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틀림없이 죽어요 애써 서두르지 않아도 말예요 누구도 인생에 남은 날을 몰라요 눈이 부시도록 살아요 나의 오늘을요
심규선 - 우리는 언젠가 틀림없이 죽어요 中
‘탄생’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인 ‘죽음’은 일반적으로 무섭고, 피하고 싶고, 입 밖에 내고 싶지도 않은 주제다. 하지만 우리는 탄생이라는 선물을 받았듯 죽음이라는 폭탄도 언젠간 내 손에 들린다. 탄생은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나는 과정을 예측이라도 할 수 있지만 죽음의 순간은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갑자기 다가온다. 예로부터 잔병치레 하지 않고 제명대로 살다가 잠을 자듯 평온하게 죽는 사람은 ‘복’을 타고났다고 할 만큼 ‘행운’이 따르는 일이다. 의도해도 의도대로 이루어질 수 없고 정해진 생명은 정해진 날짜에 죽음의 그림자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정해진 날짜라고 해서 어느 드라마나 영화처럼 몇 월 몇 일 몇 시에 찾아온다는 의미는 아니다.
죽음이 두려워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사람들도 많다. 중국의 진시황이 가장 유명하고 그가 아니어도 많았다. 심지어 십장생에도 포함되어 있을 만큼 영생의 상징으로써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적임에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확인하고 싶을 만큼 사람은 생명이 하루씩 소모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에 떤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발견된 역사적 유물들만 살펴보더라도 시신을 보존하는 방식이 발달 되어 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이 언젠가 다시 환생하여 죽은 시신으로 돌아올 거라 믿어 장기를 꺼내 따로 보관하고 시신이 썩지 않도록 미라를 만들어 보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이 진짜 기적을 바라고 한 일인지 남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한 위로의 방법이었는지는 모른다.
이렇듯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생’하는 인류는 없다. 간혹 음모론자는 우리들 사이에 누군가는 드라마나 영화처럼 영생하고 있는 사람, 사람이라기엔 사람이 아닌 초인적인 존재 혹은 외계인이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설령 있다고 해도 확인 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가족이 되기도 하고 지인이 되기도 하며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조사 할 방법이 없기에 확인 할 수조차 없고 운 좋게 전 세계인에 대해 조사가 이뤄진다고 해도 100% 신뢰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참 불행하게도 우리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 한 발짝씩 다가온다. 언제 어디서 다가오는지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평균 수명이라는 정보가 존재하지만 통계 자료에 불과하고 내가 꼭 포함된다는 보장이 없다. 평균 수명보다 덜 살게 될지 더 살게 될지 모른다. 집중해야 할 사실은 그게 아니라 죽음은 언젠가 꼭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의지를 가지고 실천해야 한다.
누구나 다 평온하게 살다가 가족들의 품에서 잠을 자듯이 세상을 떠난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소수에게만 허락된 방식이기에 우리는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하고 안전을 추구한다.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고 예상치 못한 불상사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한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혹은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이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마련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가입한다고 해서 죽음이 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다. 세상이 변해감에 따라 환경이 변하고 환경이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식습관, 생활환경, 패턴 들이 바뀌면서 인간의 수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고 운동을 하며 건강한 신체로 오래오래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고 주어진 생활 습관을 모두 즐기며 사는 사람도 많다. 몸에 좋지 않다는 음식이나 물건이 있다면 피하려고 하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최대한 가까이에 두려고 한다.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면 생명을 유지하고 수명을 늘리는 쉬운 방법은 그런 것일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예로부터 옥장판이나, 휴게소에서 많이 팔던 게르마늄 팔찌도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다고 하여 많이 구매 해서 집에 마련해 두기도 했었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하고 심지어 게르마늄은 혈행 개선에 효과가 없다는 과학적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었다.
과학이 점점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의 기대수명도 늘어가고 옛날에는 걸리면 죽는 병도 요즘에 들어서는 치료만 잘 받으면 사는 경우도 많다. 물론 아직도 인간의 과학기술로 정복하지 못한 질병도 많고 모두가 알고 있듯이 빙하 속에 숨어있는 고대의 바이러스들은 현재 인간의 과학기술로는 치료할 수 없기에 환경보호라는 이야기를 주야장천 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직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아서 현재의 편리한 생활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는 티백 차에 수십억 개의 미세플라스틱이 존재하고 많이 마시면 쌓여서 2세에게도 영향을 줌과 동시에 자신에게도 심혈관계나 뇌혈관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기사도 보았다. 기사의 댓글을 봐도 왜 이제야 발표하냐는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건강과 생명에 대해선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건강만큼 중요한 것이 자아실현으로 가는 길이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대학에 가고 학부를 선택하고 전공을 선택해 자신이 원하는 혹은 가족들이 원하는 직종을 선택해서 살아간다. 한번 정해진 직종을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고 정반대의 직업으로 노선을 바꾸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은 태어나서 ‘직업’을 모두 가진다. 전업주부도 하나의 직업이고 백수라 할지라도 ‘취업준비생’이라는 하나의 직업이다. 이토록 우리가 직업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생활을 하기 위한 ‘돈’의 필요성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돈이 없다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것 말고는 모두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무기력 방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무기력해진다. 몸을 움직이거나 뇌를 활동시키는 어떤 행동이나 생각이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가지의 생각을 해낸다. 의식 속에서도 무의식 속에서도 심지어 잠을 자며 꿈을 꾸는 순간에도 뇌에선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세 번째는 인정욕구이다.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 하는데 직업이 하나의 도구가 된다.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종을 선택하고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배경도 뒷받침됨과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선망의 대상이 된다. 물론 내가 하지 못한 일을 남이 하게 되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럼에도 직업은 누구나가 다 갖고 있는 생명처럼 필수같이 느끼는 도구임과 동시에 좀 더 나은 도구를 원한다. 사회에서 더 인정 해주는 직업이나 돈을 더 많이 버는 직업을 선택하거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회적 성공과 돈이 따르지 않더라도 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강제든 강제가 아니든 하나의 혹은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인생을 조금더 윤택하게 살아보기 위해서.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게 당당해지려 노력한다. 죽음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 자신에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자비란 없다. 그래서 그 언젠가가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한 날에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농담의 한마디를 던진다. 그 말은 순도 99%의 진심이다. 그만큼 기쁜 감정이 폭발했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 숨을 거둘 수 있다면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된 것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남은 단 1%는 당연히 농담이다. 너무나 기뻐서 오늘 당장 죽어도 여한은 없지만 또 다른 기쁜 일들을 맞이할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오늘과 내일을 살게 만든다.
인생은 분명한 굴곡이 있다. 재벌가에서 태어나도 인생의 굴곡은 있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굴곡이 있다. 재벌가의 자제는 선대에서 이미 이루어 놓은 많은 것들에 대해 부끄럽지 않기 위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것이다. 돈이 많아서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맞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직업과 지식은 본인의 노력에 따라 좌우된다. 물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자녀는 부잣집보다 더 많은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깊이가 다른 고민을 모두 하며 살아간다.
‘누구나 제 손톱 밑의 가시가 가장 아픈 법이다.’ 절대 그 누구도 같은 환경에서 살아간 사람은 없다. 동시대를 같이 살아간 사람일 수는 있어도 환경은 모두 다르다.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건 미안하게도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피눈물 나는 과거를 살았다고 해도 남들이 자신의 마음을 100% 이해해 주는 사람은 죽기 전에 만나지 못할 것이다. 불로초처럼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나를 100%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어떻게 타인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구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이해해야 한다. 누구도 내 고통을 느낄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상처에 집중해야 한다. 죽는 순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내가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고, 치료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나를 이해하지도, 사랑하지도, 치료하지도 못한 사람은 온갖 미련과 후회로 가득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묻고 싶다. 내일 당신이 죽는다면 미련과 후회가 남지 않을 인생을 바로 지금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