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서는 무엇이 지금 가장 필요한가요?
파견을 오고 정말 신기했던 순간이 있다. 책에서만 보던 “수원총괄기관”사람들과 밥을 먹었던 때인데, 그 전까지 단편적인 출장에서는 만나기가 어려운 현지 파트너이기도 했고 그들이 하는 일이 정확히 그 나라의 주인의식 그 자체이기 때문에 => 그 중요성이 막중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일종의 환상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수원총괄기관이 깐깐하면 깐깐할수록 더 좋게 보였다. 그냥 생각없이 원조를 받는 것이 아니라(그런 국가가 어디 있을까 싶긴 하지만) 어떤 총괄된 정책 하에 방향을 가지고 받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생각에는 변함은 없으나, 현지에서 일을 하며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 역시 “정부”라는 점이다. 즉, 한국의 정부와 마찬가지로 최고 통치권자의 입맛(때로는 영부인실)에 맞는 보고사항들을 가져다 보고해야 조직의 유지와 번영에 도움이 되는 이해관계를 가졌다는 것. 문제는 정말 이 나라에서 필요한 우선순위를 문서화하는 것이 수원총괄기관의 역할인데, 현지에서 직접 살아보니 그들이 말하는 우선순위와 정말 필요한 사업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흑백을 논의할만한 이슈는 아니지만, 정신을 차리고 그들의 말을 여과 있게 들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소장님으로부터 심어진 생각이긴 하지만, 정말 현지에서 필요한 것과 정치적으로 필요한 사업의 “간극”을 인식하고 정치적으로 굴 필요가 있는 것도 같다. 아무리 수원총괄기관이 이런 사업이 필요하다고 해도, 우선순위는 커녕 고소득층을 위한 사업이라는 것이 너무나 명백해 보인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적당한 근거와 사유로 사업을 거절하는 것. 이런 게 초보 파견자의 순진함과 베테랑 소장님 같은 내공있는 사람들의 차이인 건가 싶기도 하다.
여기서 어려워지는 점은, 대체 누구를 통해 현지 수요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인가? 정답이 있다면, 여과를 거치지 않은 랜덤베이스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특히 로컬에 들어가) 아래서부터의 수요를 끌어올리는 것이겠지만, 현실은 그럴 시간과 권한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다. 인도주의적 ODA가 아닌 이상,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야 하는 것도 맞다. 한국이 잘해본 경험도 없는데 이상적으로 보이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업”을 몇 명의 전문가와 기관의 의지로 시행했다가 현지에서 그 실패의 책임을 고스란히 수혜자가 떠안는 경우를 꽤나 봤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일차보건 사업들, 우리 나라처럼 보건소가 아닌 클리닉 베이스로 살아가고 관련 인력들도 대부분 병원인력인, 공공보건이 약하디 약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는 몇몇 교수의 신념 내지 “이론”을 기반으로 사업을 실시하여(결과는? ..), 공공 노인돌봄이 필요하다는 아름다운 “이론”을 근거로 우리나라의 삭막한 요양병원을 무맥락으로 세워버린다던지 하는 사례들. 결국 피해보는 것은 도너 기관도, 한국 사람도 아닌 남겨진 사람들이더라.
결론은 참 어려운 일인데, 다른 도너기관들과 관계를 맺고 그 사람들에게도 지혜를 구해보고, 현지직원들에게도 물어보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건 책상 위에만 앉아있으면 안된다. 결론이 좀 빈약하긴 한데 여러모로 시도를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일에 좀 적응을 한뒤 내년부터는 다른 사람들을 좀 만나러 다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