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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라는 이름

팬이 아닌 아저씨는 빠져

by 정수윤세

우연히 포털사이트를 탐색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야구단의 글을 보게 되었다. 사실 우연이라기엔 무리가 있고 제목이 굉장히 자극적이어서 어떤 내용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제목은 이러했다. ‘개인기록이 중요한 선수는 팀에 필요 없습니다.’ 제목처럼 글의 서두부터 신랄한 비판이 가득했다. 해당 선수는 우리 야구단에서 오래된 경력을 가지고 있고 전체 리그 안에서도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선수다. 글 작성자의 비판의 원인은 한 경기 안에서 투수가 교체될 때, 되고 난 뒤 선수의 굳은 표정 때문이었다. 사람의 시각은 각기 다르다. 이건 인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나는 그 선수의 그 표정을 아쉬움의 영역으로 해석했다. 실점을 했음에도 마지막 이닝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던 마음이 아쉬움의 표정으로 묻어 나왔다고 보였다. 그러나 글쓴이는 선수가 자신의 개인의 이름을 가장 높이 올려두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분함이라고 해석했다.


과연 그랬을까?라는 물음표가 가장 크게 떠올랐다. 해당 선수는 팀에서 여러 차례 증명했고 우승도 차지했던 중추 선수이다. 더불어 인터뷰나 어떤 매체에서건 팀이 우선시 된다고 발언한 적도 많다. 개인기록은 팀성적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다 보면 따라오는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 시즌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팀의 성적이 현재 좋지 못하고 해당 선수의 등판마다 기록이 다 좋지 못했고 해당 경기에서도 등판 내용이 좋지 못했다. 아마 그래서 더 자신이 해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책임감으로 녹아 그런 표정이 됐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쓴이는 해당 선수가 개인기록을 채우지 못했다는 분함에 못 이겨 그런 표정을 내보였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나도 글쓴이도 개인의 견해이고 추론일 뿐이다. 그렇다면 선수가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정확히 발언하지 않았으니 팩트가 아닌데 추론만으로 팬이라는 이름 아래서 비판을 감행해도 되는 것일까?


프로 세계에서는 팬이 있기에 선수들이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이건 프로 스포츠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고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에 모두 포함되는 말 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자체에도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인이 있기에 팬도 있다. 공인이라는 주체가 없으면 팬이 생길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팬과 공인은 서로 상생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공인은 팬이 주는 관심과 사랑을 먹고사는 하나의 직업이고 팬은 일상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다. 예를 들면 외모, 도파민, 긍정의 에너지, 위로, 공감 같은 마음의 울림을 불특정 타인에게 보여줌으로 각자의 팬이 각자 생긴다. 여기서도 양쪽 모두 지양해야 하는 것은 한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이다. 너무 몸집이 커져서 자만에 빠져 팬의 소중함을 모르고 막대하는 공인이 된다거나 공인도 사람일진대 사생활을 존중해주지 않고 극성팬이 되어 스토커가 된다거나 하는 행동이다. 무슨 일이든 양 극단에 치우치면 안 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팬이 된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들어본 적 없으니 주관적인 시선에서 보자면 나에게 없는 감정 혹은 나에게 필요한 감정을 충족시켜 준 사람 혹은 단체에 대해서 팬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단이나 좋아하는 가수를 봤을 때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야구단이 우승하면 괜스레 눈물이 난다. 직접 우승한 것도 아니고 팀의 구성원도, 가족도, 관련인도 아닌데 소속감이라는 이상한 감정이 피어난다. 우승까지 가지 않더라도 경기가 잘 풀리는 날이면 그날의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그렇다고 패배한다고 해서 나빠지지는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볼 때 팬이라는 이름은 그리 가볍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본다. 특정 대상을 향해 있는 한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사람들과 같이 좋아하는 야구단에 대해 가끔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를 넘는 비판은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선수 개인의 가족까지 싸잡아 욕한다거나 한 사람이 못했는데 전체를 비판하는 등의 행위다. 그런 사람이 있겠느냐 하실 수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한다. 어차피 들리지 않을 말이라 생각할 테니 말이다.


신서유기라는 프로그램에서 ‘팬아저’라는 줄임말 퀴즈가 나온 적이 있다. 당시 그 장면에서 안재현 배우님이 나와서 ‘팬이 아닌 아저씨는 빠져’라는 답변을 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시대를 관통하는 답변이 아니었을까 싶다.

(해당 퀴즈의 답은 ‘팬이 아니어도 저장’이다.)


자칭 팬이라고 하는 비판하는 사람들은 팬이기에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 자격은 누가 주었을까? 확신하는데 그런 자격을 준 존재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저 특정 사람을 비난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채우는 뱀파이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은 팬이라는 가면 속에서 특정인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도를 넘는 발언을 일삼는다. 하지만 그들을 꼭 나쁜 사람이라고 까지 명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도 그들만의 생존 방식을 택했을 것이기에. 그럼에도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서 남을 비판하는 행위는 절대 용인되어서도 될 수도 없다.


진짜 팬은 잘할 때 박수쳐주고 같이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들이고, 못할 때는 해당 공인이 잘못을 인정한다면 다음에 그러지 말아 달라는 당부와 응원을 보내줄 줄 아는 사람이다. 혹여라도 범죄나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면 비판하고 욕할 시간에 그냥 관심을 꺼버리면 된다. 팬이 아니라는 증거는 무관심이다. 관심을 먹고 성장하는 공인은 팬들의 관심이 없어지면 산 송장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다른 길을 찾아 생존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하나의 소속감에서 같이 웃고, 울고, 공감하고, 위로하며 팬도 유지가 되고 그런 팬들이 있어 공인들이 자신들의 활동에 더욱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다고 믿는다. 팬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마치 자신이 팬 단체의 모든 의견을 다 듣고 종합해 발언하는 것처럼 팬들은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은 해당 단체에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해당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나처럼 반대의 의견을 가졌거나 또 다른 견해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얼마든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좋아했던 가수가 있었다.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그 가수를 좋아하냐며 묻곤 하는데 지금도 좋아하지만 팬은 아니라고 말한다. 왠지 내가 생각하는 팬이라는 이름 자체가 무거워서 인 듯하다. 지금 내 음원스트리밍 어플에는 약 95%가 한 가수의 노래로만 등록되어 있다. 그 시간도 벌써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인정한다. 음악을 듣는 취향에 있어서는 아주 편협하고 편향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한 가수의 음악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 사람의 음악 안에는 희로애락, 생사고락이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계절도, 사람도, 사랑도, 인생도 모두 녹아 있다. 그러니 헤어 나올 수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극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유는 그 사람을 지켜볼 때 드는 내 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성이지만 이성에게 느끼는 매력은 사실 미미하고 정말 그 사람이 언제나 좋은 사람들과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대 초반에 좋아했던 가수분에겐 나는 팬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공인이 아닌 아주 평범한 사람임에도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게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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