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기관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 증상이 시작된 정확한 시기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매년 겨울에는 감기에 시달리지 않았는데 성인이 되고 30대가 되기 전까지는 개도 안 걸리는 여름감기에 매년 시달렸었다. 더위를 워낙 싫어해서 물놀이도 선호하지 않아 최대한 실내 생활을 했음에도 꼭 감기는 찾아왔다. 여름이 다 지나서 안심할 때도 가을이 되기 전 어김없이 잊지 않고 나를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살면서 간접흡연을 많이 하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정상 삼촌과 살았는데 그때도 간접흡연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내 폐와 기관지 건강이 좋지 않아 진 것 일지도 모르지만 그나마 긍정적인 면을 찾으라면 담배가 철저하게 기호식품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원하는 성인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내 여자 친구가 담배를 피우더라도 괜찮았다. 그럼에도 나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탓에 비흡연자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30대가 되고 난 이후에는 여름감기가 조금 잦아들었다. 대신에 잔기침이 나오거나 식사 후 바로 눕는 습관에 의해서 역류성식도염으로 인한 헛구역질에 시달렸다. 심하지 않았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2019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남들 하는 만큼 방역을 하고 백신도 3차까지 다 맞았다. 그렇게 점차 코로나 시국이 끝나가며 무사히 지나가는가 했는데 2022년 9월 추석이 다가오던 때 갑자기 코로나는 찾아왔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끝물에 항상 감기의 노예가 되었다. 살면서 가장 힘든 질병이었다. 최초 3일 동안은 옴짝달싹 못 하고 소량의 죽을 먹고 타이레놀만 먹으며 버텼다. 3일이 지나자 점차 살만해지긴 했는데 혀에 감각이 없어졌는지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생수마저 쓰게 느껴졌고 인생을 살면서 유일한 낙으로 여겼던 맛있는 음식을 2주 동안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맛을 느끼는 감각이 다신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며 불안에 떨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2주가 지나자 점차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자체로도 행복했다. 몸이 회복된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았다. 몸이 아플 때는 건강할 때가 그리우면서 다시 건강했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피어나기도 한다. 그래도 언제나 그랬듯 다행히 건강을 찾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난 이후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는 동안에도 하루 종일 기침에 시달렸다. 가까운 이비인후과나 내과를 가봐도 약을 처방받아먹기는 하는데 잔기침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3개월이 지나고 4개월이 되고 어느새 6개월이 넘어가자 같이 일하던 형님들께서 폐나 기관지에 좋은 음식들을 추천해 주셨다. 결명자차, 도라지차, 작두콩차, 맥문동차, 배 온갖 것들을 추천해 주셔서 먹어봤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이러다가 폐렴에 걸려서 또 환자가 되어선 안 된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잔기침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다 다른 형님께서 병원을 한 곳 추천해 주셨다. 내과인데 우리 지방 대형 병원의 호흡기내과에서 과장을 맡으셨던 분이 개원하신 개인병원이었다. 이미 병원도 여러 군데 다녀본 후여서 그 병원이라고 별다를 게 있겠나 싶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병원의 후기를 보니 평점이 1.1점이었다. 주로 내용은 의사 선생님께서 너무 강성이시고 대기하는 시간이 길다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맛집을 정할 때 평점을 주로 보는 나로서는 1.1의 평점을 보고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렇게 잔기침과의 동행을 2~3개월 정도 더하고 재차 병원의 추천을 받게 되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환자분들이 많다고 하셔서 9시에 오픈하는 병원에 8시 30분에 도착했음에도 앞에 3분이 계셨다. 대체로 나이 드신 어르신분들이 마스크를 끼고 계셨는데 병원 맛집답게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서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4번째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진료를 받고 약 처방을 받고 나오니 10시가 넘었다. 과연 1.1의 후기가 정확히 맞았다. 약을 일주일 분 처방받고 하루에 3번을 먹는 약을 2일~3일 정도 먹었을 때 거짓말처럼 잔기침이 멎었다. 솔직히 약 봉투에 조그만 약이 두 개 들어 있는 걸 보고 시간 낭비, 돈 낭비 했다고 생각했었다. 항생제를 쓰지 않는 병원으로 상을 받았다는데 내 처방에도 다른 병원들과는 다르게 항생제는 없이 하얀 구형의 약 두 알로 단 3일도 안 되는 시간에 잔기침을 멎게 만든 게 너무나 놀라웠다. 완전히 멋진 않았으나 90% 정도 호전되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그렇게 증상이 완화되고 나니 평점 1.1은 믿지 않고 의사 선생님이 신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의사 선생님께서는 연세가 있으신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는데 목소리가 크시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불친절하게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일주일 약을 다 먹고 다시 병원을 방문해 폐 검사를 받고 약을 3개월분을 처방받았다. 진단명은 ‘롱코비드’라고 하는 코로나 후유증 중 하나인데 약 20%의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이라고 하셨다. 그때도 선생님은 아주 상세히 롱코비드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증상이 발현되며 얼마큼의 사람들이 발병하는지 그리고 치료는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아주 상세하게 강한 어조로 설명을 해주셨다. 이미 ‘신봉자’의 느낌으로 듣는 나에게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이셨다. 진료를 받고 정산을 하면서 다음 아주머니분께서 들어가셨고 진료가 진행되는데 검사 결과를 보시고는 선생님께서 큰 병원에 갈 것을 말씀드리자 아주머니는 어떤 큰 문제가 있냐며 여기서 치료는 어려운지에 대한 질문을 하셨다. 그러자 선생님은 더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네 여기서는 치료가 어렵고 큰 병원에 가셔야 해요. 안 그러면 환자분 죽어요!”
제 3 자인 내가 듣기에도 조금은 거북하고 무서운 말이었다. 죽는다는 말을 저렇게 공격적으로 하셔도 되나 싶은 느낌이었다. 혹시라도 아주머니께서 자녀와 함께 오셨다면 선생님과 말다툼을 한판 하시지 않았을까 싶었다. 뒤에 이어지는 설명에도 아주머니는 재차 선생님께 큰 병원에 가기 싫다고 했으나 무조건 가야 한다며 강한 어조로 말씀하시자 이내 체념하신 듯 진료실에서 빠져나오셨다
나는 정산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병원 문에 두 가지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환자가 많으니 대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으니 양해해 달라는 안내문과 처방전만 혹은 검사 결과만 들으시는 분이라고 하더라도 접수 순서에 맞게 진행이 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 있다는 안내문이었다. 아마도 어른들이 주로 오시는 병원이라서 불편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고 처음 오시거나 하는 분들도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겠다는 마음이 들긴 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병원’이라는 곳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내 의지로 방문하는 곳인데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불친절하다고 해서 추후에 리뷰 같은 시스템으로 그들을 욕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물론 개인마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 증세가 심각한 분들도 계실 수 있겠고 굳이 강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시더라도 듣기 좋은 단어를 선택해 환자에게 전달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병원이라는 곳에서 내가 앓고 있는 병을 치료해주면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그런 마음이다. 병도 치료하지 못했는데 불친절했다고 하면 나 같아도 별 1점 테러를 할 수도 있겠다. 돈과 시간을 들여서 병원에 갔음에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형 병원을 제외하고 환자가 많은 병원을 가보면 특정 의사 선생님이 특별히 잘 보시는 분야가 있다. 내가 갔던 병원처럼 호흡기에 대해서라든지 아니면 정형외과라든지 심지어는 피부과, 성형외과도 ‘검증된’ 의사 선생님이 계신 곳을 사람들은 선호한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친절을 강요한다. 개인이 돈을 지불하고 받는 ‘서비스’라고 생각하니 친절하다면 당연히 좋다. 그렇지만 불친절하다고 해도 원래의 ‘치료’라는 본분이 해결되었다면 불친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병원에 기대하는 것은 병을 치료해주길 바라는 마음이고 치료가 되었다면 그걸로 끝인데 추후에 불친절하다며 댓글을 달거나 후기를 남기는 일은 우물에서 꺼내주었더니 봇짐 내놓으라는 격이다. 당연히 친절하고 실력도 좋다면 그곳은 최고의 맛집으로 우뚝 설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원래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본분을 다했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서도 모르는 게 있어서 현지인에게 질문하거나 식당에 가서 친절을 만났을 때 너무 감사하다. 그들이 보여주는 친절한 태도는 타국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와주어서 고맙다는 마음을 대신하거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어서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소수의 불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건 전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친절한 사람만 만났다고 해서 그 나라 사람이 모두 친절할 거라는 섣부른 일반화는 오류를 범한다. 반대로 불친절한 사람들만 만났다고 해서 그 나라의 이미지를 모두 불친절이라는 내용의 후기를 작성하면 역시 일반화의 오류가 발생한다. 지극히 한 개인의 경험만이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맛집이든 병원이든 나한테는 맛있고 잘 맞는 병원이 다른 사람에게는 맛이 없거나 불친절하고 실력도 없는 병원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개적인 자리에 이야기라면 조금은 신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정보전달은 현대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자신이 불편하고 친절하지 못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서 상대방을 공개적으로 매도할 권한은 없다는 말이다. 그곳에 방문하는 사람이 100이면 100 모두 같은 불편한 대우를 받았다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나의 태도에 문제는 없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한다.
사람들은 대우받기를 내심 바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조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대우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상대방에 대한 예우를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고 했다. 내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데 상대방이 왜 친절해야만 하는지 궁금하다. 실제로 ‘서비스직’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친절은 ‘Default’처럼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이라고 생각하고 마트나 백화점, 시장 등지에서 그분들을 상대로 한 소위 ‘갑질’의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현대는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계급사회가 아니다. 하지만 몇몇의 극소수의 사람은 돈으로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마치 아래 계급의 사람인 것처럼 대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들도 로봇이 아니라 본인과 같은 사람인데 왜 불친절 input을 친절 output으로 되돌려드려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직업을 잘못 선택한 죄? 직업은 본인이 선택에 의해 가지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서비스는 ‘친절’이 절대적 기본 요소가 아니다.
친절한 서비스를 받게 되면 사람이기에 당연히 기분 좋다. 그러면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사람들이다. 조선시대에 태어나 지체 높은 양반가의 대감, 마님이셨다면 어떤 행동을 해서라도 용서받고 대우받으며 사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절대 이 세상엔 당연한 건 절대 없고 합리화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지출한 돈만큼 무조건 대우받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사람 위에 돈이 있어야만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모두가 알고 있다. 사람이 있고 돈이 있는 것이지 돈이 있고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기분 좋게 살더라도 짧은 인생을 사는데 부족하다. 처음부터 웃으며 기분 좋게 상대를 응대하는데 상대방이 벌컥 화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딜 가든 대우받고 싶고 우리 가족이 대우받기를 바란다면 지금부터라도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나와 우리 가족 지인들이 얽혀서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로봇과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다. 내가 친절을 베풀면 내 가족이 어딜 가든 친절한 대우를 받게 되고 내가 웃으면 내 가족도 남에게 웃으며 친절함을 선물 받을 수 있게 된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기적인 마음을 조금만 줄여본다면 우리 모두 웃음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나 하나쯤이야’ 보다 ‘나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한 웃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