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
나는 완벽주의자다. 그냥 완벽주의자도 아니고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붙는다. 바로 ‘게으른’이다. 요즘 시대에는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고 주변에서도 유튜브나 각종 매체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완벽주의자는 어떤 일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사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더없이 중요한 요소이며 회사를 운영하는 CEO의 입장에서 볼 때는 고마운 사람 중에 한 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높은 목표치 탓에 성과를 내고도 만족할 줄 모르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눈앞에 펼쳐진 결과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하기도 한다. 이러한 완벽주의는 타고난 사람의 성향이라 보이기가 쉽고 그래서 본인의 일이 아니면 완벽주의자의 스트레스를 타인의 입장에서는 별일 아니라고 치부해버리기 쉽다.
완벽주의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스트레스는 가족 혹은 타인의 평가나 우려 섞인 목소리는 뒤로하고 그저 결과만을 바라보고 업무를 부여해 준 사람의 기대의 목소리에 더 많은 동기부여와 스트레스를 받는다. 기대치에 부응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자기 자신에게 채찍질하기에 이른다. 목표치에 도달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지만 목표치에 도달했다고 한들 완벽주의자는 도통 만족을 모른다. 마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듯이 그들에게 만족이란 없이 더 좋고 더 완벽하기만을 추구한다. 여전히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반면에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그보다는 낫다. 다행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실행력이 뛰어나지 않은 탓에 완벽주의자보다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다만 다른 방향에서 오는 스트레스들이 엄청나다. 무슨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준비물도 엄청나게 필요하다. 예를 들어 토익 공부를 시작한다면 영어 단어를 읽기도 전에 바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강의를 알아보고 책과 문제집을 구매하고 사용할 펜, 메모지, 샤프, 지우개, 형광펜 등을 구매하고 그들을 보관할 적절한 필통도 구매하고 심지어는 공부용 스톱워치와 동기부여를 위한 자기 계발서도 구매한다. 또한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시험 일정을 알아보고 계획한다. 이 모든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의 맹점은 준비가 되면 의지가 모자라 오래가지 못한다. 이유는 어쩌면 당연하다. ‘왜 내가 여기서 이런 공부를 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그저 스펙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시작한 일임에도 굳이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과 의문이 생기고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자신을 괴롭힌다. 설령 공부를 시작했다고 할지라도 시험일을 앞두었을 때 모의고사에서 목표 점수보다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기라도 하는 날에는 시험 접수를 취소하기도 한다. 아직 실력이 모자란 건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 당연한 사실임에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좌절한다.
완벽주의자나 게으른 완벽주의자나 행동 특성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만의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스트레스를 받는 성향은 동일하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였던 나는 과거 정말 많이 힘들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다. 주변에서는 자꾸 힘을 빼라는 둥 내려놓는 연습을 하라는데 그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내 안에서는 오히려 지금도 힘을 빼고 있는 것 같고 많이 내려놓은 상태인 것 같은데 뭘 더 어떻게 내려놓고 힘을 빼라는 건지 의문투성이였다.
그러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힌트를 얻게 되었다. 언제부터 야구를 좋아했는지는 모르겠고 어릴 때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갔던 일이 추억으로 남아 취향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한데 사람이 직접 해야만 하고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충돌은 적은 대신 도구를 사용하는 스포츠이다 보니 크고 작은 부상도 꽤 있다. 물론 야구를 직접 플레이하는 시간은 적고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개인적 성향이 기록을 보고 비교하고 분석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중간중간에도 기록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본다. 아마 이건 야구팬이라면 내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무의식처럼 하고 있을 행동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야구라는 스포츠를 매년 보면서도 응원하는 팀이 잘하면 기분이 너무 좋고 못 할 때는 애증의 감정이 생기고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조차 계속 지켜봤었다. 아무리 게으른 완벽주의자였어도 야구 보는 건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아도 좋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야구는 투수와 타자의 싸움이다. 수비수가 있고 투수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기록을 평가받게 된다. 타자도 마찬가지다. 투수가 던진 공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눈으로 보고 타격해 수비수를 피해 결과를 만들어내느냐의 싸움인데 어느 순간 내가 완벽주의를 가진 야구선수였다면 심지어는 투수였다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야구선수분들이나 과거의 선수셨던 분들이나 지금 야구선수를 꿈꾸고 있는 많은 학생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에서의 관점이다.
투수는 강력한 공을 던져서 타자의 배트를 피할 수 있어야 좋은 투수다. 하지만 공이 아무리 빨라도 움직임이 없이 오는 공은 뛰어난 타자의 배트에는 걸려들기 마련이다. 야구의 세계에서 투수의 좋은 공이란 구속이 높다면 좋겠지만 날아오는 찰나의 0.3~0.4초의 시간에도 공에 움직임이 있는 공을 좋은 공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할지라도 모든 타자의 배트를 피해 갈 재간은 없다. 현재 세계 최고 선수라고 손꼽히는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 선수도 그렇고 과거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박찬호 선수나 KBO 역사에 길이 남을 선동열, 최동원 선수 같은 분들조차 타자 모두를 삼진 처리해서 평균자책점을 0점으로 기록했던 선수들이 아니다. 완벽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개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고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면 본인이 완벽한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때까지 시합조차 출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엄청나고 신선한 충격이 내게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를 포함한 모든 세상 사람들이 투수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미국 메이저리그에도 정상급 투수와 마이너에서 메이저리그를 꿈꾸며 최선의 노력을 하는 많은 선수들이 있다. 그들이 모두 완벽주의자의 성향으로 오타니 쇼헤이 선수를 꿈꾼다면 시작도 하지 못하고 좌절할 것이다. 하지만 구속은 느리더라도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 타자의 배트를 피하려 악착같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보다 느슨하게 공을 던져 타자의 배트에 맞춘 다음 수비수들의 도움을 받아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면 된다. 인생도 야구도 결국에는 아웃카운트를 하나씩 잡는 게임이지 꼭 삼진을 잡아야만 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상 과거와 현재에 수천수만의 위대한 야구 선수들이 있었음에도 한 시즌 동안 평균자책점 0점을 기록했던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완벽할 필요가 없어졌다. 어차피 오점이 없이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기에.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 오직 내가 가진 나만의 무기를 장착하고 마운드에 서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구에서는 투수에게 포수가 어깨에 힘을 빼라는 주문을 꽤 많이 한다. 힘이 들어가면 마음먹은 곳으로 공이 날아가지 않을뿐더러 체력 소모가 많아지고 부상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인생을 대함에서 힘을 빼라는 것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목표를 향해 당연히 열심히 달려가는 것은 좋지만 쉬어갈 땐 적절히 쉬어가고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정확한 진단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생각됐다.
마운드에 외롭게 서 있는 투수의 입장이 되어 타자를 압도할 만큼의 공은 아니라고 해도 나만의 특별한 구종을 던지면 때론 당연히 타자의 배트에 의해 공격당하고 실점하기도 하겠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마음속에 있는 나만의 수비수들이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아웃카운트를 잡아줄 것임을 믿으면 그것이 비로소 완벽한 경기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