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선물에는 이유가 따른다

Light & Shade

by 최승우

누구를 가르쳐본 적이 있나요?

실용음악 보컬레슨을 했었어요. 돈 욕심에(웃음) 한 번에 60명씩 할 때도 있었어요. 돈을 무지하게 벌었죠. 그 나이에 말도 안 될 만큼 벌었는데… 갑자기 그때가 그립네요.(좌중 폭소) 그때 느낀 점이 있어요. 음악을 꿈꾸면서 오는 아이들이잖아요. 무대 위의 자신을 꿈꾸며 오는 무구한 열정들인데, 저는 이미 그걸 상상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었어요. 딜레마인 거죠. 그런 아이들을 매일 만나니까. 지금은 그런 느낌이 사라졌지만요.


그런데 그런 학생 중에 규선 씨처럼 자의식 강한 친구는 드물지 않아요?

대부분 없죠. 고등학생 아이들을 주로 가르쳤는데, shade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어요. 모를 수밖에 없죠. 곤궁함에 처할 수도, 라면을 먹을 수도 있다는 개념이 전혀 없고, 무조건 무대 위의 화려한 조명, 유명세, 치장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만 꿈을 꿔요. 너희가 하고 싶은 걸 하나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걸 백 가지씩 해야 될 수도 있다고, 아무리 말해봤자 경험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래서 각자 특화된 부분을 끌어올려주려고 노력을 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면 전부 다 저를 따라해 버리기 때문에. 저의 인조인간이 되어버려요. 그럴 때마다 너 왜 나 따라하니, 너는 이게 좋으니까 이렇게 해, 라고 말하죠.


누군가의 재능 앞에서 좌절하거나, 아니면 질투해본 적이 있어요?

질투…보다는 동경하죠. 저는 제 안에서 질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저를 사로잡지 못하게 하려고 굉장히 애를 써요. 어릴 때 <힐링 소사이어티>라는 책에서 읽은 글귀가 있어요. ‘너의 감정은 네가 아니라 너의 것이다.’ 내가 감정의 주체가 아니고, 감정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감정이라는 게 우리에게 너무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서 동경이 될 수도 있고, 추악한 질투가 될 수도 있는데, 솔직히 좌절한 적은 없어요.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에.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근데 막상 본인이 그런 상황에서 살게 되면 그렇게 돼요.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아니면 제가 축복을 받은 건지도 몰라요. 질투라는 감정은 아닌데, 힘들다고 느꼈던 적이 딱 한 번 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원에 3학년 언니가 있었어요. 저와 함께 은사님의 손꼽히는 제자 중 한 명이었는데, 저와 너무나 달랐어요. 제가 엄청 잘하는 걸 언니는 못하고, 제가 안 되는 부분을 너무 잘해요. 은사님이 항상 둘을 세워놓고 너희 둘을 섞었으면 좋겠다고, <드래곤볼>에 나오는 것처럼 퓨전하면 완전체가 나오겠다고 하실 정도로. 그 언니가 연습실에서 노래할 때, 연습실 벽에 귀를 대고 숨도 안 쉬고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의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거였어요. 한없이 한없이, 깊은 심연으로, 끝없는 바닥으로, 아주 천천히 떨어지는 듯한 느낌. 나는 태생 자체로는 저 언니를 따라잡을 수 없구나. 근데 너무 놀랍게도 그 언니도 저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대요.


두 사람이 서로의 light와 shade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수준은 동등한데, 제가 칼이라면 언니는 방패였던 거예요. 저는 아직까지도 그 사람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좋은 학교 갔고, 유명한 교수님한테 사랑받으면서 배웠고, 문학적 소양도 풍부했는데, 지금 음악을 안 해요. 너무나 충격적이죠. 서울 와서 언니를 만난 적이 있어요. 뭐하나 했더니 그냥 직장 다니더라구요. 진짜 화가 났죠. 그렇게 태생 자체로 예술의 기운이 흘러넘치는 존재 하나가, 그걸 안 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저를 너무 쇼킹하게 만들더라구요. 저는 지금도 제가 나태해진다 싶으면 그 언니를 생각해요. 그 사람이 음악을 하든 안 하든, 그날의 기억은 계속 남아 있어요. 또 제가 이걸 안 하면 뭘 하겠어요.


운명론을 믿어요?

반은 믿고 반은 안 믿습니다. 운명이라는 말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있잖아요. 거스를 수 없다, 너의 운명을 따라라, 하는 건 부정적인 면. 희곡에도 많이 나오잖아요. 운명에 맞서는 건 긍정적인 면. 저는 그 두 가지를 다 믿어요. 살면서 그런 운명을 느낀 순간이 굉장히 많았고, 앞으로도 많기를 바라구요. 우연이 없다고 믿어요. <느와르>라는 곡의 가사에도 ‘이 세상에 우연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들어가 있어요. 우연이 없다면 운명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앞날에 대한 두려움은 좀 덜한가요?

미래에 대한 걱정,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은 안 해요. 이게 ‘근자감’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또 걱정 안 해도 되도록 할 거니까요. 제가 갑자기 비명횡사하지 않는 이상(웃음) 앨범을 낼 것이고, 음악을 할 것이니까. 앞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제가 스스로 내린 결론이 있어요. 재능이 주어진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건 스스로의 재능에 확신이 있다는 뜻인가요?

네, 저는 제가 노력해서 하는 건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노력이 재능을 이기는 경우는 굉장히 많이 봤는데, 저는, 특히 작곡이나 노래를 엄청난 연습과 공부를 거쳐서 하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다 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경험마저도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죠. 선물을 뜻하는 gift라는 단어가 재능이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잖아요. 제가 날이 잘 서 있는 칼을 선물 받았는데, 그냥 들고 있다가 끝나라고 주어진 건 아닐 거 같아요. 저도 제가 가진 재능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쓰는 편이에요. 반대로 말하면 재능을 써서 낭비해야 하는 거라는 생각도 하구요.



* 월간 PAPER 2014년 7월호, 루시아(심규선)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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