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본?
메시지 업무를 맡아 일하는 동안 가장 부담스러웠던 일중 하나는 '중대본회의' 말씀자료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중대본회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의 줄임말로 코로나 상황관리와 대책을 총괄하는 범 부처 회의체에 해당한다. 회의에는 관계부처 장관과 17개 시도, 그리고 243개 기초자치단체가 화상으로 연결되어 전날까지의 코로나 상황을 공유하고, 현장의 애로사항과 건의사항도 함께 논의하는 자리로 활용됐다.
모든 지자체가 회의에 참여하면서 전국단위 확산이 필요한 코로나 대책이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고, 책임 있는 부처 장관을 중신으로 현장에서 필요한 정책결정도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TV는 부담을 싣고
중대본 회의는 총리를 본부장으로 복지부 장관이 1 차장을 행안부 장관이 2 차장을 맡아 번갈아 가며 회의를 주재했다. 이 회의 준비가 어째서 부담스러운 일일까 싶을 수 있지만, 문제는 5분가량의 모두발언이 TV 뉴스에 생중계된다는 점이었다. 회의 시작과 함께 장관의 모두발언이 카메라 앞에서 진행된다. 모두 발언 이후에는 비공개 형태로 그날그날의 안건이 논의된다.
모두발언이 끝나자마자 주요 내용이 언론사별 인터넷판 기사에 '속보'형태로 보도되기 시작한다. 뉴스 채널과 공중파 방송에서도 발언 장면을 뉴스 보도에 인용한다. 보도가 많이 되든 그렇지 않든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평일 중대본 회의는 보통 아침 8시 반에 열렸다. 모두말씀자료는 전날 오후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그 시작은 코로나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늦은 오후 무렵 초안을 보내올 때부터 였다. 모두발언에 들어갈 코로나 확진자수를 비롯한 주요 통계가 중대본 회의 하루 전날 오후부터 당일 새벽 사이에 취합됐다. 모두 말씀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회의 준비를 마음처럼 서두를 수는 없었다.
부서에서 작성한 초안을 앞에 두고 장관, 그리고 안전담당 비서관과 내가 모여 메시지의 방향과 주요 내용들을 1차로 논의했다. 회의가 거의 매일 열리는 만큼 전날 공개되지 않았던 의미 있는 새로운 메시지를 찾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1차 논의를 통해 말씀의 방향을 종합, 정리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내용을 어느 정도 정리한 모두말씀 버전이 밤 10시에서 11시경에 나왔다. 퇴근해 있는 장관께 초안을 보내고 통화를 통해 다시 피드백을 받으면 배틀 1라운드가 마무리됐다.
문제는 9시 뉴스
다음날 회의에서 발표할 내용을 열심히 준비했지만, 전날 9시 뉴스에 먼저 보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맥 빠지는 일이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을 똑같이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부랴부랴 자료를 조사하고 관계부처 협조를 받아서 새로운 메시지를 찾아 모두발언 자료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 떨리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뉴스보도는 목표이기도 했지만 말씀자료의 경쟁자이기도 했다. ©KBS말씀자료에 들어갈 메시지의 내용(속어로 야마)이 어느 정도 정리된 다음부터는 거친 상태의 구성과 표현을 부드럽게 다듬는 일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가장 신경을 써야 했던 부분은 '과연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가?'였다.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내용이든 용어든 거부감이 크지 않을 테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가능성이 컸다.
국민들은 이해가 될까?
말씀자료가 어느 정도 다듬어지고 나면 또 다른 코스를 거쳤다. 코로나 업무를 담당하지 않는 부서의 직원들과 민간에 있는 지인들에게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없는지, 문장이나 표현에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를 꼭 확인했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찾고 고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말씀자료를 소리 내서 읽는 과정도 빼놓지 않았다. 눈으로 글을 보는 것과 직접 읽어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 눈으로 보는데 그치지 않고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발음이 어렵거나, 호흡이 너무 긴 경우 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단어의 배치를 바꾸어서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하고, 내용이 집중되도록 각종 대책들은 큰 틀의 주제별로 다시 배치했다.
그렇게 밤사이 다듬고 고쳐진 버전의 말씀 자료는 새벽 5시 무렵 수행비서관에게 보내졌다. 수행비서관의 손을 거쳐 자료는 다시 장관의 손에 들려졌다. 긴장감으로 피곤함을 느낄 수 없었다. 6시 무렵 전화벨이 올리고 호흡을 가다듬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말씀자료 배틀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말씀자료의 내용이 펙트가 확인된 사항인지, 왜 그 표현을 썼는지를 세밀하게 체크하고 보완되어야 할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받았다. 압박 면접이었다. 쉬운 날이 없었다.
마지막 라운드, 그 경계 위에서
그렇게 통화가 끝나고 나면, 장관께서 사무실에 도착하는 7시 반무렵까지 말씀자료 수정이 계속 이어졌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도착을 알리는 전화일까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초치기였다. 숨 가쁘게 수정된 최신 버전을 출력하고 그의 책상 위에 올렸다. 3라운드의 시작이었다.
7시 40분부터는 말씀자료 독회가 이루어졌다. 장관과 부내에서 코로나 업무를 담당하는 1급 실장 그리고 내가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이미 장관께서는 파란색 플러스펜으로 말씀자료에 밑줄을 긋고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표시해 둔 상태였다. 표현이 어색한 부분은 독회과정에서 최종 수정되었다. 부처 간 협의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했다. 독회과정을 무사히 넘어서게 되면 8시 무렵, 말씀자료가 대변인실을 거쳐 언론에 배포되었다.
중대본 30분 전 걸려온 전화 한 통
한 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다. 중대본 말씀자료를 언론에 배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무 담당자로부터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말씀자료에 들어있는 통계수치가 잘못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대변인실에 연락해서 자료 배포를 일단 중단시켰다. 수치를 고치고 다른 부분은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를 다시 확인한 뒤에야 수정된 버전을 다시 배포했다. 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장관께서는 보통 회의 시작 5분 전에 집무실에서 회의장으로 출발했다. 8시 반이 넘어 회의장에 함께 들어간 안전 비서관으로부터 모두발언이 잘 끝났다는 문자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긴장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중대본 회의가 끝날때까지 긴장을 내려둘 수 없었다. ©뉴시스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중대본 모두발언과 관련한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중계되는 TV 모니터 앞을 지켰다. 간혹, 발음이 꼬이는 부분을 직접 보게 되면 안타까운 한숨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다 내 탓만 같았다.
어쨋거나 중대본 회의를 마치고 집무실로 들어가기전, 장관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늘 물었다.
괜찮았어?
말씀자료에 언급되는 사람의 이름, 주요 정책의 명칭, 통계수치 등은 반드시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합니다. 기관장 이름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직자가 맞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기관장이 교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경우, 인터넷 포털에서 전직 기관장의 이름을 현직자 이름으로 오인하여 반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통계수치의 경우 말씀자료가 사용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최신 데이터를 반영하는 것이 좋습니다. 2~3년 지난 데이터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은 말씀자료 자체도 올드하게 만듭니다. 또한 최신 데이터라고 해도, 데이터를 산정하는 기준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소관부서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데이터 기준을 확인하고 그 수치를 반영해야 합니다.
책임 있는 사람의 메시지는 그만큼 파급력이 크고 어딘가에는 꼭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