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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세아 Jan 08. 2020

엄마의 방황

왜 이런 글을 씁니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꾹꾹 참아왔던 속을
이렇게 생각 밖으로 꺼내 펼쳐놓고
몇 년 동안 베스트 프랜드였던 죄책감과 함께
가만히 들여다본다.



숨죽이고 살았다. 아이를 낳고선 내 인생에 주인공은 아이였다.

10년 전, 2년 동안 세계일주를 하던 스물한 살의 소녀는

아이를 가진 그 순간 홀연히 사라졌다.


벌써 아이가 걷네. 말을 하네. 내가 지금 한 명의 사람을 만들고 있는 거야.

항생제가 왜 위험한 거지? 면역력을 위해선 유산균을 알아봐야 해.

지속성 우울장애 기질이 있으면 어떡하지? 자존감을 높이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줘야겠다.

아무거나 먹고, 아무거나 하면서 살아온 내가 왜 이렇게 까지 하고 있는 거지?


벌써 유치원이라니 아이를 2년마다 이사하고 전학하게 만들 수 없지. 집을 사야 해.

녹초가 되어가며 한 푼 두 푼 저축한 돈을 날리면 피눈물이 나니까 최소한 집값이 내려서는 안 되겠지.

그러려면 부동산 정책과 경제 시장분석을 알아야 해. 이제 재미없는 정치에 관심도 가지고 정권도 살펴봐야겠다. 재테크가 뭐야? 주식을 해볼까. 작은 손해에 태연하지 못하면 회사를 다니면서 주식을 하지 말아야겠어.

아이를 위해 고정적인 돈을 벌려면 리스크 있는 창업은 선택해서는 안돼. 부업으로 가게를 내기엔 지금도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해. 일하는 엄마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지?



그렇게 나는 젊고 자유롭던 시절엔 죽었다 깨어나도 꿈꾸지 못할 나의 모습이 되어 살게 됐다.  

그건 힘들었다는 말로도, 안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래서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생활을 10년이나 성실하게 참았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아야 했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분노조절장애 DNA를 극복했다.  

나를 위한 소비는 없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행복도 포기해야 했다.



나는 29년 동안 돌처럼 굳어진 나의 영혼을
끌과 망치로 쳐내며
'엄마'라는 존재를 조각했다.



그리고는 한없이 눈치를 보게 됐다. 아이의 엄마로서의 내 행동이 곧 아이에 대한 시선으로 다가올 거란 생각이 들자, 말조심, 행동도 조심하게 됐다. 나는 점점 입을 막고 내 안의 목소리를 좀처럼 내지 않는 무음의 인간으로 살게 됐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 생활 반경에는 마주치지 않는  

아직도 무한히 자유로운 자기 인생의 창작자들을

브라우저 구석 활자 어딘가에서 마주쳐 버리게 되면

가슴속에 쌓인 모래알들이 나도 어찌할 바 없이 흩어져 내리는 기분이 든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엄마인가? 그게 나의 정체성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꾹꾹 참아왔던 마음을

이렇게 생각 밖으로 꺼내 펼쳐놓고

몇 년 동안 베스트 프랜드였던 죄책감과 함께 가만히 들여다본다.


육아 공부를 고시공부처럼 했던 나의 시절들을

연민 없이 칭찬해주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열심히 엄마로 살아온 나를

위로하는 법까지 하나 더 배워야겠다.


어느 날 이렇게, 희생이 당연하고 어떤 욕망도 꿈꿔선 안 되는 '엄마'의 작은 방황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아이를 책임지는 인생을 살아감과 동시에, 때때로 나의 마음을 기처럼 조용히 브런치에 남겨보기로 했다.   


초라한 자조는 너무도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가 아닌 '사람'으로서 남기게  발자취의 첫걸음이다.

타인을 위해 사는 무음인간이  재미없는 소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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