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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던 날

by 정수윤세

어젯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교통사고를 일으켜 꿈속에서 제가 죽는 꿈을요.

처음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의문점 하나와 마음의 안정을 얻는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먼저 의문점은 저의 차와 반대 차선을 지나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서서 차에서 내린 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제 차로 뛰어오며 뭐라고 소리치고 손을 뻗어 차를 멈추게 하려는 모습을 사이드미러로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웠습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이 운전하고 가고 있는데 왜 뛰어오지?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면 그냥 미친 사람인가? 하는 찰나의 생각이 지나자마자 차는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제어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미친 듯이 달려들던 저 사람은 저를 도와주려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고 차는 정면에 있는 옹벽을 들이받았고 충격으로 인한 몸의 뒤틀림이 있는 사이에 저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2차 사고로 직감적으로 꿈에서의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죽을 때 보인다는 주마등도 보지 못했고 죽음의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갈 거라 평소에 믿었는데 단말마의 말을 남기듯 ‘아버지..’를 부르며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죽었음을 알았어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보통 꿈에서 기분이 나쁘면 잠이 완전히 깹니다. 오늘은 눈은 뜨지 않았어도 정신이 돌아온 걸 느꼈고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리고 몸에 전해진 그 느낌은 아직 현실에선 살아있음을 알고 감사했고 기뻤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쩌면 제 무의식이 투영된 꿈일지 모릅니다. 평소에 왠지 평범하게 죽지 못하고 언젠가 비슷한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꽤 많이 했었거든요.


꿈을 꾸고 기분이 나빴다면 아마 불을 켜고 쉽게 다시 잠에 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아직 살아있음을 느끼고 소름이 진정되자 최고의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저의 손으로 가슴을 툭툭 치며 살아있음을 증명하자 다시 숙면의 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 아침에 깨어나 강력한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도와주고자 했던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하는 궁금증이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제 쪽으로 달려오던 모습과 표정이 꽤 간절해 보였으니까요. 반대편에서 차의 특이점을 발견했고 순간 판단으로 저를 도우려 했던 그 사람이 현실에 없는 제 무의식에서 만들어 낸 환상 속의 인물임에도 궁금했습니다. 무의식이 생성해 놓은 세계관이라면 반드시 누군가를 투영해 만들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확실한 건 제가 아는 사람의 얼굴은 분명히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꿈에서 아버지를 부른 이유는 혼자 저를 키워주신 아버지를 두고 먼저 떠남이 죄송해서입니다. 아직 아무것도 보여드리지 못했는데 제 마음에 드는 효도를 한 번도 해드린 적이 없는데 떠나는 게 아쉬웠습니다. 더불어 지금 제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아챌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곧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제 차를 향해 미친 듯이 간절하게 뛰어왔던 사람이 누군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나’였습니다.

‘나’이기에 차에 이상이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나’이기에 그토록 간절했고, ‘나’이기에 지키고 싶어 했던 겁니다. 저는 사고로 죽었지만 그곳에 또 다른 내가 있었습니다. 전하고자 했던 말과 정보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전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사고의 장소는 S자 형식으로 이리저리 구부러진 포장도로가 있는 산길이었습니다. 언덕을 내려오는 반대편의 차가 있었고 제 차는 제어 능력을 상실해 정면의 옹벽을 들이받았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내려오던 다른 차와 2차 사고로 이어졌던 장면이었습니다.


인생은 굴곡이 있고 높낮이가 있습니다. 추상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런 것이지 우리 몸에서 실제로 느끼지는 못합니다. 다만 정말 심적으로 힘이 들 때는 마치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듯이 몸도 무거워집니다. 반대로 내리막을 갈 때는 몸이 가볍지요. 기분이 좋을 때란 바로 그런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꿈에서 도와주려 노력했던 ‘나’는 먼저 저의 인생의 꼭대기에 다녀오다가 내려오는 길에 저를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더 나은 길을 알려주려고 그렇게나 간절하게 뛰어왔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만나지 못했던 건 정말 다행입니다. 제가 차의 제어 장치가 정상 작동해서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나’의 조언을 들었더라면 앞으로 살아갈 저만의 내일이 너무 시시하지 않을까요? 이미 알고 있는데 심지어는 저녁 메뉴도 이미 알고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며칠 그리고 몇 년 후에도 어떤 인생을 살다가 어떤 위치까지 도달했다가 내려오는지 들어버렸다면 너무 끔찍합니다. 무기력을 선물로 받았을 테니까요.

지금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이란 걸 하면서 살고 있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일상을 보내는 자체가 노력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근데 미래의 누군가가 미래의 일을 다 예고해 버리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


하물며 2시간짜리 영화나 100편이 넘는 대하드라마도 주변 사람이 스포일러 하면 재미가 없듯이 묘하게 기대할 수 있는 마음이 있으니 우리는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꿈을 통해 또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미래는 궁금해하지 않아도 결국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는 걸

예고되지 않는 미래가 더 재미있다는 걸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이상을 맞을 수 있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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