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밟았다. 경성도서관 옛터 표식을 보고 사진을 찍으려고 뒷걸음질을 치다 바닥에 깔려있는 은행을 미쳐 보지 못하고 왼쪽발로 지르밟았다. 미끄럽고 물렁거리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엉거주춤 섰더니 은행은 반쯤 짓눌려 바닥과 맞닿은 부분이 찢어지듯 터졌고, 다행히 진물이 신발에 묻지는 않은 듯했다. 발걸음을 옮겨 이번에는 발 밑에 은행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원하던 사진을 찍었다. 만일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왼쪽발에 무게 중심을 이동했으면, 오늘 하루 종일 내 신발을 중심으로 나한테 시큼털털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을 거다.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십 년 전쯤이었나, 당시 팀장님이 '그래도 계속 맡으니 좀 구수하지 않니?'라고 했던 말에 기겁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 지금도 이 냄새는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 냄새나는 것을 참아가며 겉껍질을 까고, 또 나오는 속껍질을 까면, 술안주로 하나씩 빼먹기 좋은 은행꼬치구이가 가능해진다. 얼마 전 포차에서 지인들과 술 한잔 하며 안주를 몇 가지 시켰는데, 그중 가장 으뜸이 고소하고 쫄깃하고 소금을 솔솔 뿌려 짭조름하게 구워낸 은행꼬치구이라, 우리는 이모 사장님을 불러 세 접시인지, 네 접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계속 그것을 주문했다. 같이 주문한 소라찜도 조개탕도 게다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다른 안주들도 이 은행구이에는 범접하지 못했다. 은행을 하루 10알 이상 먹으면 좋지 않다는 누군가의 말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우리는 은행꼬치구이에서 꼬챙이를 조심히 돌려 빼고, 능숙한 젓가락질로 알맹이를 하나씩 집어 먹는 걸 멈추지 못했다.
기름에 구워 반질반질 윤이 나고 고소하고 맛있는 이 은행 알맹이가 인도에 떨어져 있으면 실수로라도 밟을까 봐 조심하게 되는 은행 지뢰와 같다는 것은, 게다가 밟혀 터지면 시큼털털한 냄새가 신발에 배고 거리에 온통 퍼져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 그 것과 같다는 사실은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둘은 서로 다르다. 이 둘은 애초에 하나였는데, 껍질을 까기 전과 깐 후라는 상태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김새도 촉감도 냄새도 제공하는 가치도 완전히 다른 별개의 존재로 인식된다. 과거 나무 위에 있었던 열매가 바닥으로 떨어져 터지면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가도, 그 모양이 멀쩡해서 알맹이 은행으로 거듭나면 인기 있는 음식이 될 수 있으니, 그 찰나의 갈림길에서 둘의 운명은 그 존재는 달라진다. 그러나 다시 시간을 돌려보면 그것은 원래 같은 것이었다.
은행 좋아하세요?
은행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쉬이 답을 하지 못했다. 어느 은행을 말하는 걸까? 바닥에 굴러다니는 지뢰 같은, 곧 터져서 냄새가 날 것 같은 저 물렁한 은행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겉껍질 속껍질을 다 까고 고소하고 짭조름하게 구워낸 반질반질한 저 알맹이를 말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대충 말한 건지 알 수 없어 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뭐든, 좋아한다면 인상 찌푸려지는 상태일지라도 좋아하는 게 진짜 좋아하는 거다. 주변에 길바닥에 널리고 널려 골칫거리인 저 흔해빠진 은행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이상한가? 그럼 강아지나 고양이나 새나 토끼나 사람은 어떨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려도, 커도, 늙어도, 못생겨져도, 쇠약해져도, 가난해져도 좋아하는 거다. 그 정도는 되어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거다. 그 사람의 외모나 조건, 겉 껍데기가 달라짐에 따라 내 마음이 변한다면 그건 포차의 은행구이 한 접시 정도밖에 안 되는 마음이다. 알맹이를 하나씩 집어먹고 빈접시가 되면 이모 여기 한 접시 더 주세요~ 하고 다른 것으로 홀라당 갈아타버리는, 맥주 한 병에 어울리는 딱 그 정도 크기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