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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우 Nov 04. 2022

골방의 음악

힘을 잃지 않기

코로나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지난해 어느 날, 오랜만에 오프라인 공연을 보러 갔다.(오프라인 공연이라니, 그 말도 새삼 어색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고 싶었으면서도 가고 싶지 않기도 했다. 말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그랬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도, 상수역 출구를 나설 때도, 공연 시간을 기다리며 저녁을 먹으면서도, 몇 번이나 망설였다. 공연장 앞까지 와서도 왠지 내키지 않았다. 예매한 것도 아닌데 그냥 다음에 볼까 하다가, 결국 칼 뽑고 싸우러 가는 심정으로 들어갔다.


그날 공연은 어느 록 밴드의 리더였던 M의 솔로 프로젝트 무대였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약간 놀랐다. 사실 많이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가 담긴 음악이었고, 그 음악에 놀라울 정도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실 보는 순간, 아, 이거 진짜 안 팔리게 생겼다, 는 직감이 들었다. 어떤 허세도 과잉도 트릭도 없는, 간결하고 기본에 충실한,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노래들. 흔히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상업적인 기준에서는 이렇게 발목을 잡는다는 걸, 그때 실감했다.


공연의 앵콜곡은 밴드 시절 곡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한 것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그 노래 되게 좋더라구요”라고 말했더니, 그녀는 타박하듯 말했다.


“아니, 한 시간 동안 내 노래를 불렀는데, 이제 와서 옛날 노래가 좋다면 어떡해?”


뭔가 그녀다운 스타일로 반가움을 드러내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날 제비다방에는 관객이 퍽 많았는데, 대부분은 술 먹으러 왔다가 겸사겸사 구경한 사람들이고, 그나마도 절반 이상은 떨떠름한 박수를 치다가 도중에 나갔다. 아마도 M의 지인들(그것도 동료 뮤지션들)을 제외하면, 일부러 그녀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은 내가 유일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나를 보고 진심으로 반색을 하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워낙 오랜만에 보기도 했고) 그래서 내가 뭐라고 그러나 싶은 생각에 살짝 짠해졌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서 담배 몇 대가 탈 때까지 얘기를 나눴다. 공연을 좀 더 자주 하고 싶은데, 여기 말고는 마땅한 곳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내가 이 공연을 보러 오기까지 그렇게 주저했던 이유, 오지 않을 이유를 자꾸 찾았던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호응 없는 공연을 보는 게 무서웠던 것이다. 그런 느낌을 비단 M의 공연에서만 받는 것도 아니었다. 힘들게 만든 음악이 메아리 없는 공허한 외침이 되는 것, 마치 벽에 대고 노래하는 형국이 되는 것. 그건 당사자 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견디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피로감은 나처럼 예민한 사람에게는 고스란히 전가되곤 하니까.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뜨는 것보다 힘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정론이긴 하다. 그런데 구체적인 방법을 묻는다면, 나도 모르는데 어쩌라는 거냐, 하는 심정이 된다. 버티는 사람의 한계는 어느 일시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럼 현실을 개탄하면서 선술집 철학자가 되어 궤변과 함께 나 외에는 모두 그르다고 취해서 밤을 지새는 삶을 살 것이냐, 그건 또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삶도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서 문고리를 더듬더듬 찾고 있는 것과 같다.


다만 예전에 부암동의 작은 카페에서 M의 공연을 마련했을 때의 기억, 그날의 공기는 아직도 몸에 새겨져 있다. 그녀의 기타와 노래에서 조용히 뿜어져 나오는 단단한 에너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소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숨죽여 몰입하던 서른 명 남짓의 관객들 표정도. 그날은 언제가 되든 재현하고 싶다. 어쨌든 어떤 음악이든 골방에서 시작된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으니까. 아니,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살고 싶으니까. 


그런 골방 하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고, 그러고 싶지만, 그렇게 말만 하고 있는 것도 벌써 십 년은 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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