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행운도 알아보는 자에게 먼저 갑니다 (4편)
'어떻게 글을 쓸 생각을 했어요?‘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대체 왜 글을 쓰고 있을까? 사람들을 만나고 바쁜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들어와 피곤함에 절었을 때도, 술을 마시고 두통과 근육통이 슬금슬금 내 몸을 점령하고 있을 때도, 아직 잠이 덜 깨 찬물에 세수하고 빈속에 모닝커피를 입속에 들이부으면서도, 노트북을 켜서 조금이라도 뭔가를 쓰고 있는 나를 볼 때면, 나는 왜 지금 글을 쓰고 있을까? 싶다.
천천히 되짚어보니, 여러 가지 작은 일들이 우연처럼 겹치고 겹쳐 '글을 써야겠다'라고 결심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우연은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심각해지면서 회사가 전면 재택근무로 돌아서던 그 시기에 시작되었다. 소통이 어렵고 고립된듯한, 그래서 쉽게 지칠 수 있는 재택 기간 중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몸과 마음을 챙기면서 즐겁게 회사생활을 영위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을 하는 TF가 생기면서부터였다.
(Zoom 화상 미팅에서) "오늘 시간 내주셔서 다들 감사해요. 지난번 미팅에서 사내 클럽 활동을 재택 기간에도 활성화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었고, 로란님께서 북클럽을 해보고 싶다고 하셔서 오늘 미팅에 초대했습니다." TF장이 이야기했다.
"네? 제가요? 제가 북클럽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고요?" 나는 금시초문이었다. '내가 회사에서 북클럽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고? 내가? 왜?'
"네, 로란님이 저번에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동료 C가 이야기했다.
나는 정말 그렇게 이야기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주변에 비해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었고 문학 소양이 깊은 것도 아니었고 북클럽을 이끌기에는 여러모로 자질이 많이 떨어졌다. 물론 책을 많이 사서 쌓아두긴 한다. 특히 표지가 예쁜 책은 구매 1순위였는데, 책장에는 읽은 책 보다 안 읽은 책이 더 많았다. 그러니 내가 북클럽을 만들고 싶다고 했을 리가 없다. 설사 그랬다고 해도 북클럽이라는 것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기억력이 지독하게 좋지 않다. 어릴 때부터 논리로 대결할 수 있는 수학이나 물리는 공부하는 게 재미있고 좋아하던 과목이었다. 노력에 비해 성적도 잘 나오는 편이었다. 그러나 국사나 화학같이 뭔가를 외워야 하고, 외운 것을 기반으로 생각을 쌓아야 하는 과목은 정말 젬병이었다. 특히 중학교 때 가정 가사는 어떤 음식에 어떤 영양소가 있는지? 섬유별 다리미 열 온도는 어때야 하는지? 끊임없이 나오는 외울 것들 때문에 무척이나 어려웠었고 당연히 전 과목 통틀어 성적이 가장 엉망이었다. 물론 음식을 만들어 먹는 실습 시간은 매우 사랑했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그래서 나는 내 기억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너 그렇게 이야기했었어.'라고 하면 이내 그걸 수긍해 버린다. 그래서 실은 장난치거나 속여먹기 딱 좋은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C의 목소리에 이내 '아, 또 내가 이야기해 놓고 기억을 못 하는구나. 이 망할 놈의 기억력, 안 그래도 할 일이 쌓였는데, 내가 내 무덤을 파놓고 기억도 못 한다니!'라고 생각하게 이르렀다. 그 미팅 이후로 나는 북클럽을 만들고 회원을 모으고 매월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운영하게 되었다.
다행히 북클럽 덕분에 꾸준히 책 읽는 습관을 다시 기를 수 있었고, 다독왕들의 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해석, 감정 들을 공유받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책은 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읽는 이의 환경, 사전 지식, 감정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해서 더 많은 이야기와 상상이 가미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청각에 의존하는 드라마나 영화만큼 혹은 그보다 더 다양한 감상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공유하는 시간은 기대보다 재미있었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알게 될 땐 작은 전율을 느끼기도 했었다. 북클럽이라니, 따분하고 심심하면 어떡하지, 별로 할 이야기가 없으면 어쩌지 하는 고민이 있었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그럴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 작가를 초빙하여 글쓰기 강연을 듣기까지, 열정적으로 클럽 활동을 이어 나갔다.
어쩌다 시작하게 된 북클럽에 이어, 책을 좀 더 가까이하게 된 계기는 회사와의 이별을 슬슬 준비하고 있을 때쯤 생겼다. 이 시기에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잔뜩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생각들이었다. ‘회사를 나와 백수가 된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바로 이직할 게 아니라 뭔가 색다른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 늘 하던 일은 이제 좀 지겨운데, 다른 일은 없을까? 사업을 해보는 건 어떨까?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나는 행복하다고 느낄까?’ 그날도 엄마 집에서 함께 밥 먹고 커피 한잔하면서 이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엄마의 수다를 흘리듯 들으며 동참하고 있었다.
“OO네 아줌마 손자는 공간감이 너무 좋다.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정리하는데 (중략) 그런데 OO네 아줌마 손자는 말이야 또 달라. 숫자 셈이 남달라. 그 작은 애들이 참 다 다르다? 신기하지”
“엄마, 그럼 나는 그 시절 뭐 잘했어?“
“너? 너는… 뭐 그냥 주구장창 책만 읽었지.”
“뭐 잘하는 건 없었어?”
“……”
잘하는 게 있었다면, 그걸 좀 살려볼까 하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잘하는 게 없었다니. 그 꼬맹이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잘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없었다니. 좌절했다. 엄마 딸이라고 나를 좀 느슨하게 본건 아니었을까? 아니면 세월이 많이 흘러서 기억이 희미해진 건 아닐까? 이제 와 닦달해봐야 없던 ‘잘하는 것’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하나의 소득은 있었다. 나는 책을 많이 읽었었단다. 그래 그럼 일단 책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아주 조금이라도 책을 매일 봤다. 시간적인 여유가 좀 더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익숙하던 곳을 떠나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드니,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고, 길을 찾고자 안식을 얻고자 했었다. 그래서 철학, 소설, 자기 계발, 에세이, 닥치는 대로 봤고, 어딘가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책을 늘 한 권 정도는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그런 습관으로 제주도 한달살기에도 몇 권의 책을 가져갔었고, 머무는 동안 동네 책방에서 몇 권의 책을 더 사기도 했었다. 그때 회사 북클럽에서 초빙하여 글쓰기 강연을 해준 편성준, 윤혜자 작가의 책,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를 읽었는데, 나는 이 책을 꼭 제주에서 읽고 싶어서 진즉 사놓고도 열어보지 않고 참고 기다렸었다. 책을 보며 발견한 잔잔한 재미와 따뜻한 감동을 SNS에 리뷰로 남겼더니, 다음 날 작가님이 감사하다며 친히 댓글을 남겨주셨다. 나와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생각했던 분이 내 SNS에 댓글을 달아주니. 왠지 ‘성덕’이 된 것 같은 뿌듯함도 들면서, 감사한 마음에 작가님의 SNS 피드를 더 꼼꼼히 보고 '좋아요'를 누르게 되었다.
그러다 북토크를 연다는 소식을 발견했는데, 직접 운영하는 글쓰기 워크숍에서 성공적으로 배출한 신인 작가의 합동 북토크였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분들은 어떻게 책을 냈을까 신기하고 부러운 마음에 친구 J를 대동하여 참석했다. 그리고 그 북토크가 끝날 무렵 마침 한 명이 취소하는 바람에 다음 회차 워크숍 한자리가 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앞뒤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워크숍을 신청해 버렸다. 나는 리미티드에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었고, 이런 갑작스러운 우연 같은 기회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건 신이 나에게 주신 어떤 계시가 아닐까?’ 그러나 무슨 주제로 쓸지,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도통 아무 생각도 없었기에, 그 후 주말 내내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성급히 워크숍을 신청한 나의 대책 없음을 한탄했었다. 끙끙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남자친구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고, 워크숍을 취소하라고 나를 설득하기도 했지만, 자존심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날 나의 무모한 저지르기 덕분에 나는 지금도 친구 S의 집에서 아침 새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내려준 모닝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제 맥주를 마셔서 얼굴과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보기만 해도 웃긴 얼굴을 한 채로 잠옷도 갈아입지 않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게 매일매일 어디서든 조금이라도 글을 쓰는 것은 나의 루틴이 되었다. ‘글을 써야지’라는 생각을 한 건, 거창한 결심이나 각성, 깨달음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살다 생기는 소소한 우연 같은 일들이 모이고 모여 나를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만들었다. 이건 마치 시냇물이 모여 강이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높은 곳의 공이 낮은 곳으로 가속도를 붙여 굴러내려 오는 것 같은 현상이었다. 이 과정은 기막힌 우연이 만들어낸 운명 같아 보였고, 나는 그저 운명 수취자의 역할과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북클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기억나지 않지만, 클럽을 만들고 3년 가까이 운영한 것이나, 회사에 작가를 초빙하여 글쓰기 강연을 들은 것이나, 늘 책을 끼고 살았던 것이나, 북토크에 찾아간 것이나, 워크숍을 손들어 신청한 것이나, 브런치를 시작한 것이나, 그건 ‘할까 말까 할 때는 그냥 한다’라는 나의 습관 같은 생활 방식 덕분이었다. 내가 주도해서 시작한 건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고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는 건 포기를 멀리하고 꾸준함을 가까이할 수 있는 좋은 방법) 묵묵히 해보는 나의 성향 덕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저지르고 수습하면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 라는 고민의 답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이 공이 조만한 또 어디로 굴러갈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글쓰기’를 많이 좋아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니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신나서 글을 쓰고 있고, 세월이 지나 다시 돌아보면 부끄러울지언정, 지금 내 글을 사랑한다. 글을 쓰면서 내 감정의 정체는 좀 더 선명해졌고, 지난 내 행동의 원인을 알게 되었고, 가족과 친구의 행동을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생각은 증폭되었고, 나는 조금 달라졌다. 게다가 조금 자신도 생겼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이가 ‘뭘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본다면, 예전처럼 우물쭈물하며 망설이지 않고, ‘글 쓰는 걸 좋아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썼어요.’라는 할 말이 생겼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쓸 예정이다. 의지를 가진 선언이 아니고, 분석에 기반한 예측도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 글쓰기는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나는 내 글 속에 남겨지고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니 계속해서 글을 쓸 예정이라는 나의 말은 내일도 밥을 먹고 어딘가를 산책하듯 여행하고 돌아와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며 밤새 안녕했는지 살펴보듯 글을 쓸 테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두 눈 안에 내가 모르는 근심이 깃들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듯 글을 쓸 테다. 알 수 없는 미래라는 곳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도 이내 방향을 찾고 길을 만드는 마음으로 글을 쓸 테다. 그러니 나는 늘 그랬듯, 할까 말까 주저될 때는 저지르고 행동하기를 꾸준히 할 생각이다. 그 덕분에 너무 좋아서 하루 몇시간을 기꺼이 투자하고도 늘 부족하다 느끼는 글쓰기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은 막막하고 어둡던 터널 안에서 저 멀리 반짝이는 입구를 드디어 발견한 것과 비슷할 정도로 뛸 듯이 흥분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