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기
인생에 대해 고민이나 생각이 많고 멘탈도 오락가락하며 그저 물 흐르듯 살 때도 유일하게 놓지 않은 취미생활이 딱 하나 있다. 혼자 코인노래방을 가는 일이다. 많이 가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갔고 적게 가면 2주에 한 번 정도는 갔다. 다행히 도보로 10분 이내에 있고 사람이 많지 않아 혼자 노래를 부르기엔 제격이었다. 기본요금은 천 원에 3곡이고 100점이 나오면 자동으로 보너스가 1 코인 지급된다. 보통 한 번 방문하면 3천 원~5천 원 정도를 사용했는데 그 가운데 꼭 한 번은 100점이 등장해 보너스를 받았다. 운이 좋은 날 혹은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두 번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면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노래방의 채점 시스템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크게 내는 곡들이 유리하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목소리와 비슷한 톤을 가진 가수의 노래가 유리하다고 말한다. 어떨 때 보면 전자의 의견이 맞는 것도 같고 또 다른 어떨 때는 후자의 의견이 맞는 경우도 있다. 노래방 기계가 사람의 기분에 따라 같이 변화하는 것은 아닐 테고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 궁금했다. 보통 노래방은 맑은 정신보다는 술에 취해서 혼자보다는 친구들이나 지인 그도 아니면 가족과 함께 가는 일이 많고 나처럼 혼자 취미로 오는 사람들은 적은 편이다. 나는 워낙 이제 혼자 다닌 세월이 길어서인지 친한 사람이 아니면 오히려 같이 노래방을 가기가 꺼려진다. 반대로 친한 사람과는 노래방에 가서 그 사람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어진다. 사람은 노래를 부를 때 목소리가 달라지는 사람도 있고 똑같은 사람도 있고 무엇보다 분위기 반전이 이루어지는 곳이 노래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은 사실 필요가 없다. 음악에 대한 취향도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지인들과 노래방을 가서 노래를 들을 때 누구든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 되지만 그들의 노래를 평가할 권한은 없다. 하지만 노래방 기계는 사용자가 점수 없음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0~100의 점수로 노래 부른 이의 실력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가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점수 내기로 노래를 불러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어떤 곡이 과연 점수가 잘 나왔는지 생각해 보면 고음부가 많은 노래를 잘 소화하면 높은 점수를 받기 수월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건 아마 사람에게 끼치는 노래의 임팩트도 한몫하게 된다. 기계의 평가를 제외하고도 자신이 부를 수 없는 음역대의 노래를 소화하는 사람을 보면 프로 가수가 아님에도 신기하게 느껴지고 대단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노래방 기계는 냉철하다. 아무리 소화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노래도 100점을 쉽사리 주지 않는다. 그러고선 다음 차례에 잔잔하게 큰 임팩트 없이 부른 사람에게 100점으로 평가한다. 노래를 부른 당사자도 놀라지만 강한 임팩트를 주었던 사람도 덩달아 놀란다. 다음 반응으로는 기계가 순 엉터리라며 결과를 바로 승복하지 못한다. 노래방이 아니라 실제 오디션 프로그램이었어도 그럴 수 있는 일임에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혼자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편하게 노래를 부르다가 중간에 가사를 실수해도 음 이탈이 일어났어도 높은 점수를 받기도 하고 정말 목이 터져라 불렀던 노래는 오히려 점수가 낮게 나오기도 한다. 개인적인 어떤 일을 겪고 감정 이입해 노래와 한 몸이 되어 완벽히 소화했다는 마음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점수가 올라가는 화면을 보고 있을 때면 높은 점수를 받게 되길 갈망하고 기대치에 부응하는 점수를 받으면 뿌듯함과 성취감이 동시에 나타나고 생각한 점수에도 못 미치는 낮은 점수라면 내심 실망한다. 실망한 채 편한 음역대의 노래를 편하게 부르면 바로 다음 곡에서 다시 고득점을 하게 되고 네모난 노래방 기계가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인지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난다.
놀랍게도 여기엔 인생을 살면서 가져야 하는 마음의 가르침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어느샌가 느꼈다. 정말 진심을 다해 간절하게 노래해도 원하는 점수에 도달할 수 없었던 것은 모순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힘을 빼고 편하게 부를 때 결과가 더 좋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정으로 똘똘 뭉쳐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는 코뿔소 같은 인생도 당연히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들의 단점이라면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을 때 다음을 몰라서 헤맨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어떤 A라는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이 성실히 스펙을 쌓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철저하게 준비하여 제출하고 인적성 검사를 통과하고 눈빛이 이글거리는 열정을 보고 면접관들이 감동해 최종 합격에 이르렀다면 당연히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행복할 것이다. 출근하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자신이 가진 열정을 불태우는 일을 꿈꾸며 설레는 마음을 간직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취업에 성공하면 그때가 진정한 시작이다. 사회는 현실이고 우리나라의 기업문화는 소수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수평이라고 말하면서도 수직 문화에 가깝다.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긴 했으나 채용 과정에서는 온갖 열정을 불태우던 신입사원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능력을 펼칠 기회도 만들기 어렵고 주변의 동료나 선배 후배들도 가만히 지켜봐 주지를 않는다. 이럴 때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음에도 허무함을 느끼고 무기력이 찾아온다. 설령 초반을 어찌어찌 잘 버텨냈다고 해도 보통 이런 사람들은 직업을 가진 자신과 일체화시키고 직업을 잃으면 곧 자신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하는 자아 소멸형 직업 정체성을 갖게 되고 마음을 제때 적절히 보살펴주지 못하면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쉽다.
반대로 능력이나 스펙이 비슷하면서 A라는 한 곳에만 몰두하지 않고 B, C, D라는 기업에도 두루 지원하여 자신이 선택권을 가지고 선택하는 사람은 위의 사례와는 다르다. A가 안되면 플랜 B가 있고 설령 B를 선택했어도 잘못된 길이라고 여기면 바로 다른 C라는 길을 선택하는 유연함을 가진 사람은 무기력이나 허무함을 느끼는 경우가 드물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로 바로 이직을 할 수 없을지언정 애초에 원하는 그림이 다르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힘 빼기’에 중점을 둔 사람은 하나의 직업에 자신을 얽매지 않는다. 유연하게 대처하여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자기 만족감은 하늘을 찌른다.
인생은 누구나 단 한 번뿐이다. 노래방에서 100점을 받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열정적인 것은 좋지만 다음 곡을 위해 힘을 비축해 놓을 필요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힘을 빼고 자신에게 맞는 노래를 여러 곡을 부름으로써 같은 결과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 목표에 도달했을 때 천지 차이의 결과를 보여준다.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른 사람은 비교적 적은 곡을 불렀음에도 에너지 소모가 굉장히 커서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힘을 빼고 원하는 노래를 여러 곡 불러 결과를 만들어 낸 사람은 여전히 에너지가 남아있다.
인생이라는 운명은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도도하다. 손을 뻗어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고 관심을 주지 않으면 오히려 내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