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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Oct 30. 2023

기억하자

맑은 가을의 한복판에 성수동을 찾았다. 은평에 사는 나와 강남에 사는 친구는 중간즈음인 성수의 한 카페에서 만나 나는 글을  쓰고, 친구는 세미나 발표자료를 준비하기로 했다. 집에서는 푹신한 소파와 침대, 텔레비전들이 우리를 유혹하니 카페에서 공부하는 멋쟁이 코스프레를 해볼 참이었다. 오전의 성수동은 비교적 조용했지만, 점심 후 해가 조금씩 길어지면서 거리는 생기 넘치는 사람들도 북적였다. 저 브랜드가 성수에서는 이렇게 핫했단 말이야? 싶을 정도로 가게와 팝업스토어 앞에는 긴 줄이 생겼고, 북새통을 이루는 거리와 가게들을 지나며 한참을 구경하다, 나는 수업을 위해 친구는 출근준비를 위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리는 헤어졌다. 글을 쓰고 세미나 발표자료를 준비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널려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기 넘치는 사람들이 궁금했고, 친구를 만나고 싶었고, 핫한 카페의 커피와 디저트를 맛보고 싶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에 우리도 조금 동참해보고 싶은, 그래서 나도 이 시간을 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그냥 그 정도의 호기심과 행동력이었다. 우리가 성수를 간 것은. 


평소에는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나는 때때로 사람들의 활기를 즐겼다. 그 한복판에 서서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어깨와 어깨를 부딪치며 내 일행을 목청껏 불러보는 생명의 펄떡거림을 느꼈다. 따뜻한 봄날,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관악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바위 위에서 폴짝 뛰며 점프샷을 남겼다. 금요일 저녁 힙지로 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 맥주 한잔에 달달한 양념 갈비를 먹었다. 이태원 리움 미술관을 구경하고 나와 북적이는 편집샵을 구경하고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거리를 쏘다녔다. 그렇게 발이 아프도록 가족과 친구와 지인과 거리를 다니다 집에 돌아와 기분 좋은 피로감을 뜨끈한 샤워에 씻어내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행복감에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나와는 조금 다른 시간, 조금 다른 장소에 갔던 생기 넘치는 아이들은, 친구들은, 어른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왜 거기를 갔느냐고 궁금해하지 말자. 내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성수 골목을 굳이 주말에 친구와 간 것에 옹색한 변명과 이유를 구질구질하게 늘어놓지 않는 것처럼, 그럴 필요가 없는 것처럼, 네가 그날 그곳에 간 것도 나는 굳이 궁금하지 않다. 그러나 왜 나처럼 집으로 돌아와 쉬지 못하느냐고, 다음날 가족들과 식사하고 여느 때처럼 회사를 나가고 학교를 가고 친구들을 만나는 그 일상으로 왜 돌아오지 못했느냐고, 원통하고 원통하다.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에서는 '살아있는 세계에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면, 저승이라는 그 세계에서도 영원히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월의 마지막 날, 이태원에서 허망하게 스러져간 영혼들이 그 세계에서라도 사라지지 않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돌아오지 못했던 그날, 왜 돌아올 수 없었을지 물어보고 알아보아야 한다. 더는 가슴의 뻥 뚫린 구멍이 지나가는 가을바람에도 시리고 아프지 않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억은 추억이고, 애도이고, 지탱하는 힘이고, 예방이고, 치유이다. 그래서 미래로 이어진다. 그러니 기억하자. 기억에 아린 가슴이 더 미어진다면, 쥐어짜는 슬픔에 한 발 내딛을 힘조차 내기 힘들다면, 그래서 기억보다 외면을 선택하고 싶다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다가 시월 마지막날 그날만이라도 그들을 꾸역꾸역 기억하자. 기억하는 나로 인해, 영혼만이라도 그날은 편안히 귀가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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