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I Oct 05. 2015

나홀로 14일 제주 여행 - Day 2

적응의 연속

아침에 일어나서 조식을 먹으러 간다. 개인적으로 조식이 여행의 백미라 생각한다. 바다를 보면서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 게스트하우스 조식이 썩 훌륭하지는 않지만 어차피 분위기를 즐기는 거라 괜찮다. 셀프라 스크램블들 에그를 직접 만들고 토스트, 커피와 같이 먹는다. 커피가 드립이 아닌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뽑아주신다. 훌륭하다. 먹고 나와서 게스트하우스 개들하고도 좀 놀아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식사를 하고 책도 보고 글도 쓰며 여유를 즐기고 싶은데 어제 동행으로 합류하신 아버님이 어서 먹고 다음 스케줄로 가고 싶어하시는 듯하다. 좀 아쉽지만 그래도 오늘은 두 분의 일정에 맡기고자 한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가서 대충 씻고 짐을 찾아 나온다. 이제 9시다. 집에서는 이 시간에 절대 안 일어나 있는데. 이래서 여행 다니면 건강해지나 보다.

첫 번째 게스트하우스는 좀 아쉽다. 백패커가 오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듯하다. 시설도 너무 좋아서 뭔가 정감도 덜 가고 일단 주변에 먹을 것이 너~~무 없다. 여기는 커플이나 가족들이 놀러 와서 안에서만 놀기에 적합한 곳이 아닌가 싶다. 뭐 성수기에는 또 다를 듯하기도 하다. 처음 올때만 해도 좋으면 며칠 있어야겠다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바로 떠나길 잘한다 싶다. 다음 행선지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본다.


아들과 함께 아버님의 차를 얻어 타고 주상절리로 향한다. 제주도에 와서 오픈카도 렌트한 적이 있는 주제에 뭔가 승용차를 타니 굉장한 호사를 누리는 느낌이 든다. 이래도 되나 싶다. 오버하지 말자.


주상절리에 도착한다. 바다에 있는 돌들의 모양새가 기둥처럼 되어 있어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들어가서 같이 기념 사진도 찍는다. 입장료 2000원을 아버님이 내주신다. 또 살짝 부담스럽지만 돈 아꼈다는 생각으로 고맙게 받아들인다. 근데 2천 원 주고 들어가서 사진만 찍고 나오려니 뭔가 아쉽다. 혼자 왔으면 앉아서 멍 때리기 괜찮은 곳 같긴 하다. 사실 굳이 입장료 내고 들어가지 않고 그냥 그 옆에 있는 공원에서만 있어도 충분해 보인다.

이제는 이번 여행에서의 첫 번째 일행과 헤어질 때가 됐다. 차를 얻어타고 돌아가다 가까운 버스 정거장에서 내린다. 아들의 뮤지컬 인생도 잘 풀리길 바라고 아버님도 원하시는 일이 잘되시기를 기원해본다. 서울에서 기회 되면 한번 보자는 얘기도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쁘지 않은 일행이었다.


내려서 걸어가며 이어폰을 귀에 낀다. 노래를 들으며 혼자 걸어가니, 역시 이게 좋다. 여행은 혼자서 고독을 느끼는 게 제일 좋다. 버스 정거장에서 120번 버스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대평리로 향한다.






대평리, 지금 이곳에 온지 몇 시간 안됐지만 내가 원하던 그런 마을을 찾은 느낌이다. 게스트하우스들의 분위기도 좋고 경치도 좋고 원하는 느낌의 카페들도 보인다. 이제야 여행을 온듯한 느낌이 든다. 체크인이 오후 4시 반인데 지금은 아직 오전 10시다. 일단 한바퀴를 돌아보고 두 번째 게스트하우스인 이음 게스트하우스로 가본다.

게스트하우스는 마음에 든다. 다음 게스트하우스로 생각하고 있는 티벳풍경도 바로 옆이다. 시간이 일러서 체크인은 못하고 먼저 짐만 좀 맡길 수 있냐고 물어본다. 된다고 해서 짐을 맡기고 나온다. 게스트하우스 옆에 이음 카페라는 곳도 있어서 거기 좀 있을까 해서 물어보니 여긴 휴식공간이 아니고 카페라 무료로는 안된다고 한다.

점심 전에 카페를 들어가자니 돈이 좀 아깝다. 그래서 바닷길을 거닐어본다. 아 이 동네 진짜 경치가 너무 좋다. 멍 때리기 최적의 조건이다. 내일부터는 원래 계획대로 오전에 조깅을 해볼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걷다가 왠 흔들의자와 테이블을 발견한다. 생뚱맞은 곳에 위치해있다. 시에서 만든 건지 아니면 주변에 리조트라도 들어 올려고 미리 만들어놓은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곳 위치가 너무 좋다. 햇빛도 잘 들어오고 바다도 한눈에 보이고, 무엇보다 사람이 한명도 없다. 이런 게 바로 아지트지. 어느 여행지를 가나 아지트를 잡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4일 동안 여기를 아지트로 잡고 책도 보고 글도 써야겠다. 일단 키보드를 꺼내서 이틀간의 일들도 정리해본다. 시대가 좋아져서 아이폰과 블투 키보드면 어디서든 글을 쓸 수가 있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 있었더니 춥다...

오전을 마무리하고 일어나서 식사할 곳을 찾는다. 뭐 급할 것도 없어서 또 다시 동네를 한바퀴 돌며 느긋하게 식사할만한 후보지를 물색해놓는다. 분위기 좋은 동네이긴 한데 사실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고 게스트하우스 4개 정도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형태 같다. 그래서 그런지 식사할 곳도 한서너 군대 되는 것 같다.

한바퀴 돌아본 후 버스정거장 내린 곳 바로 옆에 있던 용왕난드르라는 희한한 이름의 식당으로 최종 결정한다. 결정한 이유는 밖에 써놓은 문구에서 제주 향토음식점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 역시 마케팅에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이왕 제주도에 왔으니 향토음식점을 가고 싶어 지는 게 당연하다.

들어가서 메뉴를 보니 보말이라는 생소한 재료를 활용한 음식이 많이 보인다. 보말국, 보말 수제비, 보말죽... 보말죽만 만원이고 나머지는 7천 원이라 가격이 괜찮다. 무난하게 보말국을 시킨다. (근데 시켜놓고 보니 다 보말수제비를 먹고 있다. 에잇!)

고수부터 뚬얌꿍 등 토속색 짙은 음식들을 잘 섭취하는 지라 나름 기대를 하고 기다려본다. 근데 음식이 나오고 보니 영락없는 미역국이다. 보말이 미역의 한 종류인가? 뭐 그래도 맛있게 먹는다. 사실 국보다는 밑반찬으로 나온 무말랭이 묻침(?)이 좋았다. 낙지가 실하게 들어있고 양념도 괜찮았다.


계산을 하고 나온다. 여긴 카드도 받는다. 역시 향토음식점이라 다르군! 근데 문제가 생긴 게 게스트하우스는 4시 반 전에 들어가지를 못한다. 아직도 4시간이 남았는데 딱히 할게 없다. 원래 계획은 밥 먹고 앉아서 책도 보고 글도 쓸 수 있는 곳을 가는 거였는데 향토음식점에 끌려 식당을 가버린 게 실수다. 어쩔 수 없이 앞에 세련되 보이는 카페를 들어간다.

들어가서 보니 거닐다라는 이름의 카페다. 분위기 좋고, 사장님 인심도 좋아 보이고, 무엇보다 손님이 그다지 없어 보이는 것이 좋다. 오랫동안 있으려면 손님이 없어야 눈치가 안 보인다.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만석일 때 서너 시간씩 자리 차지하고 있는 짓은 못하겠다. 사실 경험상 손님이 없을 때는 그나마 있는 손님이 오래 있어주는 것이 가게 분위기에는 오히려 좋다. 만석 아닐 때는 눈치 보지 말고 몇 시간이고 있어주도록 합시다.

오전에 커피를 이미 한잔 마셨기에 차를 한잔 시키고 자리에 앉는다. 자랑스러운 코보글로를 꺼내서 리디북스로  다운받은 탐스 스토리를 이어서 읽기 시작한다. 이 책 괜찮다. 내 여행의 테마와도 맞아떨어지고, 창업자의 마인드도 아주 마음에 든다. 특히 현실적인 조언들도 있어서 필기까지 해가면서 본다.


갑자기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떠오른다. 기존에 생각했던 거에서 조금 응용한 다른 아이템이다. 어서 노트를 열고 적어놓는다. 앞으로 여행 기간 동안 좀 더 발전을 시켜봐야겠다. 확실히 여유가 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간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여러 생각이 든다. 다 노트에 적어놓는다.


한두 시간 정도 있었나 보다. 손님 몇 팀이 왔다 나갔다 한다. 한 젊은 여자분은 아이만 데리고 혼자 와서 차를 마신다. 어머니가 안 볼 때 아이랑 눈빛으로 장난을  주고받는다. 아이가 까르르 웃는 게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 어머니는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을 거다. 뭐 나쁜 짓한건 아니니까.


아이와 어머니도 남편 전화를 받고 나가고 카페에 나 홀로 남게 되니 갑자기 사장님이 귤을 3개 가져다 주신다. 오래 있어서 눈치도 보이는데 이런 것까지 주시다니, 감개무량이다. 시골인심이란 이런 것인가! 한알 까서 먹어보니 또 겁나 맛있다. 문득 원래 제주도가 귤로 유명하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3알을 미친 듯이 먹는다.

감사한 마음에 카페를 검색해보니 나름 유명한 카페인가 보다. 사장님 내외는 인간극장에도 나왔고, 1박 2일에서도 왔다 갔었다고 한다. 역시 인심이 좋으시니 유명세도 타신 듯. (귤 3개에 감동을...) 근데 손님이 왜 이리 없을까. 하긴 뭐 비수기에 평일이니, 온 내가 이상한 거지.

사장님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카페를 나선다. 이제 드디어 4시 15분이다. 15분 정도 산책하고 게스트하우스를 가야겠다. 산책하고 가니 아직도 문이 잠겨있다. 입실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문이 잠겨있다. 여기 스텝분은 참 시간에 철저하시구나 생각을 하고 좀 기다려본다.

기다리고 있는데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난 고양이만 보면 환장한다. 몸집도 작은 게 한살이 채 안된 애 같은데 덜덜 떨면서 있다. 밥그릇이랑 물그릇이 있는 거 보니 누군가 밥을 주는 거 같긴 한데... 안쓰럽다.

아직 문은 잠겨 있겠다, 할 일도 없겠다, 앞에 슈퍼에 가서 소시지 2개를 천 원 주고 사온다. 하나를 까서 주니 환장하고 달려들어 먹는다. 이웅이웅 소리를 내면서 먹는 게 우리 집 고양이랑 똑같다.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후딱 먹어치우더니 더 달라는 눈빛으로 본다. 야, 이거 하나 먹으면 그래도 많이 먹은거야... 나머지는 이따 저녁에 주든가 내일 줘야지 하고 가지고 들어온다. 근데 나를 보고도 안 피하는 거 보니 사람 손도 탄듯한데 깡마른 게 누가 밥을 주고 있나 모르겠다. 여기 있는 4일 동안이라도 내가 줘야겠다.

스텝분이 도미토리 들어갈 남자분 한분을 모시고 온다. 이제는 방에 들어갈 수 있겠구나. 드디어 도미토리에 입성한다. 이층 침대가 2개 있는데 내가 낮에 먼저 와서 선택권이 주어지고 1층을 차지한다. 죄송합니다...


새로 오신 분이랑 잠깐 대화를 나눠본다. 보이기에는 나보다 좀 더 많아 보이시는데 뭐 외모로는 알 수 없는 거고. 사실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아직은 동안이긴 한데......) 오늘 제주도에 오셨는데 편도로 오셔서 일정을 아직 안 잡고 있다고 하신다. 등산복까지 다 챙겨가지고 오신 거 보니 한라산 가시면 딱일 듯한다. 어제 만난 아버님이 한라산은 지금 눈이 내려서 정말 경치가 좋다는데 청바지에 운동화 신은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분은 아이젠까지 있다고 하니 추천해드린다. 당분간은 올레길을 걸으실 예정이시라고 한다. 여기 대평리가 8코스와 9코스의 중간이란다. 나도 다음주 월요일에 9코스 쪽으로 올레길을 걸어볼까 생각해본다.


갑자기 밖에서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까 그놈이 문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스텝분이 고양이를 바라보는 눈이 심상치 않아서 쫓겨나겠다 싶어서 어서 나가보니, 역시 그새 쫓겨났다. 나가서도 혼내는듯하다. 아 불쌍한 고양이... 그냥 추웠던 건데.


이음 게스트하우스, 느낌은 좋은데 뭔가 약간 삭막한 느낌이 든다. 주의사항을 알려주는데 보니까 일단 두둥! 조식이 없다!! 조식이 없다니! 게스트하우스에 조식이 없다니! 알아보지 않고 온 내 잘못이지 뭐...


게다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는 무조건 방을 비워야 한단다. 난 이틀 있을 건데 뭐하라고... 어디 가라고... 오늘도 밥 먹고 차까지 먹어서 3.5만 원의 예산이 간당간당한데. 내일은 올 때 본 천제연 폭포나 가봐야겠다. 인도 여행 때 생각하고 게스트하우스에 죽치고 있어야겠다 생각했는데 한국의 게스트하우스는 안 그런가 보다. 사장님이 없고 스텝만 있어서 그런가... 내일모레 갈 티벳풍경을 기대해봐야겠다.


고양이한테 따뜻한 물이라도 줄까 싶어서 나와보니 안 보인다. 이 추위에 어디 갔을꼬... 뭐 지가 가봤자 이 근처겠지. 고양이 두 마리나 키우고 있지만 얘네 그리 약한 동물은 아니다. 내일 보이면 밥이나 줘야겠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라 앞에 이음카페에 나와 글을 쓴다. 물어보니 여기는 맘껏 이용해도 된단다. 단, 오후 4시 반부터 오전 10시까지. 결국 10시 이후에는 갈 곳이 없다. 천제연 폭포나 가자...


카페에 앉아서 책을 보다 보니 해가 지는 게 보인다. 이때 시각 6시. 원래 일출, 일몰 보는 게 여행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도미토리 일행이 카페에 있길래 "저 일몰 보러 가요~"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나온다. 여행의 묘미인 일몰을 보겠구나,라는 들뜬 마음에 넣어둔 노래 중 가장 감상적인 노래를 준비하고 (월터 영화 OST) 바닷가로 향한다.

근데 날씨가 좀 춥다. 뭐 그래도 참을 수 있겠지 생각하며 일몰이 잘 보이는 명소를 찾아 헤맨다. 적당한 장소를 발견. 앞에 절경도 멋지고 구름도 좀 있지만 일몰은 은근 잘 보일 거 같다. 바다 근처까지 가서 자리를 잡는다.

해가 내려온다. 근데 너무 너무 춥다. 어서 보고 들어가고 싶은데 해는 적당한 거리에서 잘 안 내려오고 있다. 내일은 시간 맞춰 6시 반에 나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참으면서 볼까, 그냥 들어가버릴까 순간 고민을 한다. 당당하게 일몰 본다고 하고 나왔는데 그냥 들어가기가 뭔가 부끄럽다. 하지만 너무 춥다. 결국 들어가기로 마음 먹고 일어난다.

미련이 남아서 뒤를 슬쩍슬쩍 보면서 숙소로 향한다. 숙소에 도착할때 까지도 해는 안 졌다. 안 보고 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카페에 들어가니 도미토리 일행분이 왜 벌써 왔냐고 굳이 또 물으신다. 시크하게, 추워서 그냥 들어왔어요,라고 대답하고 주제를 바꿔버린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애매하다. 사실 근처에 흑돼지구이 집을 눈여겨 보긴 했는데 이게 500g 단위로 팔아서 3명을 모아야 한다. 룸메분에게 물어보니 오기 전에 이미 먹고 오셨다고 관심이 없으시단다. 혼자 드시느라 부끄러웠단다. 밥 혼자 먹는 게 어때서... 포기하고 예산을 보니 약 5천 원 정도 여유가 있다. 역시 차를 따로 먹은 게 문제였다. 내일은 계획을 잘 짜서 밥과 버티는 곳(?)을 잘 잡아봐야겠다.

게스트하우스 카페에 식사 메뉴가 있어서 보니 음식이 꽤 다양하다. 어제 저녁은 먹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일단 음식을 판매한다는 것부터가 뭔가 감사하다. 하지만 가격을 보니 라면을 먹어야 할거 같다. 그래, 여행지에서 먹는 라면이 또 매력 있지...라고 생각하며 마늘라면을 주문한다. 근데 이게 4천 원이다. 주인장이 아무래도 그냥 라면은 4천 원 받기 뭐시기 하니 마늘을 넣고 4천 원을 받으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한듯한 게 보인다. 주문한 라면이 나와서 보니 편 마늘이 좀 들어있다. 마늘 한 개 정도? 그래도 제주도인데 새우라도 넣어주지. 널린 게 새우던데. 그래도 나름 헝그리 하게 있다 보니 맛있게 먹는다. 역시 라면은 언제나 진리다.

밥을 먹고 숙소 휴게실 쪽으로 가서 책을 읽는다. 인도 여행 때 게스트하우스 숙소에서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좋았었다. 평화로움과 한산함, 그리고 사람들과의 대화. 이 게스트하우스는 나름 유명한지 여자 손님, 남자 손님이 계속 들어온다. 근데 아무도 휴게실에 오지는 않는다. 휴게소 위치가 정 가운데라 사람들이 자꾸 지나다니니 뭔가 또 창피해진다. 동물원의 동물이 된 느낌이다.

그래도 꿋꿋하게 앉아서 책을 보다 방명록이 보여 펴본다. 방명록을 보니 2011년도부터 운영을 하신 듯하다. 그때는 미모의 여사장님이 직접 운영을 하셨나 보다. 칭찬 일색이다. 역시 사람은 예쁘고 봐야 하나보다. 근데 게스트하우스는 확실히 사장이 직접 있느냐 스텝만 있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하긴 내가 스텝이라도 월급 없이 숙식 해결하면서 있는 거면 아무리 자기 선택이라 해도 크게 서비스 마인드가 좋을 수는 없지 싶다. 사람들이 일을 자기 일처럼 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잠시 빠져든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왜 여기 사람이 없는지 알겠다. 바로 옆이 여자화장실이다. 벽 하나를 건너 화장실이 있으니 뭔가 애매모호한 분위기다. 왜 이걸 이제 봤지? 어쩐지 여자들이 지나갈 때 뭔가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본듯하다. 어차피 여기서 어떤 인연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기에 남자 숙소로 들어간다.


들어가보니 그새 일행이 한 명 더 늘었다. 인사하고 얘기를 해보니 올레길을 걷고 있는 26살 청년이다. 고등학생처럼 보였는데 요즘 애들은 참 동안이구나. 근데 뭔가 이상하다. 여기에 3일 연박한 걸로 아는데 올레길은 어떻게 걷는 걸까? 물어보니 길을 걷고 목적지에 다다르면 버스를 타고 다시 이곳으로 온단다. 헐. 신선한 문화충격이다. 내가 생각했던 도보로 제주도 한바퀴를 도는 거랑 너무 달라 낭만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뭐 그래도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테고 사람들은 방식이 다 다른 법이니까.


셋이서 서로 얘기를 좀 나누며 정보를 주고받는다. 수첩을 꺼내서 필기를 한다. 여행 경험상 블로그 검색 같은 것보다 이렇게 실제로 사람과 만나 나누는 정보가 알짜배기다. 둘 다 이 동네는 먹을게 없어서 별로란다. 내가 어제 있던 동네를 가봤어야 한다. 난 대평리가 그래도 먹을걸 일단 먹을 수가 있어서 천국 같다고 하니 둘 다 빵 터진다. 둘 다 달파란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필기를 한다. 뭔가 주인장 하네 미안하지만 사실 이런 비수기에는 가면 안 되는 곳 맞는 거 같다.


게스트하우스 두어 곳을 젊은 친구한테 추천받는다. 한 곳은 검색해보니 영 별로이고, 한 곳은 무조건 2인실로 되어 있는데 저녁마다 바비큐 파티를 해서 아주 유명하다. 예약도 미리 해야 하는데 보니 다음주에는 여유가 좀 있다. 고민이 좀 된다. 여기는 보나 마나 마시자 놀자 분위기일 텐데 너무 시끄러운 건 아닐는지. 봐서 여행 막바지에 함 들러볼까 생각하며 필기해놓는다.

다들 누워서 각자 할 일을 한다. 난 책을 좀 보다가 생각나서 소치 올림픽 중계를 찾는다. 소리가 들려오는걸 들어보니 결국 다 똑같은걸 보고 있다. 쇼트트랙. 아..... 스피드스케이팅. 아.... 아니 진짜 마가 꼈나. 다들 왜 이리 넘어지나. 안타깝다. 4년 죽도록 연습하고 나왔을 텐데. 역시 금메달은 하늘이 점지후 주는 게 맞나 보다.


밖에서 갑자기 좀 싸우는듯한 소리가 들린다. 귀기울여 들어보니 한 여자분이 자기 방에서 와이파이가 안된다고 환불해달라고 난리다. 스탭이 사장님이랑도 통화해서 얘기를 하는데 사장님은 환불이 안된다고 하나보다. 연박 예약을 한듯한데 안타깝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지에서는 좀 너그러웠으면 한다. 어차피 기분 잡쳐봤자 자기만 손해다. 근데 뭐 또 꼭 와이파이가 필요하신 일이 있을 수도... 근데 그럼 카페에 가서 하시면 될 텐데. 여하튼 잘 해결되길 기원해본다.


요즘 꿀재미 컬링을 좀 보다 그래도 내일 일정을 생각해서 불을 끄고 다 잘 준비를 한다. 오늘은 제발 코 고는 룸메가 없기를 기도해본다. 어제 부자는 둘 다 코를 골았다. 아버님... 코 안 고신다더니... 그래도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오늘은 왠지 잘 잘 것 같다.


룸메 둘 다 코를 곤다. 이틀 동안 4명을 만났는데 4명 다 코를 곤다. 현재까지 스코어는 100%다. 우리나라 성인 남성은 다 코를 고는 걸까? 근데 난생 처음 듣는 소리가 들린다. 한 명은 코를 골면서 엇박자로 "프스프스" 같은 소리를 낸다. 이건 무슨 소리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입에서 나는 소리인 듯한데 듣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빵 터진다. 사람들이 안 듣게 혼자 조용히 웃는다. 하긴 뭐 다들 자느라 열심인지라 내가 웃든 말든 관심 없다. 근데 코 고는 것도 저 소리도 숨을 내쉬면서 내는 걸 텐데 어떻게 두 소리를 동시에 내는 건지 좀 궁금하다. 내일 물어볼까? 하긴 자기도 모를 거다.


이거 뭐 잘 수 있는 환경이 아닌지라 다시 컬링을 틀어서 본다. 대박 게임이 계속된다. 잠은 더 안 온다. 7 엔드까지 보고는 이제는 이긴듯 해서 다시 잠을 청해 본다. 이상하게 코 고는 소리가 조금 줄어들었다. 어차피 계속 도미토리에서 자려면 이런 것도 극복해야겠지. 내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 코 고는 사람과 안 고는 사람을 분리해서 받을까라는 헛된 망상을 해본다. 아, 그리고 이 게스트하우스 다른 건 그래도 괜찮은데 이 배게는 좀 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홀로 14일 제주 여행 - Day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