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은의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읽고
컵에 물이 가득 차서 조금만 더 따르면 외벽을 타고 주르륵 넘칠 것처럼 글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 있을 때가 있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이미 가득해 툭 건들면 튀어나오던 때가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쓰고자 하는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막막하다. 아니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있지만, 아직은 이게 무엇인지 모호해서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 든다. 언젠가는 끄집어내어 글로 만들고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부족한 기분이다. 돌 안에 숨어있는 형체를 발견하고 해방시키는 조각가가 되기 위해 뭐가 더 필요할까.
연휴 마지막날 차를 몰고 당진으로 향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차가 막힐 것 같았지만, 슬럼프에 빠진 곰돌이가 신리성지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탁 트인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좋아했다. 그래서 잔디밭을 보며 조금 휴식하다 해가 지기 전에 일찍 돌아오는 일정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예전에 추천받았던 쑥콩국수를 점심으로 먹기로 했다. 국수를 먹고 차를 빼서 동네를 빠져나오려는데 '오래된 미래'라는 책방이 눈에 띄었다. 시골 작은 읍내에 오고 가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은 곳, 그러니까 매출 걱정이 되는 위치였다. 하지만 그런 곳에 있는 책방은 오히려 책방지기의 취향과 공간이 주는 매력이 풍부해 사람들이 부러 찾아오는 경우들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돌려 다시 그곳을 향했다.
연휴라서 그런 걸까, 요즘 MZ들 사이에 텍스트힙이 유행이라 그런 걸까, 의외로 그리고 예상대로 책방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도 그 무리에 섞여 들어 이곳저곳을 탐닉했다. 입구의 오래된 책들을 전시해 둔 공간을 지나면 독서와 글쓰기 책들이 사람들을 반긴다. 그 통로를 지나 안쪽으로 향하면 고전과 현대 문학, 에세이, 시, 예술과 건축 관련 책들이 딱딱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느슨하게 이어지듯 각자의 영역을 채우고 있었다. 안쪽은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앉아 볼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도 있었다. 그 많은 책들 사이에서 나도 본 책들, 제목을 들어본 책들, 알지 못하지만 흥미가 생기는 책들을 구경하는데, 나는 어느새 읽는 사람에서 작가를 질투하는 작가지망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슬럼프에 빠진 건 곰돌이가 아니라 나였다. 반짝이는 많은 이야기들과 더 빛나는 문장들로 무장한 책들을 보며 갈수록 잔뜩 위축되었다. 여느 때라면 한가득 책을 사들고 나왔을 텐데, 이날은 선뜻 책을 집어 들기가 두려웠다. 책을 읽으며 이야기에 푹 빠져들고 문장에 감탄하고, 어떻게 이런 책을 썼지 감동하다 그 마음은 부러움이 되고, 결국엔 또다시 나를 향할 것이다. '넌 여태 뭘 하고 있었니.'라는 자책.
그러다 서점의 입구에 있던 책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책들 사이로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라는 책이 보였다. 부제는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이었다.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크리스티앙 보뱅은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라고 했다. 아무튼 작가에게는 글쓰기가 용기이자 무기이자 열쇠 같은 것인가 보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을까. 그 책을 집어든 건 그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용기까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동안 스승이자 친구이자 동지들을 여럿 소개해주었다.
이 책은 작가가 경향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아 만든 책이다. 그래서인지 술술 읽힌다. 이미 잘 알거나 흠모하는 작가(버지니아 울프, 프리다 칼로, 수전 손택, 박경리)가 나오기도 하고, 잘 모르지만 읽다 보니 아, 이 사람!이라는 작가가 나오기도 하고,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도 있다. 책과 글쓰기를 가까이했던 당당한 여성 작가들의 일생을 대략 훑을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질 때 이야기가 딱 끝나는 아쉬움도 있다. 대체로 시련이 닥치고 (사회, 가족, 병) 결단을 내리고 모험을 떠나며 (이민, 독립, 도전) 결국엔 보상을 받거나 승리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사회 변화를 이끄는 등) 비슷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연재되는 칼럼으로 한 편씩 읽는 것이 아니라 책으로 모아 읽게 되니 그러한 반복에 독서가 조금 지루해지는 경향이 있다. 25명이나 되는 사람의 작가로서의 일생을 한정된 분량에 맞춰 정리한 것이다 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연재글을 모은 책에 느껴지는 아쉬움이 이번에도 조금 있었다. 유사한 구조가 반복되다 보니 앞에서 감명받은 부분이 뒤에서 잘 기억나지 않는 부작용도 조금 있었다. 물론 그 부작용은 나의 부족한 기억력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메모하는 게 필요하다.
반면 이 책은 여성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적합하다. 맞닥뜨린 시련이나 그걸 이겨내는 방식, 혹은 성취한 부분에서 끌리는 것들이 생기는데, 이 책 외에 좀 더 검색해 보고 다른 책들을 뒤져보게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더 좋아지는 작가가 생기고, 그 작가가 쓴 책들을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두게 된다. 지금 당장 봐야 할 책들이 쌓여있지만 도저히 저 책을 사서 읽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왜냐면 그 책이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으니까.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아마도 그 사람들의 인생도 바꿔버렸을 거니까. 그런 책을 나만 놓칠 순 없지.
그녀들의 글을 지금까지 사람들이 읽고 회자되고 그래서 이 책에도 등장하는 건, 결국 많이 읽고 매일 쓰고 계속해서 반문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싸웠다는 것 때문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발견한다. 시련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는 것은 '나만 힘든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으로 외로움을 조금 덜어내고 '나도 좀 더 나아질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품을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안갯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그녀들만큼 책을 충분히 많이 읽지 않았고 깊이 고민하지 않았고 매일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반성에 빠지게 하면서, 그것은 동시에 해결책이 된다. 심지어 그녀들은 '여자는 공부할 필요 없어.' 라거나 '여성은 대법관에 적합하지 않아.' 라거나 '여성의 이야기는 신변잡기일 뿐이야.'라는 사회 편견과도 싸워왔다. 그에 비하면 나는 훨씬 유리하고 운이 좋은 상황이다.
글을 씀으로써 버지니아 울프는 '나는 이제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했다. 이사벨 마옌데는 '마흔 살이란 나이는 격정적인 삶을 살기에는 이미 늦은 나이, 그나마 주어진 기한도 얼마 남지 않은 나이'라고 우울해했지만 그 이후에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다 <영혼의 집>을 집필하고 작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나딘 고디머는 '우리는 모두 정치와 정치적인 책략이 만들어낸 산물이며, 작가는 무엇을 쓰든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되고 사회적 상황이 형상화를 통해 무언가를 가르치게 된다'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차별 정책에 대항해 싸웠다.
남녀를 불문하고 무언가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외로움을 덜고 다시 해보자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무슨 책을 읽을지 고민인 사람은 어마어마한 책들을 뽐뿌 받아 책을 과소비하게 될 것이다. 그냥 하루가 좀 심심했던 사람들은 멋진 사람들 속에 롤모델을 찾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노벨문학상을 탔거나,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문제를 전파했거나, 미국의 여성대법관이 된 사람들에 대한 지식을 추가하고 사람들 앞에서 아는 체할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또 많은 것을 금세 까먹어버렸지만, 읽는 내내 동지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내가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가벼운 마음에 흔들릴 때 두려움을 잡아주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와 동지라니! 어마어마한 일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정말 그랬다. 각자의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시시포스처럼 돌을 굴리다 옆을 보니 그녀도 나처럼 커다란 돌을 굴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기분이랄까. 그러다 둘러보니 여기저기 모두 각자의 돌을 열심히 굴려 올리고 있었다. 비록 내일 또 그 자리에서 돌을 굴리겠지만, 아무튼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자크 디네센처럼 기도해야겠다. '나의 삶이여, 나를 축복해 주기 전에는 그대를 보내주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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