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축 성탄

스페인 세비야에서 성탄 자정 미사를 보다

by 니나

12월 연말에 여행 가자는 친구의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그럼 크리스마스는 어쩌지?’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천주교였고, 현재 나는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 전례부(미사시간 사회 보는 것과 비슷한 역할) 활동을 하고 매년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아이였다. 그래서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좀 각별하다. 내 남자친구가 되는 사람은 생일만큼이나 크리스마스를 잘 챙겨야 했고, 동시에 가족끼리 카드와 선물을 주고받는 명절 같은 날이기도 했다. 12월이 다가오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고, 찬바람이 분다 싶을 때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을 매일 들었다. 그런데 그런 크리스마스를 남자친구도, 가족도 없는 먼 타지에서 보낸다고? 전혀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사진으로만 본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던가 광장이나 백화점에 있는 크고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것을 천주교 본고장인 유럽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아예 없진 않았다. 그런데 남자친구도 가족도 없이 나 혼자? 물론 혼자는 아니다. 친구와 함께 하니까. 아무튼 가고 싶다는 설렘과 가족과 남자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뒤섞여 친구의 달콤한 제안에 흔쾌히 답을 하지 못했었다.


그. 러. 나. 지금 나는 스페인이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이브에 그 유명한 세비야에 있다니! 여행을 오면서 요구했던 일정 중 하나는 ‘성탄 미사를 대성당에서 보는 것’이었고, 그걸 위해 친구는 마드리드 - 그라나다 - 남부 작은 도시들 - 세비야, 이렇게 루트를 짰다. 그리고 난 오늘, 아니 방금 성탄 자정미사를 보고 왔다. 성당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 자정 즈음에 성탄 특별 미사를 지낸다. 이날은 예수님이 태어난 특별한 날이니, 미사가 좀 더 화려하다. 수년 전 명동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자정미사를 기다렸던 그때를 돌아보면, 성가대와 오르간 연주의 하모니로 크리스마스 전통 캐럴을 들을 수 있었고, 주교님의 입장은 향과 함께 장엄했다. 운 좋게 중앙 복도 쪽 자리를 앉게 되어, 주교님 퇴장할 때 악수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몰랑하고 따뜻하던 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날을 상상하며 세비야 대성당을 찾아갔다.


11시부터 입장이라고 하여 10시 45분경 성당 앞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줄은 짧았다. 어렵지 않게 복도자리를 차지한 나는 혼자지만 용감하게 성호를 긋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관광객으로 보이는 중국인과 일본인 가족들이 내 옆으로 줄이어 자리를 잡았다. 세비야의 성탄 미사를 체험해보고 싶은 관광객의 모습이었다. 성당을 오긴 했지만, 생김이 많이 다른 서양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할지 우물쭈물했을 텐데, 비슷하게 생긴 동양인이 자리를 잡자 냉큼 그 옆 자리를 차지한 것 같아 보였다.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던가. 세비야 대성당은 그 자체로 웅장하고 화려하고 멋있었지만, 미사는 그렇지 않았다. 명동성당만큼 공들인 성가대 합창이나 파이프오르간의 화려한 연주는 없었다. 물론 일반 성당의 보통 미사와는 다르게 사제가 많았고, 성가도 멋있긴 했지만, 뭐랄까 내가 기대한 그런 와우 하는 부분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이불 안에서 나오지 않는 친구를 억지로 끌어내 같이 왔더라면 엄청 미안했을 뻔했다. 그래도 주교님의 눈을 바라보고 성체를 모신 것은 뜻깊은 경험이었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장소에서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평화의 기도를 나누는 경험은 특별했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 미사 시간 내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그들의 2024년이 더 빛나고 아름답기를 바랐다. 그렇게 세비야의 성탄자정미사라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나는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에게 주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날 아침이 되면, 나와 남동생은 머리맡이나 트리 밑의 선물을 찾아 뜯어보는 것으로 설레는 하루를 시작했다. 어떤 날은 머리맡에, 어떤 날은 발밑에, 어떤 날은 커튼 뒤에서 선물을 발견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과 나는 소리 지르며 선물을 뜯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빨간 장화모양 플라스틱 안에 든 종합과자선물세트가 기억나는데, 하나씩 골라 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 해의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그해 나는 산타로부터 종합 문구세트를 선물 받았다. 그냥 세트가 아니라 중국레스토랑 테이블처럼 빙글빙글 돌리면서 원하는 문구를 찾는 형태였다. 세상에! 너무 멋있었다. 손으로 돌리면 돌아가다니! 게다가 펜, 연필, 가위, 자, 그런 문구들이 선명한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디자인이 통일되어 있었고, 산의 나무처럼 규칙적으로 꽂혀있었다. 빙글빙글 돌리다가 맘에 드는 문구를 꺼내서 적어보고 잘라보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그러다 가위 하나가 잘 들지 않는 걸 발견했는데, 내 손가락 힘으로는 가위질을 하기 힘들 정도로 뻑뻑했었다. ‘산타가 선물 준 건데 어쩌지? 산타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도 없는데, 이 가위가 내 힘으로는 벌어지지 않는 걸 어떻게 이야기하지?’ 잠시 고민한 나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어른들은 이걸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 가위에 기름칠을 하거나 뭔가 나사를 푼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지.’ 그래서 나는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가서 말했다. “엄마, 이 가위가 잘 안 돼.” 식사 준비로 바빴던 엄마는 힐끗 보더니 “응 그거 요 앞에서 산 거야, 밥 먹고 같이 가서 바꾸자~ 괜찮아.” 아침밥을 먹고 난 후, 나와 엄마는 아파트 앞에 있던 장난감과 문구류를 파는 커다란 가게에 가서 잘 움직이는 가위로 바꿔왔다. 나는 그날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너무 충격적이라 그날은 말을 못 했지만, 가위를 가져가서 직접 바꾸는 엄마를 보면서, 산타는 엄마였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기억나진 않지만, 그 사실을 동생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의 산타를 향한 동심은 산산 조각났다. 그리고 동생의 동심도 산산조각 냈다. 물론 똑똑한 동생은 그 후에도 산타를 믿는 척해서 계속 선물을 받았지만 말이다.


지금은 겨울만 되면 술안주처럼 그 이야기를 꺼낸다. 그럼 엄마는 그때마다 낄낄거리며 몰랐다고 기억도 안 난다 하고, 동생은 누나덕에 세상을 일찍 깨달았다며 나를 타박한다. 그날 문구 세트를 선물해 준 건 산타는 아니었지만, 지금 이 나이가 되어 나는 새삼 산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산타 행세를 하기도 하고 산타대신 선물을 준비할 테지. 수십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수십 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산타가 없는데, 어떻게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산타를 믿고 지키려고 이렇게 노력할 수 있을까? 분명 어딘가에서는 숨어있든 존재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거나 돌아다니며 머릿속을 조정하는 건 아닐까? 나는 나의 귀여웠던 옛 모습에서, 지금의 아이들과 부모들의 행복한 얼굴에서 산타가 분명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그 산타가 배가 불룩하게 나오고 하얀 수염이 덥수룩하고, 정말 코가 빨갛게 빛나는 루돌프와 함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산타는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로는 이론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어디선가 아이들이 준비해 둔 우유와 쿠키를 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착한 아이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서 밤하늘을 날고 있을, 그런 산타가 어딘가는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산타가 나의 엄마, 아빠 모습으로 어린 시절 잠시 왔다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 산타가 오늘은 또 다른 어려운 이들에게도 나타나길 바란다.


자정미사에서 주교님의 기도말이 궁금해서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았다. 그게 바로 크리스마스의 정신이 아닌가 싶어, 여기에서 모두와 공유하고자 한다.

“전쟁이나 빈곤, 거리의 고통 속에서도 그들에게 예수님의 빛과 하느님의 선하심이 나타나 주님의 사랑이 그들에게 힘을 주실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합니다. 그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우리가 연대를 통해 마음을 활짝 여는 것을 그들에게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모든 산타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


모두에게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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