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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는 작았지만, 마음은 충분했기에

by 루키트

약 4년 전쯤, 바디프로필 촬영을 마친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참아왔던 단맛과 칼로리를 보충하고 싶은 마음에, 촬영이 끝나자마자 반사적으로 ☆벅스로 향했습니다. 그날 제가 고른 메뉴는 단맛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자바칩 프라푸치노’. 오랜 참음 끝에 얻은 자유로움이었기에, 가장 큰 벤티 사이즈로 주문했고, 아무 의심 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음료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있던 친구가 잔을 보며 말하더군요. “야, 그거 네가 주문한 사이즈 맞아?” 놀라서 다시 보니, 제가 주문했던 벤티 사이즈가 아니라 가장 작은 ‘톨 사이즈’였습니다. 이미 반 이상 마신 뒤였기에 아쉬움이 몰려왔지만, 환불이나 교환을 요청하기엔 늦은 타이밍이라 생각해 직원분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벤티 사이즈로 주문했는데 톨 사이즈에 담겨 나왔더라고요. 정신없이 마시다가 이제야 알아서 말씀드려요. 다음번엔 큰 사이즈로 부탁드릴게요.”


직원분은 순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셨고, 곧바로 정중하게 사과를 전해주셨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실수했나 봐요. 이건 저희 잘못이니 쿠폰이라도 드릴게요. 다음에 오시면 꼭 큰 사이즈로 챙겨드릴게요.” 그 말씀에 진심이 느껴졌지만, 저는 쿠폰을 받지 않았습니다. 음료보다 더 진하게 느껴졌던 건 그 직원의 ‘진심 어린 사과’였고, 작은 잔이었지만 마음속에는 충분히 큰 온기가 남았기 때문입니다.


일상 속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실수. 그 실수에 담긴 사과가 진심이라면,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불편했던 경험조차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보상이나 무엇인가를 받아야만 상대의 진심이 전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때론 “죄송합니다”라는 그 짧은 말 한마디와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심을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의 실수 앞에서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조금 더 따뜻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 하루들이 쌓여, 세상이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기를.


"진심 어린 사과는 마법과 같다.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다시 연결한다"

- 리처드 폴 에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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