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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Aug 08. 2024

오히려 더 좋아!

뜨겁고 유쾌한 여름날 드라이브

하루 세 번식 샤워를 하고 있다. 차에 에어컨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빨래하는 날이 되지도 않았지만 입을 속옷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해가 뜨면 30도가 넘는 요즘, 뉴스를 틀면 온열질환으로 쓰러진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는 요즘, 나는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차를 몰고 다닌다. 태양이 내리쬐는 방향에 따라 2개 혹은 4개 창문을 열고 조금이라도 들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려 애쓰면서, 핸드폰 내비게이션 소리에 기대어, 빵빵거리는 차소리에 움츠러들지 않으려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말이다. 


그 일이 발생한 건 2주 전 신촌 한겨레교육센터에서 수업을 마치고 시동을 걸었을 때다. 시동은 걸렸는데, 차 중앙에 있는 LCD가 아무 반응이 없는 거다. 원래는 가로로 3~4개쯤 되는 줄이 생기면서 반짝이다가 이내 내비게이션, 라디오, Apple car play 같은 메뉴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냥 깜깜했다. 이상하다 싶어 시동을 껐다 켜기를 서너 번 반복하고. 화면 아래 가로로 조금 긴 버튼이 있길래 그것도 꾹꾹 눌러보고, 그 아래 있는 다른 버튼들도 눌러보았다. 그러나 무슨 짓을 해도 반응이 없다. 기계는 때려야 말을 잘 듣는다고, 화면 위를 툭툭 쳐도 여전했다. 에이~ 일단 집으로 가자. 내비게이션은 핸드폰으로 보면 되지 뭐 하고 출발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좌우 깜빡이를 켰지만 조용했다. 똑딱똑딱 그 소리가 나야 하는데.  나는 다시 브레이크를 잡고 내려서 불이 들어오는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소리가 안 났을 뿐 방향등은 들어오고 있었다. 문제는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았다. 아마도 운전을 하기 위한 기본 적인 것을 제외한 전자장치스러운 것들은 모두 나가버린, 그런 기묘한 상황.  결국 창문을 열고 핸드폰 네비에 의존하여 어색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신촌 밤거리를 지나 집까지 겨우 차를 몰고 왔다. 더 큰 문제는 집 주차장에 도착해서 발생했다. 후방카메라가 안 되는 거였다. 당연하지. LCD가 나갔는데 카메라 화면이 나오겠냐. 어쩌지를 속으로 다섯 번쯤 반복하다가 뒤보다는 앞이 낫겠지 싶어 전면주차를 했다. 운전석 창문을 끝까지 내리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차가 선안에 잘 들어가는지, 옆차를 긁지나 않는지를 주의 깊게 살피며 앞뒤로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긴장을 한 탓인지, 집으로 갔더니 등과 엉덩이가 땀에 축축했다. 앞으로 어쩌지 같은 고민은 내일 하기로 하고 일단 잠을 자기로 했다. 아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일은 친한 동생 S와 함께 파주로 놀러 가기로 했던 것이다. 그것도 내.차.로. 


아~ 망했다. S에게는 차가 문제라 내일 좀 늦을 수도 있다고 카톡을 보내고 여기저기 검색해 봤지만 문제가 뭔지 모르겠다. 차가 과열돼서 그럴 수도 있으니 내일 한번 확인해 보면 괜찮지 않을까 라는 남자친구의 말에 억지로 안정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이 되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시동을 걸었는데, 여지없이 똑같았다.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하라는 데로 해봤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컴퓨터가 문제가 있는 거 같으니 센터에 와서 확인해 봐야 알 수 있겠단다. 아마도 공장초기화를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지금 오더라도 해결하고 바로 차를 가져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망했다. 다행히 집 근처에서 쏘카를 빌릴 수 있었고, 나는 20만 원 가까이 되는 거금을 내고 (서울 주말이라 그렇게 비싼 거겠지) 부랴부랴 차를 한대 빌렸다.


아무튼 그날 이후 매일 외출 때마다, 차를 가져갈지 대중교통을 탈지 택시를 탈지 고민하고 이동거리를 계산해 보며 차열쇠를 째려보고 있다. 운이 좋을 때엔 지하철을 타고 '역시 이 맛이지~'라며 에어컨 바람을 쐬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주 금요일 탄 버스에서는 그다지 운이 좋지 않았다. 아저씨 에어컨 좀 세게 틀어주세요~라는 한 승객의 말에, 지금 최대로 튼 거예요~라는 기사님의 말이 내 머리 위를 지나가는 걸 들으며,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로다 주문을 외었다. 그리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오른쪽 기둥을 잡았다. 옆에 있던 남성분은 그 기둥에 몸을 기대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낯설고 뜨뜻하고 어쩌면 축축할지도 모르는 몸에 손이 닿는 건 싫어서 팔을 쭉 뻗어 기둥 위 쪽을 잡았다. 그렇게 막히는 이 길을 어서 지나가기를 빌고 있는데, 어느 순간 그분이 머리를 기대는 거다. 내 푹신한 손등이 베개 같았을까. 분명 이게 기둥이 아닌 건 알았을 텐데. 머리를 들지 않고 그대로 기대고 있다. 잠든 것도 아니고 핸드폰으로 게임하면서 말이다. 손등은 뜨끈해졌고 닿은 그 남자의 머리는 축축했다. 거기다 계속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등과 어깨, 머리에 낯선 기운들이 후끈거리며 붙었고, 나는 천천히 그 손을 꺼내 간신히 잡을 곳을 찾았다.


시간은 걸렸지만 결국 목적한 정류장에 도착했고 버스를 가까스로 탈출했다. 그러니 그다음 날 뜨거운 태양빛을 보면서도 기어코 차를 끌고 나간 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운전석 시트에 등과 엉덩이가 데워질지언정, 내가 익숙한 그 자리에서 땀띠가 났으면 났지, 낯선 이의 숨결과 땀냄새와 축축한 피부를 더 느끼고 싶진 않았다. 하필 그날은 이동하는 내내 운전석 쪽으로 태양빛이 이글거리며 쏟아지다 보니 팔은 빨갛게 익어가고, 그게 싫어 문을 올리면 내 얼굴이 익어갔다. 문을 열고 닫고를 반복하며 지하철을 탈걸 그랬나 버스를 탈걸 그랬나 끊임없이 혼자 중얼거렸다. 누가 보면 어디 아픈 사람인가 했을 거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차 안에서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이동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이동하고 그러기를 반복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깜깜한 밤이 되었을 때, 모임이 파하면서 어디로 어떻게 가세요 라며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 차로 모두 근처 지하철 역까지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물론 밤이긴 하지만 아주 더울 거라는, 야외주차장에 뒀기 때문에 타자마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나의 경고가 이어졌다. 그래도 가까운 곳이니 같이 가자고 의견이 합쳐졌다. 그날은 7월 사진 스터디가 끝나는 날이었고, 아쉬워진 우리는 곧바로 헤어지지 못하고 떡볶이와 치킨을 먹으며 깜깜해질 때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인승 차량에 딱 5인이 맞춰 타고 4개 창문을 모두 열고 달리니, 갑자기 대학시절 선배의 티코를 타고 가평으로 엠티 갔던 일이 생각났다. 서울을 벗어났을 때였는데 바로 옆을 달리는 덤프트럭의 바퀴가 우리가 탄 차 만했다. 나는 그 바퀴를 코앞에서 보면서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창문을 얼른 닫았었는데, 그랬더니 실내가 곧 더워져서 다시 창문을 열었었다. 더워죽나 깔려 죽나 그게 그거지 뭐 하면서도 그 바퀴가 너무 무서워 앞만 보고 갔었던 기억이 났다.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90년대 아빠차 탄 거 같아요. 그땐 창문을 돌려서 열었었나. 생각보다 바람이 괜찮네. 선루프도 열어봐요. 우리 놀러 가는 거 같다. 같은 이야기들을 하며 아주 시끌벅적 난리가 났다. 혼자도 아니고 5명이나 탄 차니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는 평안한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최대한 브레이크를 세게 밟지 않으려고 노력했더니 운전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급기야는 차선을 바꾸며 스무스하게 횡단보도 앞에 브레이크를 잡고 섰더니, 찐 것처럼 4명이 모두 오~라는 감탄사와 함께 박수를 쳤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아주 짧았던 우리의 신나는 드라이브가 끝나고, 나를 제외한 모두는 이야기했던 지하철역에 우르르 내렸다.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감사하다 인사하는 분, 팔을 위로 뻗어 크게 좌우로 휙휙 저으며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분, 차가 다시 출발할 때까지 봐주시는 분, 약 십여 분간의 즐거웠던 서울 도심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시 조용해진 차 안을 주변 차 소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나는 왠지 멋있는 어른이 된 것처럼 왼쪽 팔을 창문에 걸치고 오른쪽 한 손으로 밤거리를 운전했다. 머릿속에 맴도는 음악 하나를 흥얼거리면서. 


그날도 어김없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옷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찬물로 샤워를 했다. 머리에서는 땀이 흘러 얼굴을 적시고 있었고, 등과 겨드랑이는 땀에 젖어 냄새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래도 좋았다. 왜 하필 이런 더운 날 에어컨이 안 나오는 거야. 왜 하필 내 차가 그런 거야. 궁시렁거리며 다녔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S와 갔던 파주 1박 2일도, 뜨거운 여름 한복판에서 함께 했던 사진 스터디도, 아스팔트 열기와 서늘한 밤공기의 마블링도, 짧았던 5명의 도심 드라이브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4년 7월 말 8월 초 가장 더운 여름의 한복판에, 다들 시원한 곳으로 피서를 떠나던 휴가철, 나는 에어컨이 고장 난 차를 타고 한없이 궁시렁거리고 원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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