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행운도 알아보는 자에게 먼저 갑니다 (9편)
"꼬맹이가 참 야무지네, 말도 조리있게 잘하고."
어른들은 모두 고개를 들고 올려다봐야 눈이 마주치던 그 시절, 그들은 종종 나에게 꼬맹이가 야무지다거나 조리있게 말 잘한다고 했다. 그 어른은 주로 엄마, 아빠의 아는 사람이거나 나를 보고 웃으며 이야기했기에 그건 좋은 이야기라고 나를 칭찬하는 이야기라고 알아들었다. 물론 내성적인 편이어서 먼저 나서서 떠들거나, 친구들과 여기저기를 주도해서 휘젓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야무지고 말 조리있게 하는 아이였으니 누구 눈치 보고 주눅 들고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한 사건이 생겼고, 그 일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몇 가지 짧은 사진 같은 장면으로 기억하는데, 적어도 그 아이의 모습과 말투와 이야기한 내용은 소리가 포함된 짧은 영상처럼 저장되어 아직도 기억 속에서 선명히 재생해볼 수 있다.
국민학교 시절 반장 선거 날이었다. 후보자로 지명되어 순서에 따라 출마의 변을 발표했고, 교탁에서 막 물러나기 직전이었다. 그때 교실 뒤쪽에 있던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일어나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렇게 키 작고 약해 보이는 여자애가 반장을 해도 되나요?” 그 아이도 여자애였다. 물론 교실 뒤쪽에 앉을 만큼 키는 나보다 훨씬 컸고 덩치도 컸다. 뭔가 잘못된 기분이 들었지만, 답변을 할 수가 없었고,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그 아이가 한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키 작고 약한 여자애는 반장감이 아니다’라는 말이라는 것을 이해했고, 내가 든 그 기분은 불쾌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자리에서 똑 부러지게 답하지 못했던 게 답답했다. 하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 애의 말이 맞는 것인가? 내가 뭘 잘 모르고 반장 선거에 나간 것일까? 내가 자질이 부족한가? 라며 키와 몸집과 반장의 상관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심했다. 불쾌감을 분명히 느끼면서도 그런 의심을 했던 것은 담임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그런 나쁜 말을 하고도 전혀 혼나지 않았었다. 어쩌면 키 작고 약해 보이는 여자애가 반장이 되어 반 전체를 망치는 것을 막아냈다는 뿌듯함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일어서서 그 말을 하는 얼굴에서 묘한 뿌듯함 같은 것인지, 나를 깔보는 눈빛 같은 것을 본 것을 아직도 기억하니 말이다.
원래도 좀 내성적이었지만, 그 이후 더 위축되어 지냈던 것 같다. 튀지 않으려 노력했고,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거나 일을 만들지도 않았다. 계속 소심해지던 내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한 건 6학년 말 전학이라는 사건 이후부터였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나에게 ‘키 작은 약한 여자애’라는 말을 하는 아이도 없었다. 눈치 보거나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지 하는 생각도 없었고, 그럴 섬세한 능력도 전혀 없어서, 예전보다 좀 더 편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전학생 주제에 구석에서 조용히 눈치 보며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맘 편한 데로 했더니 그 직후 진학한 중학교에서는 한동안 ‘재수 없는 아이’로 통하기도 했다. 나도 모르던 그 별명을 고등학교 진학 후 친해진 아이가 알려줬을 때 나는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손뼉 치며 박장대소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소심해서 돌아보면 답답했던 나의 어린 시절에 내가 한 방 날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국민학교 그 아이가 생각나면서, 그 애 앞에서도 재수 없게 답해주고 싶은데, 나 이제 그럴만한 배짱이 생겼는데, 이젠 그 애가 내 앞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워졌다.
조리있게 말 잘하던 꼬맹이가 학급 친구의 나쁜 말에도 아무 말을 못 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어린이가 되었다가, 재수 없다는 꼬리표가 붙을 정도로 할말하고 다니던 청소년기를 거쳐, 이제는 사회생활을 꽤 무탈하게 괜찮게 하고 있으니 (가끔 나 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한주가 멀다 하고 연락하는 친구가 있다면 사회생활 괜찮게 한 거라고 생각하겠다), 사람 성격이라는 것도 성장호르몬에 따라 환경에 따라 양극단을 오가나 보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성격으로 빚어진 사건과 경험 들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꽤 능글맞은 사람이 되었다. 왜 저런 생각이나 행동하지? 라는 의문이 들 때, 가끔 ‘왜’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현재는 회사 생활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협업하고 성과를 만들고 그 결과로 월급을 받으면서, 없던 눈치도 만들고 모난 곳은 정 맞고 깎여가며 과거에 비해 소위 ‘사회성’이 부쩍 늘었다. 불쾌한 말을 들으면 그간 쌓아온 다년간의 경험으로 웃으며 되받아치는 요령도 생겼다. 그럼에도 가끔은 ‘키 작은 약한 여자애’로 돌아가 버리는 일도 생긴다. 그럴 땐 (물론 상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호하고 진지하게 불쾌하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상대방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실수한 경우도 있고, 적극적인 반응에 머쓱해져서 돌아설 때도 있다. 그게 먹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와 후회하고 자책하는 일은 좀 적어질 수도 있다. 마트에서 카트로 엄마 발목을 세게 부딪혀놓고 사과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을 돌려세운 적이 있었다.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친구에게 ‘왜 거기 들어가요!’라며 화내는 분에게 ‘장애인이라 장애인 화장실 쓴다!’며 단호한 목소리로 답해준 적이 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지하철 들어오는 것에 짜증 내는 이에게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어디든 갈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었다. 매니저와의 면담 시간에서 업무 성과와는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인신공격성 말을 듣고 ‘그 말은 불쾌하니 업무 면담 시간에는 그런 표현을 삼가달라.’고 요구했다. 그럼 미안하다 사과하는 사람도 있고, 예상 못한 답변에 입을 다물기도 하고, 더 이상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면, 건강해지려면, 나를 지키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약간의 ‘할 말 하는 공격성’ 정도면 좋겠다. 갑작스러운 상대방의 예의 없는 말이나 행동에는 당황하는 게 당연하다. 당황해서 아무 말 못 하는 게 당연하다. 당황해서 아무 말 못 한 건 잘못한 게 아니다. 그런 예의 없는 말로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고 관계를 악화시키고 분위기를 흐리고 나아가서 본인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 잘못한 거다. 그러니 잘못한 것을 그 사람이 알 수 있게 알려주는 정도의 당당함을 가지자. ‘나만 조용히 참고 넘어가면 다 좋잖아’보다는 그 사람도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기회를 주면 좋겠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도 좋겠다. 그래서 마음이 아직 너무 몰랑거려서 아무 말 못 하는 사람을 지켜주고 싶다. 어린 로란에게 '키 작고 약해 보이는 여자애가 반장을 해도 되나요?' 라고 묻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에게 '친구에게 그런 말 하면 안 돼! 반장은 봉사 정신과 책임감이 있으면 누구나 될 수 있어. 외모나 성별은 상관없어' 라고 잘못된 것을 그 자리에서 말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