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펜 선생님

by 김 과장

12월의 이른 아침은 춥고 어두웠다. 5시 반쯤 집 앞에서 출발하는 첫 전철을 타고 나와 6시 30분쯤 사무실에 도착했다.


대변인실에서 스크랩되어 올라온 우리 부 관련 기사들을 훑고, 노란색 형광펜으로 기사의 주요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도록 표시하는 것이 아침 일과의 시작이었다. 여러 자료를 보아야 하는 장관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였다. 기사 검토가 끝나게 되면, 전날 오후부터 밤사이에 실국에서 들어온 보고서들을 확인하는 일이 남는다. 간단한 상황 보고나 회의 결과에서부터 주요 정책과 관련한 쟁점들을 정리하고 방침을 받기위한 보고 사항까지 다양했다.


보고서를 최대한 빠르게 읽고 시급한 방침 등이 필요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로 나눴다. 내용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보고서의 경우는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설명을 들어야 했다. 보고서를 받아 든 장관이 내용 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1차 적으로 비서실에 있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때문에 보고서의 핵심 내용, 관련 배경 등에 대해서는 내가 먼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했다.


보고서가 어렵게 작성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장관에게 올리는 보고서라는 점 때문인지 분량을 최소화해 압축적으로 작성하다 보니 맥락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았다. 해당분야의 전문가들만 사용하는 용어를 부연 없이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 담당자나 해당 부서의 관계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공급자 중심의 보고서들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보고서를 돌려보내서 내용과 쟁점을 이해하기 쉽도록 보완해 달라는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후배들의 걱정스러운 질문을 자주 받는다. 정답은 없겠지만, 비서실에 있는 동안 무수히 많은 보고서를 보며 느낀 것은 ‘무슨 말을 하는지’ 쉽게 이해되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 입장이 명확히 드러나는 보고서가 좋은 보고서라는 것이다. 적어도 수요자 입장에서는 그렇다.


보고서를 통해 상대를 이해시키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내용과 표현이 쉬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가 되는 상황이 무엇이고, 그 상황과 관련하여 이러한 일(조치)을 해왔고, 앞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처리하겠다.라는 흐름에 따라 작성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보고서를 작성한 뒤에는 그 보고서를 말로 설명해보자.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의 흐름이나 내용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에 따른 설명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중언부언하고 있다면 그 보고서는 다시 쓰는 것이 맞다.


어찌 되었건, 짧은 시간 나의 손을 거쳐 매일 아침 20개 정도의 보고서가 장관의 책상에 올려졌다. 재난, 지방자치, 정부혁신, 조직, 지방재정, 디지털 정부 등 분야도 다양했다. 그는 단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 열정과 책임감이 대단했다.


사무실에서 다 소화되지 않는 보고서들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까지 읽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직접 전화를 걸어 설명을 들을 정도였다. 이렇게 자기 손이 거쳐 간 보고서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파란색 플러스펜으로 코멘트를 달아 돌려주었다. 장관이 일을 꼼꼼하게 챙기다 보니, 일선 부서에서는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파란 펜은 메시지 작성 과정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언론 인터뷰 자료, 각종 연설문, 외부 토론회에 보내는 서면 축사에 이르기까지 장관의 이름으로 나가는 글은 자기 생각이 분명하게 담긴 살아있는 글이 되기를 원했다.



도대체, 살아 있는 글이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