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행운도 알아보는 자에게 먼저 갑니다 (6편)
유동룡 미술관에서 기어코 또 욕망템을 사고야 말았다. 포도호텔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수 풍 석 미술관과 방주교회를 본 그때, 건물은 사람과 물건이 머무는 실용적 의미의 공간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고 그곳의 사람과 물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주체적 존재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건물을 만드는 건축가는 자기 창작물을 통해 내면의 어떤 것을 표현하고, 보는 이와 머무는 이에게 건축가의 생각이 닿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 한편으론 예술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예술을 직접 의뢰하거나 살 수는 없었지만, 소유하고 싶은 마음을 대신 위로라도 하기 위해 그 도록을 샀다.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하며 주저하다가 그가 설계했다는 고급 주택 사진을 보고 (어디선가 멀리서 구경만 한 기억이 나는 그 주택!) 냉큼 결제했다. 언젠간 나도 저런 멋진 주택에서 살아볼 테다! 라는 욕망을 가슴에 품은 채.
전시회 도록은 그 전시가 끝나면 사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그게 어디든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가면 아주아주 비싼 가격이 아닌 한, 도록을 꼭 산다. 조금의 돈을 주고 거장의 작품들을 한데 모아 본다는 것도 엄청 멋진 경험이지만, 그곳을 나오는 순간, 다시 보고 싶어도 돌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전시회에 2~3시간 머물려 내 것인 양 봤던 그 작품을 소유하는 착각이라도 해볼까 싶어 도록을 구매한다. 처음엔 다른 데서 사기 힘든 아이템이란 사실이 매력적이었고, 모든 작품을 원하는 만큼 충분히 못 보거나 놓칠 수도 있으니 나중에라도 보자는 마음과 기념품을 구매하는 기분으로 결제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는 좀 더 탐욕적이다. 널 가질 수 없다면 너를 찍은 사진(분신)이라도 갖겠어. 그래서 몇몇 도록은 로란의 욕망템이다.
엄마의 욕망템은 분재 화분과 난이다. 고향 선산에서, 동네 뒷산에서, 길 가다 마주치는 아기 소나무나 단풍나무를 보면 엄마는 ‘우리 집에 가자~’라며 소중하고 연약한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안듯이 조심조심 데리고 온다. 그리곤 비어있는 화분에 심어 물을 주고, 정해진 시간에 햇빛과 바람을 쏘게 해주고, 밑동이 좀 더 두꺼워지기를, 이끼가 잘 자리 잡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매일 몇 번씩 오가며 분재에 말을 걸거나, 내가 집에 가면 건강하게 뿌리 내린 분재들을 수학 백점 맞은 자식 이야기하듯 신이나 자랑한다. 시장에서 삼사천원 하는 난을 사 와서 돌에 붙이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사 온 멜론 사이즈만 한 돌하르방도 결국 돌인지라 엄마의 난 키우기에 희생되었는데, 머리와 가슴팍에 난을 붙여 그 뿌리가 머리카락처럼 하르방 얼굴을 감싸고 있다. 인디아나존스 영화에서 보던 정글 속 오래된 유물 같아 보이기도 하고, 물에 빠졌다 나와 미역 머리가 된 사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애써 키우던 분재가 기운 없어 보이고 시들해지면, 온통 그 분재에 맘을 뺏겨 말을 걸고 애정을 쏟다가 ‘아이고 무소유, 무소유, 법정 스님 무소유’라며 혼자 주문을 외기도 한다. 엄마가 분재를 좋아한다는 말에 남자친구가 늠름하게 자리 잡은 소나무 분재를 선물한 적 있었는데, 한참 지나 나에게만 속삭이듯 ‘나는 저렇게 완성된 것보다, 내가 만들어 키우는 게 좋아’라고 했었다. 그걸 보면 욕망은 꼭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에 깃든 애정과 정성, 그리고 그것과 함께 달라지는 성장 과정이기도 한 것 같다.
남자친구의 욕망템은 카메라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는 이야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이 된 그 카메라를 사용할 줄도 몰랐지만 간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러던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중고로 팔아버려 지금도 아쉽다는 이야기, 20살 친구들과 벚꽃축제를 갔는데 친구가 가져온 카메라에 반했고 이번에 그 모델을 재현한 새 카메라가 출시되니 꼭 사야 한다는 이야기, 찍고자 하는 감성과 표현이 매번 다르다 보니 카메라와 렌즈를 다양하게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 파란 하늘을 찍는 것과 여자친구를 예쁘게 찍어주는 것과 사실적인 사진을 찍는 것은 모두 다르니 어쩔 수 없이 다양한 라인업(순서대로 후지, 캐논, 니콘)을 구축해야 한다는 이야기, 본인이 찍었던 가을 사진이 국내 사진 커뮤니티에서는 반응이 없었지만, 해외 사이트에서는 그달의 사진으로 뽑혔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다음 해 그 국내 사진 커뮤니티에 그때 자기 사진과 똑같은 사진들이 도배되다시피 했다는 이야기, 지금 찍는 하늘 사진으로 언젠가는 전시회를 하거나 책을 내고 싶다는 이야기. 욕망템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은 어린 시절 추억에서 시작해, 매번 카메라를 사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여자친구를 설득하기 위한 전략적 스토리를 거쳐, 사진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진다. 그는 카메라에 애정을 담고 자신과 동일시하여 언젠가 사진작가로 데뷔하는 꿈을 키우고 있다. 비록 매번 새로운 카메라와 렌즈를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며 사는 행태를 가만두고 보기는 참 어려운 일이지만, 새로운 꿈을 좇는 것은 진심으로 환영한다. 여행을 가던, 아프던, 바쁜 일에 치이던,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 사진을 찍고 SNS에 업로드하는 그 모습을 보면, 가수 패닉의 달팽이가 기어코 바다로 가듯 오래 걸리더라도 꼭 그 꿈을 이루기를 바라게 된다. 그의 욕망하는 모습을,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응원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글쓰기를 응원받고 싶다. 올해 나의 가장 큰 욕망은 이 글을 완성하고 출판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퇴사하고 생긴 자유시간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하는지를 이 기회 알아보고자 시작한 글쓰기였다. 시간을 들이는 만큼 애정은 커졌고, 커진 애정만큼 더 많이 고민하고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쓰는 것을 넘어,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고, 그 눈을 통해 마음에 도달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힘이 나게 만들고 싶다. 그래서 결국은 이 글에 담은 내 시간과 생각들을 그에게서 공감받고 싶어졌다. 물론 욕망한다고 해서 꼭 꿈이 이뤄지라는 법은 없다. 그래도 그게 뭐 어떤가. 내가 욕망하고 꿈을 꾼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매일 글을 쓰고 있고, 나름의 마감일을 지키고 있고, 책을 천천히 읽고 있으며, 좋아하는 작가를 만날 기회를 쫓아 즐겁게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음…. 아니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꼭 출판하고 싶다. (나는 솔직하기로 결심했으니)
엄마, 동생, 남자친구, 내가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이 글을 보는 모든 사람 들의 모든 욕망을 응원한다. 그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아니라면. 욕망이 너무 커져서 너를 압도하고 너를 갉아먹고 없애버릴 정도가 아니라면. 그럼 그 욕망은 꿈이 되고 목표가 되고 오늘을 좀 더 진하게 만든다. 내일, 지나간 오늘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고, 시간이 흐른 후 달라진 나를 발견하게 만든다. 니체가 그랬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그래서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게 지금도 앞으로도 내가 욕망하는 것을 열심히 추구하며 살 생각이다.
이 글을 쓴 오늘, 커다란 곰돌이였던 남자친구는 마침내 4개월간의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조금 작은 곰돌이가 되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나는 그의 최근 욕망템인 카메라 렌즈를 선물했다. 성공 인터뷰에서 그는 욕망하던 렌즈를 손에 넣은 만족감보다,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이 더 크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 2차 다이어트에 돌입할 예정이며, 더 슬림해진 곰돌이를 기대하라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성공 덕분에 다음 달 내 카드값이 조금 더 나오겠지만, 괜찮다. 욕망은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내 가설을 또 한 번 증명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