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보너스 게임이니까요
1997년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의 넥스트 투어는 아마도 내가 생애 처음으로 관람한 본격적인 콘서트였을 것이다. 그때의 내 처지로는 티켓값이 꽤 비싼 편이었지만, 내가 신해철을 어떻게 여기는지를 제일 잘 알고 있었던 엄마는 별 말 없이 돈을 내줬던 기억이 난다. 서로 말 섞을 일이 없어서 얼굴하고 이름만 간신히 기억하던 같은 반 애와 같이 갔었는데, 그 친구는 옷 잘 입고 돈 잘 쓰고 잘 노는, 한마디로 나와 인종 자체가 다른 축에 속했다. 그럼에도 둘은 오로지 넥스트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의기투합했던 것이다. 공연은 모든 면에서 훌륭했다. <불멸에 관하여>가 연주되면서 무대 장치가 통째로 솟아오르던 오프닝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 공연을 절대 잊을 수 없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따로 있었다. 공연 시작부터 앞자리를 점거하고, 밴드가 노래를 하든 멘트를 하든 찢어져라 악을 지르던 젊은 여자들―십대였을 것 같다―이 있었다. 그들이 포효할 때마다 신해철의 얼굴이 짜증으로 조금씩 일그러지는 걸 확연히 볼 수 있었다. 결국 공연의 1/3쯤 지났을 때 그는 폭발했다. “씨발, 떠들 거면 나가란 말이야!” 신해철이 마이크를 집어던지고 나가버리자 순간 공연장은 그대로 뮤트 상태가 되었고, 나머지 멤버들도 굳어버렸다. 베이시스트 김영석이 “너네 때문에 쟤 또 삐졌잖아…” 하고 시답잖은 드립을 던지며 무대 뒤로 가서 신해철을 데려왔고, “욕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아티스트도 팬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그의 웅변이 한참 이어진 뒤 공연이 재개됐다.(그 여자들은 결국 환불 받아서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머리가 좀 큰 다음 생각해보니 아무 상관이 없는 다른 관객 입장에서는 그때의 상황은 꽤나 억울한 것이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단 두 명의 팬 때문에 짜증이 나는 거야 이해할 수 있다. 그건 관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비싼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점잖게 즐기던 나머지의 대다수 관객들은 대체 무슨 죄란 말인지? 성질부터 부리기 전에 그들에게 좀 조용히 하자고 이성적으로 요청하는 게 상식적인 순서 아닌가? 한마디로 그는 ‘고객’의 기분을 시궁창으로 만들어놓고 감히(!) 팬을 선택하겠느니 따위의 교조적인 훈계를 늘어놓은 셈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의 일은 이가 박박 갈릴 정도로 불쾌하기 짝이 없다. 이 사건은 내가 어떤 창작자와 관계를 맺든 철저하게 ‘생산자’와 ‘소비자’의 포지션을 유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이 해프닝이 이유가 된 건 아니지만, 그 즈음부터 신해철에 대한 나의 애정도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네 번째 앨범 <Lazenca>를 기점으로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그가 해체 기자회견에서 “넥스트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다”고 밝힌 것처럼, 나도 <Lazenca>를 들으면서 넥스트의 끝이 오고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신해철의 작업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역시 ‘음악도시’ 시절에는 열심히 들었지만 ‘고스트 스테이션’은 듣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는 그를 거의 잊고 있었다. 21세기 들어서는 사실상 신해철이 두드러지는 음악적 성취를 남기지 못한 것도 부인하기 힘들지 싶고.
그런데 오히려 팬심이 사라진 다음부터 신해철의 행보를 볼 때마다, 그리고 나도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그에 대해 사뭇 다른 시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좋은 기억과 안 좋은 이미지, 그가 보여주는 언행들, 그를 직접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알 수 없는 것들까지 한데 뭉뚱그려지면서, ‘인간 신해철’에 대해 나름대로 유추하게 됐다고 할까. 팬으로서의 환상이 걷혔기 때문인지 그가 그냥 보통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똑똑하고, 유머러스하고, 솔직하고, 찌질하고, 실수도 하는, 평범하고 다면체적인 보통사람이구나. 마이크를 집어던지며 개지랄을 떨고 궤변을 늘어놓던 그날도 그런 보통사람을 이루는 근간의 일부일 뿐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그를 보는 시선이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으로 간단하게 요약해버릴 수 있는 평면적인 인간이라면 오히려 시시하기 짝이 없는 법이니까.
‘위악적’이라는 말은 그의 언행에 가장 많이 따라붙는 수식어였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을 터다. 그렇지만 그가 자신의 그런 점에 대해 조금이라도 겸연쩍음을 드러내는 것을 본 기억은 없다.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뭐든 물어봐도 좋다. 내 말을 왜곡하지 않는 한 전부 다 대답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이었다. 위악과 허세도, 후안무치로 보일 정도의 에고이스트로 사는 것도,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선에서(물론 살면서 누구나 끼치는 정도는 어쩔 수 없고) 끝끝내 밀어붙이면 그게 언젠가는 힘이 되는 법이다. 그는 그런 스스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듯 보였고, 내심 즐기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특유의 연극적인 카리스마로 온몸으로 보여주고, 또 말해왔던 게 아닐까 한다. 나를 보라고, 이런 삶의 방식도 있는 거라고, 그러니 당신 인생도 그대로 괜찮은 거라고, 니체의 분노나 고흐의 삶을 들먹이며 허세를 숄처럼 두르고 살면 뭐 어떠냐고, 그러니 당당하게 행복해지자고.
사실 신해철은 세간에서 말하는 전위적인 문화투사도, 과잉된 자의식으로 중무장한 아티스트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는 자기 내키는 대로 살았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싶어 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태어나서 사는 이유는 별 거 아니라고, 그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자아실현 같은 거창한 거 말고 그냥 단순무식하게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정작 그는 자신을 ‘평생 음악만 하면 되는 억세게 운 좋은 놈’ 정도로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그때까지 허송세월 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신해철이 여러 차례 얘기했던 ‘보너스 게임론’이 생각난다. 지금껏 그처럼 가슴 깊이 파고든 행복론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인간은 종으로서는 우주의 임무를 갖고 있는지 몰라도, 개인의 목적은 하나밖에 없어요. 태어난 게 목적이야. 그럼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시간은 뭐냐, 보너스 게임이에요. 신이 우리를 예뻐해서 윙크를 하면서 보내준 보너스 게임입니다.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게임이에요. 그럼 이 게임이 사과를 따먹는 게임이냐, 버찌를 따먹는 게임이냐, 아니면 연속으로 사람을 넘어뜨리는 게임이냐. 우리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한 게임입니다. 우리는 태어남으로 인생의 목적을 다 했기 때문에, 신께서는 남은 보너스 게임에서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행복하세요.”
이를테면 그저 행복에 충실했던 그의 삶은, 자신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많은 사람에게 어떤 ‘기준’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타인에 대한 평가질과 유교적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해 미쳐가는 이 땅에서 녹초가 된 이들에게, 그는 노래를 통해서든 라디오 전파를 통해서든 늘 행복한 삶에 대해 자문했고,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그런 그를 이해하든 오해하든, 동경하며 닮고 싶어 하든, 재수 없어 하며 안티가 되든, 숨죽이며 마음속으로만 좋아하든,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그가 말하는 가치에 자신의 삶을 빗대왔던 것 같다. 그러니 그런 존재가 허망하게 사라져버린 것에 이렇게까지 많은 이가 격한 상실감을 어쩌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것일 거다.
신해철이 생을 마감한 날, 내 페이스북에는 약 400여 명의 친구가 있었다. 아주 많은 수는 아니라 표본이라기엔 좀 그렇지만, 내 성향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이들은 여러 문화권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개중에는 평생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광범위하게 하나가 된 순간을, 나는 그의 죽음 앞에서 처음으로 목격하고 있다. 마치 다들 무의식중에 그를 친근하고 가까이 느끼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랑해왔다는 듯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게 미디어 시대의 지옥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래도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게 입증된 게 아닐까. 물론 남아 있는 자의 말일 뿐이지만.
어제 새벽부터 잠들기 전까지 온전히, 그리고 일어나서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그의 생각을 하고 있다. 그 기묘한 혼란의 정체를 계속 생각한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나 낯선 기습이다. 그 혼란의 정체는, 이런 존재로 인해 조금이나마 숨 쉴 만한 세상이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과, 등대가 없어진 어두컴컴한 세상에서 빛을 더듬어 헤매다가 지쳐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생각한다.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가 생전에 이야기하던 가치들, 미세한 삶의 몸짓에서 만들어지는 행복의 신호를 좀 더 필사적으로 붙잡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