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의 프라도, 소피아 미술관을 보고
여행을 오면 그 도시의 유명한 미술관을 한두 군데는 꼭 가게 된다. 여행이란 자고로 새로운 경험으로 일상의 일탈을 꿈꾸는 것이니, 유명한 관광지 외에도 색다른 맛집, 소호몰을 찾게 되고 더불어 교과서나 책에서나 볼법한 예술품이나 유적을 찾아보게 된다. 재연이나 사진이 주는 감동과 진품이 주는 감동은 아무래도 다를 터이니. 이번 여행에서 사진과 진짜의 차이를 절실히 느꼈던 것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피카소의 <게르니카>였다.
마드리드에 와서 목표한 것은 프라도, 소피아, 티센 미술관 세 군데를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체력이나 동선, 시간을 고려했을 때 모두는 무리여서 프라도와 소피아를 갔다. 프라도에 간 것은 고야와 벨라스케스를 만나기 위해, 소피아는 피카소와 달리를 만나기 위해. 프라도 그곳은 발바닥과 허리를 아프게 할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있어고, 내가 보고자 한 고야의 사투르누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외에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작품들이 많았다. 왕가가 보유한 미술품들을 전시한 곳이어서, 그들의 초상화가 가장 많았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처음 만나는 순간, 기대보다 너무 큰 사이즈에 입이 떡 벌어졌다. 오죽하면 함께 간 친구는 오른쪽 하단의 강아지는 사진이나 책으로 봤을 때는 몰랐다며 놀라워했을까. 그 그림이 얼마나 크냐면, 내 눈높이에서는 그림의 우측 하단에 있는 강아지와 시녀가 가장 잘 보였고, 조금 위쪽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의 모습은 고개를 들어야 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왕과 왕비가 거울에 비친 모습은 거울일지 아니면 둘의 초상화일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이날 직접 봤을 땐 거울에 비친 모습이라는 생각이 더 진하게 들었다. 게다가 황실의 소속이면서 실제 주인공인 왕가 부부가 아닌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화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그린 획기적인 아이디어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생각하지 못한 것을 먼저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감동과 영감을 준다. 나도 내 인생 통틀어 벨라스케스의 시도와 같은 무언가를 남길 수 있을까?
프라도가 왕가가 보유한 초상화를 비롯한 바로크 시대의 예술품들을 모아둔 곳이라면 소피아는 그 이후 시대의 작품들이 모여있다. 좀 더 모던한 분위기에 오디오가이드에 따른 동선도 더 편리했다. 나는 시간 관계상 2층과 4층을 보았는데, 큐비즘에서부터 초현실주의까지 내가 좋아하는 달리를 비롯한 피카소 작품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피카소의 <게르니카> 작품은 미술관의 큰 벽을 한가득 차지하고 있어, 그림의 의도를 떠나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림의 의미를 생각하며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더 숨이 막혔다. 정치적인 합의 하에 폭탄을 투여한 게르니카 지역의 아픔과 슬픔을 그린 그림이었다. 어머니의 절규, 몸뚱이가 잘린 병사, 죽은 아이들과 불길, 사람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새겨진 그림이었다. 피카소의 분노가 절제된 흑백으로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직접은 아니지만, 전쟁을 겪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할머니 할아버지의 자손이기에, 그의 분노가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고 억울한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이 진행 중이기에,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동일한 고통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아렸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물과 음식과 따뜻한 보금자리라, 어느 순간 그게 전부일 때가 있다. 그러나 사는 지역이나 인종, 종교가 다르던, 살아가는 시대가 다르던, 천천히 살펴보면 어디서든 나와 비슷한 점을 사람들에게서 발견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아픔이 어느 순간 내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들의 기쁨이 나를 춤추게 할 수도 있다. 틀을 깨는 새로운 생각과 시도는 감탄과 존경을 자아내고,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나가면 휘발되어 버리고 말 기억과 순간들은 예술가들의 손에 의해 회화로 조각으로 글로 음악으로 기록되고 감동과 해석을 남긴다. 그래서 그들의 아트워크는 세월이 지나 나 같은 범인에게도 울림을 주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 우리의 생각들이 다시 모이고 성장하고 진화하여 이 시대를 기록하고 또 이끌겠지. 생각이 그리 미치자 지금의 내 생각도 잘 남겨두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더 잘 관찰해야지. 알고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올바른 것을 지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그게 글을 쓰는 사람의 사명이라는 거창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