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이라는 게 중요한 이유
작년에 음악 비평 매체들의 연말 결산을 보다가 미역수염이라는 밴드를 처음 알았다. 내가 그동안 아무리 음악을 안 들었다 해도 이런 밴드를 어떻게 몰랐을까 싶었는데, 출산과 육아(부부 밴드였다) 때문에 꽤 긴 시간 공백을 가졌다고 한다. 게다가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밴드다.
아무튼 이들은 근래에 알게 된 밴드 중에서 제일 희한하다. 앨범 초반에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같은 슈게이징 밴드의 기시감이 전형적으로 느껴진다. 감기약을 허용량을 초과해서 지어먹고, 밀폐형 헤드폰으로 귀 막고 들으면 딴세상이 보이는, 그런 음악.
그런데 한 곡씩 넘기면서 점점 예상 못한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착 감기는 리듬과 자글대는 디스토션 위로 징징거리는 묵직한 트레몰로 기타가 얹히고, 주술적인 내레이션이 흐르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다가, 난데없이 목을 갈아대는 듯한 그로울링이 뚫고 나오는 순간에는 내가 지금 뭘 들은 건가 싶었다. 심지어 팝적이고 처연한 서정도 있다. 찾아보니 인터뷰가 있어서 읽어봤는데, 아내와 남편이 각자 해온 음악 스타일과 취향이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이런 결과물이 나온 듯하다.
창작자나 감상자 양쪽이 종종 간과하는 게 있다. 뭔가 아주 다르고 새로운 걸 하는 것보다는, 대개 하는 방법을 따라하지 않는 참신함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르적 관습을 따르는 것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답습하는 듯하다가 결국 배신한다든지, 또는 아주 큰 틀에서만 장르의 성격을 따르고 세부에서는 다 벗어난다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점과 안 좋아하는 점이 있다면 좋아하는 것을 더 적극적이고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다든지 하는 것. 이런 디테일에 집착하는 태도는 오히려 인간의 상상력이 한계에 달한 21세기에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적, 물리적 여유가 필요하다. 두세 시간 넘게 영화관에 걸려야만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영화가 있는 것처럼, 이런 음악이 있기 위해서라도 앨범이라는 포맷의 가치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한 곡의 음원으로만 소비됐다면, 첫 곡부터 마지막까지 일정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앨범의 맥락을 따르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은 음악인지 모르고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