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중대본의 추억

by 김 과장


중대본?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TV에 꽤 자주 노출되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노란색 민방위 복을 입은 국무총리, 복지부․행안부 장관이 당일의 코로나 상황을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협조를 당부하는 모습입니다.

(c) newsis


코로나 상황이 심각했던 당시에는 3명이 돌아가면서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언론에 공개되는 약 5분 정도의 총리나 장관의 모두 발언은 회의와 함께 시작이었습니다.


메시지 업무를 맡아 일하는 동안 가장 부담스러웠던 일중 하나는 바로 그 '중대본회의' 모두 발언 자료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관련 중앙부처와 17개시도, 234개 기초자치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대규모 회의인 것도 부담이지만 그보다 더 큰 부담은 앞서 말한 것처럼 언론에 발언내용이 공개된다는 점이었습니다.


회의 시작과 함께 각종 인터넷 뉴스에는 사전에 배포된 중대본 회의 말씀자료를 토대로 ‘속보’ 형태의 보도가 시작됩니다. 모두발언은 뉴스채널을 통해 생중계 되고 공중파 방송에서는 발언 장면을 인용하여 뉴스 보도를 하게 됩니다. 보도가 많이 되면 많이 되는대로, 적게 되면 적게 되는 대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 발언은 대개 전날까지의 코로나 확진자 추이, 정부의 코로나 대응상황과 대책, 국민들의 협조 당부를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평일에 열리는 중대본 회의는 보통 아침 8시 반에 열렸는데, 그 경우 모두 발언 준비는 전날 오후부터 이루어 졌습니다.


오후 5시 정도에 코로나 대응을 총괄하는 부서에서 초안을 보내오면 자료를 토대로 장관, 안전담당 비서관과 함께 모두발언의 방향과 핵심내용을 논의하게 됩니다. 회의가 매우 자주 열리고, 중대본 차원에서 매일 언론대상 별도 브리핑을 하던 상황에서 이미 발표된 내용과 다른 내용을 찾아 담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세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대략적인 모두 발언의 방향이 정해지게 되면 그를 바탕으로 세부 내용을 작성하는 것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통상 밤 10시에서 11시경에 어느 정도 정리된 초안이 나왔고 해당버전을 장관께 보내드린 뒤 다시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 이루어 졌습니다.


문제는 9시 뉴스


논의를 거쳐 다음날 아침 중대본 회의에서 발언할 내용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지만 밤 9시 뉴스에 먼저 보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맥 빠지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을 똑같이 반복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부랴부랴 다시 자료를 조사하고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내용으로 모두발언 자료를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떨리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장관의 피드백을 거쳐 말씀자료에 들어갈 메시지의 내용이 어느 정도 정해진 다음부터는 구성과 표현을 부드럽게 다듬는 일이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A4 3장 분량의 말씀자료에는 각 문단마다 하나의 메시지(전달하려는 핵심내용정도로 표현하겠습니다.)를 담았습니다. 10개의 문단이라면 10개의 핵심내용이 글 안에 담겨 있으므로, 문단의 배치를 바꾸어 보면서 흐름이 가장 자연스러운 구성 상태를 찾았습니다.



국민들은 이해가 될까?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중 하나는 '과연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정책을 직접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용이나 표현에 이물감이 들지 않을 수 있지만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것은 충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정제된 표현이지만 대중적인 단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의 뜻과 뉘앙스가 정말로 맞는 것인지 사전을 찾아보면서 다듬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말씀자료가 어느 정도 다듬어지고 나면 부처내에서 코로나 업무를 담당하지 않는 부서의 직원들과 지인들에게 확인받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없는지, 문장이나 표현에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를 피드백 받았는데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찾고 고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말씀자료를 소리 내서 읽는 과정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눈으로만 글을 보는 것과 직접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은 차이가 매우 큽니다. 소리 내어 읽다보면 문장이 너무 길어서 호흡이 쉽지 않은 경우, 단어의 발음이 어려운 경우, 앞 문단과 중복되는 표현 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소리내어 읽는 과정을 거쳐 문장을 간결하게 다듬고 단어의 배치도 바꾸어 보면서 더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밤사이 다듬고 고쳐진 버전의 말씀 자료는 새벽 5시 무렵 장관님을 자택에서부터 수행하는 비서관에게 보내졌습니다. 날을 샌 상태였지만 긴장감으로 피곤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아침 6시 무렵 휴대전화 전화가 울립니다. 장관님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통화버튼을 누릅니다. 말씀자료 2라운드가 그렇게 시작됩니다. 내용의 사실관계는 확실한지, 부처간 이견은 없는내용인지, 왜 그 표현을 사용했는지, 단어의 뉘앙스가 부정적인 것은 아닌지, 추가되어야할 다른 메시지 등은 없는지 등을 세밀하게 묻고 답했습니다. 압박 면접이었습니다.


마지막 라운드, 그 경계 위에서


그렇게 통화가 끝나고 나면, 보완해야할 사항들에 대해 장관께서 사무실에 도착하는 7시 반 무렵까지 약 한 시간 남짓 수정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도착을 알리는 전화일까 싶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숨 가쁘게 수정된 최신 버전을 출력하고 정신없이 그분의 책상 위에 올리고 나면 마지막 3라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장관님과 코로나 업무를 총괄하는 실장 그리고 제가 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독회가 시작됩니다. 이미 장관께서는 파란색 플러스펜으로 말씀자료에 밑줄을 긋고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표시해 둔 상태였습니다. 표현이 어색한 부분은 독회과정에서 최종 수정됩니다. 부처 간 협의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정부 대책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됩니다. 그렇게 독회과정을 무사히 넘어서게 되면 말씀자료가 대변인실을 거쳐 언론에 배포되었습니다.


중대본 30분 전 걸려온 전화 한 통


한 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중대본 말씀자료를 언론에 배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무 담당자로부터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말씀자료에 들어있는 통계수치가 잘못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입안이 바짝 타들어 갔습니다. 가장먼저 대변인실에 연락해서 자료 배포를 중단 시킨 뒤 수치를 고치고 다른 부분까지 최종 확인한 뒤어야 수정된 버전을 다시 배포했습니다. 중대본 회의 10분 전이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장관께서는 보통 회의 시작 5분 전에 집무실에서 회의장으로 출발했습니다. 8시 반이 넘어 회의장에 함께 들어간 안전 비서관으로부터 모두발언이 잘 끝났다는 문자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긴장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중대본 모두발언과 관련한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중계되는 TV 모니터 앞을 지키다보면 발언도중 발음이 살짝 꼬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 탓만 같았습니다.


한시간 반 가량 이어진 중대본 회의를 마치고 올라온 장관께서 집무실로 들어가기 전, 걸음을 잠시 멈추고 늘 제게 물었습니다.


괜찮았어?


말씀자료에 언급되는 사람의 이름, 주요 정책의 명칭, 통계수치 등은 반드시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합니다. 기관장 이름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직자가 맞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기관장이 교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경우, 인터넷 포털에서 전직 기관장의 이름을 현직자 이름으로 오인하여 반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통계수치의 경우 말씀자료가 사용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최신 데이터를 반영하는 것이 좋습니다. 2~3년 지난 데이터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은 말씀자료 자체도 올드하게 만듭니다. 또한, 최신 데이터라고 해도, 데이터를 산정하는 기준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소관부서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데이터 기준을 확인하고 그 수치를 반영해야 합니다.


책임 있는 사람의 메시지는 그만큼 파급력이 크고 어딘가에는 꼭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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