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행운도 알아보는 자에게 먼저 갑니다 (8편)
“엄마들처럼 손수건 들고 다니는 사람 요즘 잘 못 봤는데, 로란님은 매번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네요?”
그렇다. 나는 외출 때마다 잘 개어 반듯한 손수건을 하나씩 꼭 챙긴다. 그리고 집에서는 소창 손수건을 쓴다. 엄마도 아니지만, 그런 습관이 생긴 건 코로나 덕분이다. 코로나로 재택을 시작했던 시기, 배달 음식을 시켰더니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플라스틱과 비닐에 너무 질리고 무서워져서, 나 홀로 ‘제로 웨이스트’ 캠페인을 진행했었다. 그때 휴지나 물티슈 대신 손수건을 쓰기 시작했고, 그게 습관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많이 해이해지긴 했으나, 플라스틱에 담긴 액체 샴푸, 린스, 보디 클렌저 대신 비누를 쓴다. 외출 시 텀블러를 들고 다니려고 노력 중이고, 일회용 봉투나 비닐봉지가 자꾸 늘어나는 게 싫어서 얇은 에코백을 장바구니처럼 접어서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그래서 보부상처럼 늘 백팩이 무겁다. 처음엔 일회용과 플라스틱 같은 쓰레기가 안 나올 수 있는 규칙을 정해놓고 매우 엄격하게 지켰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답답하고 힘들어지기만 했다. 급기야 Sustainable 한가? (지속 가능한가? - 내가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행동해야 할 때 고민하는 두 가지 기준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고민에 당착했고, 결국 나에게 조금 틈을 좀 주기로 했다. 그리고 현재도 내가 좋아서 유지하고 있는 생활 습관은 손수건, 비누바, 에코백, 텀블러, 면 생리대 사용하기다.
그래서 매번 빨래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이 속옷 다음으로 손수건이다. 잘 털어서 널면 다리미질하지 않아도 반듯하게 손수건을 갤 수 있다. 그러나 건조기 사용은 금물이다. 따끈하고 꾸깃꾸깃해져서 나오는 손수건을 다시 펴기 위해서는 다리미를 꺼내야 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한데, 그게 귀찮아 그냥 대충 개어두면 쓰려고 꺼낼 때마다 속이 상한다. 하루의 시작이 구겨진 기분이다. (참, 요즘 건조기는 안 구겨지게 스팀 기능도 있다고 한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한다.)
잠옷도 건조기를 돌리면 안 된다. 줄어들거나 그러는 게 아니라 꾸깃꾸깃해져서 또 영 맘이 좋지 않다. 하루를 다 끝나고 개운하게 샤워하고 잘 개어진 깨끗하고 반듯한 잠옷을 위아래 한 벌로 맞춰 꺼내 입는 걸 좋아한다. 하루를 잘 마무리하기 위한 의식이다. 혹여라도 누군가로 인해 기분이 상했더라도, 어떤 일을 망쳐 속상하더라도, 미련이 가득 남은 일이 떠오르더라도, 바스락거리는, 혹은 폭신한 잠옷을 꺼내 입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그 모든 것을 잠잠히 덮어버린다. 따뜻한 어둠의 장막이 온 도시를 살포시 덥고 휴식의 시간을 허락하는 시간이 왔다는 걸 체감한다.
그래서 계절이 바뀌면 잠옷 사는 걸 좋아한다. 비싸고 화려하고 유명한 잠옷은 필요 없다. 좋은 면 (면 100%가 중요하다)에 두드러지는 무늬가 없고 은은한 색상이 좋다. 그저 명상 같고 휴식 같은 잠옷이면 된다. 더불어 로브나 샤워가운도 좋아한다. 얇고 예쁜 무늬의 나비 날개 같은 로브는 여름날 에어컨 밑에서 적당한 체온을 선선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두툼한 타올 같은 로브는 쌀쌀한 겨울밤, 잠옷 위에 입고 따뜻한 커피나 코코아 한잔하면 포근하다. 부드러운 갑옷이 되어 나를 보호해준다. 그리고 손수건과 잠옷, 로브, 가운을 향기롭게 해주는 사쉐 (향이 나는 주머니)를 좋아한다. 옷장과 서랍 여기저기 넣어두었다.
손수건과 잠옷과 샤워가운을 깨끗이 세탁하고 깔끔하게 개어 향기롭게 내놓는 것. 다른 이를 위한 것이 아닌, 남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하는 것도 아닌, 나만 아는 사소하고 은근한 습관은 최고의 예의를 갖춰 나를 대접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최고의 하루를 시작하고, 최고의 하루를 마무리한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바깥이 소란스러워 흔들릴 때마다 나를 잘 잡아줄 수 있는 나만의 비결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여아하고, 그래서 내가 언제 가장 행복할지를 잘 아는 것도 나여야 한다. 결국 내가 바로 서야, 주변을 챙기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인생을 바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남은 모르는 비밀스러운 것들로 내 공간과 시선과 습관을 채우자. 좋아하는 차를 우리거나 원두를 직접 갈아 커피를 내려도 좋고, 좋아하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도 좋고, 마트료시카 같은 인형이나 여행지의 냉장고 자석을 모으는 것도 좋겠다. 한쪽 벽이나 서랍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걸 보는 순간, 좋아하는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향을 맡는 순간,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 아빠 미소가 슬며시 생길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