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 속에 숨은 진실
스산하고 축축한 안개가 잔뜩 껴서 민소매 티셔츠 밖으로 드러난 팔이 조금 쌀쌀하다고 느껴지는 여름 같지 않은 날이었다. 간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창문을 조금 열어둔 채 아이들은 이불을 덮고 잤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싱크대 작은 창문으로 밖을 보니 벌써 해가 떴을 시간인데도 구름이 껴서 그런지 어둑어둑하다. 거실에 켜둔 텔레비전에서는 내일부터 본격 적인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남편이 집을 나서면서 진영이 볼에 자기 볼을 비비적거렸더니, 녀석은 엎드린 상태에서 엉덩이를 천장 쪽으로 쭉 내밀고 얼굴은 여전히 베개에 파묻은 채 투정을 부리고 있다. 그 옆에 라희도 어느새 일어나 앉아 눈을 비비고 있다. 이 녀석들 잘 잤어? 진영이 엉덩이부터 톡톡 두들기며 일어나 세수하라고 욕실로 보내고, 라희의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쓱 쓰다듬어 귀 뒤로 넘겨주고 이마에 뽀뽀했다. 라희도 일어나야지.
여름 감자가 맛있어서 두부와 호박을 넣고 심심하게 된장찌개를 끓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추리알 장조림을 꺼내고 된장찌개를 한 국자 씩 덜어 밥과 함께 내놓는다. 당근, 브로콜리 같은 채소를 싫어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잘 먹어주는 바람에 아침 시간이 그리 소란스럽지는 않다. 조금 전에 꺼내둔 옷을 진영이가 혼자 입는 것을 곁눈으로 보면서 라희 머리를 빗어 넘겼다. 라희는 오늘도 아빠가 생일날 사준 분홍색 원피스를 입겠단다. 어제 그제도 입어 서 목 주변이 꼬질꼬질해졌는데 기어코 오늘도 입는다고 고집을 부린다. 오늘은 유치원 끝나고 아빠 집에 가서 자는 날이니까 꼭 그래야 한단다. 어쩔 수 없이 그럼 오늘만 입고 빨래하기로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진영이를 먼저 보내고 시계를 보니 8:33분이다. 승영이가 연락도 없이 늦을 애가 아닌데 왜 이렇게 늦지?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라희 유치원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걸쳐 매고 채비를 마친 라희 손을 잡고 길 건너편 승영이 집으로 갔다. 라희 아빠이자 내 동생인 승영이는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 길을 두 번 건너면 보이는 빌라에 산다. 부모님이 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열 살이나 차이 나는 남동생을 아들처럼 어르고 달래고 혼내가며 키웠는데, 아직도 이 녀석 뒤치다꺼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올라왔다. 아차, 라희도 있는데 이러면 안 되지. 일 층에 승영이 택배차가 있는 걸 보니, 퇴근한 건 맞는데 왜 이리 꾸물대고 연락을 안 받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벨을 누르고 속으로 하나 둘까지 센 다음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승영아. 집안은 조용했다. 이름을 부르며 두리번거리니 화장실 문이 열려있었다. 그곳에서 승영이는 밖으로 나오려다가 쓰러진 듯, 한쪽 팔을 문밖으로 뻗은 채 엎드려 있었다. 허옇게 드러난 승영이의 등 맨살이 갈색으로 탄 팔뚝과 대조되어 차가운 대리석 조각상처럼 보였고, “승영아!” 나의 외마디 외침과 함께 분홍색 원피스가 나풀거리며 승영이 쪽으로 날아갔다.
승영이가 쓰러진 지 2주가 지나고 있다. 혹시 잃어버릴까 봐 그날 라희 손을 꽉 잡고 같이 구급차를 탔다. 고모를 부르고, 남편에게 연락하고. 진영이는 언제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십 분 거리에 사는 고모가 먼저 도착했고, 남편은 회사가 멀어 한 시간이 훌쩍 넘어 도착했다. 넋이 빠진 나를 보고 남편은 라희랑 고모랑 일단 집에 가 있으라고 하며 병원을 지켰다. 그날 이후로 승영이는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끼고 누워있다. 얼핏 보면 가만히 누워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기이한 모습이다. 입은 반쯤 벌려있고, 평소 깔끔한 모습과 달리 털이 얼굴에 듬성듬성 나 있고, 몸에는 튜브 관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 모습을 라희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라희에게는 어린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아빠가 치료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밤 더 자면 아빠가 집으로 올 거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손쓸 수가 없다는 첫 번째 A 대학병원 말에 우리는 승영이를 다시 구급차에 태우고 다시 B 종합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위험한 혈관이 터진 거라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태라고. 의사가 하는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뇌혈관, 동맥, 장기기증, 지주막하, 파열, 그런 단어가 귀에 닿았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 안에서 소리를 듣는 것처럼 의사 말소리가 웅얼거렸다. 혹시 환자 의식이 기적적으로 돌아온다면 병원이 뭐라도 해볼 텐데 지금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고. 기다려? 그래 기다려 보자. 기다리는 거야. 기다려 보면 승영이가 혹시 깨어날지도 몰라. 그렇게 쉽게 포기할 승영이가 아니야. 기도를 외듯 중얼거렸다. 기다려 보자. 기다리면 되는 거야.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사이 승영이 머릿속에 퍼진 피는 점점 뇌를 압박했고, 몸 이곳저곳에서 이미 변형이 일어나고 있었다. 며칠 지나 의사는 승영이가 워낙 건강하고 장기가 튼튼해서 이 정도 버티고 있다고 했다.
승영이는 이 일을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했었다. 집에서 가깝고, 야간 근무라 아이를 낮 동안 볼 수 있었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월 500 정도 수익은 보장한다고 했다. 사람 좋은 휘재 선배가 자기도 이 일 하면서 바닥 다졌다고 한번 해보라고 추천했다고 했다. 작은 회사도 다녀보고, 백화점에서 판매원도 하고, 콜센터에서 영업도 해보고, 고깃집에서도 일해봤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건 자기랑 맞지 않다고 했다. 사람을 만나는 대신 택배 상자를 들고 아무도 없는 밤에 새벽공기를 마시며 뛰는 기분이 좋다고 했다. 억지로 웃을 필요도 없고, 계단을 뛰어오를 때는 엉덩이와 허벅지에 근육이 붙으니 일석 삼조라고 했다. 서둘러 몸을 움직이다 해 뜨는 걸 보면 기분도 상쾌하고 곧 부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고 했다. 라희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돈도 좀 모으고 더 크기 전에 얼굴 많이 보고 싶다는 말에, 내가 저녁부터 아침까지 라희를 봐주기로 했고, 트럭 사는 데 보태라고 남편이랑 의논해서 천만 원도 보내줬다.
그러던 승영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눈 밑 다크서클이 심해진 건 그만둔 동료 기사의 물량까지 떠안으면서부터였다. 남양주에서 택배를 싣고 중랑구에 배달하러 가는데, 양이 많을 땐 밤새 두세 번씩 왕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점점 아침 퇴근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누나 미안해 오늘 라희 유치원 못 데려다줄 거 같아 누나가 좀 해주라 부탁해.라는 이야기가 늘기 시작했다. 사람 좋다던 휘재 선배는 우리 승영이가 거절 못 할 걸 잘 알았다. 그 지역 담당자가 그만두자, 승영이에게 그 일을 부탁한 것이었다. 어휴 이래서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니까. 라희 생일날 오랜만에 휴가 낸 승영이와 그런 이야기를 하며 맥주 한잔을 기울였다. 승영이는 고개만 숙이고 맥주를 두어 잔 연거푸 마셔댔다.
누나 매형 내가 요새 어떻게 사냐면요. 개 같이 살아요. 씨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는데, 해가 떠서 훤해지고 있는데, 아직도 트럭에 한가득 남은 걸 보면 돌아버리겠어요. 어쩔 땐 뛰다가 구토가 나와요. 울렁거려서 벽 붙잡고 웩웩거린 적도 있어요. 근데 뭐 먹은 게 있어야 나오는 게 있지. 핸드폰 볼 시간도 없는데, 휘재 선배는 아직 멀었냐고 좀 더 뛰라고 문자를 보내요. 선배가 할 때는 개당 1,200원이었는데 이제는 천원도 채 안 해요. 월 오백 보장 한다며. 이래서 언제 돈 모으고 집 사고 라희 대학 보내요? 지난달에는 배달 늦었다고 민원까지 들어와서. 아 진짜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얼마 전에는 택배 상자에 깔려 기절하는 꿈까지 꿨다니까. 정말 한다고 하는데, 다들 너무하네. 하아.
승영이는 술기운인지 화가 난 건지 얼굴이 벌게져서 평소 하지 않는 욕설까지 섞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승영이의 목소리에 혹여나 아이들이 깰까 봐 방문을 조금 열고 들여다봤다. 라희는 아빠가 선물해 준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채로 잠들었고, 진영이는 생일 파티 때 먹은 치킨과 케이크에 배가 부른 지 배를 드러내놓고 씩씩대며 자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애들 배까지 끌어올려 주고, 잠든 숨소리를 조금 듣다가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승영이 술잔에 맥주를 좀 더 부어줬다.
야 쉬운 일이 어딨냐. 네 매형 봐라~ 지난번 승진에서 떨어져서 동기 밑에서 일하고 있다. 아 그 이야기를 왜 또 해~ 아니 그러니까 당신도 고생 중이라고. 당신도 고생이야! 고생. 내년에는 다 괜찮을 거야. 응?
승영이의 한풀이는 남편의 승진 탈락 이야기로 넘어갔고, 좀 더 힘내자고 맥주를 두 병 더 꺼내왔다. 승영이는 조금만 더 버티고 라희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다른 거 알아볼 계획이라고 했다. 매형이 트럭 사는 것도 보태줬는데 좀 더 해봐야 한다며 눈 옆에 주름을 자글자글 만들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지원아, 승영이 들여다봤나? 아뇨 아직요. 지금 보호자 명단에 이름 적고 기다리고 있어요. 한 십분 있다 들어갈 거 같아요. 근데 고모 무슨 일 있어요? 다른 게 아니고 진영이가 내일 학교에 리코더를 가져가야 한다는데 그게 어디 있을까? 다른 거 다 챙겼는데 그걸 못 챙겨서 진영이가 방을 다 뒤지고 있네. 엄마한테 물어보자니까 부득부득 지가 찾는다고 우겨서 지금 몰래 큰방에 와서 니한테 전화하는 거다.
아차. 며칠 전에 빨래를 가득 들고 거실을 나오다가 바닥에 놓인 리코더를 못 보고 밟아 넘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승영이를 보러 하루에 두 번씩 병원을 오가다 보니, 집은 엉망이고 애들은 여전히 어지르고 있고, 승영이는 깨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속상하고 억울해서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그때 너무 열받아서 리코더를 현관으로 집어던졌었는데. 입 부분이 깨져서 다시 사야지 하고 버렸던 것을 진영이가 찾고 있는 거였다.
고모, 그거 없어요. 망가져서 제가 버렸어요. 지금 주문하면 내일 바로 올 거예요. 네네. 끊을 게요. 이제 곧 들어가야 해서요. 승영이 보고 집으로 바로 갈게요. 집에서 만나요. 고모.
엄마라는 사람이 이렇게 정신이 없다. 이번 주에 리코더 시험 있다고 했는데. 그걸 까먹었다. 내가 던져서 망가뜨려 놓고 잊고 있었다니, 정말 나라는 인간은 최악이구나. 핸드폰을 켜고 앱을 열어 리코더라고 검색하고 맨 위에 뜨는 인기 제품을 선택했다. 와우 배송이라 내일 아침 도착 보장이라고 한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주문한 앱이었다. 카드도 등록되어 있고 주소도 저장되어 있어서 구매하기 버튼을 옆으로 한번 쓱 밀면 끝이었다. 그런데 그 화면에서 멈춰 섰다. 옆으로 밀어서 구매하기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걸 누르면 우리 승영이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 승영이가 택배 상자에 깔려 기절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영영 못 찾을 것 같았다.
승영이는 여전했다. 눈만 뜨면 될 것 같은데, 2주 전으로 돌아갈 것 같은데. 승영이 몸에는 튜브와 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옆에 있는 기계는 언제 들어도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승영이를 붙들고 있었다. 거대한 거미줄에 붙들려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 승영이 손을 주무르다 팔을 세게 흔들어 보았다. 승영아 일어나야지. 귀에 대고 말을 걸어보았지만, 승영이는 아침에 본 것과 똑같은 얼굴로 입을 반쯤 벌리고 누워있기만 했다. 십수 년 전 엄마와 아빠도 이렇게 누워있었었다.
돌아오는 길, 평소 다니던 길과 다른 길을 돌고 돌아 집으로 왔다. 리코더를 파는 마트와 문구점을 찾다 보니 집과 점점 멀어졌고, 습한 날씨에 발걸음이 무거워 집에 돌아오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땀인지 비인지에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소금에 절인 생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영아 승영아!
흰 가운을 입은 두 명의 의사는 저승사자처럼 서서 승영이가 숨을 거두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들은 보수적인 기준으로 관찰한 끝에 뇌사라는 진단을 내린다고 했다. 더 이상의 연명은 의미가 없으며, 승영이의 장기는 이미 망가지고 있으며, 그나마 기능을 하는 남은 장기도 모두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이번 주 중으로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옮기면 좋겠다고 했다.
마음은 어떻게 단단히 먹어야 하는 거지. 귀를 틀어막고 저 소리를 안 들으면 좋겠는데. 누가 저 입을 좀 막아줬으면 좋겠는데. 우리 승영이는 아직 살아있는데, 왜 저렇게 이야기하는 건데. 저 기계를 누가 좀 떼줘요. 승영이가 답답해서 못 일어나잖아. 왜 왜 왜 우리 승영이한테 하필 왜.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여보! 우리 승영이 어떡하지 여보? 라희한테는 뭐라고 해? 왜 자꾸 우리보고 나가래? 나가면 어디로 가는거지. 여기는 병원이잖아. 사람 살리는 병원. 우리 승영이는 왜 안 살려주는 건데. 왜. 왜.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열대야라고는 해도, 밤은 돌아다닐 만하다. 택배 상자를 내려놓고 턱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쓱 닦아내며 옆에 있는 프레시백을 집어 들었다. 아직 요령이 없어서 그렇지, 좀만 익숙해지고 부지런 떨면 월 5백만 원은 금방이야. 이 일을 소개해 준 친구의 목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그래 좀 만 더 힘을 내자. 대출 이자도 갚아야 하고. 아 그런데 오늘은 좀 지치네. 이제 막 이 일을 시작한 남자는 가져온 프레시백을 오른쪽 안쪽 구석에 던져 넣었다. 쌓여있는 택배 상자를 보면서, 저게 다 내 돈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문을 닫았다. 끼익 하는 철문의 마찰 소리가 밤공기를 날카롭게 갈랐다.
주로 에세이를 쓰지만, 가끔 소설도 쓰고 시도 씁니다. 가끔이라고 한 건 쓰는데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쓰고 나서도 드러내기에 부끄러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선보이는 글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만 올리는 매거진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부디 제 글이 즐겁게 행복하게 슬프게 아프게 밋밋하게 아무쪼록 읽는 분들에게 어떤 감정으로든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잔잔하던 호수에 던져진 작은 조약돌처럼 제 글이 작은 파동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