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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믿음

10부. 사랑한다는 흔한 말(完)

by 정수윤세

내게 찾아온 소중한 기적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심오하게 생각해 봤다. 물음의 첫 번째 답은 호기심이다.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궁금해하지 않았다면 봉수에게 물어볼 일도 없었을 것이고 굳이 고민하지 않고 누구든 가볍게 만나며 상황이 되는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대수롭지 않은 마음으로 사랑을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이 알고 싶었고 찾아 헤매다 보니 드디어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아왔다.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예상할 수도, 예상한 적도 없던 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감정을 교류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두 번째는 가장 중요한 믿음이다. 믿음이란 세상 모든 요소에 적용이 가능하다. 단순히 이성과의 관계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인생의 현장에 믿음이 깔려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믿으며 살아왔고 봉수를 만나 친구라는 이름으로 믿고 있고 여자 친구를 사귀기 전에는 누구든 만나서 어떻게 해서든 행복한 가정을 무조건 꾸릴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 믿음은 깨지기도 했고 부서지고 때론 짓밟히기도 했지만 잡초 같은 생명력을 가졌다. 땅 위로 솟은 윗부분을 아무리 짓이겨봐야 뿌리가 상하지 않으면 절대 죽지 않는다. 그렇듯 믿음도 마음의 뿌리에서부터 발현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이성을 만나 오면서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믿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주 막연하게 생각했던 행복한 가정 꾸리기가 한번 실패한 이후로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내가 이제 과연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나 있을까?’하는 불신이 생겼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기도 어려웠고 만나도 내면의 두려움 때문에 회피하기 바빴다. 그러면서 사랑을 논하는 건 모순 그 자체의 행동이었다.


나에 대한 믿음을 찾아준 건 소현이의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저 누워서 손만 뻗어 사랑을 갈구하던 내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고 그 시간을 통해 내면을 탐구할 수 있었다. 만일 그런 소중한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의 기적은 평생 없었을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로 인해 나는 나를 믿게 되었고, 그녀를 믿었고, 아이 소현이도 믿었고,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진심으로 믿었다. 오늘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은 나는 종교가 없지만 우리가 살면서 가장 간절할 때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며 믿음에 기반한 행위이다. 나를 위해 하는 기도 즉 믿음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양되고 나아가서는 당장에 힘든 일이 있더라도 남들이 보기엔 낙관적인 태도로 문제와 직면하기로 했다. 그러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사이에 바람처럼 사라지고 만다.


정말 너무 힘든 일주일의 시간이었다. 나도, 아이를 낳고 정신을 잃었던 소현이도,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우리 부모님도, 아이 소현이도, 태어난 정현이도 모두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꿋꿋하게 이겨냈고 지금처럼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 수 있는 건 모두 믿음으로 귀결됐다. 솔직히 봉수네 커플이 사랑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믿음을 논할 때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당시에도 분명히 믿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을 더 어떻게 믿어야 한다는 것인지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소현이를 만나고 자발적으로 마음을 묻고 말하다 보니 믿음은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신뢰라는 벽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만든 신뢰의 벽은 다이아몬드보다 강했다. 나는 그녀가 무사히 깨어날 것을 믿었고 믿음에 그녀도 부응해 준 것이다.


나에게는 과분한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눈물이 맺힌 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와 정현이가 조금 크고 나면 어떻게 같이 놀지 고민하는 귀여운 소현이와 하얀 침대에 셋이 머리를 모으고 있는 눈앞의 흐뭇한 이 광경을 머릿속의 카메라로 예쁘게 찍어 소중하게 간직하고자 한다. 때론 다른 사람들은 경험하지 않는 일을 나만 겪는 것 같아서 억울한 감정도 많이 들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 인생에 등장해 주었던 모든 사건,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거라는 마음이 든다. 이기심의 끝을 보여주었던 다빈이, 전 아내, 사랑을 받을 줄 모른다고 했던 전 여자 친구를 포함해 봉수와 봉수 여자 친구도 마찬가지로 나에게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다. 봉수를 제외하고는 과거의 사람들이라 미래의 내 인생에 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모두 각자가 있는 곳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온 것처럼 그렇게..


사랑을 외부에서만 찾으려고 했던 지난날이 지금은 그저 귀엽게 느껴진다. 몸만 커졌었던 나다. 어른이라고 생각했고 어른처럼 행동한다고 믿었는데 그때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던 성장기의 나였다. 지금도 역시 성장하는 중이다. 아마 이 성장은 아이들, 사랑하는 아내 소현이와 함께할 것이다. 눈을 감는 그날까지 또 배우고 성장하게 될 것을 알고 있다. 결국 내면의 사랑과 믿음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진리다. 행복이 영원하지 못할 것도 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날이 되면 이들과 자연스럽게 이별할 때가 올 것도 자연의 섭리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방법이 없다면 선택지는 단 한 가지다. 마음의 동요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여행을 가고 싶을 때 떠나고, 가족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있다면 먹고 최대한 많은 순간에 웃음과 행복을 유지하는 것이다. 절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를 믿듯이 가족은 서로를 믿고 서로의 유대관계 속에서 형성된 신뢰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세상의 풍파를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여자 3명을 양팔을 크게 벌려 있는 힘껏 꽉 안아본다. 아프다고 칭얼대는 아이와 혹여 정현이가 숨 막히지 않을까 걱정하는 그녀가 있다. 우리가 나누는 온기는 믿음이 가득한 우리는 뚝배기에 담긴 따뜻한 들깨 삼계탕 속의 대추, 밤, 마늘, 닭이다.


사랑이라는 완성된 음식에서 절대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재료가 오늘 바로 여기 모였다.





안녕하세요. 도심입니다.

저의 첫 번째 소설을 이렇게 마무리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읽으면서도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제가 마음으로만 꿈꾸었던 사랑의 낭만적인 모습을 제가 아는 어휘 안에서 표현해 보려 애썼고 그래서인지 쓰면서도 혼자 웃고 웃으며 퇴고하면서도 모든 시간들이 즐겁고 소중했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한 가지에 얽매이지 않고 쓰고 싶은 글들을 써나갈 예정입니다.

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다정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글,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만족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장르에 구애받지 않더라도 제 능력을 보여드릴 수 있는 분야라면 어디든 도전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없이 읽고, 공부하고, 쓰고, 수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겠지만 그 일련의 모습에 집중하는 제가 너무 좋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을까요?

진작에 알았다면..이라는 후회도 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제가 있었으니 지금의 행복을 찾은 것일 테니까요

그래서 그저 앞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우는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허락했습니다.


아무쪼록 브런치를 이용하시는, 봐주시는 모든 분들이 항상 안온한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제가 글을 쓸 수 있게 허락해 주신 브런치에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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