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것이 도착했다
그 상자를 손에 넣은 후에도 그는 한동안, 생각해보면 꽤 오래 견뎠다. 그는 버티고 또 버텼다. 그거 하나는 칭찬해줄 만했다.
그러나 사람이 무작정 참는다고 불가항력에 대한 자제력이 생기지는 않는 법이었다. 그는 더 막을 수 없는 충동에 떠밀려 칼을 들었고, 유리상자를 밀봉한 실리콘을 천천히, 행여나 그 안의 내용물이 다칠 새라 조심스럽게 잘라냈다.
유리를 걷어내고 보니 나비의 날개는 상자 속에 갇혀 있을 때와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날개에서 나오는 푸른빛이 얼굴을 마구 후려친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몇 초쯤 숨을 멈췄다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 끝을 날개에 가져다 대었다. 그 순간 0.5초, 단 0.5초의 여유도 없이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나비는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아름다운 푸른색 인분(鱗粉)이 허공으로 흩뿌려졌다.
그가 충격에서 벗어난 것은 강렬하고 익숙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 느낌은 상품이 도착한 뒤로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으로, 마치 해변의 쓰레기처럼 황량하고 우울한 형태로 되돌아와서 그를 지배했다.
그는 정신없이 책상서랍을 뒤졌고 명함 한 장을 찾아냈다. 흰 마분지 명함 뒤에는 ‘추억을 팝니다’라는 문구와 전화번호, 그리고 간단한 주의사항이 사무적인 문체로 적혀 있었다.
‘과실로 인한 상품 훼손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구입하신 상품은 실체가 아니라 기억의 파편을 방부 처리한 총체적 환상입니다.’
그는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지만, 뭐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에 전화를 들었다. 친절하지만 기묘하게 색깔과 억양이 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날아왔다.
“혹시 나비의 날개에 묻어있는 가루가 호흡기로 들어가지는 않았나요?”
“약간은… 위험한 겁니까?”
“생명에 지장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다만 독성이 있어서 머지않아 증상이 나타날 겁니다. 증상은 고객님의 심리적 체질에 따라 일시적일 수 있지만, 심하면 영구적으로 지속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여자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것은 머뭇거리는 게 아니라, 마치 영화에서 잔혹한 사형선고를 내리기 전의 악당처럼, 단지 드라마틱한 연출을 즐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생 회의적인 사람이 될 겁니다. 누구의 마음에도 머물지 못하고, 누구도 마음에 담아두지 못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