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딴짓할 시간이 필요해

4장. 행운도 알아보는 자에게 먼저 갑니다 (7편)

by 니나

나에게는 80대 20 법칙이 있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파레토 법칙(상위 20%가 부의 80%를 가지고 있음)과는 좀 다르다. 내가 시간을 들이는 일이나 행동, 생각의 황금비율인데, 80%는 원래 하는 일 혹은 해야 하는 일을 하고, 20%는 일과 상관없는 딴짓으로 채우는 법칙이다. 이건 대기업에 다니던 주니어 시절 사수에게 배운 것인데, 우리는 당시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거나 개선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업무 시간의 20%를 딴짓하는 시간으로 비워두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렇게 딴짓하고 딴생각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믿었다. 그리고 딴짓 중 문득 떠오른 엉뚱한 상상을 가지고 회의실에 모여 이런저런 신규 서비스나 기존 서비스 개선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회사 일을 잠시 옆에 젖혀두고 커피를 마시든 잡지나 만화책을 보든 다른 사람과 수다를 떨든, 누가 보면 아주 쓸모없어 보이고 심지어 농땡이 친다고 욕먹을 수도 있는 그 시간이 내 업무에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했다. 창의적 아이디에이션에 필요한 시간이니 일부러라도 시간을 비워두라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달콤하고 멋있었다.


20의 딴짓은 서비스 기획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일과 생활 전반에 윤활유가 되었다. 그래서 그 후에도 80대 20 법칙을 자연스럽게 지켰고, 생활 곳곳에 숨어있다. 회사 업무에 할애하는 시간이 80이라면, 퇴근하고 가야금을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회포를 풀고, 영화나 책을 보는 것들은 20이다. 얼핏 봐서 회사 일에는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것들이 휴식과 재충전이 되고 만족한 시간을 만들고 다음날, 다음 주 80의 회사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심지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문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실용적인 역할을 할 때도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업무시간 중에도 80의 시간과 리소스로 100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연습이 되면, 급하거나 중요한 일이 추가로 생기더라도 남은 20의 에너지로 해결할 수 있으니, 이래저래 효율적이고 퀄리티 높은 생활을 위한 좋은 법칙이다.


이는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3장의 목차와 구성이 맘에 들지 않아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던 어느 날, 결국 약속 시간이 다 되어 어쩔 수 없이 노트북을 닫고 나갔는데, 친구와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2차 장소로 걸음을 옮기다 문득 3장의 전체 주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잘 놀고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써야겠구나!’ <불편한 편의점>을 쓴 김호연 작가도 글을 쓰기 위해 산책한다고 한다. 제주의 어느 중산간 길에서 <연적>의 클라이막스가 터져 나왔고 대전 갑천 산책로에서 <파우스터>의 반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집필 시간 중 출근하는 시간과 중간 산책 시간에 내용을 구상하며, 집필 중간에 침상에 누워 책도 보고 스마트폰도 보고 쉰다고 한다. 그도 이 딴짓의 시간을 계획해서 보내고 있었고, 잘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 대충 20 정도 혹은 그 이상 되지 않았을까.


일에서도 생활에서도 더 창의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는 이 80대 20의 법칙을 국가 차원에서 회사 차원에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근무 중 공식적으로 잠시 일을 멈추고 차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는 거다. 책을 보는 것도 좋겠고 근처로 산책하러 나가거나 게임을 해도 좋다. 이도 저도 다 싫다면 명상이나 멍때리기도 좋겠다. 그리고 딴짓 후에는 어떤 점이 좋았는지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누구의 딴짓이 더 멋졌는지? 재미있는지? 내기도 해보는 거지. 딴짓에서 생긴 재미있는 아이디어는 누가 더 획기적인가 콘테스트를 통해 상도 주고 진짜 해보기도 하면 좋겠다. 더운 태양을 피하면서 즐기는 스페인의 시에스타(Siesta)처럼, 스웨덴 사람들이 커피와 달콤한 간식을 친구, 동료, 가족과 함께 즐기는 피카(FIKA)처럼 우리도 앞만 보고 달리느라 너무 뜨거워진 열기를 좀 식히고, 주변인들과 휴식과 대화를 좀 더 즐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럼 화도 좀 덜 나고 더 많이 웃고 더 잘 소통하고, 그래서 일도 개인 생활도 지금보다 더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내 방을 찬찬히 둘러보니 물건에도 80대 20 법칙이 녹여있었다. 책장 한쪽에는 손잡이가 달린 감성 캠핑 램프가 있는데, 돌릴 수 있는 버튼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불을 켜고 끄거나 밝기를 조절할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끄고 소리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빛이 책을 읽기에도 집 보조 등으로 쓰기에도 애매하고, 스피커는 음향이 썩 좋지 않아 평상시 좀처럼 쓰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이 램프인지 스피커인지를 누구에게 주거나 중고로 내다 팔까 생각도 했지만, 가끔 차분해질 필요가 있을 때 모든 등을 다 끄고 이 불만 켜두고 불멍을 할 때가 있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두고 램프를 들고 깜깜해진 집을 돌아다니면 해리포터가 지내던 계단 아래 벽장이 생각나 아이처럼 신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스노우볼이나 오르골, 전시회에서 산 액자, 제주 여행 중 꽂혀서 산 칼림바(철 소재 키를 엄지손가락으로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한다거나 효율적으로 개선해 주는 쓸모는 없지만, 이 물건을 다시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오르골을 가끔 돌려주는 것만으로 이 소리를 고르던 시간과 장소, 함께 했던 사람과 그날의 날씨 같은 것들이 생각난다.


요즘 나와 한 몸이 되어 다니는 필름 카메라는 또 어떻고. 모든 걸 수동으로 맞추다 보니 신속하게 지나가는 찰나를 찍기가 현재 나의 실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현상해서 보는 데에도 사진관을 찾아가 필름을 맡기는 수고로움과 며칠을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니 요즘같이 효율성을 높게 평가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물건이다. 그래도 이걸 꺼내는 순간 급하던 마음을 다시 천천히 다잡을 수 있고,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볼 수 있게 된다. 기다림을 배울 수 있고, 중요한 것을 빠뜨리지 않을 수 있는 차분함을 키울 수 있는 명상 같은 물건이다.


회사를 나왔더니, 드디어 나에게 딴짓할 시간이 주어졌다!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던 20의 딴짓을 지금 몰아서 하고 있다. 백수의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시간으로 나를 잘 채우고 있다. 서울을 여행하고, 글을 쓰고, 시를 배우고, 길거리를 구경하고, 필름 사진을 찍고, 공연과 전시회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 딴짓으로 재충전하고, 미래를 더 의미 있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를 기대한다. 그때 회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시간을 내 삶을 반추하고 개선할 것은 없을지 창의적인 아이디에이션에 쓰고 싶다. 의도하지 않아도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그 딴짓은 나를 더 좋은 곳으로 이끌고 있다는 예감이 든다. 더 많이 웃고 있고,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하늘을 자주보고, 더는 남들과 비교하느라 불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들고 지치고 바빠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휘둘릴수록, 우리는 더 애써서 딴짓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 잘리고 그 핑계로 딴짓을 마음껏 하고 있으니,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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