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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의 대화

by 정수윤세

나는 매일 밤 꿈을 꾼다. 언제부터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누구나 다 그런 줄 알았었다. 혼자만 매일 꿈을 꾼다고 자각했던 건 군대에서 다른 전우들과의 대화에서였다. 많은 사람 속에서 피곤하면 꿈을 꾸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가끔 한 번씩 꾼다는 부류는 있었어도 매일 꾸는 사람은 없었다. 꿈을 꾸는 것이 숙면에 방해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왠지 신경이 더 쓰였다. 나도 꿈을 꾸지 않고 하룻밤 동안 편하게 숙면에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머리만 대면 잠들거나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 드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었다.


가끔 꿈은 말을 걸어왔다. 아주 가끔은 예지몽이 되기도 했고 그것보다 더 아주 가끔은 데자뷔를 경험한 적도 있었다. 분명히 처음 겪는 상황이지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기분이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데 그렇다면 내 무의식은 드넓은 우주 같은 공간일까? 매일 다른 세상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삶을 꿈속에서 누릴 수 있다. 나이가 어릴 땐 주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쫓기는 꿈을 많이 꾸었다. 높은 데서 떨어지기도 하고(이런 꿈을 꾸면 키가 크는 꿈이라고 했는데 중3 때까지 153cm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듯한 고통에도 쉼 없이 달려 도망치기만 했었다. 무엇이 그토록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을까? 차라리 조상님이나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서 번호라도 점지해주시면 좋을 텐데 절대 그런 꿈은 오지 않았다. 한때 하루에 3시간을 자도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때에도 꿈은 꾸었다. 끊임없이 괴롭히는 꿈이 미워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거나 행복한 꿈을 꾸고 나면 영원히 머물고 싶다는 마음도 가졌었다. 매일 꾸는 꿈도 대부분은 빠르게 잊혔다. 하루도 되지 않아서 머릿속에서 사라졌고 가끔 강한 임팩트를 가진 꿈만 기억에 남겨지기도 했었으나 평생 꿈을 꿔오면서 정말 기억에 남는 꿈은 단 하나다.


초등학교 4학년쯤 어느 날 꿈이었다. 실제로 나는 어느 공단 안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었다. 학교에 가려면 집에서 나와 시멘트 공장 벽을 둘러 공업용 철도를 하나 건너서 또 공장과 공장 사이의 골목길을 지나야 한다. 골목길은 차 한 대가 다닐 정도의 샛길이었다. 꿈에서 나는 왜인지 밤에 학교를 가려고 똑같은 등굣길을 지나 그 골목에 들어섰을 때 저 멀리 골목 끝 가운데 서있는 하얀 물체가 보였고 공중에 살짝 떠 있었다. 한발 두발 가다가 내가 멈춰 서자 하얀 물체는 순간이동을 하듯 조금씩 나에게 가까워졌다.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던 나에게 하얀 물체는 없어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더니 마지막 순간에는 나의 얼굴 바로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얀 소복에 검정 머리를 하고 얼굴과 옷 색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하얀 피부를 가진 귀신이었다. 평소에 귀신을 궁금해하고 예전에 TV에서 방영했던 <토요미스터리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고맙게도(?) 귀신은 내 꿈에 등장해 주었다. 근데 그 꿈은 너무 현실과 가까워서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꿈을 꾸고 난 그 당시에 혼자 등교할 때는 멀리 다른 길을 이용해서 가거나 친구들과 함께 가기도 했었다. 현실에 없었던 일이지만 내게는 현실같이 느껴져서 무서웠다.


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처럼 매일 꿈을 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처음엔 충격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니 점점 무던해졌다. 꿈을 꾸건 말건 수면시간에 집중하는 느낌이었다. 가끔 기억하고 싶은 꿈이 있을 때 그때만 의식적으로 기억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운전하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혹시나 전날 꿈이 좋지 않으면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곤 하는데 신기하게도 무슨 일이 있었던 적도 많았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꼭 예지몽이라기보다 사후에 꾸는 꿈이다. 현실이 아님에도 의미부여를 많이 해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 그럼에도 그런 꿈을 꾸면 정말 신기했다.


살다 보니 문득 밤에 꾸는 꿈은 매일 꾸는데 왜 미래를 향한 꿈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없었고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 왜 살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어느 순간 알게 된 사실은 굳이 살아야 할 이유라든지 소명이라든지 혹은 삶의 의미 같은 게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소명이나 의미를 모르는 채로 사는 기간이 있음이 아주 당연하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긁지 않은 즉석 복권 속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또한 누군가는 그 복권이 무슨 물건인지도 모르고 긁어야 안에 있는 내용이 보이게 되는지도 모른다. 즉, 경험하거나 통찰하지 않으면 복권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나를 비롯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복권의 존재를 알고 긁는 방법을 깨달은 사람들은 당첨금을 수령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내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기회가 오질 않았었다. 회사를 그만두어도, 여행을 해봐도, 아무리 가만히 생각하려 해 봐도 도무지 복권이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인지 알야채 지를 못했었다. 그러다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평온해지는 노래를 들으며 깜빡 잠에 들었다. 미지의 세계에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성공한 직업을 가져서도 아니었다. 그저 온통 주변이 환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따뜻했고 평온했다. 꿈은 꿈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현실로 돌아온다. 하늘을 날아갈 듯 행복했던 내가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다. 너무나 행복했기에 기분이 좋지 않아야 당연했다. 하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꿈에도 후유증이 있다. 내가 귀신 꿈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처럼 좋은 꿈도 좋은 기분이 어느 정도 유지가 된다. 그렇게 기분 좋음을 음미하고 있을 때 팔 주변에 놓여있던 복권이 살짝 긁혀있었다. 내가 잠들었다 일어나는 사이에 움직임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긁혀 내용이 보였다. 마침내 힌트를 찾았다.


복권은 꿈으로 가는 정답이나 힌트를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라 ‘내 마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또한 내가 매일 밤 꾸는 꿈은 단순히 나에게 기분 좋음, 두려움, 행복함 등을 심어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쉬어가는 병원’이었다. 걱정하고 고민할 때 꿈은 내게 무의식 속에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꿈속의 영화로서 보여주었고 체험시켜 주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서 희망을 가졌을 때도 꿈은 오롯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꿈은 나를 미친 듯이 끌어올려 쓰러지지 않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을 때 꿈속에서 타인을 만났다고 여겼지만 내가 나를 만나서 치료해 주었다. 그토록 멈추지 않고 도망쳤던 것 역시 어둠 속에 파묻혀 있지 않기를 바라는 내 무의식의 몸부림이었고 귀신도 어쩌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을 쉽게 이루게 해서 더는 신경 쓰지 않도록 소망하지 않고 다른 좋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꿈이 마음을 치료해주는 병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유독 아침이 반가웠다. 잠에 들었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아무리 어두운 내용의 꿈도 두려운 마음을 투영시켜 치료해 주었음을 알기에 감사했다. 꿈이 내게 끊임없이 대화를 걸어왔음에도 나는 몰랐다. 그래서 반응이 조금 늦었다. 하지만 그때도 꿈은 괜찮다며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위로해주었다. 밤에 꾸던 꿈이 마음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줌으로 인해서 과거에는 가질 수 없었던 목표를 가졌다.


그 어떤 높고 빛나는 목표보다 나의 꿈은 함께 있을 때 더 빛나고 행복한 마음을 전해주는 안온한 미지의 세계이다.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곳에서는 오롯이 나 혼자여도 충분하다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뻥 뚫린 구멍처럼 남아있던 내 마음의 길을 따뜻함으로 채워주었다. 그리고 이내 온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소중한 마음을 만들고 있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고 외롭고 살아가는 게 의미 없다고 여기는 일상일지라도 꿈속에서는 왕이고 주인공이다. 당신의 꿈에서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주연배우가 되길 바란다.


오늘 밤은 누구보다 행복한 꿈이 되길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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