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 날씨가 제법 더 쌀쌀해졌다.
오후 늦게 나선 산책길에서 한 치수 크게 입은 옷 아랫단으로 바람이 술렁~술렁~ 들어와 한기가 느껴졌다. 가장 사랑하는 계절인 가을이 유독 짧게만 느껴졌던 오늘, 엄마가 짧은 가을을 아쉬워하며 산책하는 이 시간 우리 환이는 학교에 있겠구나. 일부러 방향을 정한 것이 아니었는데...
아빠의 두 손바닥을 나란히 펼친 것보다 더 큰 플라타너스 나뭇잎들이 바닥에 뒹구는 것을 보니 여기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네가 다니는 학교 정문이 보이겠구나.
지금 여기 서 있는 곳에서 절대 보이지 않을 텐데, 엄만 자꾸만 까치발을 하고 턱을 들어 운동장 너머 교실 창문들 쪽에 시선이 꽂힌다.
우연히라도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지는 않을까 텅 빈 운동장을 흘깃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아침마다 나누는 "오늘도 enjoy~" 그 인사말처럼 즐겁게 잘 지내고 있는지... 있겠지... 있을 거야.
오늘도 잘 지냈냐는 물음에 너는 늘 그렇듯 "괜찮아, 잘 지냈어~"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너는 오늘도 내게 '우아한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그날의 기억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
잊히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생애 첫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저마다 처해진 환경과 성향이 따라 어떤 사람에겐 행복한 기억이 또 어떤 사람에겐 엄청난 충격과 공포감이 생애 첫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 환이의 생애 첫 기억은 어디서부터 일까...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러하겠지만, 부디 좋았던, 행복했던 기억이 먼저였으면 좋겠다. 그 기억 한 편에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함께 있는 거라면 더 좋겠다고 바라본다.
엄마의 생애 첫 기억을 물어보면 유치원에 다녔던 기억들이다.
유치원 교실에서 나무 블록으로 놀이하던~ 오이를 뚜걱뚜걱 잘라 악어도 만들었던~ 간식으로 콩이 설기 설기 들어간 백설기를 먹었던~ 동네 뒷 산으로 소풍을 갔던(거기서 철없던 엄만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었지) 기억들이 조각조각 남아 있다. 물론 즐거웠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기억들 중 그날의 그 기억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 엄마의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른(양육자ㆍ보호자)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아이들은 어디서든 약하고 부족한 티가 나게 되어 있다.
약하고 부족한 대상은 누군가에겐 공격으로 누군가에겐 측은지심 보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친구들은 엄마의 머리 한쪽 고무줄을 잡아당겨 머리를 풀어헤쳐놓기 일쑤였다. 블록 놀이를 하면서도 옆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엄마 손에서 장난감 포크며 찻잔을 빼앗아 가기도 했었다. 놀이터에선 차례가 되어 그네를 타려고 하면 그네 끈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기도 했었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 그 친구들이 왜 엄마에게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 수 없다.
친구들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엄마를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머리숱 참 많~다"하시며 풀린 멀 릴 땋아 주셨고, 빼앗긴 장난감을 다시 되찾아 돌려주셨고, 그네 끈을 붙잡은 아이에게 "열 번씩, 순서대로 타기로 했지~"라고 말하며 부드럽게 손을 거둬가 주시곤 하셨다. 친구들이 엄마를 괴롭히고 따돌릴수록 선생님의 손길과 관심은 더해졌다.
아이는 어른의 시선과 관심과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친구들 역시 유치원에서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을 테고, 충족되지 않은 욕구는 엉뚱하게 표현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블록 놀이를 하던 두 친구는 놀이를 하고 있던 엄마에게 다가와 지금 보물 찾기를 하는 중인데, 블록을 엄마 가방에 잠시만 숨겨놔도 되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러라 했고, 두 친구는 블록을 넣은 가방을 그대로 선생님에게로 가져갔다.
"선생님, 00 이가 장난감 훔쳤어요~"
"너희 둘, 00 이가 가방에 장난감을 넣는 걸 보았니?"
"......"
"00아, 네가 네 가방에 장난감을 넣었니?"
"아뇨, 친구들이 보물찾기 한다고 제 가방에 장난감 잠깐 넣는다 했어요"
"친구들이 가방에 장난감을 넣는 걸 왜 허락한 거야?"
"그러면 같이 놀아줄 것 같아서요"
선생님은 처음부터 엄마가 가방에 장난감을 넣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엄마를 모함(?) 한 두 친구들이 어떤 벌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친구들의 괴롭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녔다. 오히려 선생님에게 알려져 친구들이 혼나면 친구들이 엄마를 더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소소한(?) 장난이나 괴롭힘은 혼자 감당하곤 했었다. 교사 한 명이 돌봐야 할 원아가 45명이니 드러나지 않고 닿지 않는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에는 남았는지 가끔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단다. 특히 엄마가 되고 보니 더 그렇다. 내 아이만큼은 엄마와 같은 상처를 갖지 않고 태명처럼 땡글~땡글~ 성격 좋고 사회성도 좋고 더불어 용기까지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기도했다.
엄마, 나 그냥 학교 자퇴하고 검정고시 보면 안 돼요?
학교가... 너무 답답해요. 미안해요 엄마.
유난히 지쳐 보이던 그날 저녁, 공부하는 게 많이 힘드냐는 엄마의 물음에 예상하지 못했던 너의 말에 마음이 쿵 내려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