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연진 (뮤지션, 라이너스의 담요)
인터뷰를 하다보면 얼마나 재미있었는가, 혹은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가 하는 것과는 또 별개로, ‘이 사람은 이번 한 번으로 끝이겠군’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 반면 두 번, 혹은 몇 번이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굳이 말하자면 그 사람의 미래가 궁금해질 때, 그리고 변화의 여지를 캐치하게 될 때다. 그리고 연진은 확실하게 후자 쪽이었다.
연진을 처음 만난 건 2011년이었다. 그날 그녀는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빨리 남들처럼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평범한 삶’에 대한 갈망과, 그게 좀체 마음대로 되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네 시간 반 동안 ‘독하게’ 인터뷰를 하고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나는 거의 실신할 지경이 되었다. 원래 인터뷰라는 게 하는 사람도(어쩌면 하는 사람이 더) 진이 빠지는 일이긴 하지만, 그때는 진짜로 몸이 아플 정도로 정신적인 소모가 컸다. 그녀가 내 또래인데다 나와 비슷한 면이 유독 많았다는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같은 해 월간 <PAPER> 10월호에 실린 그 인터뷰를 읽은 어느 독자는 그녀가 ‘Linus without blanket’ 같았다고 표현했다.
오랜만에 만난 연진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단순하고 가벼워졌으며, 그늘이 없었고, 많이 웃었다. 여전히 생각은 많고 앞날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건 그녀의 말대로 ‘생산적인 고민’이었다.
나는 외대 앞에 살고 연진은 구리시민이라서 인터뷰 장소는 양쪽의 접점인 회기가 되었다. 마침 회기동은 연진이 어렸을 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살았던 곳이기도 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사는 동네와 독립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됐다. 자기 공간에 대한 욕심은 없냐고 물으니, 안 그래도 2017년에는 확실히 독립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가진 돈을 다 투자해야 되는 상황이라 겁이 좀 나긴 한다고.
“당연히 홍대 근처로 가겠지 했었는데, 일단 비싸고 제가 원하는 조용한 분위기가 아니라서 서울 근교도 찾아보고 있어요. 근데 요즘은 홍대 갈 일이 별로 없긴 해요. 예전엔 합주를 그쪽에서 많이 했는데 지금은 같이 하는 뮤지션들이 많이 바뀌어서요.”
찰스 슐츠의 범지구적인 만화 <피너츠>의 철학적인 꼬마에게서 이름을 따온 라이너스의 담요는 원래 PC통신 동호회에서 음악친구들이 모여 결성한 밴드였다. 다섯 명이서 시작한 밴드는 두 명이 되었다가, 다들 각자의 길을 가면서 이제는 연진 혼자 남은 솔로 프로젝트가 되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다들 직장 다니면서, 연진만 제외하고 모두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 요즘 연진은 트리오 봉봉이라는 재즈 밴드와 같이 활동하고 있어서 강남 쪽 재즈클럽에서도 종종 공연하고 활동영역이 예전과 약간 달라졌다. 처음에는 혼자 주눅이 들어서 우습게 보이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이 많았다. 재즈 안 하는 사람이 와서 노래하니까, 다들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할 것 같았다고. 그런데 정작 재즈 하는 사람들은 너 같은 캐릭터가 없다고 재밌어했다. 밴드에서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유승호는 ‘재즈 보컬들이 너무 전형적으로 하는 건 피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신사동에 있는 ‘이레 스튜디오’라는 곳에서 조만간 재즈를 레코딩해서 LP를 제작할 예정인데, 연진도 스탠더드 위주로 작업해보자는 제안을 받은 상태다.
“제게 확실한 롤 모델이 있긴 해요. 원래부터 블로썸 디어리(Blossom Dearie)를 모델로 음악을 시작한 거였으니까요. 저랑 비슷하게 아기 같고 카랑카랑한 재즈 보컬. 그래서 재즈를 열심히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저 스캣(Scat)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면 재즈 뮤지션 분들이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셔요. 저는 처음 알았는데, 재즈 뮤지션 중에도 타입이 있어서 너무 전형적인 것보다는 깔끔하게 연주하고 부르는 걸 좋아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전에는 공연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다. 옛날에는 아예 돌아서서 공연한 적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랜드민트페스티벌 공연에서는 아예 멘트를 전부 적어 와서 관객들하고 눈 한번 안 마주치고 그대로 읽기도 했다.
“정말 초창기 때 그랬어요. 속옷밴드 같은 밴드가 앞 안 보고 공연하잖아요? 저도 누가 쳐다보는 게 너무 불편한 거예요. 기억은 안 나는데 옛날에 저 보지 말라고 하고 공연한 적 있대요.(웃음) 제가 공연 때 이상한 소리 하는 게 웃기려고 그러나보다, 콘셉트인가보다 생각할 수 있는데, 긴장되고 무슨 말 해야 할지 몰라서 막 튀어나오는 거예요.”
지금의 밴드를 만나고 나서는 스스로 생각해도 공연 퀄리티가 일취월장했다. 자기만 안 떨면 괜찮게 할 수 있다. 옛날에는 긴장을 한 것만 알았지 그걸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를 전혀 몰라서 우왕좌왕하다가 내려온 적이 많았다면, 지금은 뭐가 안 들리면 깐깐하게 잡아내는 편이다. 그녀의 우물쭈물하고 서툰 면을 연주자들이 채워주고, 자신이 만든 음악을 존중해주고 서포트해주는 느낌이라 좋다.
“예전의 밴드는 멤버들끼리 존중하는 표현이 좀 부족했어요. 다들 어렸을 때라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고. 지금은 너무 편해요. 제가 지금까지 제일 많이 받은 지적이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린다는 거였는데, 지금 밴드는 제 목소리에 맞춰서 아주 작게 볼륨 설정을 해주거든요. 엄마가 가끔 보러 오시는데, 연주가 너무 괜찮다고.(웃음) 정말 감사하고 이 분들 안 계시면 제가 이 일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라도 더 챙겨드리고 싶고, 멤버들은 괜찮아요, 밥 사주지 마세요, 하는데, 저는 오래 가주세요, 제발 절단나지 말아주세요(웃음), 당신들 아니면 제가 공연을 못합니다, 하는 심정이에요.”
“합주 때도 재밌겠네요.”
“합주도 재밌고, 리허설 할 때 스트레스도 안 받고. 한마디로 저한테는 음악하기 되게 좋아진 환경인 거죠. 근데 요즘 곡을 못 쓰고 있어서 그게 좀 걱정이긴 해요. 원래 쓸 때는 잘 써지는데 한동안 안 쓰게 되더라구요. 편하고 좋으니까 노는데 바빠서.(웃음) 그러다 괴롭고 힘들고 생각할 일 생기면 써지는 거 같아요. EP에 있는 <어느새>가 반응이 좋아서 요즘 우울한 노래 위주로만 쓰고 있는데, 전처럼 발랄한 노래를 잘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전에는 제 음악이 BGM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곡들은 쓰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아는 음악감독님이 하신다고 들었어요. 예전처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만들 수 있다면야 좋은데, 나오는 대로 만드는 거라 주문제작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웃음) 쉽지 않더라구요.”
어렸을 때 더 소프티스(The Softies)라는 미국의 팝 듀오를 한참 좋아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이 그런 연진을 보고 의아해하더란다. “남자친구랑 연애하고 헤어지는 유치한 노래만 하는 애들이 왜 좋아? 이해가 안 돼.” 그 경험은 연진이 영어가사를 좀 더 선호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얘기를, 예전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라이너스의 담요 가사도 우리말로 곧이곧대로 옮겼다간 다분히 일차원적이고 유치하게 들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미국인과 그렇지 않은 우리가 더 소프티스를 들었을 때의 뉘앙스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연진은 2014년에 발표한 EP <Magic Moments>를 기점으로 만든 곡들에서 대부분의 가사를 우리말로 썼다.
“일단 제가 한동안 영어공부를 너무 안 해서 가사를 쓰기조차 망설여지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한글로 자연스럽게 써지더라구요. 제가 아리랑 라디오에서 레이 강 오빠가 진행하시는 프로그램에 일 년 정도 출연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영어를 대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는 못하거든요. 추임새나 감탄사 정도나 하지. 그래서 저는 Waooh, Ooops! 밖에 못한다고(웃음), 그렇지만 대본을 주면 읽을 수는 있다고 작가님한테 얘기했더니, 그럼 같이 대본을 쓴 다음 번역해서 읽자고 하시더라구요. 그걸 매주 하는 것만으로도 영어공부가 많이 돼서 다시 영어가사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곡이 탄생할 때 자연스럽게 붙어서 나오는 언어가 그 곡의 운명이구나, 노래에도 운명이라는 게 있구나,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예를 들어 자비에 돌란 영화의 국내 프로모션 음악으로 만들었던 <Mommy> 같은 경우는 한국말로 안 나오더라구요.”
2011년 라이너스의 담요의 첫 앨범, 그러니까 정규 1집이 나오기까지는 데뷔를 기준으로 무려 십 년이 걸렸다. 오죽하면 가을방학, 줄리아하트의 정바비가 “내 살아생전에 담요 1집을 듣게 되다니!”라는 말을 남겼을까. 그리고 고백하자면, 나는 이 앨범을 다섯 번도 채 듣지 못했다. 딱히 흠 잡을 구석 없는 팝 앨범이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완벽에 대한 강박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기 때문이다. 이후 홀로 활동하면서 몇 년간의 텀을 두고 만든 <Magic Moments>는 1집과 정확히 반대의 지점에 있었고, 그래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Magic Moments>를 기점으로 갈리기 시작한 거 같아요. 그 앨범이 앞으로 제가 할 음악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고 할까. 저 개인적으로는 1집보다 훨씬 발전한 앨범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송라이팅은 모르겠지만 기술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데, 옛날 느낌 아니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요.”
<Magic Moments>에는 DJ 소울스케이프, 윤석철, 하헌진, 김간지, 조월, 빌리어코스티, 김태춘, 이희경, 주윤하 등 다 적기도 힘들 만큼 많은 뮤지션들이 세션, 혹은 피처링 파트너로 참여했다. 연진은 이들과 함께 자신이 가진 재능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이 앨범에서는 1집에서처럼 ‘스스로에게 못할 짓을 했다 싶을 만큼’ 자신을 몰아붙인 흔적이 없었고, 오히려 여유마저 느껴져서, 타이틀 곡 <Love Me>의 경쾌한 싱커페이션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안도하게 되었다. 연진 스스로도 “여유가 많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 즈음에 갑자기 CJ랑 계약을 하게 됐는데, 이런 앨범은 내가 여기 있을 때밖에 못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게스트 뮤지션이 너무 많았으니까. 저는 늘 세션비를 충실하게 챙겨드리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이런 작업을 하면 세션비가 당연히 많이 들잖아요? 보통은 한 명이 와서 몇 곡을 작업하는 식인데 이건 곡마다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회사 쪽에 이런 앨범 만들고 싶다, 이렇게 콘셉트를 짰다고 계획을 전달했는데, 그렇게 해본 것도 제 평생 처음인데, 다행히 회사의 반응이 좋았어요. 게스트 뮤지션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다고 회사 분들하고 같이 공연 보러 다니고 그랬어요. 다들 좋아해주시더라구요.”
음악 할 때든 평소에든 주위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고, 그걸 원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타입이 아니라서, 뚝심이 강한 사람들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앨범 만들 때도 큰 그림을 보여주고 리드를 하는 게 아니라, 연주자들이 와서 “이거 어때요?”, “좋네요!”, “이건요?”, “그것도 좋네요!” 하는 식이라고. 다른 사람 음악에서 피처링을 할 때도 어떤 멜로디 안에서 자유롭게 불러달라는 사람이 좀 더 맞는다.
“제가 큰 그림을 보여주고 연주에 대한 주관이 뚜렷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성격도 그렇고 작업에서도 자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해서 음 하나를 끌고 끊는 것까지 지정하는 걸 재미없게 생각해요. 제 앨범의 연주자분들께도 곡 안에서 자유롭게 연주해달라고 해요. 그 사람의 캐릭터가 같이 녹아들기를 원하거든요.”
<Magic Moments>의 소개글에는 ‘삼 년의 시간이 담긴 앨범’이라고 되어 있다. 흔한 표현이지만 연진의 경우에는 그만큼 적절한 표현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록된 여섯 곡에는 그녀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삼 년간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가 흔적처럼 찍혀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정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음악을 하다 보면 갑자기 벽에 딱 막히는 순간이 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 뮤지션이라면 곡 쓰고 앨범 만들어야 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게 잘 안 될 때. 지금부터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생각만 들면서 막막할 때.
“솔직히 지금도 약간 그런 상태이긴 하지만요. 그때 주위에서 보컬 레슨을 받든가 아니면 메인 악기인 피아노를 좀 더 본격적으로 배워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DJ 소울스케이프 오빠한테 윤석철 씨를 소개받고 재즈 좀 가르쳐달라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자기가 뭘 가르칠 게 있냐면서, 가르쳐줄 게 없다고 빼더라구요.(웃음) 그런데 막상 배워보니 제가 이론적인 바탕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없는 거예요. 악보도 못 보지, 다 귀로만 듣고 해온 거니까요. 윤석철 씨가 세상에 이렇게까지 모를 줄은 몰랐다고.(박장대소)”
“레슨은 재밌었어요? 앨범 들어보면 도움이 많이 된 거 같은데.”
“저는 레슨이라는 걸 처음 받아본 거거든요. 이론을 설명하고 피아노만 열나게 치다 올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레슨 가면 석철 씨가 멍하니 있다가 물어봐요. 지난 주 어떻게 지내셨어요, 요즘 어떤 생각하면서 지내세요. 별 거 없었는데요? (웃음) 그러다 자기 힘들었던 얘기라든가 술 먹고 휴대폰 깨진 얘기처럼 대수롭지 않은 잡담을 한참 하다가, 이제 한번 쳐볼까요, 하는 식이었어요. 그러면서 레슨이라는 것도 결국 인간 사이의 상호교류라는 걸 알았어요. 피아노 다음엔 재즈 보컬리스트 허소영 씨한테 보컬 레슨도 받았는데, 되게 재밌었어요. 제가 이렇게 음악을 열심히 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연습도 많이 하고. 허소영 씨가 보컬은 이 정도면 혼자 연습하셔도 될 것 같다고 해서, 그 다음에는 블루스 하는 분들이 너무 멋있어서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비싼 깁슨 기타를 사서 레슨도 받고 일 년 정도 연습했어요.”
음악을 한 건 오래됐는데 완성형이 아닌 상태로 너무 오랫동안 노출되다보니까,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너무 심했다.(‘자괴감’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음악을 뭣도 모르고 시작해서 제대로 한 게 없는데 인기가 많아졌다는 생각이 늘 들었다고. 그녀도 그렇고 다른 멤버들도 음악이 하고 싶어서 한 건 맞지만 프로페셔널하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직장 다니면서 아마추어리즘을 미학으로 여기면서 지내왔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음악계의 분위기도 변했고, 태도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대가 됐다.
“요즘에는 프로답지 못하면 안 되잖아요. 그 중간에서 어떻게 포지션을 잡아야 할지 몰랐던 거 같아요. 그 와중에 설상가상 직장까지 그만두면서(웃음), 이제 어떡해야 되나. 스스로 길을 찾기가 되게 어려웠던 거 같아요. 지금은 최소한 내가 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이전에는 공연을 하러 가서 리허설 올라갔는데 음향 안 좋으면, 내가 여기서 뭘 어떡해야 할 줄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어영부영하고 내려온 적도 되게 많았거든요. 근데 지금은, 무대에 불이 나더라도 저 사람들이 나한테 하라고 한 건 해내야 돼, 라는 생각.”
“아무리 그래도 불나면 무조건 뛰쳐나가고 봐야죠!”
“그런가? (웃음) 어떤 위급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내가 돈 받고 하는 거면 책임져야 한다, 잘해야 한다, 누가 입장료를 지불하고 보러 왔는데 그 돈값을 하지 못하면 안 된다, 원래 그런 생각을 하고는 있었는데, 지금은 컨트롤을 좀 더 하게 됐어요. 당연히 했어야 하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 좋은 연주가 중요했던 건데, 노래하는 사람이 목소리가 안 들리면 공연 망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당연한 매커니즘을 너무 질질 끌어왔다고 할지.”
예전 인터뷰에서 검정치마 조휴일에 대한 팬심을 격하게 드러냈던 적이 있다. 1집에 수록된 <Gargle>이라는 곡에 피처링을 부탁할 때도 떨려서 말을 못하고, 공연장에 찾아가 대기실에서 쪽지를 주고 나왔다. 그래서 멤버들한테 “네가 선배인데 너무 그러면 밴드 가오가 떨어진다”는 타박을 들었다고. 원래 음악적으로 팬인 사람에게는 표현을 심하게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작년에 샤이니의 종현이 진행하는 MBC 라디오 ‘푸른 밤입니다’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게 됐을 때도 거의 정신을 못 차렸다.
“매주 만나다니! 좋아하는 아이돌을! 너무 팬이라고 편지 주고 그랬어요. 옛날에는 성시경 좋아해서 라디오에서 만나고 싶다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관심이 없어져버렸는데, 샤이니를 만난 건 저한테 너무 큰일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콘서트도 초대받고 앨범도 받고, 나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트위터에 썼어요.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더라구요.(웃음)”
요즘에는 SBS ‘장예원의 오늘 같은 밤’에도 출연 중이다. 사실 왜 이렇게 불러주시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원래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닌데다, 자신이 깊이가 없다는 생각에 바닥이 드러날까 봐 엄청 두렵다고. 다만 누군가의 말에 맞장구 쳐주는 리액션 같은 건 잘한다고 한다.
“어쩔 때는 너무 긴장해서, 아하, 그렇구나, 이런 추임새만 넣다가 올 때도 있고(웃음) 그럴 때면 내가 이러려고 라디오 했나 하고 자괴감 느껴지고.(웃음) 저는 인터뷰하거나 친구랑 얘기할 때도, 한참 생각해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말하는 와중에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거든요. 라디오 게스트 하면서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사는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던 부분도 많은데, 듣는 분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전에 시 쓰는 하상욱 씨랑 같이 라디오 게스트 하면서 느낀 건데요, 자기 주관이 뚜렷해야 돌발적인 질문이 와도 그때그때 받아치는 센스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은 엄청 부족하죠.(웃음) 어떤 사람 말에 그렇구나 해놓고, 또 저쪽에서 맞아 맞아, 이러니까. 사람들이 듣기에는 얘는 뭐 주관도 없나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고. 제 역할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정도인 거 같아요. 라디오에서 고민상담 하면서 제가 늘 하는 말이, 남과 비교하지 말고 너만의 속도를 따라가라는 거거든요. 그런데 저도 저한테 그렇게 얘기해주면서 늘 잘하고 있는 건지 맞는 건지 고민 많이 하니까, 남한테 그렇게 쉽게 말해주는 게 조심스럽기도 해요.”
원래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큰 자각은 없었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목소리 연기를 하면서 자기가 가진 목소리가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우나 CM, 내레이션처럼 노래 외에 목소리를 쓸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활동 초기에 CM 녹음을 하면서 관계자들에게 희소성이 있는 목소리라 열심히 하면 전망이 밝을 거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실제 아기 목소리는 광고에서 못쓰도록 법적으로 정해져 있대요. 확실한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들은 것 같아요. 근데 제가 그 당시 너무 아티스트적인 태도에 심취한 나머지(웃음) 음악에만 집중할 거라고, 그리고 저만 다른 일로 돈 벌겠다고 밴드 멤버들한테 민폐 끼칠 수 없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나요. 만약 지금 저한테 스물 서너 살 먹은 애가 와서 그런 얘기하면, 저 멍청한 것! 할 것 같은데(웃음), 그때 관계자 분들은 쟤네는 되게 의리가 있는 밴드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전해들었어요. 뒤늦게 생각해보니 그런 걸 해봤다면 좋았을 걸 싶어요.”
“자기 목소리를 좋아해요?”
“전에는 안 좋아했거든요. 지금은 라디오 같은 거 들어보면, 제가 흥분했을 때 나오는 되게 무방비한 목소리만 빼면, 스스로 가다듬고 꾸며서 내는 목소리는 괜찮은 거 같아요. 다들 저한테 말할 때와 노래할 때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 다르냐고 하는데, 그 간격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거 같아요. 전에는 말할 때 엄청 걸걸하게 말했거든요. 요즘에는 노래하는 톤도 낮췄어요. 말할 때는 좀 더 예쁘게 말하려고 하고.”
그럼 전에는 일부러 걸걸한 목소리를 냈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다만 가다듬고 꾸미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었고, 무조건 털털해야 좋다고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여성스러움’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연진 씨 머리 길렀네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네, 거의 십 년 만에 길렀어요. 일 년 동안 기른 건데 또 자를 거예요. 불편하기도 하고 제 캐릭터랑은 안 맞는 것 같아서요. 근데 저에게 숏컷을 추천했던 십 년 넘게 다니는 미용실 선생님이 계속 못 자르게 해요. 마흔 되기 전에 한 번은 길러야 후회가 없다고 하셔요.”
고등학교 때는 여학교에 으레 한두 명쯤 있는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여자’였다. 화장실에서 이 닦고 있으면 여자애들이 기둥 뒤에 숨어서 보고 있고, 머리카락이나 손톱 잘라서 보내는 편지까지 받아서 무서웠다고. 음악 하는 친구들이 원체 남자가 더 많기도 해서, 남자애들과 늘 터프하게 대화하다 보니 전에는 여자친구들을 대하는 법을 몰랐다.
“제가 옛날에 불편하다고 그랬죠? 지금은 여자친구들만 좋아해요.(웃음)”
그렇게 되면서 생긴 좋은 변화는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서로 이해 안 되면 관계 자체가 연약해지고 불안해지는 연애와 달리, 여자친구들과는 비슷한 걸 느끼고 공감할 수 있어서 좋다. 왜 진작 이러지 않았나 싶을 만큼 도움이 많이 된다. 사실 요즘에는 남자친구들과 얘기하면 오히려 너무 불편해지거나 싸울 때가 있다.
“최근에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또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문화계 성폭력 고발 움직임도 있었잖아요. 그런 일들을 보면서, 생각하거나 발언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쩔 수 없이 여성과 남성으로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까, 평소에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확실히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여자친구들하고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 보면 당연히 그렇지! 하는 반응이 나오는 부분인데, 그걸 남자친구들하고 얘기하면, 그게 왜? 하는 반응이 나오더라구요. ‘그럴 수 있는 건 알아. 근데…’ 근데,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스트레스 받는 거예요.(웃음)”
평소에 호의적으로 생각해왔던 남자들, 자신은 페미니스트이고 여성들을 위한다고 말하는 남자들도 결국 이해한다기보다 뭔가 베풀고 가르치려는 생각을 가진 경우는 전혀 드물지 않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할 때 조심스럽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전에는 관심 없었거든요. 저도 직장에서 성희롱도 많이 당해봤고 이래저래 기분 나쁜 일들도 많았지만, 기분 나빠, 저 또라이 새끼, 이러고 말았지 뭘 어떻게 바꿔야 할까. 어떻게 해야 여자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최근에는 여자친구들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우리가 겪은 일들을 다음 세대에는 겪지 않게 해주자. 분위기를 바꿔보자.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도 변화시키자. 그래서 잘 설명해주려고 하다가 또 싸우고. 여자들은 항상 일상에서 공포를 느끼면서 사는데, 한국만큼 안전한 나라도 없다고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반응이 나오면 얘기하다가 너무 열이 받아요. 무엇보다 강남역 사건이 되게 충격적이었고, 일반 여성들에게 경각심을 크게 줬던 거 같아요. 뉴스 보면서 몇 주 동안은 잠도 못자고 울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주위의 친한 남자들은 왜 그렇게까지 반응을 하냐고 했어요. 자기 일도 아닌데 왜 계속 찾아서 보고 괴로워하냐고. 그런 걸 겪으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고 스스로도 깨닫게 된 게, 제가 그동안 해왔던 것도 여성혐오더라구요.”
“여성성을 혐오했다는 점에서요?”
“네, 여성성에 대한 거부 같은 것. 여성스럽고 예쁘게 꾸미는 거, 여자들의 기 싸움 같은 거 볼 때마다 거부감 느끼고, 난 이래서 여자애들 싫어, 하는 한때의 치기 같은 것.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들에게는 다양한 삶이나 경험이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결혼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어요. 결혼이라는 게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잖아요. 전에는 결혼하는데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해주면서 남친이 다이아 안 해준다고 삐치는 애들 있으면, 개념 없다고 흉봤거든요. 그러면서 나는 개념 있는 사람이야, 하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거죠. 지금은 바뀌었어요. 결혼이든 연애든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고 그냥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되는 거구나. None Of Your Business. 나의 개념은 나의 개념이고 걔의 개념은 걔의 개념이구나. 요즘 저의 전체적인 대세를 보면 확실히 전보다 남한테 관심을 안 가지게 된 거 같아요. 저 사람은 저럴 수도 있지. 왜 내가 가치판단을 해야 되나. 그런 면에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게 엄청 많았구나 싶어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되게 집착했었다고 할까.”
이날 그녀가 제일 분명한 어조로 들려준 이야기였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그녀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년 동안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아예 안 변하는 것도 이상하겠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그 높낮이가 꽤 컸다.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예전의 예민하고 어두운 아우라와 혼란스러움은 얼굴에서 거의 걷혀 있었다. 연진 씨, 되게 많이 변한 거 같아요, 했더니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저 그날 인터뷰에서 그런 얘기하고 몇 년 동안 계속 후회했어요.(웃음) 말한 것 자체를 후회한 게 아니구요, 내가 왜 그런 삶에 그렇게까지 집착했을까 하는 후회인 거죠. 제 삶에 대한 후회라고 해야 되나. 그때는 나이 차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아야 된다는 스테레오 타입이 머릿속에 너무 분명하게 있었기 때문에, 안 그러면 큰일 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어떡해 어떡해, 결혼 어떻게 하면 좋아, 하고 혼자 고민하고, 연애에서도 결혼에 대한 강박 때문에 빨리 결론을 내려고 조급해지구요. 웃긴 게, 저는 빨리 결혼하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결혼을 서두르는 남자가 나타나면 불안해서 하기 싫다고 도망가는 거예요. 그런 사람 만나면 과연 내가 이 사람이 원하는 결혼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반대로 결혼 생각이 없는 사람 만나면 서로 힘들어서 헤어지고.”
“그게 결혼 자체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강박이었나 봐요.”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남들 말하는 평범한 삶에 대한 집착이 너무 컸나 보다. 나는 얼마든지 평범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계속 아귀가 안 맞는 거예요. 또 이제 나이도 들었고 이 일을 한지도 오래됐잖아요. 사람들 앞에서 나에 대해 얘기하면 너무 다른 세상 사람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왜? 너희랑 똑같아. 나도 일하고 저축하고 비슷해.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런 게 평범한 삶으로 위장하고 싶었던 갈망이었던 거 같아요. 어느 순간 나는 저 사람이랑 다르게 사는구나 인정해버리고 놔버리니까 편해져서,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이 바뀌었어요.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문제가 아니라 내 옆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가 정말 중요한 건데, 함께 해서 서로 행복하기보다 힘들 상대라면 혼자인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부모님과도 그런 대화를 하면서 조금 편해졌어요. 예전에는 주변에서도 빨리 결혼해야지, 남자 좀 잘 사귀어봐라, 이런 푸시가 심했는데, 이제는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결혼하지 않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런 얘기들도 해요.”
이날 그녀를 만나기 전에 끼적거린 노트에는 ‘마음의 평화’라는 말이 적혀 있었고, 밑줄과 별표까지 있었다. 이날 인터뷰에서 제일 궁금했던 것, 무엇보다 묻고 싶었던 핵심 키워드, 오 년 전 그녀가 제일 가지고 싶다고 말했던 것.
“마음의 평화가 생길 정도는 아직 아니구요, 전에 비해 나를 인정하고 좀 편해진 정도예요. 나는 완전 비혼이야! 그런 건 아니거든요. 다만 사람들이 말하는 틀에 맞춰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졌고, 내가 미숙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또 내게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 제가 생각해도 제 성격이 좋지는 않아요.(웃음) 속으로는 겁 많고, 여리고, 아이 같은 면이 있으니까 돌봐줘야겠구나 생각하게 하면서도, 겉으로는 독립성이 강하고, 누구한테 의지하는 거 싫어하고, 방어적인 면도 있구요. 그래서 만나는 사람이 보기에는 얘는 대체 뭐지 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데 그게 어렵죠. 제가 어른스럽게 누구를 잘 받아주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하지만, 선을 넘으면 놔버리는 게 있어요.”
“그런데 연진 씨는 되게 성실한 편 아닌가?”
“어떤 면에서요?”
“관계에 있어서요.”
“인간관계에는 되게 성실한데, 그 와중에 제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 있어요. 어느 정도 이상으로 의존하는 건 서로에게 위험하다는 생각. 서로 존중이 지켜질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가 있고,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정서적인 밀착을 원하는 사람은 이걸 불편해해서 제가 고집할 순 없어요. 그리고 대화를 통해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지는 성숙한 관계를 원하는데, 이게 대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피곤할 수가 있죠. 제가 원하는 건 존중에 필요한 어느 정도 거리는 있되 대화를 엄청 많이 하는…(웃음)”
“무슨 얘긴지는 알겠지만 엄청 어렵겠어요.(웃음)”
“어렵죠? 저도 이런 제 심리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어떻게 결론을 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순전히 이게 궁금해서 정신과 상담 가서 물어보고 싶어요. 이게 대체 어떤 심리냐, 다른 사람과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관계 중엔 상대방이 더 밀착된 관계를 원해서, 그게 힘들고 부담돼서 제가 못하겠다고 한 것들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상대를 밀어내거나 불성실한 건 아니거든요. 다만 제가 원하는 조금의 거리가 있고, 그게 존중받고, 결국은 제가 존중받길 원해요. 상대가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라는 존중이 있으면, 그 사람이 평소와 좀 다른 행동을 해도 이 사람이 왜 이럴까 궁금해야 자연스럽잖아요. 내게 이유가 있어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을 때, 이런 애였어? 또라이였네, 이렇게 단정을 당해버리면,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이해받지도 못했다는 생각을 하죠.”
요즘에는 비교적 여유 있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스케줄 없는 날에는 합주 있으면 합주하고, 집에 있으면 집안일도 하고. 1집 때 사업자 등록해놓은 ‘FAB3’라는 레이블이 아직 유지되고 있어서 세금 관련 업무도 한다. 다만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에 비해서는 시간여유가 많은 편이라 생각이나 불안에 노출되는 것도 일상이라고. 요즘 많이 하는 고민이 뭐냐고 물으니 한숨을 쉬며 노후 걱정이라고 했다.
“아직 부모님이랑 같이 사니까요. 내가 독립해서 나가도 은퇴하신 부모님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실 것인지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요. 가족들이 그래요. 곡을 많이 써라, 팔리든 안 팔리든 젊을 때 많이 해 놔라(웃음), 커리어를 만들어 놔라, 그래야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장기적으로 좋을 거라는 잔소리를 많이 해요.”
하루하루 이렇게 많은 것들에 책임을 지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늘 한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훨씬 생산적인 고민이다. 요즘에는 음악을 하려는 사람들한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옛날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까지 생각이 미친다.
“사실 저는 업계에 크게 소속감은 없어요. 전부터 아웃사이더처럼 활동해왔기 때문에 친한 사람도 별로 없고, 왜 이렇게 인맥을 안 만들어놨나 고민도 많이 안 해요. 난 이래저래 휩쓸릴 일 없이 나대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가끔 조금 소외감 느낄 때도 있어요. 누가 뭐 할 때 다같이 으쌰으쌰 해주는 걸 보면 난 좀 외롭네 느낄 때도 있고, 이 일을 오래 해오면서 나 혼자만의 힘으론 안 되는 걸 아니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도움을 받고, 나도 도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원래는 업계 친구가 진짜 없었는데, 요즘은 트리오 봉봉이랑 재즈 하는 친구들 자주 보고, (김)태춘이, (하)헌진이, (김)대중 오빠 같은 분들하고 꽤 친해졌어요. 저는, 제가 블루스 뮤지션들 너무 좋아해서 같이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하실지 궁금했거든요. 근데 사람은 자기 좋아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돼 있나 봐요. 제가 너무 좋아하니까 다 저를 예뻐해주더라구요.”
“예전 같으면 절대 먼저 청하지 못했을 거 아니에요?”
“맞아요. 예전에는 누가 연락해주겠지, 친분이 없어도 누가 좋아한다고 말해주겠지, 가만히 기다렸던 거 같아요. 작년에 tvN ‘노래의 탄생’ 파일럿에 나갔는데요, 저는 처음에는 제가 왜 섭외됐는지도 모르겠어서, 저 가창력 없는데요, 저 같은 사람 나가도 되나요, 하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노래에 맞게 색깔을 낼 수 있는 캐릭터 있는 보컬이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날 녹화하러 가서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김형석 님을 처음 뵀는데 경이로웠어요. 거기 나온 뮤지션 분들이 다들 선배님 후배님 인사하는데, 저는 인맥이 없다보니 디어클라우드의 나인 씨랑 둘이서만 의지하면서 멀뚱멀뚱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원영 선생님이 오시더니 노래 잘 듣고 있다고 먼저 인사해주시는 거예요. 너무 감사했어요. 먼저 인사 못 드려서 죄송하구요.”
앞에서 말했듯 딱히 한 게 없는데도 사방에서 불러주던 시절이 있었고, 그게 단번에 사그라져서 아무도 안 찾아주는 상황도 겪어봤다. 그리고 지금은 전처럼 타이트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완전히 잊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지는 않을까.
“1집 낼 때는 돈도 많이 투자해서 뮤직비디오도 찍고, 우리가 이렇게 나가면 사람들이 와아! 하고 좋아할 거야, 라는 기대심리가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물론 시간을 너무 끌긴 했지만, 막상 나와 보니까 생각한 것만큼 호의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그럴 만하지, 나 같아도 그럴 거야(웃음), 하고 말았어요. EP 나오고 나서도 홍보하고 공연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지나고 나니까 섭외도 줄고, 이제 싫은가봐(웃음), 내 할 일 열심히 하고 있으면 찾아주겠지. 그런 와중에 어디 가서 사람들이 음악 너무 좋고 잘 들었다고 하면, 그래, 이 사람이지! 알아보시네요, 좋은 취향 가지셨네요.(웃음) 가끔 태춘이 같은 친구들 만나면 분위기가 전 같지 않다는 얘기 많이 해요. 음반 안 팔리는 건 당연한 거고,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근데 주위에서 푸시하는 경우가 있어요. 너는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될 것 같은데, 뜰 것 같은데. 모르는 소리 하지 마, 하고 말아요.(웃음)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도 굉장한 정신력이 필요하다고. 일 벌려놓고 잘 안되면 누가 책임지나 싶은 거예요. 예매 몇 분 만에 매진되는 친구들 보면 부럽지만, 제 공연에 찾아와주는 팬 분들이 있고, 뭔가 한다고 하면 SNS로 응원 보내주는 분들 덕에 외롭진 않아요. 그분들이 없으면, 나 진짜 안 되는 건가, 음악 그만해야 되나 할 텐데, 어느 순간부터 옆에 계신 분들 한 명 한 명이 너무 고마워요.”
그동안 팬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 처음에 밴드 시작할 때는 팬에 대한 개념 자체도 없었고, 누가 보러 오든 크게 신경을 안 썼다. 팬이라고 칭하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됐다.
“언제까지 그랬더라? 좀 더 어릴 때는 나는 직장인이고 음악은 취미로 하는 거다, 당신들과 똑같고, 그렇게 대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팬클럽 만든다고 하면, 그걸 왜 만들어? 보고 싶으면 보러 와서 친구 하면 되지, 만들거나 말거나 난 몰라, 민망해. 다른 밴드들이 팬 여러분! 어쩌고 하면, 웃기고 있네, 그랬거든요.(웃음) 근데 그 당시에는 밴드들 분위기가 우리랑 비슷했던 것 같아요. 2000년대 초반쯤? 팬덤이라고 할 정도로 조직적인 움직임도 없었고, 신이 철저하게 비즈니스 마인드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잖아요. 뮤지션을 스타처럼 보는 시선도 없었고, 누구는 공연을 할 뿐이고 누구는 볼 뿐이고. 근데 팬을 인식하는 게 아티스트에게는 필요한 프로의식, 아티스트 십인 것 같아요. 내 음악을 좋아해주는 팬이니까 책임감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건데, 그때만 해도 그렇게 서로 떠받들어주는 걸 무슨 특권의식처럼 생각해서 불편해했어요.”
“사방에서 욕도 많이 먹었겠다.(웃음)”
“엄청 먹었겠죠. 팬 분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왜 이런 식으로 우리를 대상화시키지, 그냥 같이 어울리면 되는데 불편하지 않나, 하는 사고방식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여성성에 가졌던 거부감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누가 팬클럽이에요, 하고 만들어주시면 가입은 하면서 남사스러워서, 이거 왜 만드셨어요, 어차피 여기 있는 분들이 저쪽이랑도 겹치잖아요, 이렇게 농담할 것 같은데.(웃음) 사실은 만약 지금 누군가 팬클럽 만들어주시면 고마워서 거기에 매일 일기 쓸 것 같아요. 담요 팬 여러분~ 하면서.”
오 년 전,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재능’이라고 대답했다. 세상에 진짜로 존재하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것 중에 갖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마찬가지로 ‘재능’이라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뭔가를 할 수 있는 재능. 그 말은 자신의 재능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재능에 대한 동경이 커요. 세상에 음악이 넘치도록 많은데, 훌륭한 음악을 발견하면 귀한 재능을 만났다고 가슴이 막 벅차거든요. 그런데 언젠가 제가 단골 카페에서 뭘 하고 있는데 거기서 제 노래 <Summer Night Magic>을 틀어줬어요. 갑자기 노래가 나와서 손 놓고 끝날 때까지 들었는데, 그 가슴 벅찬 느낌을 받은 거에요. 원래 저는 제 음반 듣는 거 괴로워서 못하는데, 저한테도 그런 순간이 오더라구요.“
“자기 재능에 대해서는 좀 자각을 하게 됐나요?”
"제가 성격 때문인지 자기 PR이나 포장을 잘 못해요. 나를 칭찬하는 게 민망해서요. 이것도 극복하고 싶은 부분인데... 아무튼 삼십 대 들어서 몇 번의 소개팅을 했는데, 이게 저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단시간에 확실한 자기 PR을 하는 거더라구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주섬주섬 늘어놓는데 그중 한 분이, 진짜 재능 없으면 못할 일을 하고 계시네요, 라고 하셨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한때 우리에겐 일을 선택할 여지가 많았는데,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자기가 가진 것 중 그나마 조금이라도 확실한 재능 이외에는 문을 하나씩 닫는구나, 아마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여겼다면 지금 이러고 있지 않았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 재능을 자각하게 된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을 찾다가, 그녀에게 행복에 대해 물었다. 흔해빠지고도 애매모호한 질문 같지만, 사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행복에 대해 막연하게, 묻는다기보다 질문을 툭 던져놓았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혹은 지금 행복한가, 행복을 믿느냐 등등이 아닌 그냥 행복에 대해. 행복이란 상대적이라느니 하는 자기계발서에 어울릴 법한 얘기 말고, 당장 떠오르는 대로 아무거나 말해달라고. 그녀가 긴 호흡으로 들려준 인상적인 대답을 그대로 이번 인터뷰의 클로징 멘트로 삼아 옮겨도 괜찮을 것 같다.
“요즘에는 행복은 찰나이고, 그 찰나를 계속 수집하는 게 내가 행복한 길을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시간과 공을 들여 퀼트 이불 같은 걸 만드는 기분이에요. 한때 나의 행복은 왜 이리 연약하고 금방 사라질까 한탄했는데, 그때는 행복이 동화에 나오는 ‘Happily Ever After’ 라는 구절처럼 영속적일 거라고 환상을 가졌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 행복 원래 찰나야, 얼른 다음 행복을 찾을까, 하면서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축 늘어진다든지, 보고픈 사람을 찾아간다든지 하는 식이에요. 자꾸 움직여야 수집할 게 늘어나요. 불안을 쉽게 느끼고 슬픔에 몰입하는 제 성격을 이제 어느 정도 알고 인정도 하고 있어요. 내가 왜 이런 걸 느끼지, 부터 시작해서 내 존재가치에 대해 고민하며 보낸 시간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는데, 그게 내가 어떤 사람이구나 깨닫고 익숙해지는 과정으로서 저에겐 필요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이런 과정이 스스로의 감정에 무뎌지고 객관화를 시키고, 처리기술을 배우는 진화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지금은 부정적인 생각을 컨트롤하는 방법도 알고 싶어요. 그래서 올해는 그걸 제대로 배우려고 계획을 세웠구요. 저도 그렇고 다들 기술을 익혀서 좀 더 진화하고, 행복을 좀 더 자주 찾으면 좋을 수도 있어, 뭐 그런 생각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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