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부터 이어져온 예술과 문화, 그리고 그걸 지켜온 사람들
마드리드에서 기차를 타고 그라나다로 이동했다. 기차역에서 긴 줄을 보고, 왜 저렇게 줄을 서나 했더니, 열차에 들어가는 순간 바로 이해가 됐다. 기차의 짐칸은 벌써 꽉 차서, 우리가 가지고 간 캐리어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다들 캐리어 넣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그렇게 긴 줄을 섰나 보다. 어쩔 수 없이 자리 앞에 캐리어를 두고, 그 위로 양반다리를 한채 3시간 반을 이동했다. 역시 잘 모르면 손발이 고생한다. 나중에 마드리드로 돌아올 때는 꼭 일찍 와서 줄을 서야지.
그렇게 오른쪽 다리를 폈다가, 왼쪽 다리를 폈다 하며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기차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마드리드와는 다른 노란 빛깔의 건물과 조명, 아기자기한 거리들을 보니 3시간 넘게 이동한 피로가 잊히는 듯했다. 우리의 숙소는 알고 보니 대학가 근처였고, 운 좋게 그날부터 3일간 힙하고 맛있으면서도 저렴한 레스토랑과 카페들을 편하게 즐겼다.
숙소 근처에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와 아저씨 중간정도 되는 분이 운영하는 슈퍼가 있었는데, 그분은 항상 웃고 있었고, 우리와 마주칠 때마다 늘 쾌활하게 인사했다. 우리는 영어로, 그는 스페인어로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소통을 시도했고, 결과 알함브라 맥주가 맛있다는 추천으로 6개들이 세트를 사기까지 했다. (결국 3병 밖에 못마셨다) 놀랍게도 그날 이후 아저씨는 나를 기억하고 그 맥주 맛있었냐고 물어봐주는 센스를 놓치지 않았다. 그 때나 그 이후로나 쾌활한 스페인 아저씨, 할아버지를 많이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그분들은 서로의 언어가 다른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가 아는 지식을 늘 유쾌하게 전달해 주고자 노력했다. 주차 자리 저기 있다고 손가락으로 알려주는 아저씨, 이 집 츄러스가 말라가 통틀어 제일 맛있다고 침 튀게 칭찬하는 아저씨, 여기 공사한다고 돌아가라고 알려주는 아저씨,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스페인 아저씨들은 발랄한 리트리버 같은 사람들인 것 같다.
그라나다는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 왔다. 그래서 한 달 전부터 입장권과 한국어가이드를 예약하는 정성을 들였다. 일찍부터 아침을 챙겨 먹고 가이드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나는 몇 년 전 체코에서 프라하 성에 가는 시간을 기억했다. 돌로 된 옛날 거리, 여행 기념품과 비싼 물을 파는 편의점, 맥주 로고가 그려진 간판, 어디든 옛날 동네에서 옛 왕조를 찾아가는 길은 나름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 알함브라 궁전은 들어가는 순간 다른 유럽의 성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마드리드에서부터 조금 지겨울(?) 정도로 봐온 기독교문화의 흔적들 (나는 그런 흔적을 재연한 기념품을 골라서 하나씩 사고 있었고, 친구는 그걸 예수님 굿즈라고 표현했다.)과는 대조적으로 이곳은 이슬람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슬람 궁전에 추가된 기독교의 흔적. 흡사 터키에서 보았던 아야소피아 성당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야소피아는 그와 반대로 동방정교회의 유물에 이슬람의 문화가 덧씌어져있다)
지금은 벗겨지고 빛이 바랬지만 그 옛날 화려했을 종유석을 닮은 장식, 물 위에 비친 아치의 모습과 화려한 벽타일에서 아랍의 발달한 수학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목욕탕, 수로,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보니 그 시절이 겨우 13세기였다는 사실에 내 눈앞의 문화재가 더욱 경이롭게 다가왔다. 지금은 비록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한 서구 문화가 전 세계를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아랍 문화가 당시에는 훨씬 선진적이었다는 사실은 이런 문화재와 역사적 사실 앞에서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스페인에서 아랍문화에 대해 감탄하며, 스페인이란 이국에서 아랍이라는 더욱 이국적인 모습에 푹 빠져들었다.
12월 그라나다의 아침은 추웠다. 핫팩에 모자에 장갑은 필수일 텐데 미쳐 그걸 챙기지 못한 우리는 4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들오들 떨 수밖에 없었다. 비록 눈은 호강하고, 입은 우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차가워진 손과 발을 다시 데우는 데에는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겨울 그라나다를 오게 된다면, 알함브라궁전은 낮~오후 시간 관람을 추천한다. 아침은 너~~~어무 춥다.
알함브라 궁전은 내부의 아름다운 건축과 시설을 볼 수도 있지만, 성 니콜라스 전망대에 올라 도시 야경과 함께 외관을 감상하는 방법도 있다. 그곳은 그리 넓지 않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저마다의 스타일로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돌벽 위에 걸터앉은 사람, 서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 타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사람, 군것질 거리를 사 와 맥주와 먹는 사람. 모두 각자의 스타일대로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사진을 찍고, 어디가 여름 궁전인지, 어디가 카를로스 5세 궁전인지를 헤아려보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그 당시에는 더욱 황홀했을 궁전을 거의 천년이 지난 지금도 구경하고 감탄할 수 있는 것은 이곳을 접수한 이사벨라가 궁전을 허물지 않고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 궁전은 이교도의 흔적이지만,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느 수준 이상의 경지에 오른 예술의 힘이 아닐까 한다. 비록 중앙의 카를로스 5세 궁전이나 곳곳에 덧씌워진 기독교 문화의 흔적이 있어, 당시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재연하여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고 보호할 줄 아는 너그러운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감사했다.
나는 13세기의 술탄 무함마드와 15세기 이사벨라, 그리고 수많은 건축가와 예술가, 그 이후 수많은 스페인 사람들의 노력에 감사하며 그라나다의 거리를 혼자 걸어보았다. 문화재를 지키는 사람들, 조용한 성당에서 속삭이듯 사진 찍기를 부탁하던 커플, 좁은 골목을 묘기 부리듯 운전하는 버스 기사 아저씨, 책가방을 메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대학생들, 골목마다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서점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마트와 하몽을 고르는 부부, 그 모든 걸 아주 잠시라도 내 것으로 만들어볼 심산으로 필름카메라로 여기저기를 찍었다. 아직 현상도 하지 않아 결과물을 예측해 볼 수는 없지만, 벌써부터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다 찍은 롤을 보물이라도 된 듯 보관하고 새 필름을 갈아 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