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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Nov 02. 2023

내 글에 지분을 가진 이들에게 고맙습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자원화되는 것을 허락해 준 사람들에게

엄마는 7년 전 힘든 암수술을 견뎌냈고, 방사선 통원치료를 매일매일 해냈다. 그 수술을 기점으로 십 년 넘게 꾸준히 이어오던 수영을 끊었고, 좋아하는 목욕탕에 가는 것도 더 이상은 하지 못하고 있다. 5년이 지나 의학적으로 완치판정을 받은 지금도 칼이나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수술 통증이 가끔 예고도 없이 찾아와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매년 정기검진에서 이상 없다는 결과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하지만, 엄마는 암 진단 전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가족과 친척 외에는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았었고, 수술을 받았고,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통원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유를 물어봐도 '그냥~ 말하기 싫어.'라고 할 뿐 엄마의 동창, 수영장 모임, 다른 취미생활 모임의 친구들에게 왜 아팠던 것을 알리지 않는지는 잘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한 번의 질문 후,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렴풋이 그 이유를 추측해 본다. 말하는 순간 진짜 아픔이 되고 낙인이 되고, 암환자로 정상인과 다르게 구분되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닐까.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측은한 존재로 보이는 것이 싫어서가 아닐까. 그런 이야기들로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은 게 아닐까. 그래서 다른 핑계를 대고 괜찮은 척, 별일 없는 척하는 게 아닐까.


아빠가 아팠고 쓰러졌고 응급실에 실려가 중환자실에서 하루 두 번 면회로 겨우 얼굴만 잠깐 볼 수 밖에 없었던 시절, 그리고 얼마 후 돌아가셔서 이제 아빠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주변에 아버지가 아프다거나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된 그 일은 불행이 되어 내 가슴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질 것 같았다. 불인장이 되어 가슴을 태우고 영영 메울 수 없는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으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 이 세상에 아빠가 없다는 말을 나는 잘 못했다. 게다가 어딘가에는 살아있을 것 같았고, 내 입으로 그런 아빠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내 몸에도 암으로 의심되는 혹이 발견되었다는 그 이야기를 쓰면서, (검사 결과 암은 아니었다) 그때의 엄마가 생각이 났고, 엄마의 비밀은 내 글의 재료가 되었다. 필명으로 쓰고 있었고, 나는 출판한 작가도 아니었기에, 그게 큰 문제는 아니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지만, 브런치 북을 준비하면서 엄마의 이야기를 내가 글로 써도 되는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에 시달리며, 나뿐만 아니라 엄마의 이야기까지 대신 까발리고 있으니,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건 예의가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결국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되겠냐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연하지, 니 글인데."라고 했다. 그렇게 7년간 단단하게 봉인되었던 엄마의 비밀 아닌 비밀은 내 글로 인해 해제되었다. 그건 모성애라고도 할 수 있고, 자녀를 위한 희생 같은 걸 수도 있겠다. 엄마의 비밀이 자원화되는 것도 너니까 괜찮다는 거니,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를 믿고 사랑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내 글을 읽어줄 독자도 믿는다는 이야기다.


에세이를 쓰면서 어디까지 솔직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늘 해왔다. 솔직한 글이라고 해서 모두 독자에게 닿을 수 있고 사랑받는 것은 아니겠지만, 솔직하지 않게 숨기면서 쓴 글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독자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지 않는다면 몰라도, 쓴다면 적어도 거짓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가족과 내 친구들은 자주 내 글에 등장했고, 기억나지 않으니 그건 내 말이라며 지지했고, 좀 부끄럽다는 표현으로 응원해 주었다. 나라는 인간은 혼자 존재할 수 없기에, 늘 그들이 있어 사고하고 행동하고 반성하고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글을 쓰기에, 내 글에는 그들의 지분이 늘 존재한다. 많든 적든 그 지분을 나눠가진 자들은 나를 좋아해 주고, 응원하고, 감시하고, 지켜주고, 혼내기도 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 나는 다른 나일 때보다 더욱 조심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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