠 때문에 돈 수금을 더 받을 수도 없다. 이곳은 어차피 한인 여행사 따위는 없을 것이 확실하다.

일단 나와서 근처를 돌아본다. 좀 저렴하게 먹을 것이 있을까 싶어 기웃기웃 거리니 길거리에서 넴을 파는 곳이 눈에 띈다. 가까이 가서 물어보니 2만 동에 5개를 준단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먹을만하지. 하나 달라고 하니 바로 숯불에 굽기 시작한다. 그래, 이거야. 맥주를 좀 사올까 싶어 잠시 굽고 있으면 돌아오겠다고 얘기하고 마트로 향한다.

마트에서 이곳 맥주인 Bia Laur를 찾아 물어보니 1.3만 동이다. 뭐지, 호텔 냉장고에 있던 거와 가격이 같다. 그렇다면 굳이 여기서 살 필요가 없다. 호텔 냉장고에 있던 거라 가격이 엄청 차이날줄 알았더니 같다. 나름 반전이다.

돌아오니 넴을 먹기 좋게 잘라서 포장해놓았다. 찍어먹을 소스와 젓가락도 따로 준다. 이게 다 천 원이다. 들뜬 마음을 가지고 방으로 가지고 온다.

오자마자 씻고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글을 올린다. 와이파이가 느리긴 하지만 꾸역꾸역 올라간다. 책을 보면서 맥주 한잔과 함께 넴을 먹어본다. 오, 이거 꽤나 맛있다. 아니 상당히 맛있다. 진정한 천 원의 행복이다.

혹시 몰라서 남은 돈을 계산해본다. 이곳에서 남은 3일을 다 보낸다는 가정하에, 3 일치 숙박인 75만 동과 공항까지 이동비 11만 동을 빼고 남은 3일로 나누니... 하루에 30달러가 나온다. 뭐지? 왜 이리 많지? 먹는 거에만 하루에 30달러를 써도 된다는 말이다. 다른 액티비티를 하지 않는다면 하루에 10달러식인 셈이다. 나 거지 아니었었다. 갑자기 저녁을 허술하게 먹은 게 억울해지기 시작한다. 내일은 정말 제대로 먹어야겠다.

누워있는데 페이스북 알람이 울린다. 누군지 보니 여행 초기 빠이에서 만나서 내 사진을 찍고 페이스북에 인증하여 나도 복수로 인증했었던 그 베트남 처자다. 여행기는 한글이라 못 읽지만 제목에 있는 지역명을 보고 베트남에 있다는 걸 알았나 보다. 그러고 보니 베트남 오면 이 친구한테 연락해본다는 걸 깜박했었다. 혹시나 싶어 근처이면 보자고 했더니 호찌민시티에 있단다. 뭐 그리 먼 건 아니지만 한 사람을 보러 가기에는 좀 멀다. 아쉽다. 이 친구 내가 호이안에 있다고 하니 Phuong이라는 빵집을 꼭 가보라고 한다. 왠지 반미집 같다. 내일 아침을 먹으러 가봐야겠다 생각을 해본다.

아무래도 내 여행은 하노이에서 사람들과 이별하면서 끝난 거 같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서울로 가버렸다. 더 이상 인연을 만드는 것도 싫고, 뭔가 과한 액티비티를 하는 것도 싫다. 남은 며칠은 그냥 조용히 책이나 보면서 지낼까 싶다. 호이안이 그러기에 나쁜 마을은 아닌 거 같다. 그래도 한 번쯤은 바다에 수영이나 하러 가볼까나. 뭔가 외롭고, 뭔가 고독하면서, 뭔가 서글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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