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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잇티레터

[독일편2] 베를린의 도시재생 사업

vol11. 한 발짝 더 가까이

by 향기찾기

베를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그래피티가 아닐까 싶습니다. 도시 전체가 캔버스가 되어 다채롭게 채워져있는 정경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피티는 기존의 그림위에 누군가 자유롭게 덧대고 수정하면서 만들어지기도 하다보니, 작품이 고정적이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해서 쌓이며 변화해간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베를린의 도시재생은 과거의 공간과 건물들을 철거하고 재개발하기보다 오래된 공간을 보존하며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더해간다는 점에서 그래피티와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베를린에는 유독 낡고 오래된 건물이 많아보였는데요. 이는 통일 이후 국가적 차원의 도시계획 전략이었다고 해요. 도시계획자 한스 슈팀만의 “과거의 전통을 살리면서 일관된 건축으로 새로운 수도를 만든다”는 일념하에, 베를린은 22m를 넘기는 빌딩이 없고 옛 건물을 쉽게 허물지 못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 덕에 오래된 건물들은 역사적 의미를 간직하면서 새로운 용도로 바뀌어갔는데요. 빵공장은 전시장으로, 양조장이 공연장 또는 스타트업 네트워킹 공간으로 점점 바뀌어 갔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 베를린에는 1000여개가 넘는 독특한 문화예술 공간이 탄생했다고 해요! 오늘은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언급되는 베를린의 공간 중 저 아기가 방문한 두 곳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마르크트할레 노인 - 대형마켓 사이 전통시장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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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로 ‘마르크트할레 노인’(Markthalle Neun)은 아홉 번째 상설시장이라는 뜻입니다. 19세기 베를린에 만들어진 14개의 재래시장 중 아홉 번 째라는 의미인데요. 이곳은 1891년에 문을 연 뒤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현대식 슈퍼마켓이 등장하고 경쟁력을 잃어 재개발 직전까지 갔었다고 해요. 그러나 지역 주민들과 NGO가 합심해 논의에 논의를 거쳐 전통시장을 지켜냈고, "소비와 유통방식도 모두 바뀐 현대에 거대 슈퍼마켓 사이에서도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재래시장"을 고민하며 리모델링을 진행했습니다. 2011년에 다시 개장한 것이 지금의 형태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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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들어섰을 때 되게 힙한 디자인의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는데, 그만큼 콘텐츠가 가득한 공간이란 게 느껴졌어요. 이 시장은 요일마다 용도가 달라지는데요. 우선,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베를린 근교에서 생산되는 로컬 식재료를 판매합니다. 매달 세 번째 일요일 오전에는 아침식사 메뉴로 가득한 '브렉퍼스트 마켓'이 들어서기도 하고, '나쉬마르크트(Naschmarkt)'나 '치즈 베를린(Cheese Berlin)'과 같은 테마 일요 시장도 정기적으로 열려요. 이런 날에는 워크숍, 세미나, 시식회와 같은 특별한 부대 프로그램도 자주 진행된다고 해요. 그리고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스트릿 푸드 경연대회 'street food thursday'가 특히 아이코닉한데요. 저는 아무날도 아닌 수요일에 방문했지만ㅎㅎ 먹거리와 식재료들이 정말 다양해서 구경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금방 지났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냥 맛있었답니다.:) 이곳에서 먹은 수제햄버거와 소시지가 아직도 생각이 나네요...


다양한 문화와 음식, 독특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만나는 복합공간! 마르크트할레 노인은 이제 단순한 시장이 아닌 도시 재생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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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츠 막트 - 어느 커뮤니티가 꿈꿔온 공간

홀츠 막트(holzmarkt)는 독일어로 ‘목재 시장’을 의미하는데요. 슈프레 강가 근처에 공공지원금 없이 커뮤니티(협동조합) 형태로 조성된 복합 문화예술공간입니다.


원래 클럽이 있던 장소였는데 그 클럽이 음악과 예술을 하는 창작가들의 대안적 공간이자 커뮤니티로 기능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다 클럽 부지가 매각되면서 문을 닫아야 했을 때 7~10명 정도의 핵심 맴버가 모여 공간을 구상했습니다. “이 모든 예술가들이 함께 일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이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공간의 상징인 ‘마을’이라는 개념에 영감을 받아 ‘홀츠 막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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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이 없는 상황에서 상업적 이해관계에서 창작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며 돈을 모으기 위해 이들은 두 개의 협동조합 구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홀츠마크트 25 협동조합(Holzmarkt 25 Cooperative)'으로 건물 배치, 건물 형태, 매장 운영주체 등을 결정하고, 다른 하나는 '도시창조성 협동조합(Cooperative for Urban Creativity)'으로 재정적 모델을 운영/관리하고, 주식을 판매한다고 해요. 이들은 시민 모금과 베를린 내 투자은행의 펀딩(지속가능 개발 분야)으로 개발자금을 충당하여 클럽, 레스토랑, 베이커리, 펍, 호텔, 아이 보육실 등의 공간을 조성했어요.


협동조합은 최대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인플레이션율을 충당하여 지속 가능한 투자 수익을 얻는 것이 목표라고 해요. 잉여수익이 발생하면 예술이나 지속 가능 이벤트 같은 문화적, 사회적 프로젝트에 재투자하고 있습니다.


홀츠 막트는 15개의 회사로 이루어져 운영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건설을 담당하는 회사, 음식과 음료를 담당하는 회사, 미디어 제작과 이벤트 담당 회사 등 이렇게 나뉘어 있는거죠. 여기에 공간을 빌리고자 하는 다른 조직과도 협업을 하는데 협업을 하는 특별한 기준 두 가지가 있다고 해요. 1) 반드시 독창적인 아이디어여야 할 것! 체인점이면 안 되고, 어디서나 볼 수 없는 흥미로운 프로젝트여야 한다네요. 2) 프로젝트나 비즈니스는 반드시 홀츠 막트 커뮤니티에 뭔가를 기여해야 할 것! 예를 들어, 빵집은 레스토랑에 빵을 제공해야 하고, 요가 강사는 어린이들을 위한 수업을 제공하는 등 홀츠 막트 커뮤니티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하는 방침인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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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츠 막트의 대표 안야 필리펑코(Ania Pilipenko)가 창의적인 공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경험하며, 창의성을 발휘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장소,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과 장소 사이의 관계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치고 발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때만 형성될 수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한창 윈터 페스티벌이 진행 중이었는데요! 강가에 목재로 된 건물과 천막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얼기설기 모여 있는 모습, 그리고 그 사이로 전철이 지나가는 정경 등을 보며 이 공간이 도시의 한 구석에 정말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리고 서울에서 이런 핫한(?) 공간은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듯 한데, 홀츠 막트에선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 어르신들도 꽤나 많이 보여 전세대가 함께 공유하고 믹스되는 공간이구나!라는 걸 느끼기도 했어요.


[참고 자료]

(1)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브런치 [오래된 공간에서 혁신을 꿈꾼다]

(2) Resilience - Berlin’s Holzmarkt Shows the Incredible Potential of Urban Villages

(3) 조선비즈, 손관승, 재래시장을 음식문화 중심지로 바꾼 '마르크트할레 노인’


어떠셨어요?

여행을 다니며, 유명한 관광지에 가봤다는 경험에서 그치기보다 그 공간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더 이해하고 있고 싶었어요. 직접 다녀본 공간들이 베를린의 도시재생 측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유우자가 한국의 공공일호(샘터 사옥) 프로젝트를 비슷한 사례로 알려줬는데, 한국과 독일의 이런 지역재생 프로젝트의 주체(거대자본 vs NGO, 커뮤니티)가 다른 것에 이유가 있을지 아니면 다른 사례들이 더 있을지 궁금증을 제시해줘서 재밌었어요. 생각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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