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힐리아나에서는 느릿느릿한 산책을 해보세요
Costa del Sol (태양의 해안) 그 첫 번째 동네 네르하에서 여러 얼굴의 태양을 만났다.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듯 이글거리는 한낮의 태양, 하늘과 하얀 건물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였던 과감한 예술가의 모습인 해 질 녘의 태양,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수줍어하듯 찾아온 아침의 태양을 만났다. 특별한 것 없이 그렇게 태양과 바다만 실컷 본 우리는 다음날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론다였는데, 그전에 네르하에서 조금 내륙 쪽, 고도가 높은 지역에 있는 프리힐리아나라는 동네를 가기로 했다. 지도상에 세로로 길게 형성된 작은 동네, 여러 블로그나 SNS에서 아름답다고 소문난 동네, 거기서 우리는 모닝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프리힐리아나는 산 쪽에 붙어있는 동네였지만, 바다의 네르하 못지않게 태양빛이 가득하기를 넘쳐 이글거리는 동네였다. 전망 좋은 레스토랑들이 몰려있는 그곳에 주차장이 마침 있어, 안심하고 차를 댄 우리는 동네를 조금 돌아보았다. 카페의 커피맛은 스페인 커피가 그렇듯 약간 싱겁고 썼다. (그래서 설탕을 녹여먹으면 딱 적당한 진하기의 달달한 커피 맛이 나온다) 태양은 너무 뜨거워 선글라스와 모자가 없이는 견디기 힘들 지경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흰머리가 가득한 은퇴한 커플들이었고, 빨간색 커플티를 입었거나, 기념품 가게에서 산 것으로 보이는 볏짚 중절모를 함께 쓰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커플템을 장착하는 것이 왠지 부끄럽고 민망한데, 여행에서 커플아이템을 즐기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움이 보여 부러웠다.
가볍게 커피를 마신 우리는 카페 뒤쪽에 산책하기 좋아 보이는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맛있다는 빵집을 구글 맵에서 찾았기 때문인데, 그냥 이 동네를 뜨기도 왠지 아쉬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건물은 새하얗고 바닥은 회색과 흰색, 베이지색 자갈들로 기하학적인 무늬가 그려져 있었고, 길과 건물의 경계에는 푸른 나무와 꽃 화분들이 줄지어 있었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기념품가게에는 각기 색다른 엽서와 자석, 러그, 꿀, 가방, 직접 그린 그림 같은 것들이 걸려있었고, 가게 앞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가 한 마리씩 있었다.
12월 북반구의 고양이는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당연한데, 이곳은 고양이에게도 어지간히 뜨거웠나 보다. 데워진 자갈돌바닥을 피해 가게 안에 있거나 화분 그늘 사이를 지나다니는 모습이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나른한 표정으로 꾸벅꾸벅 졸거나, 두 발을 모으고 식빵을 굽거나, 관광객을 신경 쓰지 않고 유유히 지나가는 모습에서, 여기서 사랑받고 있는 동물이라는 티가 났다.
곧 지도에서 본 빵집을 찾았고, 크로와상을 발견한 우리는 기뻐했다. 그간 갔던 스페인의 카페나 빵집에서 크로와상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같이 먹으면 더 좋았을 Cafe con leche (카페라테, 우유를 넣은 커피)는 이미 뱃속으로 사라져 없어졌지만, 기쁜 마음에 한 입 가득 물었다. 앗 그런데 이게 뭐지?! 예상하지 못한 단맛이 빵 사이에서 느껴졌고, 확인해 보니 크로와상 중간에 달달한 크림 같은 것이 들어가 있었다. 어이쿠, 단 걸 좋아하는 스페인 사람들! 이곳 빵집에서도 어김없이 달달한 무언가가 들어가 있었고, 단 것도 먹어보자며 같이 샀던 뱅오쇼콜라는 갑자기 존재 이유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맛에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렇게 우리는 기분 좋게 골목을 빠져나왔다.
프리힐리아나는 길에서 만난 고양이처럼 약간은 나른하고, 한가롭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동네였다. 이곳에서는 천천히 기지개 켜가며, 길가에 줄 서있는 화분의 꽃에도 시선을 두었다가, 벽을 흰색 페인트로 보수하는 사람들의 손짓도 보았다가, 동네 꿀이나 누가(Nougat) 같은 것도 한두 개 장바구니에 넣고, 직접 그리거나 만든 예쁜 그림과 물건들도 감상하면서 시간을 느릿느릿 쓰기를 바란다. 이 동네를 비추는 태양만큼이나 마음이 따끈해지고, 고양이 같은 느긋함이 생겨나, 앞으로의 여행이 좀 더 풍요롭고 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