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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Oct 22. 2023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본질

너에게 닿고 싶은 메시지, 그리고 그 너머의 진실

얼마 전 한 연주회를 보았다. 다양한 곡 중 연습곡을 작품화하여 단체로 연주한 곡이 있었는데, 연습곡이라고는 하지만 여러 명의 호흡이 하나로 모여 흐르니, 무대를 채우고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학생들의 정기연주회다 보니, 무대를 여러 번 서본 프로만큼의 노련함이나 무대장악력이 보이진 않았으나, 서로 눈을 맞춰가며 강약과 박자를 조절해 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좀 더 연습하고 고민해서 조만간 더 좋은 무대에서 프로로 거뜬히 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겼다. 그래서 연주가 끝나자마자 이 곡과 연주에 대한 설명이 궁금하여 팜플렛을 열어보았다. 거기엔 어느 교수님의 작품이라는 소개와 이 곡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연습곡을 통해 연주자가 어떤 성장을 했는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음, 그렇구나.' 하고 팜플렛을 닫았다.


무료 공연이든, 학생들의 정기연주회든, 무대가 마련되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연주를 하면, 그건 공연이고 동시에 예술이다. 그리고 연주자는 예술가가 된다. 예술은 무엇이고 예술가는 무엇인가. 두산 백과에 따르면 '예술은 주체적인 개물을 통하여 보편적인 표현을 하고자 하는 기술인 동시에 지적 활동'이라고 한다. 그날 내가 본 연습곡 연주는 악기를 통해 어떤 표현을 하는 기술임은 드러냈다. 그런데 이 예술활동을 통해 연주자들은, 공연기획자는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기를 바랐을까? 돌아가는 길에 무엇을 남기길 기대했을까? 


나는 내가 미약하게나마 느낀 것들을 팜플렛의 곡 설명을 통해 완성되기를 바랐다. 흡사 하이디부허의 설치 미술품을 보고 느낀 것들이 메이킹필름과 작가의 메시지를 보면서 더 강렬하게 정리되었던 것처럼. 작가가 그 설치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관객에게 닿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를 상상하고 알아챘던 것처럼. 그러나 그 팜플렛에는 내가 기대하던 표현의 의미, 메시지보다는 학과 수업 소개와 그 수업이 좋았다는 학생평만 있어 공허했다. 학생 모집을 위한 학과, 수업 소개 문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주를 보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감성은 이내 식어 사라졌다. 


25현 가야금을 처음 배우는 날이었다. 줄이 12현 가야금보다 훨씬 많으니 줄 간격이 좁았고 음계가 많아 눈으로 보고 맞는 음을 찾아서 뜯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첫 시간엔 한옥타브의 간격을 손가락을 느끼면서 느리게 그리고 빠르게 뜯는 연습을 했다. 눈을 감고도 바로바로 바른 음을 뜯을 수 있도록. 속도가 빨라질수록 눈은 손가락을 쫓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내 손가락은 마음과 달리 전혀 다른 음을 뜯고 있었고, 내 손가락은 아이가 된 것처럼 어눌해지고 귀여워져서 중간중간 웃음을 터트렸다. 한바탕 연습이 끝날 무렵 선생님은 "도레미파솔라시도 한 옥타브씩 뜯는 이 것도 연습이지만 예술이 될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기본, 기초를 다시 생각한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무대에서 연주를 하면 예술이 되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깨달았다. 그 연주회에서 내가 무엇이 아쉬웠고, 그들은 무엇을 놓쳤는지를.


아마도 내가 팜플렛에서 보기를 바랐던 것은 선생님의 말씀이었던 듯하다. 연습곡 연주를 통해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들의 첫날의 마음, 좋은 연주자가 되기 위한 기본과 기초의 중요성, 반복되는 노력을 통해 쌓아 온 음색과 안정적인 합주. 그 연주를 통해 이러한 보편적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면 무대는 예술로 완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연주를 통해 나의 첫날이나 기본에 대한 노력 같은 것들을 돌아보고, 켜켜이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내가 팜플렛을 열어본 순간 그 연주는 기술이, 연주가는 기능인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작은 곳이든 큰 곳이든, 보는 관객(독자)이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미적 측면과 기능적 측면은 물론, 관객에게 가서 닿고자 하는 것(메시지)은 무엇인지도 함께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나는 '왜' 이것을 하고 있는지 라는 고민과 맞닿는다. 그러니 늘 예술에 대한 고민과 물음은 '나'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 예술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27642&cid=40942&categoryId=3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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