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아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보고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린다. 뛰고 있어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가슴이 두근거려 뛰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멀리서 들려오던 천둥소리는 심장 박동에 맞춰 땅을 구르다 뿌리를 타고 올라가 가지 끝으로 뻗어 부싯돌에 반짝이다 사라진다.
거친 숨소리에 고개를 돌리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는 계속 채근한다. 달려 달려라.
숯불에 달궈진 구두를 신은 죄 많은 여인은 계속해서 춤을 춘다. 구두에 발이 닳아 사라지고, 혈관을 흐르는 피가 빨간 부채가 되어, 여인을 기억하는 이가 없어질 때까지. 기억이 기억을 잡아먹어 상념에 젖은 파랑새가 날아가고 텅 빈 소리가 가득해질 때까지
일렁이는 불꽃에 그림자가 하얀 벽에서 춤을 춘다.
엄지손가락 한마디 만하던 그림자는 천둥소리를 먹고 커져 손바닥만 해지더니, 어린아이가 되고 여인이 되고 황소가 되고 신이 된다.
거대해진 신은 천둥소리에 맞춰 온몸을 비틀고 손뼉을 친다.
마룻바닥 모래가 진동으로 튀어 오르더니, 숨죽인 사냥꾼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의 총부리가 화염을 내뿜고, 놀란 사슴은 튀어 오르듯 달리기 시작한다. 달려 달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달려야만 해.
천둥소리에 땅을 구르고 공기를 흔들고 귀가 찢어진다.
내가 떠나기 전 너의 가슴과 내 등에 흐르던 땀방울이 침대 위로 떨어지는 순간,
사냥꾼의 총알이 사슴의 심장을 관통했다.
무대 조명이 꺼지고 그림자 신이 사라진 지금, 사슴의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다. 그 심장은 마룻바닥 아래에 누워 다음 재물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