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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Sep 29.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Epilogue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순간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올라오지만 애써 내리 누른다. 마지막 모습은 아름답게 기억되고 싶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지 3주가 되었다. 이번 여행으로 내 안에 많은 것이 변했다. 덕분에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었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59일의 날들은 지난날들의 후회와 고통을 위로해준 고해성사였으며 내 자신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비춰준 거울이었다. 이 여행을 통하여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지난 6년을 정리할 수 있었고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에 복귀하니 불확실했던 많은 것들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밤잠 못 이루며 고민하고 아파했던 것들의 부질없음을 느꼈고, 바쁜 생활에 외면되어 왔던 가치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와 함께, 애써 외면해 왔던 우리 사랑의 한계를 직면하게 되었다.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랑이 지속되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어도, '나'와 '그녀'는 행복하지 않게 될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도 알고, 그녀도 알던 사실이지만, 6년의 시간은 변화를 허락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그녀의 20대와 내 30대를 오롯이 바친 우리의 시간은 '이별'에 대한 생각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내가 이번 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행복한 이별을 했다. 하노이에서 만났던 호르헤가 '행복한 이혼'을 했다고 했을 때는 이해 못했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별이 그저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에는 사실 나는 이별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며, 마음 아파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게 서로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이제 진짜 여행은 끝이 났다. 이번 여행은 지난 6년간의 내 삶을 정리하면서, 6년간의 내 사랑도 가져갔다. 삶은 영화와 다르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선택'이 있고, 그 선택을 한 나에 대한 믿음이 있을 뿐이다. 이제 내 인생에서 가장 스펙타클했던 챕터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고 다음 장의 첫 페이지를 열어본다.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새로운 나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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