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1.새롭게 마주친 개념! 마이크로크레딧과 DeafSpace
지난주 편측성 난청인의 어려움을 다루며, 난청인을 고려한 포용적 디자인 레퍼런스들이 있을지 궁금증을 남겼었는데요. 청각장애 포용적 디자인 가이드에 관한 여러 기사들을 찾아보며 ‘DeafSpace’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DeafSpace를 살펴보며 농난청인을 고려하는 디자인의 요건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DeafSpace’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공간 설계를 이르는 건축적 개념입니다. 시각과 촉각을 주요 감각의 수단으로 삼으며 강한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 청각 장애인들은 청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는 환경에서 종종 공간적 문제에 직면합니다. 이에 그들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환경을 바꾸며 적응해왔는데요. 예를 들어, 모여서 대화를 나눌 때, 가구를 "대화형 원형 구조(conversation circle)"로 재배치해서 모두가 시야를 확보하고 원활한 시각적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한다던지, 창문의 블라인드를 조정하거나, 조명을 조절하여 눈의 피로를 줄이고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에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주택 벽에 새로운 개구부를 만들어 가족 구성원 간의 시각적 연결을 유지하거나, 공간 인식을 확장할 수 있도록 거울과 조명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등의 행동들이 DeafSpace를 형성한 오랜 문화적 전통이라고 해요. DeafSpace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않았지만, 청각 장애인의 독특한 경험을 반영하는 건축적 표현의 기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합니다.
1. 감각적 범위(Sensory Reach)
공간적 인식과 주변 활동을 감지하는 능력은 청각 장애인의 안전에 필수적입니다. 청각장애인들은 빛과 색, 그림자, 소재의 느낌, 진동 등 ‘시각적 단서’와 ‘촉각적 단서’를 통해 주변환경과 공간을 이해하는데요. 이에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시각과 촉각을 통해 물리적 공간을 360도 인식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청각 장애인의 방향 감각과 공간 인식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수어로 대화하는 청각 장애인은 서로에게 집중하기 때문에, 주변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바닥의 색상과 질감을 다르게 하여 길 찾기를 돕거나 부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또 대비가 큰 안내 표지판을 사용하거나 주변의 식물 배치나 독특한 건물 외관을 활용해서 다가오는 장애물이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요.
2. 공간과 거리(Space and Proximity)
수어로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얼굴 표정과 손의 움직임을 명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음성 대화를 할 때보다 사람들 간의 거리가 더 넓습니다. (이렇게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주변 반경을 ‘수어 공간’이라고 하네요!) 대화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각 사람 간의 거리가 더 넓어져야 하며, 이를 고려한 공간 설계가 필요합니다.
가구 등의 공간 배치 또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청각 장애인은 수화뿐만 아니라 문자 언어, 보조 기기, 또는 경우에 따라 구어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데요. 따라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대화 상대가 서로 편안하게 마주 보면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4명 이상의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는 직선형 배치보다는 원형 또는 넓은 배치를 고려하면 모든 참여자가 서로를 시야에 두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가구의 이동이 용이한 공간을 설계하면 상황에 따라 공간 구성을 조정할 수 있겠죠.
3. 이동과 근접성(Mobility and Proximity)
이동성을 고려할 때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서로를 보면서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동선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각 장애인들이 함께 걷거나 이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려면, 더 넓은 거리의 경로가 필요합니다.(구체적인 수치가 있는지는 더 알아봐야겠어요.) 또한 대화 중에도 주변 환경을 스캔하고, 장애물이나 위험 요소를 감지할 수 있도록 경사로, 자동문, 명확한 안전 표시 및 안내 표지판 등의 요소도 공간 설계에서 중요하죠. 한 사람이 장애물을 감지하면 즉시 동행자에게 신호를 보내 경로를 조정하고, 자연스럽게 이동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시각적 장애물을 없애고 공간 간의 가시성을 높이는 것 또한 사고를 예방하고 청각 장애인들에게 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나 복도의 모퉁이에 거울을 배치하면 주변에 누가 있는지 인기척으로 알기 어려운 사람들도 쉽게 주변 상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야 확보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갑자기 부딪히는 상황을 방지하는 데도 효과적이죠.
코너의 각진 모서리를 둥글게 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 중 하나인데요. 복도를 부드럽게 곡선 형태로 설계하면 시야가 좀 더 확보되고 충돌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고 해요.
공원과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식물을 전략적으로 배치하여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벤치의 뒤쪽과 측면에 식물을 배치하면 다른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을 제한할 수 있고,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이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누군가 접근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안정감을 줍니다.
같은 원리로, 등받이가 높은 벤치 또한 주변 소리를 듣기 어려운 청각 장애인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환경이라고 하네요.
4. 조명과 색상(Light and Color)
농난청인은 수어 혹은 구화 등을 사용하기에 의사소통을 할 때 시각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따라서 눈의 피로를 유발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공간설계 요소 중 하나이죠. 예를 들어, 눈부심, 강한 패턴, 짙은 그림자, 역광 등의 환경에서는 시각적 의사소통이 방해를 받고 눈이 쉽게 피로해져 집중력 저하 혹은 신체적 피로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인공조명 및 자연광을 조절하는 건축 요소를 활용하여, 직사광선 보다는 시각적 피로를 최소화하는 부드럽고 확산된 조명을 설계해야 합니다. 또한 피부색과 대비되는 배경색을 활용하여 수어가 더욱 뚜렷하게 보이도록 색상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5. 음향(Acoustics)
청각 장애인은 다양한 청력 수준을 가지고 있으며, 일부는 보청기나 인공 와우(cochlear implant)와 같은 보조 기기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기들은 반사된 소리를 증폭시키기도 하므로, 청인에게는 작은 소리도 난청인에게는 불쾌한 소음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소음은 청력 손실의 주요 원인일 뿐 아니라, 난청인의 well-being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입니다.
따라서 건축 설계 시, 배경 소음과 반향(소리가 어떤 장애물에 부딪쳐서 반사하여 다시 들리는 현상), 잔향(실내의 발음체에서 내는 소리가 울리다가 그친 후에도 남아서 들리는 소리)을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울리는 소리를 흡수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거나, 층고를 조절해 배경소음과 잔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보편적 접근성(universal accessibility)은 포용적 공간의 필수 개념이죠. 특별한 배려가 아닌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면서도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 서로 다른 제한에는 각기 다른 필요가 존재하는데, 포용성 있는 공간은 신체적 조건과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포용성이란 특정 공간을 따로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환경 자체를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해요.
따라서 DeafSpace는 단순히 "청각 장애인을 위한 공간 설계"를 넘어, 사회적 포용성을 높이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청각 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향상시켜주는 데 기여합니다.
[References]
(1) Michelle Kingsley. 2023.7.21. Universal Design: Designing for the Deaf and Hard of Hearing. 링크드인. https://www.linkedin.com/pulse/universal-design-designing-deaf-hard-hearing-michelle-kingsley/?trackingId=iJXZY2tf5XIXXUY0d8pkSw==
(2) Antonia Piñeiro. 2023.3.14. Architecture for People with Hearing Loss: 6 Design Tips. Arch daily. https://www.archdaily.com/936397/architecture-for-people-with-hearing-loss-6-design-tips
(3) DeafSpace. GALLAUDET UNIVERSITY. https://gallaudet.edu/campus-design-facilities/campus-design-and-planning/deafspace/?utm_medium=website&utm_source=archdaily.com
(4) 강성혜. 2022.9.19. 데프스페이스 DeafSpace : 생동감 넘치는 공간을 위하여. msv. https://msvinsight.com/deaf_space/
이번 학습에서 여러 기사를 읽으면서, '포용적 디자인 문화를 실현하려면, 특정 제품이나 고가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해결책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포용적 디자인의 제품 등이 개발되더라도 가격적 접근성이 높으면 개개인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쉽게 소비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