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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치료제, 독이 든 성배인가

요한 하리의 <매직필>을 읽고

by 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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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커다란 곰돌이 같은 남자친구가 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는 삶은 계란 같은 볼살이 두 덩이 붙어있고 동그란 콧방울과 도톰한 귓불, 볼살에 밀리지 않은 동그란 눈이 있다. 살짝 뒤쪽에서 보면 만화 짱구의 뒤통수를 닮기도 했다. 얼굴만큼이나 몸매도 동글동글해서 어깨도 배도 어디 하나 각지거나 납작한 곳이 없다. 어쩌다 앞에 있는 줄 모르고 정면으로 온몸이 서로 부딪혀도 튀어나온 코 같은 곳만 아니면 물렁한 탱탱볼에 닿은 듯 탱~ 하고 튕겨져 나온다. 그 넉넉한 배와 가슴은 2년 전 회사로부터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통보 메일을 받았을 때 따뜻한 위로를 주었다. 어린 시절 커다란 곰인형을 끌어안고 마구 비비적거릴 때의 안도감, 푹신하고 몰랑거리는 것이 주는 유쾌함 같은 감각들이 밀려들어왔었다. 그 이후 불안하거나 긴장이 되면, 이를테면 배가 고프기 시작했는데 식당 줄이 길다거나, 조마조마하며 쓴 지원서의 결과 메일을 열어본다거나 할 때, 나는 그의 팔에 붙은 지방덩어리를 조물조물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던 그가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애착 인형 같은 위안을 주던 지방들이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더 건강해지고 날씬해질 곰돌이를 보리라는 기대도 있지만, 조물조물하며 긴장을 달래던 나는 이제 그 지방들과 안녕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못내 아쉬웠다. 그가 다이어트를 결심한 건 순전히 건강 때문이었다. 늘어난 몸무게로 허리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고 혈압이나 고지혈증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건강 문제가 아니라면 나는 그의 현재 모습에 크게 불만이 없다. 아주 가끔 아쉬울 때가 있기도 하다. 사주고 싶은 옷이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거절할 때나, 여행지에서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스냅사진을 찍었는데 결과물이 맘에 들지 않을 때에는 (여행 스냅사진의 샘플은 주로 늘씬하고 훈훈한 외모의 커플들이 차지하고 있어, 그와 우리는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은근히 그런 결과물을 기대하는 실수를 범한다) 우리가 좀 더 날씬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그는 성공했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매일 빠짐없이 2시간씩 유산소와 근력운동을 했고 샐러드와 한식 위주로 철저하게 식단을 관리했다. 아주 가끔 치팅데이를 만들어 치킨이나 피자, 떡볶이 같은 것을 먹기도 했지만, 그 이후엔 더 매섭게 운동과 식단을 관리했다. 그러기를 1년, 그는 15킬로그램 감량에 성공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목이 길고 가늘며 바지 위로 올라오는 두툼한 뱃살이 없어 한층 옷맵시가 살았다. 다만 모든 사진에서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사진 속 그는 어딘가 우울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예상한 것처럼, 그에게는 요요라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오랜 기간 식단관리와 운동에 지쳤는지 설 연휴에 선물 받은 유과와 강정을 몇 개 집어먹던 그는 선물 받은 한 상자를 폭식했다. 그 이후로 말 그대로 입이 터져 치팅데이에만 먹던 음식들을 평소에도 먹기 시작했고 금세 원래 몸무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 5킬로가 더 쪄서 인생 몸무게를 갱신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는 다시 2차전에 돌입했다. 그때의 몸매를 되찾고 비만을 탈출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진행상황은 참담하다. 같은 양의 운동과 유사한 식단 조절로만은 그때처럼 체중이 줄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의 애착 지방들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두고 조금 안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이 현상에 대해 불안이 생기기 시작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데 왜 안 빠지지? 뭐가 문제인거지? 혈액순환인가? 염증인가? 아니면 처방받아먹고 있는 우울증 약이 문제인가?


그러다 이 책을 발견했다. 작년 주식시장에서 핫했던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에서 만든 기적의 비만치료제를 요한하리가 직접 사용하며 느끼고 조사한 것들을 모아 발표한 비평적 글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참석한 파티에서 그는 사람들이 자신과 달리 너무 날씬해져 있어 깜짝 놀란 것이었다. 알고 보니 비결은 운동과 식단이 아니라 비만치료제였다. 어린 시절 절친이 비만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일찍 세상을 뜨게 된 것을 떠올리며 저자는 직접 치료제를 써보기로 한다. 이 책에는 그의 실제 경험과 함께 이 약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관여한 과학자와 이 약을 처방하는 의사, 사용한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글이 담겨있다. 비만 치료제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며 어떻게 발견되었는지부터, 치료제의 득과 실을 실제 사례와 전문가의 인터뷰로 꼼꼼하게 펼쳐놓았다. 포만감이 들어도 쿠키와 케이크를 한 입 더 베어무는 건 왜일까, 약은 이 포만감을 어떻게 다시 되찾아오는 걸까, 비만이 불러일으키는 해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렇다면 단순히 이 약으로 식욕을 억제하고 살을 빼면 다 해결이 되는 걸까, 우려되는 부작용은 무엇이 있을까, 애초에 우리는 왜 과식을 한 걸까, 우리 몸을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몸을 사랑하는 것과 체중을 줄이는 것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을까, 일본은 왜 비만율이 낮을까, 우리 자녀에게 이 약을 처방해 줄 수 있을까, 와 같은 비만치료제 처방을 고려할 때 떠오르는 다양한 질문과 불편한 사실들을 다루었다.


책을 읽으며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던 한 가지는 초가공식품을 거리낌 없이 아이에게 먹였다는 저자의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이들의 건강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학교의 식단 같은 것들이었다. 작년에 보았던 미국 엄마의 아이들 식사, 도시락 준비 릴스 영상이 생각났다. 그 영상에서 엄마는 흰 빵에 샌드위치 햄을 넣고 치즈를 넣고 다시 빵을 덮었다. 설마 저걸 애들 식사라고 주는 거라고? 에이 농담이겠지, 어그로를 끌려고 저런 걸 만든 거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퍽퍽하고 맛이 없어 보였고, 무엇보다 신선한 야채나 과일도 없었고 탄수화물이나 단백질도 좋은 것들이 아니어서 아이나 학생들에게 좋은 식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게 미국의 현실이라는 거다. 그야말로 미국의 비만율이 높은 게 한 번에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그러면서도 감정적으로는 계속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런 급식을 하는데 부모들이 들고일어나지 않는다고? 초가공식품의 위험을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너무 좋은 사례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입장에서는 이해 밖에 있는 너무 극단적인 예시였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에 열이 날 정도로 화가 났다.


다이어트가 평생 숙제인 나와 남자친구 그리고 당신은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우리가 살이 찌는 건 그저 게을러서가 아니고,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건 의지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그러니 과체중, 비만이라고 쉽게 놀림감이 되거나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유전자와 체질과 상황이 다르니 가장 건강한 몸무게와 신체지수는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디어가 내뿜는 날씬한 몸매에 대한 동경과 초가공식품 중독을 불러일으키는 기업의 마케팅에 맹목적으로 현혹될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사랑하고 돌보아야 한다. 지금 내 곰돌이가 이토록 고생을 하는 것은 어린 시절 잘못 끼어진 단추가 음식을 욕망하게 만들었고, 몸은 한번 찐 살을 절대 내보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인 거였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다이어트에 성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이어트에 대한 기존의 단단한 이미지들을 쥐고 흔들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무지하고 맹목적인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알고 고민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비만 치료제를 써서라도 일단 비만의 위험에서 벗어날지, 비만치료제의 부작용을 인지하고 아무튼 운동과 식단으로 돌아갈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다이어트를 그만두고 생활을 개선하고 내 몸을 사랑하게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초가공식품을 권하는 기업과 정부에 항의하는 운동을 펼칠 수도 있으며, 소아비만을 방지하고 어린이를 위한 생각을 더 하게 될 수 있다.


인간이 발명한 것이 병과 재앙을 일으키고 그것을 또 다른 인간의 발명품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이 이상한 구조가 영 꺼림칙하다. 가장 건강하고 바람직한 것은 자연에 가까운 것일 텐데,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나와있다. 생각과 의지만으로는 돌아가기 힘들 정도로 멀리. 그러니 이 책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비만과 다이어트에 대해 어떤 생각으로 어떤 방법을 선택할지를 좀 더 수월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친구들과 토론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책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인데, 내 눈앞에 독인지 약인지 아리송한 마법 같은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니 말이다. 저 약을 냅따 집어 들어 말아, 책을 다 보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매직필 #요한하리 #비만치료제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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