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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협력 직업인 Oct 28. 2024

10월의 책 : 아픈 몸을 살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와 암이 내 삶에 찾아 온다면, 내 삶은 어떻게 변할지

난 30대고 아직까지 우연히 건강하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오랜 병상 생활을 보며, 건강이 좋지 않은 엄마를 보다보면

나 역시 갑작스럽게 죽거나 큰 병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꽤 자주 한다. 


아픈 몸을 살다는, 내가 큰 병에 걸렸을 때 어느 방향으로든 변할 삶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떨지가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43841802



저자에게 39살에 갑자기 심장마비가 찾아온다. 운 좋게도, 금방 회복하고 기적적으로 몸을 회복한다.

그런데 40살에 암이 찾아오고, 긴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투병생활이라는게 병원 안에서의 삶만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질병 초기에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대부분 직장인이고, 돈을 벌어야하니 회사에도 가야하고 일도 해야한다. 

마찬가지로 기혼자라면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식도 있을 수 있다.

짧은 병가를 받을 수는 있지만 삶은 지속되는 것이고 구체적인 문제는 계속해서 삶에 찾아온다. 


책은 순서대로 아픈 몸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사건들을 기술한다.

문체가 덤덤하기도 하다가, 또 절박하기도 하다가, 분노가 느껴지기도 했다.


1. 투병 사실을 알릴 때 


"내가 느끼는 것과 말해도 괜찮다고 느끼는 것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내 목소리를 삼킨다"


지인들에게 투병 사실을 알리며, 저자는 상처받는다. 과거에 투병을 한 경험이 있는 지인들의 경우 좀 달랐지만, 대부분 갑작스럽게 연락이 끊기게 되거나(상대방은 오히려 배려해서 함부로 연락을 못하게 되었겠지만) 병을 "큰 일"이라고 인식해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하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침묵하게 된다. 


2. 배우자가 돌봄 제공자가 되는 것. 당연히 관계적인 측면에서 득이 없다. 


저자가 어느 날 통증 때문에 잠을 못자던 밤을 묘사한다. 

통증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곤히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우지는 못했다. 

아내라도 잘 자야지 하는 배려의 마음도 있었지만, 이미 보통의 질서를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자신의 삶에서 아내의 잠이 유일한 질서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고 싶은 이기적 마음도 있었다. 


또 하나는 당연히 배우자와의 이혼을 고려해보게 된다. 

돌봄 제공은 정말 지치는 일이고, 돌봄 제공자는 간병, 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의무를 훨씬 더 큰 부담을 가지고 지속해나가야 한다.

저자는 아마도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은데 (혹시나 아내가 떠나가더라도 덜 상처받기 위해), 

사랑이 꼭 옆에 계속해서 있어야 하는게 아니라 

한 사람이 떠나가서 내 삶이 다시 전과 같아질 수 없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이 부부는 이혼하지 않았지만, 

너무나 의지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의지할 수 없었을, 그러나 의지해야만 했던 저자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질환을 한 사람의 정체성과 삶의 나머지 부분에서 떼어낼 수는 없다. 나는 남편이자 아버지고 교수며 또 그 밖의 여러 면을 가진 사람이고, 질환은 바로 이 모든 면으로부터 이루어진 내 삶을 바꿨다. 나는 의존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3. 직장에서 나는 짐이 된다. 


처음에야 저자의 건강에 슬퍼하고, 저자의 업무를 분담해주는 동료들도 있었으나 

2-3년이 흐르고 저자가 계속해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을 때 결국 저자를 욕하던 것은 동료들이었다고 말한다. 


그 동료를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이 점도 정말 질병이 가져오는 하나의 구체적 삶의 문제이긴 하다. 누군가는 더이상 나와 일하고 싶어하지 않아할테고, 나를 짐으로 생각할테니.

그 고립감을 상상해보면 참, 먹먹해진다. 


"오늘날처럼 죽음이 관리의 문제이지 연속하는 경험의 일부로 사고되지 않은 환경 안에서 한 삶이 끝났을 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로 남는 문제들이 있으며, 이 모두를 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팠을 때처럼 방어적이던 때가 없고,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간절히 필요했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다치기 쉽고 가장 취약한 때이다. 


사실 우리는 사회가 원하는 환자의 모습(긍정적으로, 의료 시스템에 순응하며 치료법을 찾는)에 갇히기가 너무 쉽다. 아프지 않은 사람을 거슬리게 하지 않는 "환자의 이미지"가 있다.

그러한 태도는 자칫 매우 수동적으로 내 삶을 나에게서 빼앗아 버릴 수 있다고, 참 위험한 일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의료진이 내 몸을 대상으로 여기며, 나의 존엄을 고려한다기보다 기계적으로 칼을 가져다대고, (환자가 감당해야하는 부작용과 고통을 듣지 않은채) 수술과 투약에 대한 확률적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어떤 태도로, 내가 내 삶을 긍정하고 지속해나갈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고민을 놓치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다 읽고보니, 아플 때의 삶에 대해 좀 구체적인 풍경들이 그려졌다. 

무섭기도 하고 역시 안 아픈게 제일 좋은 거구나 싶었지만, 인간은 원래 다 아프고 병들고 죽는거니까..

미리미리 이런 이야기들을 남편과 엄마, 아빠와도 나눠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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