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 년 살기를 떠나면서 당연히 일 년이나 되는 일정을 전부 예약하고 출발하지는 못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때그때 뜨는 할인항공권으로 여러 지역을 가볼 생각이었다. 그렇게하면 항공권 비용을 현저하게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은 우선 몇 개월치는 예약을 해놓고 움직이는 쪽을 택했다.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집이다.
일 년을 구하는 집은 시세가 있지만, 한 달을 사는 집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단기간의 집이라 일 년을 렌트했을 때에 비하여 세네 배까지 받기도 하고, 성수기 가격을 적용하여 호텔 숙박비에 버금가는 비용으로 집을 빌려야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가 하면 예약 사이에 비어있는 한두 달 빈방을 처리하기 위하여 유동적으로 아주 저렴한 값에 빌릴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조기예약으로 할인을 해주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할인을 해주는 집들은 일반적으로 선호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한 달 살기에서 좋은 집을 저렴한 가격에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그래서 나는 한 달을 머물기 위해서 보름이 넘는 기간 동안 짬이 날 때마다 방을 검색하면서
거의 100개에 가까운 방을 온라인으로 확인했다.
조건은 간단했지만, 그 간단한 조건을 필터로 설정하면 집이 십 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독채나 개인방은 상관이 없었지만 침대 2개, 화장실은 단독 사용, 주방과 냉장고 그리고 세탁기가 사용 가능하고 마지막으로 무선인터넷이 되는 조건이었다.
사실 조금 더 보태자면, 우리는 아이가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까다로웠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이와 함께 걸어서 갈 수 있으려면 최소한 10분 안에 모든 것들, 예를 들면 역, 버스정류장, 굶을 순 없으니 슈퍼마켓, 가끔 비싸지 않게 외식할 수 있는 식당, 우리 부부의 삶의 질을 향상해줄 산책이 가능한 공원과 그 공원 안에는 아이의 삶의 질을 향상해줄 놀이터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이렇게 간단한 것 같지만 간단하지 않은 조건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집을 찾기가 너무 힘들어, 조건을 하나씩 빼가면서 검색하느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한 달 동안 살 집의 컨디션과 위치는, 어떤 나라 어떤 도시를 어떤 계절에 가느냐보다 더 중요한 요소였다. 아무리 아름다운 도시에 간들 오래 걸어 힘들어 짜증 내며 우는 딸을 데리고 일인당 몇십 유로나 하는 니 맛인지 내 맛인지도 모를 외식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다 보면 힐링은 커녕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마다 집을 찾으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비행기표는 늦게 사면 가격만 차이가 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은 놓치면 여행기간을 바꾸지 않는 이상 아예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집들의 예약 달력을 확인해보면 여지없이 내가 머무는 시간 동안은 반드시 중간에 1,2박 혹은 몇 박이 이미 예약되어 있어서 한 달을 통째로 빌릴 수가 없게 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사실 그렇게 힘들게 찾은 마음에 드는 집이 우리가 머무는 달의 중간에 예약이 있을 때는, 집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네가 가진 예약 1박을 취소하면 우리가 한 달을 머물 것이라고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면 집주인도 중간중간 예약이 차지 않아 빈방으로 두는 것보다 수익이 더 좋을 테니 우리를 받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러나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이미 예약을 한 그 사람도 나처럼 수도 없는 집들을 검색해보고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았기 때문에 몇 개월이나 남은 여행을 예약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한 달이 통째로 비어있는 때에 우리가 허용 가능한 예산에서 괜찮은 집을 예약하려니 최소한 6개월 전에는 예약해야 안전하게 집을 고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나는 요즘 6개월 이후에 머물게 될 집까지 찾느라 아주 바쁘다. 아주 성실하게 검색을 하고 있다.
속도가 더디지만 조호바루에서 세 달 살기를 끝냈을 쯤이면, 아마 가을까지 예약을 마무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불확실에 도전하는 것은 아이가 없을 때 충분히 했으니, 지금 아이와 함께 한 달 살기를 떠난다면 적어도 몇 개월 전 미리 예약할 것을 권장하고 싶다.
조호바루 추천 숙소
ECONEST : 이스칸다르 누사자야 지역
지금 지내고 있는 조호바루 숙소는 아주 마음에 든다. 깨끗한 신축콘도에 거실이 넓은 투룸이고,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는 한국으로 치면 괜찮은 브랜드 아파트와 비슷한 느낌이다. 도보권에 영어유치원이 5개나 있고, 비싸지 않은 로컬 식당들을 걸어서 다닐 수 있다. 아이가 출근도장을 찍는 레고랜드도 그랩으로 7-8분 남짓 거리다. 마트는 없지만 부킷인다 에이온몰로 무료셔틀을 제공한다.
처음 보는 아이와도 금방 친해지는 활달한 성격의 일곱 살 아이, 로숲이는 세계 일년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스케줄 매니저로, 아빠는 짐꾼과 보디가드로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