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르하 바다 위의 태양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첫 도시, 네르하에 도착하다

by 니나

네르하에 도착했다. 유럽의 발코니가 있다는 아름다운 바다마을이라고 들었다. 이국적인 산과 평야를 구경하며 그라나다에서부터 한 시간 이십 분 정도 차로 달리니, 이삼 층높이의 하얀색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의 산과 평야는 올리브나무 같은 나지막한 나무들이 듬성듬성 나있어, 나무나 풀로 가득 찬 한국의 산과 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 만으로도 달리는 풍경에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흐른다. 그라나다에서는 아침 기온이 영하까지 내려갈 정도로 추운 12월이었지만, 이곳은 Costa del Sol (태양의 해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직 여름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거리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반바지에 반팔 차림이었고, 그늘에서는 패딩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보다 먼저 우리 눈을 사로잡은 건 저 멀리 시릴정도로 파란 바다와 그 위에 뿌린 굵은소금처럼 하얗게 빛나는 태양빛이었다. 우리는 한 시간여 만에 갑자기 겨울에서 여름으로 이동했다.


바다 마을에 걸맞게 해산물로 푸짐한 점심을 먹고 숙소에 체크인한 후, 우리는 Balcon de Europe (유럽의 발코니)라는 곳으로 왔다. 지형적으로 모래바다 사이로 튀어나온 바위절벽 같은 곳인데, 지도를 보면 아기 배꼽처럼 작은 땅이 톡 튀어나와 있다. 가장자리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좌우로 키 큰 야자수가 두 줄로 서있었고, 그 끝에는 지금이 12월이라는 걸 상기시켜 주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 야자수 뒤로는 햇빛을 바라보며 와인, 맥주, 차 같은 걸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었고, 다른 한쪽으로는 바다멍을 즐길 수 있는 벤치들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본다. 왼쪽으로 저 먼 곳 불쑥 솟은 산을 보고, 그 산자락 아래로 눈길을 옮겨 하얀 맨션들과 야자수들을 감상한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샷시가 없는 베란다들에 비스듬히 들어가고 있는 햇빛과 그 빛들을 받아내고 있는 화초들이 보인다. 드문드문 널어둔 빨래들이 한가롭게 늘어져있는데, 이곳의 일상들이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다. 조금 더 걷다 보면 그 옛날 화포를 재연한 듯한 대포가 하나 있고, 둥그런 난간으로 반쯤 기대어 사진을 찍거나 바다를 보고 있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어디선가 바쁜 노동의 일상을 보내다, 그 노동으로 번 시간으로 이곳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사람들일 테지. 뒤로는 로망스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는 클래식 기타리스트의 선율이 들린다. 그의 구슬프고 서정적인 선율은 바다 위에 빛나는 햇빛을 더욱 반짝이게 만든다.


우리도 이 한가로움을 만끽하기 위해,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이동하여 맥주를 주문한다. 필리프 들레름의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의 ‘첫 맥주 한 모금’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맥주 첫 모금의 감동이 아쉬워 나는 계속 맥주를 마신다. 하지만 맥주잔에 가둔 태양빛이 점차 줄어들기 때문에, 빠르게 맥주잔을 비울 수는 없다. 입 안의 향연만큼이나 눈의 호사로움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Dos cervezas (맥주 두 잔)과 책이면 점점 길어지는 햇빛을 조금 덜 아쉬워할 수 있다. 따가운 태양 때문인지, 그 태양빛을 머금은 맥주 때문인지, 사람들의 얼굴은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고, 걸음걸이는 더 느긋해진다.


이 한가로움은 잔잔한 먼바다 수평선과 마주한다. 수평선을 바라보다 와인을 기울이는 외국인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지만 둘 다 어색하지는 않다. 그렇게 우리는 이방인이지만 어느샌가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맥주잔에 사로잡힌 태양 빛처럼 나는 이 기분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이 한가로움 안에서 글을 쓰고 있다. 맞은편 친구는 2024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을 읽으며 때때로 바다와 산, 사람들에게 눈길을 옮기기도 한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동행이 있음을 감사하며 짭조름한 절인 올리브를 맛본다. 그새 태양이 조금 더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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