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공구조물의 아름다운 조화, 론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절벽 마을

by 니나

상상을 초월하는 작은 시골 동네, 론다에 왔다. 남부 스페인을 오는 사람이라면 꼭 론다를 방문하면 좋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언젠가 꼭 이 동네를 다시 방문할 예정이다.


실은 따뜻한 햇살과 반짝이는 바다가 너무 예뻤던 네르하를 하루 만에 떠나 왜 이런 시골동네로 오는가, 그것도 2박이나 할 정도가 되는가?라고 속으로 잠시 생각했었다. 손발이 금세 차가워지는 체질이라, 겨울이면 따뜻한 곳만 찾아다니는 나나 친구 컨디션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지중해 바다에 좀 더 있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도착해서 다음날 론다 마을을 둘러보니 (전날 저녁에 도착했다) 내가 뭘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싶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옹졸한 생각을 하다니! 친구의 계획은 완벽했고, 론다는 이틀을 있어도 충분한 도시였다. 나는 앞으로 그녀의 계획에 절대 토를 달지 않을 생각이다. (물론 입 밖으로 뭐라고 하진 않았다. 그냥 네르하의 햇빛이 너무 좋아 잠시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다.)


론다는 아찔한 협곡과 그 협곡을 가로지르며 두 마을을 연결하는 높은 누에보 다리로 유명한 곳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가장 오래된 투우경기장이 있고, 이 동네를 사랑한 헤밍웨이의 자취도 찾을 수 있다. 누에보 다리는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짧다. 그러나 그 길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다리 난간으로 고개를 살짝 들어 그 너머를 보면, 두꺼운 난간이 나를 받쳐주고 있어도 절로 오금이 저려진다. 수십 미터일까 수백 미터일까 잘 감이 안 오는 좁고 깊은 협곡에 아찔하다가, 눈을 들어 절벽 끝을 보면 아슬아슬하게 매달리듯 하얀 집들이 절벽 끝에 줄지어 있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테라스에 나갈 때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 들지는 않을지, 빨래가 바람에 날아가 협곡밑으로 떨어져 영영 안녕인 건 아닌지, 별별 상상을 하면서 협곡 사진을 찍고 있는 핸드폰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조금 더 걸어 다리를 건너면 사람들이 모여있는 전망대가 있다. 그곳의 난간에서 이번엔 반대방향으로 누에보 다리를 보니, 그 다리의 위엄에 입이 딱 벌어졌다. 깊은 협곡을 이은 다리의 높이에 놀라고, 그 다리가 18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감탄한다.


다리를 보고 나서 우리는 근처 호텔의 루프탑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스페인 사람들이 밥 먹는 2-3시에 거기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전망을 즐겨. 그때가 한가해서 정말 끝내줄 거야.”라고 장담하듯 말하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말이 생각나 그곳을 찾았다. 강렬한 햇빛이 비추는 테라스로 나가니 또다시 ’아!’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거기서는 투우경기장 전체를 전망할 수 있었다. 원형 경기장과 아치형 기둥들, 지금은 경기가 열릴 때가 아니기 때문에, 넓은 공간을 둘러보는 몇몇 관광객들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고 커피를 홀짝였다. 왜 하필 사람과 소의 대결일까. 게다가 어느 한쪽은 죽어야 끝나는 죽음의 게임. 그 게임의 잔인함을 상상하니 어디선가 비릿한 피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하지만 투우는 강인한 스페인의 상징이고 오래된 문화이니 지지냐 반대냐 라는 흑백 선택 앞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그렇다 보니 그곳에 머무는 동안 감탄과 불편함, 그 애매모호한 감정들이 계속 나를 불편하게 했다. (찾아보니 투우는 소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조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우리 자리는 투우경기장을 내려보기 제일 좋은 자리였는지,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내 어깨너머로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그 카페에서 친구는 론다를 검색하다, 헤밍웨이를 발견했다. 그가 이곳을 좋아했고 산책로가 있다는 정보도 알려주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의 산책길을 따라 걷고 싶어졌다. 그가 걸으며 구상했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소설을 생각하며 작가의 기운을 받고 싶어졌다. 그래서 친구와 헤어진 나는 두 가지 목표를 위해 길을 나섰다. 하나는 헤밍웨이의 산책로를 따라 걷기. 두 번째는 협곡 아래에서 다리 사진 찍기. 나는 글 쓰는 사람인 동사에 사진 찍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결과적으로는 둘 다 실패했다. 이렇게 아쉬울 데가! 산책로는 공사 때문인지 입구를 막아두었고, 협곡 아래로 내려가기에는 중간에 들른 성당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하여 누에보다리 전망대까지 갈 수가 없었다. (산길을 걸어야 했는데, 그랬다간 깜깜한 밤이 되어 돌아오는 길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론다는 멋지고 경이롭고 동시에 아쉬운 동네가 되었다. 한국에서 쉽게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보니, 그게 어디든 충분히 보고 열심히 즐기고 싶지만, 그게 어디 쉽나. 그래서 어디든 아쉬움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도시엔 그게 좀 많이 남을 듯하다. 하지만 미련이 생겨 자꾸 돌아보게 되면, 그 마음은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는 동력이 되겠지. 그래서인지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오고 싶은 곳은 자꾸 무언가를 남기게 된다. 마드리드에서는 티센 미술관을, 네르하에서는 유럽의 발코니에서의 일출을, 그라나다에서는 별사진을, 말라가에서는 피카소 박물관을 남겨두었다. 론다에는 헤밍웨이 산책로와 누에보 다리 사진을 아쉬움으로 남겨두었으니, 그 미련으로 다시 스페인을 와야지.


친구는 주차장에서 결국 차를 긁었다. 노상주차장이 아닌 건물 주차장으로 호스트가 매우 선심 쓰며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긴 한데, 어둡고 가파르고 좁은 그곳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아 뱅글뱅글 돌다가 결국 많은 기둥 중 하나에 긁혀버리고 말았다. 유럽의 구시가지는 워낙 운전과 주차가 까다로워 예상했던 일이라 그리 놀라지는 않았지만, 진땀 뺐을 친구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그래서 렌터카는 무조건 Full coverage로 보험을 들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론다에 아쉬움과 상처를 가득 남기고 마지막 도시 세비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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